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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206화 (206/226)

< 71. 만남 (2) >

‘에리 그 아줌마가 맞군. 아니, 저 얼굴에 대고 아줌마라고 부르는 건 조금 이상하지만.’

지금 예은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은 정명과 아주 친하게 지냈던 사람인 미어스 에리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본 에리는 예전과 비교하여 조금 달라진 점이 있었다.

맨 처음 눈에 띄는 것은 헤어스타일이었다. 허리까지 오던 머리가 마치 쿠론처럼 어깨까지 오는 단발로 바뀐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에리가 무척이나 젊어보였다는 것이다. 물론 원래도 예뻤지만 지금의 에리는 이전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아니, 실제로 젊지 않나? 아마 지금 나이가....’

“예은아, 잠깐만.”

그리고 그 때, 감독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 예은에게 다가가무언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예은은 큰 짐을 덜은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예은은 정명에게로 바턴을 넘기며 당부하듯 말했다.

“조심해요. 저 여자, 성격 엄청 더러워요.”

“성격이 더럽다고요?”

“네. 그래도 욱하면 안 되는 거 알죠? 우리는 부탁하는 입장이니까.....”

“.....예. 주의하겠습니다.”

차석진 다음으로 팀에서 만만한 사람이었던 에리가 성격이 더럽다니, 정명은 조금 황당한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흠, 확실히 성격이 조금 더러워 보이기는 하네.’

오랜만에 본 에리의 얼굴은 밤을 샌 것처럼 눈이 퀭했고 표정에 짜증이 배어있었다. 항상 미소로 팀원들을 맞아주던 지난날의 에리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이봐요, 거기 지금 내 말 듣고있는....누구시죠?

“안녕하세요. 유정명이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제가 당신과 이야기 할 겁니다.”

그 말에 금발의 미녀가 얼굴을 살짝 찌푸린 채 정명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한 단어 한 단어 씹어 먹듯 무척이나 천천히.

-그러니까, 리플레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서면으로. 기록을. 남기고 싶은데요.

지난 번에. 중국 팀하고 연습했을 때. 유출된 적이 있어서. 기분. 나쁘시더라도.양해를. 부탁.....

“아니, 잠깐만요. 왜 그렇게 말하시는 거죠? 그러니까 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그냥 평소처럼 말해 주실래요?”

“후....그야 당신이....”

에리는 방금 전 여자처럼 네가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이러는 거 아니냐고 짜증스레 답하려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정명의 발음이 상당히 좋았다는 것을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까닥이며 평소의 톤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제대로 된 통역이 왔나 보네요. 그러면 앞으로의 일정은...”

정명이 나서자마자 이야기가 원활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뚱히 그 모습을 구경하던 감독은 옆에 있던 한 직원의 팔을 툭툭 쳤다.

“야, 형배야. 지금 이야기가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맞냐?”

“전 잘 모르겠는데요.”

“너 호주로 유학 갔다 왔다며?”

“유학이 아니라 워킹홀리데이인데요.”

“뭐? 그게 그거 아냐?”

“아닌데요. 전 농장에서 일만 하다 보니 말을 배울 시간이 없었거든요. 하하. 솔직히 말하자면 영어는 한 마디도 못 합니다.”

“으이구 자랑이다 새끼야!”

그리고 잠시 뒤, 정명과 에리의 대화가 끝났다.

-영어 잘하시네요. 앞으로 통역은 당신이 담당하시는 거 맞죠?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은 암 걸리는 줄 알았어요.

“예. 제가 하루 만에 잘리지만 않는다면 제가 쭉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정명의 말에, 에리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화상통화를 한 이래 처음으로 짓는 미소였고, 그 모습에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잘못되었네 뭐네 하며 떠들던 연습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모니터로 쏠렸다.

“와, 정명이 너 완전히 검은머리 외국인이구나! 앞으로 너만 믿는다. 다른 녀석들은 다 돌머리라 쓸모가 없어.”

“아 감독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합니다. 저 대학 어디 나왔는지 아시잖습니까.”

“그래? 그럼 그 말을 영어로 해 봐. 그럼 인정해 줄게.”

감독은 정명의 머리를 격하게 쓰다듬으며 똑똑이가 들어왔다고 연신 칭찬했다.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명은 팀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ATX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몇 개월이 지났다.

.......

“와, 진짜 힘들었다...”

“우리가 우승이다!”

몇 개월 뒤, 섬머리그가 끝이 났다.

섬머리그는 정명이 속해있던 팀인 ATX가 우승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애초에 ATX가 한국에서 1, 2위를 경쟁하던 팀이기도 했지만, 팀의 수준이 고만고만하고 수준이 썩 높지 않아 변수가 많았기에 이길 수 있었던 경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정명은 대기실로 들어오는 팀원들을 웃으며 반겨주었다.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축하합니다.”

“그래, 정명이 너도 출전도 못 하고 기다리느라 마음고생 많았다. 그래도 윈터 시즌부터는 경기에 나갈 수 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봐. 네 실력은 잘 알고 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감독은 정명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건넸다. 시즌 중간에 영입된 정명은 규정상 출전도 못하고 벤치만 달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마음고생 심할 것이라는 감독의 걱정과는 달리 정명은 정말로 만족스러운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월급, 그리고 포인트가 알아서 들어왔기 때문이다.

[섬머리그에서 우승했습니다!]

*20만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더 수준 높은 리그에서 활동한다면 더 높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돈이랑 포인트가 들어온다니, 여기는 천국인가?’

섬머리그에서 우승함에 따라 ATX는 월드챔피언십에 직행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월드챔피언십은 미국에서 펼쳐지게 되었는데, 경기 일정이 없는 정명으로써는 안 가도 되지만 정명 또한 미국으로 함께 가게 되었다. 정명의 사기 진작 겸 통역으로 쓰겠다는 감독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명이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정명은 송하니의 연락을 받았다. 잠깐 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명은 매번 그랬던 것처럼 PC방에서가 아닌, 시내의 한 음료 전문점에서송하니를 만날 수 있었다.

“오빠아아!! 요기다, 요기!”

정명이 음료 전문점으로 들어서자마자 하니가 격하게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었다.

정명 또한 씩 웃으며 맞은편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정말 네가 사주는 거야?”

“당연하지! 나도 돈 모아놓은 거 있다고!”

그래봤자 1300원짜리 생과일 음료수였지만 마음이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정명은사준다는 것을 기쁘게 받았다.

그리고 파인애플 음료를 쪽쪽 빨며 본론을 꺼냈다.

“그래, 그래서 중요한 고민이라는 게 뭔데?”

“웅....그게 있지...나 연예인이 될 수도 있을 듯...”

정명은 하니가 기념품이라도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지만, 하니는 꽤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한 연예인 기획사에게서 아역배우를 할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정명은 드디어 올게 왔구나 생각하며 하니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했다.

“어뜩하지? 엄마는 나만 좋으면 해도 된다구 하는데...”

“오, 대단하네. 해 보는 게 어떠냐?”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님! 오빠도 잘 모름? 근데 상담할 사람이 오빠랑 부모님밖에 없음....”

“왜 내가 모른다고 생각해. 그 업계에 대해서 되게 잘 알거든?”

“어어? 정말로? 오빠 연예인에 대해서 관심 하나도 없지 않았나?”

하니의 말대로 정명은 연예인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기는 했다.

하지만 하니와 같이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자연스레 주워들은 게 많았다. 그것도카더라식 소문이 아닌, ‘진짜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 소속사가 어디라고 했지?”

“카벨....인가?”

“응, 거긴 괜찮은 곳이야. 그런데 장기 계약은 하지 마. 나중에는 더 좋은 조건으로 옮길 수 있으니까. 그리고 또....”

성심 성의껏 설명을 했지만 하니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다.

정명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정리된 것을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우음...아역배우 하면 나도 이쁜이 언니처럼 될 수 있는 거 맞겠지?”

“야, 그놈의 이쁜이 언니 타령은 언제까지 할 생각이냐?”

“엉? 그런 말 하면 안 되나?”

“하면 안 되는 건 아닌데, 우리 할머니네 집 누렁이 이름이 이쁜이여서 자꾸 그 생각난다고. 그리고 네가 말하는 그 사람은 그렇게 예쁘지도 않아. 성격도 별로고.”

“어어...그런가? 그 정도면 예쁜 거 아닌가?”

“네가 진짜를 못 봐서 그래. 나중에 소개시켜줄게. 미국 갔다 와서.”

정명은 하니와 적당히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니는 무척이나 말이 많았고, 정명은 말하기보다는 들어주는 쪽이었다.

그리고 헤어질 시간이 되자, 하니는 깜빡했다는 듯 정명의 손을 잡았다.

“아 맞다. 오빠 나 머리 좀 쓰다듬어주면 안 되나? 저번에 했던 것처럼.”

“으음...또?”

정명은 주변의 눈치를 보며 하니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하니의 상태창을 열었다.

지금은 프로게이머도 뭣도 아닌, 8살짜리 꼬마의 스탯이었다.

[송하니]

피지컬 (30/97)

정신력 (34/92)

오더 (14/90)

판단력 (37/97)

*250개의 미분배 스탯이 있습니다.

*팀원의 신체에 몸을 접촉하면 미분배 스탯을 올릴 수 있습니다.

*나이의 한계로 인하여 일정 스탯 이상 올릴 수 없습니다.

*연습량이 부족하여 더 이상 미분배 스탯을 올릴 수 없습니다.

‘으음, 역시 아직 안 되네.’

정명은 한 달 전, 하니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피지컬을 포함한 몇 개의 스탯을 올려주었는데, 그 이후로 하니는 아무리 놀아도 피곤함이 잘 안 느껴진다고 했다.

“내 주변에 마법사가 있다니, 진짜 신기하다!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어...”

“말 하면 안 돼. 어디 가서 말하는 순간 이 거래는 끝이다.”

“웅웅! 알았써! 엄마한테도 말 안 할게!”

‘어휴, 왜 변명을 이상한 소리로 해서는...’

정명이 피지컬을 올리자마자 하니는 자신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지 깜짝 놀라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그리고 당황한 정명은 마법을 걸었다고 대충 둘러댔던 것이다.

정명이 하니의 머리에 손을 얹자 하니는 기대감에 차서 정명을 올려다봤지만 정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안 돼. 한살 더 먹어야 할 수 있을 거 같아.”

“우으...그럼 한살 먹고 또 해줘? 꼭이다?”

그 후, 하니와 헤어진 정명은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미국. 월드챔피언십이 열리는 곳이었다.

......

“여기가 미국인가. 정명아 너만 믿는다!”

“어디에 손을 대. 정명이는 나랑 같이 다닐 거거든?”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팀원들이 정명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친한 척을 했다. 영어를 잘 하는 정명과 함께라면 갈 수 있는 곳이 많아지니 먼저 정명을 선점해 두려는 것이었다.

정명이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 며칠 뒤, 월드챔피언십이 시작되었다.

조별리그를 통과하기위해 팀은 바쁘게 연습하고 있었고, 실제로 조별리그 통과는 꽤 낙관적으로 보였다. 그동안 연습했던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 팀은 걱정 없는데, 저 팀이 문제란 말이지.’

정명은 전광판에 적혀 있는 두 팀의 로고를 바라보았다.

내일의 첫 경기는 북미 팀 대 중국 팀의 경기였는데, 시청자들은 30대 70으로 중국 팀이 이긴다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패배할 것이라 예측되는 북미 팀에는 정명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에리가 조별리그에서 떨어지고 나서 팀 스폰이 중지되었다고 했었던가...’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똑같은 운명이 반복될 듯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정명이 에리에게 있는 미분배 스탯을 올려준다면.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다.

미분배 스탯을 올리려면 올리는 동안 신체접촉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정명은 에리의 몸에 손을 댈 정도의 친분이 당연하게도 없었다.

‘어떡하지? 악수를 하는 잠깐 동안 후다닥 올릴 수 있으려나?’

누가 정명의 고민을 듣는다면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고생했던 팀원들에게는 떡 하나라도 물려주고 싶다는 것이 정명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개인적으로 에리와 연락할 수단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팀 계정을 이용해서 잠깐 만날 수 있냐고 물어볼 수는 없으니까. 그 사실이 적발되면 팀 자체 징계 감이었다.

‘그러니까 경기장 안에서 우연히 만나는 게 베스트인데.’

정명은 한숨을 쉬며 음료수 자판기를 찾아 경기장 복도를 걸었다.

경기장 안에서는 경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곳은 직원 전용 구역이었기에사람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정명은 금방 자판기를 찾을 수 있었지만, 자판기를 먼저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엄마, 나 오늘 학교에서 있지!”

‘이건....상당히 익숙한 목소린데.’

목소리뿐만 아니라 뒤통수 또한 상당히 익숙한 모양새였다.

정명은 자판기 앞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꼬마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어...응, 응. 바빠? ....응, 알았어.....”

전화를 끊은 꼬마는 이내 긴 금발을 찰랑거리며 자판기 앞에서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손이 닿지 않아 그런 듯 했다.

“손이 안 닿니? 내가 도와줄까?”

정명에게로 시선을 돌린 꼬마는 조금 놀랐는지 파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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