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86화 (186/226)

< 64. 해외 진출 (1) >

핸드폰을 꺼낸 정명은 가장 위에 있는 톡 메시지를 확인했다.

-안녕. 나 지난번에 전화했었던 혜정이야. 전화기 꺼져있어서 톡으로 보낼게. 너 알고 보니 되게 잘 나가는 게이머더라! 앞으로 자주 연락....

정명은 딱 거기까지만 읽고 메시지를 지워버렸다.

‘이젠 번호를 정말로 바꿔야겠군. 이런 식의 접근은 달갑지 않다.’

최근에는 이런 식의 연락을 꽤나 많이 받았기에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정명이 유명해질수록 기억도 나지 않는 친구들, 있는 줄도 몰랐던 친척들이 뭐 주워 먹을 게 있나 싶어 연락을 하는 횟수가 늘어났으니까.

‘특히 이번에는 명성 수치가 엄청나게 올라갔으니.’

정명은 명성 수치와 관련된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명성]

*명성 수치가 20000 이상입니다. 이제 당신은 프로리그 팬은 물론이고 게임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관리해온 이미지가 나쁘지 않습니다. 광고 수익이 30% 증가합니다.

-인터넷 방송의 시청자가 50% 증가합니다.

-만약 당신이 직접 영입을 제안한다면, 게이머 지망생들은 망설이지 않고 당신의팀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덕분에 몸값이 얼마냐며 물어보는 메일도 엄청나게 늘어났지.’

명성 수치는 게이머의 역량과는 별로 상관없는, 게임 외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명은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 대기업에서 보내온 메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광고협력 제안입니다.]

[조금 망가지는 CF 괜찮으신지요?]

[re : 단체 계약은 불발되었습니다. 송하니가 너무 비싸요.]

사람들이 정명을 찾는 목적은 각양각색이었다.

보통은 방송 프로그램의 섭외였고, 간간히 CF 계약이나 행사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왔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미국에서 올렸던 수익을 곧 따라잡을 수 있겠다. 목표는 팀원들 전부 은퇴하기 전에 건물 하나씩 올리는 거다.’

그리고 정명은 마지막으로 온 메일을 보며 고개를 들었다.

[혹시 코치로 계시는 분도 섭외가 가능할까요?]

“푸핫, 에리. 당신에게도 섭외요청이 들어왔는데요? 예능프로 어떤가요?”

에리는 자기관리가 대단한 건지, 원래 그런 사람으로 태어난 건지 애 엄마임에도 나이든 태를 내지 않았다.

외모 지상주의가 판치는 이 나라에서 좋은 외모라는 것은 무척이나 훌륭한 섭외 대상이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말 많이 해야 해서 싫어. 지금 한국어 잘 못 하는 거 엄청 스트레스거든.”

“그럼 이건 어때요? 게임기 광고요. 이건 괜찮을 것 같은데.”

“어디? 음...우리 이미지랑도 맞고, 금액은...와, 꽤 세게 불렀네!”

정명은 아침부터 에리와 함께 팀의 수익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애들에게는 말하기 뭣한 어른들의 이야기였다.

“우으 머리아파....”

그리고 그 순간, 바닥에 기절해 있던 사람들이 한명 두 명 거실로 나오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술을 마실 수 없는 꼬맹이들까지 썩 좋지 않은 표정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언니, 언니. 나 코코아 주라.”

“응, 알았어.”

이내 송하니는 따듯한 코코아를 마시며 정명이 보고 있던 메일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뭐야, 둘이서 돈 얘기 하고 있었구나! 나도 낄래!”

“하하, 넌 돈 잘 버니까 이런 거에 별로 관심 없지 않냐? 그러고 보니 너 지금 수익이 얼마쯤 되니?”

“흐흥, 글쎄! 미소녀 아이돌 송하니의 수익은 비밀 중의 비밀인데! 하지만 오빠가 정 궁금하다고 한다면 가르쳐줄 수도 있지!”

“정 궁금해.”

그리고 하니는 손가락을 세 개 들어보였다.

탑 아이돌 가수인 송하니의 수익을 들은 에리는 두 눈을 크게 떠서는 어버버 거리기 시작했다.

“야, 너...오빠 밥이나 좀 사줘라.”

“푸히히.”

하니가 웃으며 뭐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옆에 있던 방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일어난 차석진이 일어나자마자 멍하니 TV를 틀었다.

TV에서는 결승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벌써 월드챔피언십 결정전 일정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거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TV로 쏠렸다.

“월챔이라. 우리가 한국 리그에서 우승을 하긴 했지만, 사실 본방은 이쪽이지.”

“그렇지. 여기에서 성적을 내야 인정받지.”

월드챔피언십.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열여섯 개의 팀이 모이는 꿈의 리그이다.

당연히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인 셈이고, 한국 선수들도 어처구니없이 탈락하고는 하는 수준 높은 리그이기도 했다.

광고가 끝나자, 이상하게도 팀원들이 슬슬 정명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쿠론이 송하니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찔렀고, 송하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명에게로 다가왔다.

“오빠, 혹시나 해서 말 하는데 우리 오늘은 연습 안 할 거지?”

“에리랑 똑같은 소리를 하네. 당연히 안 하지 오늘은 나도 피곤해.”

“와, 오빠가 피곤함을 느낀다고? 이건 조금 신기한데!”

‘피지컬이 올라갈수록 피곤함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는 했지만...너무 티 났나?’

정명은 뜨끔함을 감춘 채, 일부러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당연하지. 이 오빠도 휴먼이야 휴먼. 피곤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고.”

“음...그럼 내일은? 내일은 연습 해?”

“쉬려고.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일주일은 쉬어도 될 거라고.”

“그럼 혹시 내일의 내일은...”

“안 한다니까. 왜 자꾸 그러는데?”

“기본적으로 오빠를 무척이나 신뢰하긴 하지만, 이런 일에는 신용이 안 가.”

송하니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짐작 가는 부분은 있었다. 사실 짐작 가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정명은 가끔 스파르타식으로 팀원들을 몰아붙일 때가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있었지만, 그만큼 힘들기는 했던 것이었다.

“우리는 당분간 쉴 거야. 그러니까 소파에서 과자나 먹으면서 다른 팀들이 아등바등 하는 모습 구경이나 하면 된다는 말이지.”

......

월드챔피언십 직전에 열리는 리그, 섬머리그에서 우승한 팀은 월드챔피언십에 직행으로 간다. 또, 스프링, 섬머리그를 합산하여 제일 성적이 좋은 팀 또한 직행으로 간다.

그리고 나머지 상위 4팀이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쯧쯧, 저걸 저렇게 가면 안 되지.”

“맞아 맞아. 저 녀석, 부시에 얼굴부터 들이미는 플레이를 아직도 못 고쳤네.”

정명이 섬머 리그에서 우승하고 며칠 뒤.

월드챔피언십 선발전이 끝나가고 있었다.

선발전을 치르는 팀은 무척이나 필사적이지만, 월챔에 직행으로 간 팀원들은 그 모습을 여유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아아, 이게 뭔가요!

-앞구르기라니요, 의욕이 너무 과했습니다....

“끝났네.”

“끝났군. 역시 NAV, 아직 안 죽었어.”

월챔 진출전 마지막 경기는 요즘 기세를 탄 팀 ACE와 기존의 강호, NAV의 경기였다.

ACE는 잠도 줄이며 연습에 매진했으나 결국 최종전에서 NAV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사실 이건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다. 지난 리그에서 NAV가 폼이 떨어져서 진 게 아닌, NHG가 실력을 올려서 이긴 것이니까.

“우리도 이제 슬슬 연습 하죠. 저거 보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요.”

“그 전에 정명아. 네 핸드폰 웅웅대고 있는데? 아까부터 계속.”

에리의 말에, 정명이 무척이나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빠도 너무 바쁘기 때문이었다.

“어휴, 이번 리그가 끝나면 일정을 관리해줄 매니저를 빨리 구하던가 해야지 안 되겠어요 이거. 보나마나 연습경기 하자는 톡일 것 같은데.”

“그럼 그 때 코치도 한 명 더 충원 좀...헤헤.”

요즘 연습경기 상대로써 가장 인기 있는 팀은 단연 NHG였다.

연습경기 매너와 실력.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좋은 상대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명의 톡은 연습경기 일정을 조율하는 메시지로 가득 차 있었고, 정명은 팀의 일정을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송하니의 매니저를 그냥 이직시켜버려? 흠, 얘기라도 해 볼까...’

그런데 연습경기 관련 톡일 거라는 정명의 예상과는 달리 이번에는 조금 다른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우리 지금 길에서 헤매고 있는데 잠깐 도움 좀 주실 수 있어요?

........

월드챔피언십이 열리기 전, 각국의 해외 팀들이 한국에 오는 것은 거의 연례행사가 되었다.

한국 지역의 실력은 세계에서 알아주기 때문에 일찌감치 한국에서 부트캠프를 차리고 수련을 하려는 생각으로 한국에 몰려오는 팀들이 많았던 것이다.

정명에게 연락을 한 TBM의 코치 또한 마찬가지였다.

북미의 강호인 TBM은 월드챔피언십 진출을 일찌감치 확정지었기에 월드챔피언십이 다가올 때까지 한국에 있으려 했지만, TBM 선수들은 어이없게도 숙소에 도착하지 못한 채 길을 헤매고 있었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여기 근처이기도 하니까.’

정명은 솔직히 조금 귀찮았지만, 사회생활이 항상 맘대로 되겠는가.

인맥 관리 겸 해서 잠깐의 시간을 내어 그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차를 타고 나간 정명과 메테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처량한 모습으로 벤치에 앉아있는 TBM 선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메테오입니다. TBM이 리빌딩을 거쳤다더니, 평균 나이가 무척 낮아진 것 같네요. 하하.”

메테오가 웃으며 말을 걸었지만, TBM 선수들은 대답은 하지 않은 채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었다.

미국인인 메테오가 똑같은 미국인인 TBM 선수들에게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여자 친구가 한국인이라더니, 메테오의 한글패치가 너무 과도하게 된 것 같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메테오는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밀었다.

“메테오입니다. 고생 많으셨네요.”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TBM의 코치인 마이크입니다.”

이윽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한명한명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프로게임구단의 팀원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안 어울리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마이크의 딸, 멜리사였다.

“안녕 꼬마야!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

“아저씨가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야?”

“그런 것 같네. 아직은 임시지만.”

“임시?”

“모르니? 팬들의 평가는 태세전환이 심해서 5초면 뒤집힐 수 있다는 거. 세체미 타이틀을 유지하려면 성과가 조금 더 있어야 한다고 할까.”

정명이 KAO를 잡으며 세체미 타이틀을 얻긴 했지만, 정명 스스로 ‘내가 최고다!’ 라고 떠벌리고 다니면 거만하다는 평가를 받을 게 뻔하다.

때문에 정명은 약간 겸손을 담아 말했지만, 마이크는 오히려 정명을 황당하다는 듯 쳐다봤다.

“애한테 무슨 소리에요? 그러고 보니 조금 분위기가 바뀌신 것 같네요. 예전에 북미에서 활동하실 때는 조금 공격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엄청 당당하시더니.”

“하하, 제가 그랬었나요?”

한글패치가 된 것은 메테오가 아니라 자신인 것 같다고 생각한 정명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내가 한국에서 제일 잘 해.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원들 또한 최고의 선수들이지.”

“오오, 대단해!”

꼬마와의 대화가 끝나자, 마이크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 아세요? 북미에서 NHG에게 거는 기대가 무척이나 커요.”

“네? 북미에서 왜요? NHG는 이제 북미 팀 아닌데?”

“그래도 선수 라인업에 미국인이 두 명, 코치까지 포함하면 세 명이잖아요. 그래서인지 NHG를 제 4번째 북미 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아요.”

“그런가요?”

“사실, 당신이 보여준 모습 때문인지 당신을 미국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고요.”

‘흠, 북미 사람들이 우리 팀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다 라...’

.......

정명이 TBM 선수들을 무사히 숙소에 데려준 뒤로 며칠이 지났다.

이제 월드챔피언십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연습실의 컴퓨터는 모두 전원이 꺼져 있었다.

“되게 오랜만에 가는 것 같네요.”

“오빠! 나 차에 가방 싣는 것 좀 도와줘.”

연습실은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분위기가 들떠 있었다.

모든 팀원들이 밖으로 나오자 정명은 연습실 문을 탁, 닫았다.

“자, 그럼 우리도 갈까? 중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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