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결승전 (1) >
‘일단 15만 포인트는 고맙게 받기로 하고 그 다음은...’
정명이 제일 먼저 살핀 것은 괜히 ???로 떠서 제일 궁금하게 만들었던 보상이었다.
[잠재능력 제한 일부 해제]
*성장판 아직 안 닫혔다
-모든 팀원의 잠재능력 한계치가 1 상승합니다.
‘팀원들의 스탯 최대치가 1씩 늘어났다. 이걸로 한 숨 돌렸군.’
팀원들의 상태창을 확인해 보니 스탯 한계치가 1씩 늘어나 있었다. 연습을 하면 실력이 더 발전할 여지가 생긴 것이었다.
스탯 최대치 상승. 그것은 팀원 그리고 정명이 가장 바랬던 것이기도 했다.
‘좋아. 스탯 1이면 얼마 안 올랐다고 할 수도 있지만, 팀원들의 능력을 더 높일 여지가 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일단은 만족이다.’
그리고 그 변화를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선수 본인들이었다.
에리와 함께 연습경기 리플레이를 돌려보던 송하니는 정명에게 다가와 다시 감사인사를 했다.
“오빠! 고마워. 오빠 덕분에 슬럼프를 잘 피해갈 수 있었던 것 같아.”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네가 열심히 해서 그렇지.”
“헤헤. 오빠는 이제부터 내 행운의 상징이야.”
“아니 뭐 그 정도까지야...”
“아니 진짜루! 오빠랑 PC방에서 만나고서부터 일이 다 잘 풀리는 느낌인걸! 부모님 속 썩이던 송하니가 이렇게 클 줄 누가 알았겠어? 다 오빠 덕분이야!”
하니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지난번 사용했던 스킬의 부가효과 때문일까?
팀원들과 더욱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 진짜인지, 정명은 확실히 팀원들의 태도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메테오는 비밀 얘기도 많이 하기 시작했지.’
선비처럼 항상 점잖던 메테오는 답지 않게 음담패설도 가끔 하고는 하며 정명에게 감춰뒀던 속내를 털어 놓는 모습을 보였다.
차석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코치인 에리는 일상생활보다는 연습 경기 후, 피드백 시간에 조금 바뀐 모습을 보여주었다.
“와, 너에게는 내가 뭐라고 조언할 게 없는데? 정말 잘 했어.”
“칭찬이죠? 고맙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연습경기 후 코치와 함께 리플레이 돌려보는 시간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피드백을 하는 시간엔 성격 좋은 코치고 뭐고 코치에게 대차게 까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리는 오늘 정명을 까기는커녕 정명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마치 쿠론을 대할 때와 똑같은 태도였다.
“착하다 착해.”
“저 애 아니거든요. 내년이면 29살이 되는 어른이란 말입니다.”
“음...그럼 어른애로 할까? 아하하, 농담이야.”
연습경기의 피드백을 끝낸 정명은 잠시 쉬기 위해 고양이를 찾기 시작했다. 만지작거리면서 힐링을 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고양이는 이미 쿠론에게 붙잡혀 있었다. 쿠론은 슬럼프에서 벗어나서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부르며 고양이를 만지고 있었다.
‘흠,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네.’
쿠론은 태도가 달라진 것이 그다지 없어 보였다.
떽떽거리는 것도 여전했고, 가끔씩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도 평소대로였다.
고양이를 만지며 이상하게 엉덩이를 쑥 내밀고 있는 것만 빼면.
‘엉덩이 한 대만 때려보면 좋겠....아냐 안 돼. 그러지 말자 정명아. 안티들에게 공격 받을 빌미를 주면 안 돼.’
안 그래도 요즘 여러 곳에서 공격받는 정명이다.
인기가 많아지는 것에 비례해서 안티도 자연스레 늘어나기는 하지만, 정명이 요즘 특히나 공격받는 부분이 있었다.
‘에리한테 운전 시킨다고 마초적인 리더라고, 여혐이라고 까이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 오히려 남녀 평등하게 일시키고 있는 건데.’
덕분에 정기적으로 프로게이머들이 받는 성교육 시간에 정명은 집중적으로 교육을 들어야만 했다.
당시 언급된 에리나 여성 게이머들이 괜찮다고, 정명은 무척 좋은 리더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했음에도 그들은 정명을 까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이후로 정명은 외부 활동을 할 때면 혹시나 오해 살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조심해야만 했다.
‘그래도 장난 치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그런 정명의 마음을 알았는지, 어느 새 거실로 들어온 송하니가 이쪽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쿠론이 하는 짓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아주 경쾌하고도 맑은 소리가 났고, 쿠론이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았다.
“야!”
“응? 때려달라고 그렇게 있는 거 아니었어?”
“아니야! 너 미쳤어?”
“그래? 아님 말고.”
송하니가 바이바이 하면서 걸어간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단단히 깐 모습이었다.
쿠론은 쯧, 소리를 내더니 이내 아까와 같은 자세를 취하며 다시 고양이와 놀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습격이 있을까봐 걱정되는지, 그 모습을 구경하는 정명의 눈치를 슬쩍슬쩍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음...역시 관두는 게 좋겠다. 연습이나 준비하러 가자.’
오늘의 마지막 연습을 하러 가기 전, 정명은 시스템창을 불러왔다.
아직 열지 않은 보상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정명은 시스템 창을 열어, 마지막 보상을 확인했다.
[A랭크 스킬이 담겨 있는 상자]
-A랭크 스킬이 담겨 있는 상자입니다. 어떤 스킬이 나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열긴 열어야 하는데...어휴, 이놈의 랜덤 상자는 대체 누가 생각해낸 건지.’
이제는 랜덤 상자라는 것만 보면 짜증부터 나는 정명이었다.
괜히 떨리는 마음에 열지 않고 있었는데, 이제는 열어보기로 했다.
정명에게 수많은 도움을 줬던 [5초 영웅] 스킬도 B랭크였는데, A랭크라면 어지간해서는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결심한 정명이 곧바로 상자를 열었다.
[상자를 열었습니다.]
‘제발 쓸 만 한 거, 제발...’
[축하합니다! 패시브 특성, 기적의 딜 교환을 획득했습니다!]
‘뭐지 이건.’
정명이 곧바로 설명을 확인했다.
[기적의 딜 교환]
*피지컬 90, 정신력 90, 판단력 90 이상일 때 사용 가능*1대 맞으면 2대 친다.
-전투 발생시 집중력을 폭발시켜, 딜교환에서 이득을 볼 확률을 급상승시킵니다.
‘오, 이건....좋은 걸까?’
지난 번 잠시 사용했었던 아레스의 창 스킬과 비슷한 능력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승전을 앞둔 정명은 이것으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이제 와서 망설일 거 없지. 죽을 때 포인트 싸 들고 갈 거 아니잖아.’
[상급 상점 입장권을 사용했습니다.]
-입장권이 1장 남았습니다.
처음으로 들어가 보는 상점에는 수많은 아이템들이 있었다.
[5:5 확률이 아니다]
[적절한 포지션]
[한계 돌파]
[부상 회복]
[포인트가 부족하여 아이템을 볼 수 없습니다.]
[포인트가 부족하여 아이템을 볼 수 없습니다.]
[포인트가 부족하여 아이템을 볼 수 없습니다.]
‘스킬도 제일 낮은 게 B랭크...대부분 A등급 스킬이네. 다 좋아 보여.’
포인트만 넉넉했다면 전부 사고 싶을 정도로 대단한 것들이 즐비해 있었다.
하지만 정명이 갖고 있는 포인트는 한정적이다.
정명은 상점의 아이템을 하나하나 기억에 담아두는 것과 동시에 적당한 물품을 골랐다.
‘이거로 할까. 킬 각.’
[킬 각]
-스킬 데미지, 상대의 체력 등을 1단위까지 계산하여 킬 각을 정확히 잡아낼 수 있게 됩니다.
킬 각.
발동하여 사용하는 액티브 스킬이라기보다는 패시브 스킬이었다.
다른 좋은 것도 많았지만, 기적의 딜 교환 스킬과 연계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이 스킬로 고르기로 했다.
‘좋아, 신무기도 장착했으니 다시 해 보자.’
.....
정명은 시즌이 끝나갈 때면 항상 연습경기 스케줄을 잡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는 했다.
다음을 기약한 타 구단의 사람들이 그다지 연습에 열성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연습경기 상대를 찾기 힘들기는커녕 다들 월드챔피언십 진출전을 준비한다고 아주 난리였으니까.
특히 요즘 주가를 단단히 올려두었던 정명의 팀은 섭외 순위 1순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너무 띄워주는 것 같아서 조금 부담이 되긴 하지만 연습 경기 상대 찾느라 고생은 안 해도 되서 좋군.’
그리고 이내 타 구단과의 연습게임이 재개되었다.
zinzin : 저런 미드라이너 우리도 있으면 좋겠다.
maoz : 저렇게 플레이하는데 라인전을 대체 어떻게 이깁니까? 어후, 괴물이 하나 또 등장했네.
정명은 대단히 높은 확률로 라인전을 이겼다.
솔로킬까지는 못 내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실 주도권을 가지고 오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었다.
미드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가 확 늘어나니까.
팀원들은 특히 이번에 정명이 세체미 자리를 뺏어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세체미! 세체미 타이틀을 이번에야말로 계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형!”
“그렇게 쉽게 되겠냐?”
“나도 이번에는 될 것 같은데? 겸사겸사 버스도 좀 타구!”
팀원들의 믿음이 아주 확고하다.
이제는 혈맹 효과도 사라졌지만, 팀원들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정명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묵묵히 연습을 한 끝에, 드디어 결승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
“멀다 멀어. 얼굴이 알려지지만 않았으면 KTX 타는 건데.”
“오빠, 자가용 비행기 같은 거 없어?”
“없어 이것아. 지루하면 잠이나 좀 자던가.”
결승전은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치러진다고 한다.
정명은 서울에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살짝 듣기로는 여러 가지 어른들의 사정이 있어 결승전 장소를 이곳으로 정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때문에 팀원들은 하루 전에 미리 부산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 우리 광고에도 나왔어요!”
지루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차석진이 핸드폰을 높게 들었다.
정명이 핸드폰을 보니, 점유율 50%의 대형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결승전 광고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번 결승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보는 곳에 얼굴을 비쳤기 때문인지, 정명에게 뜻밖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너 프로게이머였어? 성공했구나!
“누구?”
모두가 하나 둘 피곤에 곯아떨어지던 그 시각, 정명은 조금 낯선 여자의 연락을 받았다.
본인 말로는 동창이라는데, 정명은 기억이 날 듯 말 듯 조금 애매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 그보다 내가 언제 적에 프로게이머 됐는데 이건 뭔 개소리야. 전화번호를 바꾸던가 해야지 이거.’
-와, 섭섭하다. 나 기억 안나? 나야 나 혜정이! 예전에 너랑 엄청 친하게 지냈었잖아!
“어, 어. 그래. 바쁘니까 이만 끊을게.”
-잠깐만....!
정명이 오랫동안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인지, 예전에 소식이 끊긴 사람들의 연락이 계속 왔다.
평소에 게임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정명이 슬슬 유명세에 오르니, 다짜고짜 친한 척 연락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명은 결국 핸드폰을 꺼버렸다.
기나긴 주행 끝에, 마침내 팀원들은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동 내내 쿨쿨 자고 있던 송하니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하품을 하며 이불에 털썩, 누웠다.
“휴, 피곤하당. 에리언니, 나 어깨 좀 주물러 주라.”
“저기...하니야? 운전은 내가 다 했거든?”
“히히, 농담.”
정명은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다시 가벼운 연습에 돌입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전 날이 밝았다.
ⓒ 추어탕맛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