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79화 (179/226)

< 62. 위로, 위로! (2) >

뜻밖의 얘기에, 정명이 얼떨떨해 하며 물었다.

“음....근데 그거 혹시 나도 아는 사람이야?”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 하하. 나중에 소개 해 줄게.”

그의 나이 27세.

결혼을 전제로 한 여자 친구가 있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나이 먹고도 계속 프로씬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는 정명이 이상한 것이지, 사실 메테오는 언제 프로를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이기도 한 것이었다.

“그래. 말해줘서 고마워. 대신 연습만 제대로 해 줘.”

“물론이야. 지금이 엄청 중요한 순간인 건 나도 아니까. 애들도 다 학교 자퇴하고이 생활에 올인 했는데, 나만 농땡이 피울 생각은 없어.”

본인이 열심히 하겠다고 하는데 더 이상 뭐라고 할 필요는 없다.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지만 정명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연습이 계속되었다.

######

섬머시즌이 시작되고, 몇 개월이 흘렀다.

정명은 리그 초반부터 연승 행진을 이어가기 시작하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신의이름을 각인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쯤 되니 사람들은 월드 챔피언십에 내보내고 싶은 팀 3팀을 꼽을 때, 정명의 팀 또한 그 목록에 자연스레 넣고는 했다.

물론, 아직 KAO와 NAV의 2강 구도는 여전했지만.

여자 친구가 생겨서 걱정되었던 메테오는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해내고 있었다.

여자 친구가 생기면 그 선수는 거의 무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프로게이머 업계에서 거의 불문율처럼 전해져 오던 말이었는데, 메테오가 예외 케이스 중 하나였던 것이다.

메테오는 아직까지는 연습을 열심히 한다는 약속을 잘 지키고 있었고, 덕분에 정명은 이번 시즌에 꽤 많은 기대를 걸게 되었다.

그리고 날씨가 점점 무더워지던 어느 날.

월드챔피언십이 걸린 섬머 리그에서 메테오와 팀원들은 그동안 쌓아올린 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 객석에 아주라 TV의 사장님이 오셨다고 합니다!

-이거 긴장되겠는데요. 사장님이 오셨으면 승리를 선물로 가져다 드려야죠!

지금 리그에서 정명과 맞붙고 있는 팀은 지난 시즌에서 5위를 기록한 팀, 팀 아주라였다. 지난 시즌에는 정명의 속을 꽤나 썩였던 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섬머 시즌 들어와서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정명은 경기 내내 라인전에서 우위를 점하며, 괜히 세체미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내었다.

“탱커 먼저 들어가.”

“오키오키.”

-탑 3인 다이브! 악어, 그대로 죽습니다. 알고도 죽는 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모습이네요.

-지금 트러플 선수가 마이크로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야, 미드미아 왜 안쳐. 계속 올라오잖아.’

동시에 카메라가 팀 아주라의 부스를 잡았다.

0/4/0.

처절하기까지 한 스코어를 달성한 트러플이라는 선수가 머리를 벅벅 긁고 있었고, 딱 봐도 부스의 분위기가 축 쳐져 있었다.

카메라맨은 킬을 따낸 NHG 부스는 반대로 무척 분위기가 밝을 것이라 예상하며 카메라를 돌렸다.

하지만 NHG 선수들은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좋고 싫고가 없는 무표정이었다.

정명과 메테오는 그저 당연한 일을 했다는 얼굴로 팀 아주라의 플레이를 품평하고 있었다.

“라인전은 그냥저냥 하는데, 맵 운용이 느리고 팀워크도 잘 안 맞아. 이곳저곳이 다 구멍이야.”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미드를 3명씩이나 두는 건 역시 무리수였지?”

“맞아. 실력이 더 퇴보했다는 느낌이야. 뭐,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건 저 팀의 감독뿐이었겠지만.”

사장이나 가족이 경기장을 찾으면 게이머들은 더 열심히 게임을 하고는 한다.

하지만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이야기고 뭐고, 게임은 꽤나 일방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이 끝났다.

두 경기 모두 25분 만에 종료. 운이 좋거나 상당한 실력 차가 나야 만들어낼 수 있는 압도적인 승리였다.

-아이고, 사장님이 관객들에게 피자까지 쏘셨는데 2:0으로 패배하고 말았네요.

-쓴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 말하고 사장님! 웃고는 있지만, 속은 쓰릴 겁니다.

“뭐야, 아주라 TV 사장 왔어? 이상한 회사라는 소문도 있던데, 사장이 있긴 있었네?”

“알 게 뭐야. 근데 사장이라는 사람도 참, 좀 비벼볼만한 팀이랑 붙었을 때 오지 왜 지금 왔을까?”

그 경기를 끝으로, 오늘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경기에서 이겼기에 팀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고, 정명은 연습실로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털썩 누웠다.

‘어디보자. 우리가 이번 경기를 2:0으로 이겼으니까 순위가....’

1위 KAO 16승 1패 (+22)

2위 NAV 15승 2패 (+19)

3위 NHG 13승 3패 (+16)

.....

10위 MMA 1승 16패 (-23) *강등확정

‘썩 괜찮네. 우리도 이제 순위권에 안정적으로 안착했어.’

처음에는 ‘맨날 지기만 하면 어쩌나.’ 하고 겁먹었던 한국 리그였지만, 이제는 꽤나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여기서 거슬리는 부분이 딱 하나 있었다. 고착화된 1, 2위 순위를 아직까지 깨지 못 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잡아 봐야지. KAO든 NAV든 한 놈을 잡아야, 한 녀석이라도 끌어내려야 우리가 올라갈 수 있어.’

언제까지 ‘저 녀석에게는 이기기 힘들어...’ 하며 엄살 부릴 수는 없다.

정명은 자신의 상태창과 남은 포인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현재 능력치]

피지컬 (95/100)

정신력 (90/100)

오더 (90/100)

판단력 (92/100)

‘다른 능력치들도 90까지는 끌어 올렸는데, 아직 부족해. 팀원들의 스탯은 팍팍 오르는데, 나는 참 안 오른단 말이지.’

어찌 된게 정명의 능력치는 상급 경험치 부스터를 퍼붓는다 해도 단 1도 오르지 않았다.

오직 포인트를 때려 박아야 올릴 수 있는 구조였던 것이다.

[포인트를 사용하여 피지컬을 올리시겠습니까?]

[30만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잔여 포인트 : 351200]

‘노노노노노! 취소, 취소!’

서둘러 취소 버튼을 누른 정명이 식은땀을 쓸어내렸다.

‘피지컬 96은...어휴, 이건 안 된다. 다른 거 먼저 올려 보자.’

30만 포인트면 한 시즌 내내 벌어야 모을 수 있는 포인트였다.

때문에 다른 능력치를 올리기로 했다.

‘그럼 다음 목표는 판단력을 95까지 올려 보는 것으로 할까. 일단 오늘은...’

-으하하하하!

그런데 그 때, 옆방에서 큰 소리가 났다.

그리고 머지않아 한 손에 핸드폰을 든 차석진이 연습실을 신나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여러분! 축하해주세요!”

“뭐야, 드디어 조 아나랑 사귀는 거야?”

“아뇨, 그게 아니라...아니 잠깐. 조 아나운서님 얘기가 왜 나옵니까?”

“아님 아닌 거지 이게 정색을 하네?”

정명은 소파에 있던 푸키먼 인형을 훅 던져 차석진을 맞춰버렸다.

그러자 차석진이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어억...쿠론이랑 하니가 자꾸 놀려서 그만...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분은 그 때이후로 만난 적도 없다고요.”

“그러냐? 몰랐지.”

“아무튼 그건 아니고 드디어 부모님한테 자퇴 허락 받았어요! 우리 팀이 잘 나가는 게 보이니까, 허락해 주시겠대요.”

“뭐?”

그 말을 들은 팀원들은 꽤 놀랐다.

다만 차석진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놀랐다.

정명을 포함한 팀원들은 축하한다기보다는 ‘예전에 자퇴한 거 아니었어?’ 하는 눈빛으로 석진을 바라보았다.

“뭐야, 너 아직도 자퇴 안 하고 있었냐?”

“어...네. 모르셨어요?”

“어차피 학교도 안 나갔잖아. 나갈 시간도 없었지만.”

“그건 그렇지만요...”

쿠론 같은 경우에는 진작 고등학교를 때려 쳤다.

본인 말로는 회사에 취직할 것도 아닌데, 학교 가 봐야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정명은 혹시나 하고 송하니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하니는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뭐야, 그래서 학교 다니겠다고?”

정명이 짓궂게 말하자, 송하니가 빠르게 머리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아니아니! 자퇴 하던 말던 내 맘이라는 뜻이지...힝...”

하니 또한 이미 학교를 자퇴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걱정했지만, 억지로 일을 진행시켰다고 덧붙였다.

“나 잘했지?”

“그래. 우리 하니 말 잘 듣고 참 착하다.”

“헤헤.”

“그리고 우리 석진이는...이거나 먹어라!”

결국 차석진은 정명이 던지는 인형을 한 번 더 맞아야만 했다.

‘되도록이면 배려해 주고는 싶은데, 지금처럼 중요한 순간에 학교 가겠다고 하면 솔직히 나도 열 받지. 수능 보러 갈 것도 아니면서.’

섬머리그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 지금은 1분 1초가 소중했다.

그렇게 잠깐의 휴식을 취한 팀원들은 다시 연습을 재개했다.

그리고 며칠 뒤, 섬머리그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

“또 윈드 녀석 팬들이 경기장을 점령했겠네.”

“경기장이 좁아 터졌는데 맘만 먹으면 팬클럽 하나가 경기장 전세 놓는 것을 일도 아니지. 내년엔 조금 더 큰 곳으로 옮긴다니 이 짓거리도 이번이 마지막이겠지만.”

정명의 섬머리그 마지막 상대는 팀 더블이었다.

그 팀은 윈드라는 잘생긴 선수가 있던 팀이기도 했다.

때문에 정명은 이번에도 그의 소녀 팬들이 경기장을 점령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윈드의 팬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었다.

‘뭐지, 갑자기 윈드가 못생겨지기라도 했나?’

-꺄아아악!

-나왔다, 나왔어!

‘에휴, 그럼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선수들이 무대로 올라오자마자 관중석에서 비명 비슷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단, 이번에는 열광하는 대상이 조금 달랐다.

-정명오빠! 여기 좀 봐 줘요!

소녀팬들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하니가 카메라가 안 보이는 곳에서 얼굴을 찌푸렸다.

“우씨. 오빠! 빨리 부스나 들어가자구!”

“알았어, 알았어. 밀지 마.”

그 후, 곧바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더블 킬]

[트리플 킬!]

“게임 끝났네. 하니야, 이따 타워에 맞는 미니언에 대고 텔 좀 타봐라.”

“오키오키.”

실력이 낮다고 평가받는 팀이 가끔 강팀을 쓰러트릴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도 운이 좋거나 강팀이 방심을 해야 가능한 일이고, 지금처럼 바짝 긴장하고 있다면 변수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NHG는 완벽한 운영으로 팀 더블을 잡아내며, 승리를 확정지었다.

“휴, 끝났다! 쉰다!”

“그래. 이제 리그 끝났으니 쉴 수 있겠네. 잠깐은 말이지.”

“허걱...”

팀 더블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정규리그에서의 모든 경기가 끝났다.

팀원들은 해방이라는 듯 환호성을 질렀지만,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진정한 승자를 가리는 포스트 시즌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렇게 정규 리그가 끝나고 일주일 뒤, 포스트 시즌이 시작되었다.

######

포스트 시즌은 5위까지 진출을 하게 된다.

거기에서 시즌 4위와 5위가 겨루고, 거기에서의 승자가 3위와 대결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정명은 시즌 3위로 포스트 시즌에 올라가게 되었다.

포스트 시즌 첫 경기는 4, 5위의 대결이었는데,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TAQ가 경기에서 승리했다.

이제 정명이 TAQ의 도전을 받아야 할 차례였다.

“TAQ는 징글징글하게 자주 만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아무튼 화이팅이야!”

포스트 시즌의 경기는 평소의 리그보다 훨씬 많은 압박감을 준다.

때문에 모두 긴장하여 마우스를 뻣뻣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미드라인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솔로 킬! 이 중요한 경기에서 솔로 킬이 나왔습니다!

-정명 선수, 역시 클래스 보여주네요!

“오, 멋지다!”

“잘했어!”

정명이 솔로 킬을 내자, 팀원들이 긴장을 풀며 웃음을 지었다. 솔로킬 한 번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막상 솔로 킬을 낸 당사자인 정명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이거 좀 이상하다?”

“뭐가? 이상한 건 오빠 인듯. 솔로킬 잘 따놓고 뭘 그렇게 정색을 해?”

정명은 하니의 말을 들은 둥 마는 둥 하며 곰곰이 방금 했던 플레이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정명은 다시 한 번 솔로 킬을 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허걱! 역시 우리 팀의 기둥!”

“버스기사 나가신다, 부릉부릉!”

팀원들의 칭찬에도 정명의 얼굴은 좀처럼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하던 정명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알겠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거, 피닉스가 일부러 대주는 것 같네. 노골적으로 죽어주고 있어.”

ⓒ 추어탕맛집#

작가의 말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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