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74화 (174/226)

< 60. 만신전 (4) >

-승리!

스피커에서 승리메시지가 뜨자마자 구경하던 팀원들이 오오 하며 박수를 쳤다.

“이제 1위 찍은 거 아냐? 확인해 보자!”

에리가 어깨를 흔들며 재촉하자 정명이 곧바로 순위를 확인했다.

“1위, 맞네요.”

모두의 예상대로 정명은 랭킹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1위 : returner

2위 : 킬러송

“와, 1위랑 2위 먹었다!”

“큭큭, 그러게.”

이번 경기의 점수가 곧바로 반영되었는지, 랭킹 페이지에 가니 정명과 송하니가 나란히 1위, 2위에 올라와 있었다.

피닉스를 제물로 1위를 달성한 것이다.

“나란히 1, 2위라니. 이건 좀 멋진데?”

“스크린샷이나 찍어 놔. 곧 뺏길 테니까.”

“그럴까? 아슬아슬하게 올려놨으니, 길어야 3일 버틸 것 같으니까.”

솔로랭크 1위를 유지하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시간투자를 꽤 많이 해야 한다.

거기다 최상위 구간에는 사람도 없어서 게임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까지 하니, 정명에게는 1위를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때문에 정명과 하니는 잠깐 1위 한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보상도 받았으니 이제 랭킹에서 밀려난다고 해도 상관없지. 막말로 갑자기 브론즈로 강등된다고 해도 줬던 보상을 뺏어가지는 않을 테니까.’

보상이란 솔로랭크 1위 보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정명은 방금 떴던 퀘스트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솔로랭크에서 1위를 달성했습니다!]

-보상으로 7만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솔로랭크 패왕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솔로랭크에서 만난 사람들이 대단히 높은 확률로 포지션을 양보해줍니다.

*남은 서버에서 1위를 달성하여 추가 보상을 획득하십시오.

-플레이어의 역대 전적

북미 - 1위

한국 - 1위

중국 - 5123위

유럽 - 1위

중국에서 랭킹 1위를 달성하면 모든 대륙에서 랭킹 1위를 달성한 경험이 있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난이도가 제일 높은 한국에서 달성한 이상, 중국에서 1위를 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제 포인트를 좀 사용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꽤 쌓아두지 않았나?’

[잔여 포인트 : 321200]

포인트를 확인하니 약 32만 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정명은 포인트를 사용하여 이번에도 팀원들을 위한 무언가를 살까 하다가 고개를저었다.

‘이번엔 나를 위해 포인트를 써 보자. 그러면 역시 스탯을 올려볼까.’

가장 먼저 피지컬에 눈이 갔다.

정명의 피지컬은 94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는데, 요즘은 94도 아쉽게 느껴질 순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피지컬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프로게이머의 실력을 평가함에 있어서 피지컬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평소에 정명이 하고 있었던 생각이었지만, 이번에 피지컬이 올라가서 얻은 효과를 보니 새삼스레 피지컬의 중요성의 눈에 들어왔다.

‘98만 되어도 이렇게 다른 게이머들을 압도할 정도인데, 99, 그리고 100으로 넘어간다면....’

그런 생각을 하자 조금 욕심이 생겼다.

가격이 조금 비쌌지만, 정명은 망설임 없이 피지컬을 올리기로 했다.

[20만 포인트를 사용하여 피지컬 1을 구입하였습니다!]

[현재 피지컬 : 95]

[잔여 포인트 : 121200]

피지컬이 올랐다고 떴지만, 역시나 특별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정명은 이걸 또 언제 모으나...생각하며 잔여 포인트를 아쉽다는 듯 바라보았다.

‘또 한 뭉텅이 빠져나갔군. 그런데 이제 피지컬이 95까지 올라갔는데 뭐 없나?’

예전에는 피지컬이 올라가면 주어지는 부가 효과가 있었다. 건강이 좋아진다거나, 눈이 좋아진다거나.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게 통 없어서 정명은 조금 아쉬워졌다.

‘95에서 없으면 100에서는 무언가라도 있겠지 뭐.’

피지컬을 1 올리기 위해 20만 포인트나 사용했지만, 그래도 포인트가 남았다.

정명은 남은 포인트를 탈탈 털어서 뭐라도 살까 하다가 혹시 모르니 아껴두기로 했다. 나중에 급한 일이 생겨, 포인트가 필요해질 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정명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정명은 놀라는 대신, 자신의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손을 천천히 떼어내며 뒤를 돌았다.

“까꿍!”

“뭐야, 하니냐?”

“웅! 그렇게 멍하니 있지 말고 나 집에나 데려다 달라궁.”

“아, 그래. 벌써 1시네. 많이 늦었으니까 지금 바로 가자.”

그 말을 들은 하니가 싱글벙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그런 하니의 뒤로 정체불명의 노란색 덩어리가 달려들었다.

“나도! 나랑 우리 엄마도 태워 줘.”

“야, 노랑머리! 넌 면허 있잖아. 알아서 가. 오빠 귀찮게 하지 말고!”

“방금 너 하는 거 보면서 보면서 맥주 마셨음. 운전 못 함. 태워 주셈.”

쿠론은 마치 인터넷의 초등학생처럼 이상한 말투를 쓰기 시작했는데, 같은 또래인 하니와 자주 놀다 보니 하니의 말을 배우는 듯 했다.

결국 정명은 평소처럼 투닥거리고 있는 둘을 잡아다가 차에 태우고는 기사 노릇을 해주기 시작했다.

“내가 으악, 저게 무슨 이상한 짓거리야! 하고 타박하는데, 기어코 킬을 내더라고. 진짜 신기했다니까?”

“저 녀석이 잘 했던 건 나도 인정하는데, 왜 네가 잘났다는 듯 뻐기는 거야?”

집으로 가면서도 솔로랭크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랭크 1위를 한 것에 대단하다고 느끼겠지만, 사실 그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중요한 건 거기까지 올라가는 과정이었다.

하니는 쿠론의 말을 무시하며 뻐기듯 말을 이었다.

“내가 볼 때는 김지훈보다 훨씬 잘 했다구! 우리 오빠, 이러다가 다음 경기에서도일내는 거 아냐? 히힛.”

......

KAO. 세계 1위 팀이자 세체미, 김지훈이 있는 팀.

현재 최고의 팀이기도 하고, 정명을 포함한 모든 프로게이머들은 KAO를 잡기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에 맞춰 해설자 이동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흥미로운 경기가 있을 때면 선수들에게 꼭 전화를 하는 사람이었다.

-정명! 경기 준비는 잘 되가?

“그냥 저냥요.”

-왜, 상대가 KAO인데. 뭐 비장의 필살기라도 준비해야 하는 거 아냐?

“하하, 뭔 또 필살기에요. 그런 거 하나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상대가 KAO라고 해서 특별한 무언가를 준비하지는 않았다. 그저 평소 하던 대로 연습을 해 나갈 뿐.

그렇게 덧붙이자, 전화 너머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요즘 잘 나가는 사람답게 여유가 넘치네. 뭐, 지더라도 너무 상심하지는 마. 상대는 역사상 최고의 팀이라고 불리는 팀이니까. 쉽게 이길 수 없는 건 당연하다고.

정명과 잡담을 이어나가던 이동호는 조이슬 아나운서가 NHG 팀 숙소에 놀러오고 싶다는 말을 했다는 말을 흘리며 전화를 끊었다.

‘흠, 역사상 최고의 팀이라.’

KAO는 역사상 최고의 팀이라 할 만 했다.

수많은 우승 트로피와 인기를 이미 가지고 있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KAO와 진정으로 경쟁할 수 있는 팀은 2위 팀인 NAV정도밖에 생각이 안 나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명은 뭔가 아쉬웠다. 지금의 KAO조차 정명이 기억하고 있는 예전의 모습보다는 한 수 낮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메이커가 예전의 기량을 찾아서 활약한다면 내가 봤던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약간 아쉽네. 아니, 아쉬워 할 일이 아닌가?’

그렇다고 정명이 나서서 ‘야 그놈 말고 얘 좀 써봐. 메이커라는 애인데 괜찮은 애야.’ 할 수는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정명? 바빠?”

통화가 끝나자 에리가 정명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아니요, 왜요?”

“나 밴픽 짜봤는데 이것 좀 봐줄래?”

에리가 마치 숙제를 검사 받듯, 자신의 수첩을 내밀어 정명에게 건넸다.

수첩에는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글자가 빡빡하게 적혀 있었다.

“음...하던 대로 하면 되지 않아요?”

“사막의 황제 때문에 밴 카드 1장이 그대로 날아가니까 조금 꼬여서...”

사막의 황제는 김지훈 하면 딱 떠오르는, 그의 상징과도 같은 캐릭터였다.

어찌나 캐릭터의 숙련도가 높은지 황제훈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볼 기회가 없었다.

상대하는 팀이 거의 무조건이라고 할 정도로 밴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하는 에리에게 정명은 툭 내뱉듯 말했다.

“그거 밴 하지 말죠?”

“응? 뭐를?”

“사막의 황제요. 까짓 거 살려 보죠. 진검 승부 가 봅시다.”

에리는 잘 못 들었다는 듯 다시 한 번 물었다.

“응? 뭐라고?”

“진검승부...”

“아니 왜?”

이번 경기까지 적용되는 A등급 스킬이 있기에, 황제훈이고 뭐고 그다지 상관은 없다.

하지만 그런 말을 그대로 할 수는 없었으므로, 정명은 그냥 되는대로 내뱉었다.

그리고 에리는 정명의 말을 듣자마자 마치 이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부르러 갔고, 정명은 방금 했던 말을 다시 해야만 했다.

“사막의 황제를 왜 밴에서 푸냐고? 그야...그렇지 않고서야 김지훈을 제대로 꺾었다고 할 수 없으니까?”

“헉. 나 방금 심쿵했을지도...조금 멋졌어.”

그냥 해본 소린데, 승부사기질이 있는 송하니는 그런 정명의 말에 무척이나 공감하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의 황제를 밴 하면, 김지훈의 팬들이 정신승리를 할 여지를 남겨둔다는 것이었다.

“분명 그럴걸? 사막의 황제 잡았으면 김지훈이 이겼다고. 그런 소리 못 나오게 콱 잡아버리자!”

“그건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얘기잖아...”

에리가 시무룩해했지만, 정명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걱정 마세요. 최소한 지지는 않을 테니까.”

.......

며칠 뒤, 팀원들이 경기장에 도착했다.

대망의 KAO전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명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KAO 팀 로고를 그려 넣은 모자, 유니폼을 입은 팬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뭐야, 우리 팬은 많이 안 왔나봐? 우리 꺼 입은 팬들은 거의 없네.”

사실 정명은 자신의 팀 팬들이 없는 게 이해는 됐다. 오늘은 경기에서 자신의 팀이 질 확률이 높은 날이니까.

굳이 시간 돈 써가며 경기장에 올 것 같으면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날에 구경을 오고 싶다는 마음인 것이다.

“그걸 고려해도 차이가 많이 나긴 나네. 이러니까 내가 올스타전에서 떨어졌지.”

“뭔 소리야. 올스타전 투표할 때 오빠는 한국 선수도 아니었잖아.”

송하니가 옳은 지적을 했지만, 정명은 오히려 뻔뻔스럽게 말했다.

“넌 올스타전에 간다 이거냐? 이 기만자 녀석.”

“아, 뭐래? 어디 안 가고 난 집에서 쉬고 싶은 사람이거든?”

정명과 송하니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부스로 들어갔다.

선수들은 경기 준비를 위해 자신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가지고 분주히 세팅을 하기 시작했지만, 정명은 잠깐 부스에서 나와서 반대편 부스의 사람들을 살폈다.

‘김지훈이라. 어디 한 번 보자.’

[김지훈]

피지컬 (97/97)

판단력 (93/94)

오더 (90/92)

정신력 (90/91)

‘스탯이 거의 한계치에 다다라 있다. 이 이상 실력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겠지?’

김지훈은 지금껏 본 선수들 중에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것도 지금의 정명에게는 감당할 만 하다는 것이었다.

사막의 전사 풀어줘도 된다고 큰소리 뻥뻥 쳤는데 솔로킬이라도 당하면 그만한 망신이 없으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설마 이거 사막의 황제 풀리나요? 만약 풀린다면 자료를 찾아봐야 할 정도로 굉장히 오랜만에 풀리는 것인데요.

-풀렸습니다! 김지훈 선수, 망설이지 않고 1픽으로 가져갑니다!

ⓒ 추어탕맛집

작가의 말

건강이 또 말썽이라 글이 점점 늦어지고 있습니다.

집중력도 눈에 띄게 낮아졌고요....

예전엔 커피나 박카스 한 잔 마시면 쌩쌩했는데, 요즘은 그것도 약발이 안 먹히는...ㅠ_ㅠ휴식이 간절하기는 합니다만, 이제 완결까지 2권정도 밖에 안 남았으니(플롯대로라면) 그냥 부지런히 써야겠지요.

항상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