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64화-----------------
정명의 팀과 마찬가지로 서울의 한 연습실에서 묵묵히 연습을 하고 있는 팀이 있었다.
NHG의 다음 상대이자 요즘 수많은 이슈를 낳고 있는 원딜러인 윈드가 있는 팀.
팀 더블의 연습실이었다.
“플 온.”
“회복도 온. 회복 낚시 한번 해 볼까?”
경기가 며칠 안 남았기 때문에 연습은 장난기 없이 무척이나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2시간 후. 연습 경기가 끝나마자 팀원들이 손을 번쩍 치켜 올렸다.
“GG! 다들 수고했다!"
“오우, 좋다, 좋아! 우리 이러다가 리그 순위 1등 먹는 거 아냐?”
“지랄. 지난번에 솔로 킬 세 번이나 줬던 놈이 할 말이냐 그게? 캐리 안 해 줘도 되니까 제발 1인분만 해라.”
“아놔. 그때는 상대가 세체미여서 그랬던 거고. 그건 감안해 줘야지!”
오늘의 연습 경기 결과는 무척이나 좋았고, 덕분에 팀의 분위기는 상당히 밝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코치 또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현이, 약물 중독자 컨트롤이 무척 좋네. 상현아, 송하니 어떠냐? 라인전 버틸 수 있겠어? 걔 피지컬은 알아줘야 하잖아.”
“네. 걱정 마세요. 송하니가 피지컬이 좋기는 한데, 조금 탑신병자 기질이 있잖아요. 라인 쭉쭉 밀다가 잘 꼴아박고.”
“조금 그렇긴 하지. 아무래도 미드에 있다가 탑에 가니, 적응이 덜 된 모양이야.”
“그럴 때 태진이가 갱킹 잘 노려보면 될 것 같은데요. 어차피 미드는 갱킹 힘들잖습니까. 미드를 버리고 탑이나 바텀에 집중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끙. 유정명이라, 그놈이 문제야, 그놈이.”
정명은 한국 리그에서 활동하는 정글러들에게 조금씩 악명을 쌓아 가고 있었다.
갱킹이 무척이나 빡센 선수로.
어찌나 눈치와 반응속도가 빠른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갱킹이 통하지 않아, 자칫 타이밍 잡다가 부시에서 시간만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떠올린 정글러, 한수는 에휴, 하며 한숨을 뱉었다.
“유정명, 그 녀석이 조금 단단하긴 해. 생존력 좋은 캐릭터라도 골랐을 때는 진짜 악몽이고. 완전 갱킹 면역 상태야.”
“그럼 바텀 라인은 어때? 규혁아, 차석진이랑 외국인 듀오는 어떨 것 같냐?”
코치의 물음에 윈드가 씩 웃으며 답했다.
“걱정 마세요. 바텀 라인이 NHG에서 가장 약한 라인이잖아요. 아무리 못해도 반반 싸움입니다.”
코치의 질문에 답하는 선수들 모두 자신감이 넘쳤다. 지금 기세대로라면 NHG에게 2 : 0 승리를 거두는 것 또한 무리가 아닌 듯했다.
그렇게 짧은 회의가 끝난 후.
베란다에서 윈드와 단둘이 담배를 태우던 서포터, 승찬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야, 너 멘탈 괜찮아? 조 아나운서 쪽에서 고소한다, 어쩐다, 말이 많던데.”
“당연히 괜찮지. GOO TV 사장님이 신경 좀 써 주신다고 하셨어. 무슨 일 생기면 좋은 변호사까지 책임지고 써 주신다고.”
“오, 역시 GOO TV! 우가우가 따위랑은 차원이 다르다.”
“그렇지?”
그렇게 둘은 킬킬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승찬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맞아. 이거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뭔데?”
“내가 같은 팀 해 봐서 아는데 차석진 그놈, 완전히 숙맥이거든? 그런 애가 조이슬이랑 사귈 리가 없는데, 너 개인 방송에서 풀었던 거, 그거 구라지? 응?”
“글세…….”
“아, 나한테는 솔직히 말해 줘도 되잖아. 어디 가서 말 안 한다고. 왜 하필 걔로 말한 거냐? 그럴듯해 보이려면 다른 사람도 많은데.”
“아, 그거는…….”
*
그 시각.
정명은 실력이 엄청 오른 것 같다고 기뻐하는 팀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력이 엄청 오른 것 같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당연한 말이지만, 실력이 올랐다는 것은 체감할 수 있는 종류의 느낌이 아니다.
앞만 보며 막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니 실력이 부쩍 늘어나 있었다, 정도의 느낌이지 게임 스탯창 열듯 실력의 향상을 바로바로 알 수는 없는 일인 것이다.
“조금만 더 하면 뭔가 감을 잡을 것 같긴 한데…….”
“그런데 조금 피곤한 것 같당. 오늘은 조금 일찍 끝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저 분위기를 보니 뭔가 있긴 있었던 것 같은 모양새였기에, 정명은 곧장 시스템을 열어 지난 메시지 로그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송하니의 판단력이 1 상승했습니다.]
[차석진의 피지컬이 1 상승했습니다.]
[메테오의 정신력이 1 상승했습니다.]
[쿠론의 피지컬이 1 상승했습니다.]
‘헉, 이게 다 뭐야? 네 명 다 올랐잖아?’
팀원들은 그동안 스탯이 안 올랐던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너나없이 능력치가 상승했다는 메시지를 띄우고 있었다.
‘연습 게임이었는데도 이렇게 많이 올랐다고?’
정명의 경험상 경험치 부스터를 쓰는 것은 마치 포인트가 오르는 것과 비슷했다.
솔로 랭크를 돌리면 조금 오르고, 실력 좋은 팀과 연습하면 빨리 오른다.
당연하게도 정규 리그와 같은 실전에 투입하면 그것보다 훨씬 빨리 오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습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스탯이 대폭 상승했던 것이다.
정명은 정규 리그에서 능력치가 더욱 오를 것을 기대하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팀원들에게 말했다.
“실력이 오른 것 같다니, 다행이네. 그럼 곧바로 연습 들어가자.”
오늘 연습 상대는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팀 중 하나였고, 약속 시간이 되자마자 칼같이 연습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게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송하니가 또다시 탑을 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곧잘 지적하던 탑신병자 스타일이 다시 재현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송하니의 대처가 약간 달랐다.
“메테오, 나 라인 밀었어요. 잠깐만 상대 정글러 좀 봐 줘요.”
“알았다.”
라인을 미는 것까지는 그대로였지만 그 후의 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송하니는 라인을 쭉 밀었다가 당겨지는 타이밍에 살짝 딜 교환을 한 후, 글로벌 궁극기를 갖고 있는 정명을 불렀다.
“오빠빠빠!”
“안 그래도 지금 궁 써서 간다.”
하니가 괴상한 소리를 냈지만 정명은 하니가 뭘 원하는지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팀워크 향상 아이템을 샀기 때문인지, 척하면 척이었다.
“바로 골드 카드 던진다.”
“오키오키!”
그 순간, 정명의 카드맨이 나무정령의 뒤통수로 순간 이동했다.
완벽한 킬각이었다.
“하니, 네가 막타 쳐. 먹고 커라.”
“오키도키!”
[적을 처치했습니다.]
‘깔끔한 킬이네. 이제 바텀만 잘 버티고 있으면 되는데.’
정명은 집으로 귀환하는 동안 바텀 라인의 모습을 살폈다.
정명 팀의 약점이라고 볼 수 있던 바텀 라인 또한 움직임이 꽤 좋아진 상태였다.
“쿠론? 너무 공격적인 것 같은데? 조금만 빼자.”
“그래, 알았어.”
“어어? 빼자며? 너무 공격적이라니… 앗!”
[적을 처치했습니다.]
[외국인노동자3호, 더블 킬!]
쿠론이 피지컬은 비교적 부족할지 몰라도 머리를 써야 하는 일, 즉 상황을 보거나 설계를 짜는 일만큼은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았다.
석진의 만류에도 기어코 들어가 킬을 따 낸 쿠론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석진과 눈을 마주쳤다.
“뭐라고?”
“미안.”
그리고 연습 게임은 3승 1패를 기록하며 기분 좋게 끝이 났다.
‘설마 이번에도 또 올랐을까?’
정명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다시 로그를 확인했다.
[차석진의 판단력이…….]
‘석진이의 능력치가 제일 많이 올랐네. 하긴, 평균 능력치가 제일 낮으니 가장 많이 오르는 것도 석진이겠지.’
이대로라면 팀 더블의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살 때는 무척이나 아까웠지만, 정명은 이 순간만큼은 투자한 포인트가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 연습을 조금만 더 해 볼까? 경기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좋아, 그러면 내가 다른 팀에 연락해 볼게.”
월등하게 오르는 스탯을 보며, 정명이 의욕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정명의 등을 툭 쳤다. 송하니였다.
“뭐야, 하니냐?”
“웅. 잠깐만 그 핸드폰 내려놔 봐.”
송하니는 정명의 등에 머리를 박은 채, 머리를 부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정명의 경험상 그것은 송하니가 아쉬운 소리를 할 때 하는 행동이었다.
“오빠,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 하자. 나 쉬고 시포…….”
“글쎄. 연습을 끝내기엔 조금 이른 시간 아닐까? 힘 좀 내 봐.”
정명의 단호한 말에, 팀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잠깐만. 정명, 내 생각도 같아. 오늘 연습은 조금 일찍 끝내는 게 어때?”
“오늘은 이상하게 피곤하네요…….”
“컨디션 조절하는 게 좋겠어. 조금 쉬고 싶네.”
평소라면 몇 판 더 했을 시간이지만, 오늘따라 너도나도 집에 가겠다고 아우성이다.
자신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8개의 눈을 바라보며 정명은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러자. 오늘은 쉬고 내일 다시 열심히 연습하자.”
“야호!”
“그럼 나도…….”
“에리? 당신도 벌써 가려고요?”
“헛…….”
분위기에 편승하여 같이 퇴근하려던 에리는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뭐, 상관없죠.”
“정말?”
“네. 대신 재택근무에요. 이번 연습 경기 리플레이 좀 봐 주세요. 내일 모레가 경기니까.”
“헉!”
*
며칠 뒤.
드디어 팀 더블과의 경기 날이 밝았다.
정명은 경기장에 도착하여 대기실에 짐을 내려놓자마자 윈드라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정말 만나러 가시려고요? 꼴 보기 싫은데 그냥 안 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우리가 잘못한 거 없잖아. 피하려면 저쪽에서 피해야지. 걱정 마. 형이 네 대신 한 대 때려 주고 올 테니까.”
하지만 팀 윈드의 대기실을 찾아간 정명은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쫓겨나야만 했다.
선수의 멘탈을 걱정한 코치와 감독이 철통 방어를 했던 것이다.
“그만 가! 내 선수 괴롭히지 말고!”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문을 쾅 닫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정명은 피식 웃었다.
“역시 가드가 단단한데?”
“역시라뇨. 저는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무슨 소리를 저렇게 지르시는지…….”
“그러게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복도 끝에서 한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해설자와 캐스터들이었다.
“정명, 혹시 싸웠어? 큰 소리가 들리던데…….”
“안 싸웠어요. 그냥 얼굴이나 볼까, 했는데 지레 겁먹어서 샤우팅하시네.”
“아… 그래. 너무 소란 피우지는 말고.”
“조 아나운서는요?”
“정상 출근했지. 그런 구설수에 올랐다고 일을 쉬는 게 더 이상해 보이니까.”
그 후 30분이 지났다.
해설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정명은 경기 시간이 다가오자 무대로 향했다.
아직 카메라가 꺼져 있긴 하지만, 먼저 온 관객에게 인사를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무대에서 인사를 하고 있는 팀이 있었다. 팀 더블의 선수들이었다.
팀 더블 선수들이 무대에 오르자 정명은 TV에서나 봤던 모습을 실제로 구경할 수 있었다.
-꺄아아악!
-오빠! 여기 좀 봐 주세요!
-사랑해요, 윈드!
저 모습을 화면으로만 보다가 직접 보니, 더욱 께름칙하다.
하지만 정명은 지지 않겠다는 듯, 능청스럽게 웃었다.
“나도 한 10년만 젊었으면 저기 있는 여고생 팬들에게 인기 많았을 텐데. 안 그렇습니까, 현역 여고생인 쿠론 님?”
아직 한국어가 어색했던 쿠론은 힘겹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넌, 그냥 아저씨야.”
“노노. 정명 오빠 같은 아저씨면 인기 많을 듯. 팀의 또 다른 현역 여고생인 내가 인정. 우히히!”
[괜히 희망 주지 마라 송하니.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에 아저씨들은 진짠 줄 안다.]
“뭐라고? 한국에 왔으면 한국어로 말해, 이… 노랑머리야!”
팀의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다.
정명이 맞은편을 보니, 잠깐의 소란이 있었음에도 팀 더블의 분위기 또한 무척 좋아 보였다.
서로가 이길 자신이 있는 상태.
그리고 잠시 후, 게임이 시작되었다.
-송하니, 또 버릇 나오나요? 라인을 우주 끝까지 밀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