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63화-----------------
“아, 또 무슨 스캔들입니까… 초등학교 때 이후로 여자 손도 잡아 본 적이 없구만.”
차석진은 그렇게 답하며 다시 피자를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정명이 하는 짓궂은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팀장은 다시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모니터를 바라보는 팀장의 얼굴은 5분 전보다 상당히 풀어져 있었다.
“일단 조금만 더 봐 보죠. 혹시 모르니까.”
-예?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냐고요? 하하. 여러분, 제가 말한 것에 주어는 없거든요? 알아서 해석하시길!
그 말을 끝으로 윈드는 더 이상 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두루뭉술하게 살짝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시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에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0분 뒤.
게임 이야기만 하는 윈드를 보며 정명과 팀장은 송하니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고, 늦은 시간에 팀장을 부른 정명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 죄송하네요. 제가 잘못 들었나 봐요.”
“아뇨, 정명 씨가 들었다는 제보가 전혀 근거 없는 얘기도 아니었는데요, 뭐. 그 타깃이 송하니가 아니라 조 아나운서였다는 게 조금 다른 점이었지만.”
팀장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코트를 걸쳤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예. 퇴근도 못 하고 오셨을 텐데… 실례했습니다.”
“전 오히려 잠깐 추가 근무를 한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마터면 당장 오늘부터 야근을 하게 됐을 수도 있으니까요.”
팀장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말하며 연습실을 나갔다.
그리고 그 뒷모습을 보던 차석진은 정명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형, 저 사람 누구예요?”
“송하니 소속사에 있는 팀장님. 일 때문에 왔어.”
“팀장님? 그럼 꽤 높은 사람인 거 아녜요? 헐.”
“당연하지. 그럼 누구인 줄 알았는데?”
“어… 조폭? 되게 무섭게 생겼잖아요.”
“후. 석진아, 시답잖은 소리 말고 이거나 봐라.”
정명은 자신의 옆에 비어 있는 의자를 툭툭 치며 동영상을 틀었다. 방금 따끈따끈하게 녹화된 윈드의 개인 방송이었다.
“이거 윈드의 개인 방송이네요? 저, 얘 싫은데.”
“나도 싫어. 그런데 이 동영상을 보면 더 싫어질걸?”
차석진은 뭔가요, 하고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잠자코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석진은 방금 전, 정명과 팀장이 보였던 반응을 똑같이 재현해 냈다.
“어, 혹시 저거 우리 팀 아니에요? 어어? 쟤가 말하는 고등학생이 혹시 송하니 양?”
석진은 어버버거리며 모니터에 삿대질을 했지만, 정명은 계속 보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문제의 이야기가 나오자 입을 헤, 벌리고 방송을 보던 차석진은 이제 딸꾹질을 하며 말을 더듬었다.
“저, 저, 저… 형, 저거!”
“그래, 내 생각도 너랑 같은 생각이다.”
“그쵸, 그쵸! 저 새끼 저거! 미쳤네!”
“아무래도 윈드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네. 괜찮아, 형은 미국에 오래 살아서 그런 거에 편견 없는 거 알지? 이제부터 넌 프로 게이머가 아니라 프로 게이…….”
차석진은 다시 멍하니 정명을 바라보다가 발을 동동 굴렀다.
“아. 형, 진짜 지금 장난칠 때가 아니잖아요! 조 모 아나운서는 조이슬 아나운서 말하는 거 맞죠? 모 팀의 고등학생이란 절 말하는 거고요!”
“그렇겠지. 조 씨 성을 가진 아나운서가 한 명인 건 아니지만, 게임 팬들이 아는 조 모 아나운서가 조이슬 아나밖에 더 있겠어?”
조이슬 아나운서는 승자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게임 방송에 종종 출연하는 미녀 아나운서였다.
나이는 23살. 정명보다는 어리지만 차석진보다는 나이 많은 그런 사람.
방송국에서 보기 드문 미녀인 탓에, 게이머들과의 열애설도 심심찮게 들리고는 하는 유명한 아나운서였다.
“저…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거 진짜 헛소린데. 저, 조 아나랑 개인적으로 얘기해 본 적도 없어요. 그리고 그분은 저에게는 너무 과분한 그런…….”
-까톡.
차석진이 두서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던 그 순간, 핸드폰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정명은 자신의 핸드폰을 찾았지만 핸드폰은 다른 곳에서 울리고 있었다.
“제 핸드폰인가 보네요. 잠시만요.”
핸드폰은 석진이 옷을 뒤적거리는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석진에게 연락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석진아, 그거 진짜냐? 윈드가 말한 거!
-이 새끼, 모솔인 척하더니… 그래서 누나를 어떻게 꼬셨다고?
-와, 연상녀 ㄷㄷ 대단. 리스펙트한다.
“아우, 이것들이 진짜!”
“잠깐만, 석진아.”
“넹?”
“나도 그 카톡 좀 볼 수 있을까?”
정명은 석진에게 양해를 구하며 석진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돌려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거 다 무시하자. 대답하지 마.”
“네? 아, 얘들 농담하는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내일 변호사 찾아갈 건데 네가 말실수할 것 같아서 그래. 정 하고 싶으면 ‘아니다’라고 딱 잡아떼기만 하고. 알았지?”
그 말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석진이 얼굴을 굳혔다.
“예…….”
그 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연습 게임이 재개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늦어 연습 게임을 슬슬 끝내려고 하는데, 차석진이 정명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기, 형. 이 사람이 제게 카톡을 보냈는데요.”
“어지간하면 무시하라니까.”
“근데 이 사람은…….”
석진은 안절부절하며 정명에게 핸드폰을 건넸고, 정명은 석진에게 온 짧은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저 조이슬 아나운서입니다, 잠깐 통화 가능할까요?
*
말주변이 없는 석진 대신 정명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정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사건은 인기 프로 게이머인 윈드가 조이슬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던 것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틈날 때마다 번호를 물으시더라고요. 저는 계속 무시하다가 게임 팬들에게 찍힐 것 같아서 번호를 알려 드리긴 했는데…….
인기 프로 게이머가 번호 알려 달라는 것을 거절하기 쉽지 않았던 이슬은 결국 핸드폰 번호를 알려 줬다. 그리고 그 이후. 윈드는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해 왔다.
-그러다가 결국 차단했거든요. 그랬더니 결국 이렇게…….
“그 녀석과는 아무런 사이가 아니었다, 그거죠?”
-네! 방송국 밖에서는 만난 적도 없어요. 오늘 뭐 하냐는 카톡도 대부분 무시했고요. 진짜 너무 화나서 방금 전까지 펑펑 울었어요.
‘과연, 과거에 있었던 송하니의 일과 무척이나 흡사하군.’
하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음에도, 그 둘의 사이에 어째서 차석진까지 엮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 그런데 차석진 씨는…….
“걱정하지 마세요. 입단속 잘 시키겠습니다.”
-아뇨, 그게 아니라 기분 나빠 하신다든가, 혹시 그런 건 아니시죠?
“네?”
차석진은 굳이 따지자면 피해자 입장이기는 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차석진 입장에선 기분이 좋았으면 좋았지, 기분 나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상한 질문을 하던 조 아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아, 아니에요. 나중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다음 날.
조 아나운서와 차석진, 두 사람은 서로가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특히 조 아나 측에서는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강력하게 나섰는데, 그러한 강경 대응에 윈드는 겁을 먹었는지 곧바로 사과 방송을 했다.
-제 말에는 주어가 없었지만, 혹시 기분 나빴던 분이 계시다면 무척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과했으니까요, 지금 이 시간부터 그 일 때문에 절 욕하시는 분은 고소 들어가겠습니다.
정명과 석진은 그 방송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저건 사과한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네. 엿 되어 봐야 정신을 차릴 놈이야.”
“그러게요. 저는 구단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할 줄 알았는데, 그런 얘기도 없더라고요.”
팀원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서 공식적인 징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얼핏 들리는 소문으로는 구단주가 꽤나 좋아했다고 한다.
그 방송이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서 GOO TV의 접속자가 대폭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무척이나 불합리한 일 같았지만, GOO TV는 정명의 생각보다 훨씬 잘나가고 있었다.
*
마침이라고 해야 할지, 정명의 다음 경기 상대는 윈드가 속해 있는 팀 더블이었다.
때문에 정명은 전투력이 최고조로 오르는 것을 느꼈다.
“석진아, 이길 수 있지? 아주 패 버리자고.”
정명은 그렇게 으쌰, 으쌰, 했지만, 석진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어… 글쎄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난번에 솔랭에서 만났는데, 우리 팀이 져 버려서…….”
“뭐, 졌다고? 아니, 뭐 솔로 랭크니까 크게 상관없기는 한데…….”
정명 수백 개의 리플레이 파일을 뒤져 방금 말한 경기를 찾아냈고, 곧장 분석에 들어갔다.
‘솔로 랭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자료는 아니지.’
윈드의 포지션은 원 딜러였다.
초반에는 약하지만 후반에 캐리를 하는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윈드는 한국 1부 리그 주전이라는 위치를 얼굴로 따낸 것은 아니었는지 실력이 제법 준수했다.
‘저 녀석, 피지컬 꽤 좋네. 쿠론이랑 석진이가 잡을 수 있는 건가, 이거…….’
별로 확신은 못 할 것 같았다.
쿠론이 원 딜러 중에서 피지컬이 썩 좋은 편이 아닌 데다 차석진 또한 능력치가 더디게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명은 차석진의 성장을 살폈다.
[차석진]
피지컬 (82/94)
정신력 (80/94)
오더 (45/65)
판단력 (80/91)
‘오더가 많이 올랐네. 내가 말하는 걸 어깨너머로 배워서 그런가?’
그러나 전체적으로 아직 부족하다.
다른 능력치도 제법 올랐지만, 한국 리그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 주기엔 조금 아쉬운 능력치였다.
‘안 되겠다. 이대로라면 조금 불안하니까…….’
정명은 시스템을 열어 상점에 들어갔다.
시스템에서는 마침 중급 경험치 부스터의 유효 기간이 끝난 상태였다.
[중급 경험치 부스터]
-팀원들의 성장이 300% 빨라집니다.
‘이걸 또 사? 아니, 중급으로는 송하니의 능력치가 잘 안 올라서 또 사 보기는 좀 그런데…….’
결국 정명은 큰맘 먹고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아이템을 사기로 했다.
지금 살 수 있는 아이템 중에서는 가장 비싼 종류의 아이템이었다.
[상급자용 경험치 부스터]
-팀원들의 성장이 엄청 빨라집니다.
-다른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치켜세우지만, 정작 본인은 실력이 정체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권합니다.
가격: 90,000포인트
[잔여 포인트 189,000]
‘엄청… 빨라진다고?’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설명은 그런 표현으로 되어 있었고 어떠한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정명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후, 이놈의 포인트는 쌓일 날이 없구만.’
가격 때문에 조금 욕이 나왔지만, 정명은 곧장 구매 버튼을 눌렀다. 쓰라고 있는 포인트였지 모으라고 있는 포인트가 아니었으니까.
정명은 그렇게 생각하며 차석진의 등을 팡팡 쳤다.
“솔랭에서 졌다고? 괜찮아. 특훈 하면 된다. 빡세게 해서 저놈들한테 한 방 먹여 주자.”
“네, 열심히 해야죠. 다만, 며칠 만에 실력이 껑충 오르지는 않겠지만요.”
“그거야 해 봐야 아는 거지. 걱정 마. 이번에 네 위주로 판 짜 줄게. 승자 인터뷰에서 조 아나운서랑 인터뷰할 수 있게!”
“아, 제발. 형까지 그런 말 하지 마요. 저 요즘 엄청 시달리고 있단 말이에요.”
그렇게 웃고 떠들고 있는데, 핸드폰의 진동 소리가 들렸다.
석진은 자신의 핸드폰을 찾았지만 이내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정명에게 걸려 온 전화였다.
-안녕하세요. 우가우가 TV의 김미영 팀장입니다. 유정명 TV의 유정명 님 맞으신가요?
“네, 맞는데요.”
-잠깐 설문 조사할 게 있어서요. 혹시 지금 시간 되세요? 5분이면 됩니다.
그리고 10분이 지났다.
우가우가의 경영진들은 GOO TV의 약진에 대단한 위기감을 느꼈는지, 인기 있다 싶은 BJ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며 내부 단속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GOO TV에는 안 간다. 그렇다고 우가우가가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니지만.’
정명의 기억으론 우가우가 TV는 꽤 오래갔다.
물론 우가우가의 등골 빨아먹는 정책은 무척이나 짜증 났지만, 현실적인 부분을 따져야 하니까.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재 GOO TV로 간 BJ에게는 전부 영구 정지를 취한 상태인데요, 이 조치가 과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우가우가에서 GOO TV로 떠난 대표적인 게이머는 윈드와 피닉스 같은 선수들이었다.
때문에 정명은 김미영의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뇨, 그다지. 그런데 남아 있는 BJ에게 특혜 같은 건 없습니까?”
*
그날 저녁.
타 팀과의 연습 게임이 시작되었다.
석진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인지 팀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연습에 진지하게 임했고,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니야, 너 오늘 움직임이 좋네? 경기 때도 오늘처럼만 하자.”
“웅웅! 오늘 뭔가 느낌이 좋아. 실력이 엄청 오른 듯한 기분이야!”
“그러냐. 다행이네. 고작 네 판밖에 안 하긴 했다만.”
그 말에 석진이 끼어들었다.
“형, 저도 좀 봐주세요. 제 실력도 엄청 좋아진 것 같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