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62화-----------------
“하니, 네가 나 좀 봐줘라. 쟤네들이 자꾸 나만 노린다.”
“엥? 그러면 원 딜러는 어쩌고? 지금 원 딜러 지킬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우리 팀 서포터, 완전 허당이잖아.”
“걔는 됐어, 딜도 못 넣는 거. 다른 사람들은 못 믿겠고, 우리 둘이서 뭔가 해 봐야겠다.”
게임 후반.
유명 프로게이머가 상대가 있기에 특히 긴장되었던 승급전은 어느새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5 : 5 대치 상황에서 천천히 간을 보던 상대팀은 원숭이 왕이라는 캐릭터를 앞세워서 강력하게 이니시에이팅을 걸었다.
목표는 원 딜러가 아닌, 미드 라이너인 정명.
경기 내내 원 딜러보다 월등한 활약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명은 낌새를 눈치채자마자, 점멸을 써서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위험, 위험…….’
그런데 점멸을 쓴 그 자리에 수도승이 빠르게 와드를 타고 넘어왔다. 정명이 어느 쪽으로 점멸을 쓸지 예측을 한 듯했다.
정명은 그런 수도승을 레이저로 긁으며, 모래시계 아이템을 사용하여 시간을 벌었다.
“아오, 우리 팀 원 딜러 뭐 하냐! 나한테 두셋이나 달라붙어 있는데!”
“이미 죽었어! 기다려 봐, 내가 구해 줄게!”
동시에 송하니의 나무 정령이 궁극기를 쓰며 안으로 들어왔고, 정명은 송하니와 CC 연계를 이어 나가며 순식간에 수도승을 탈락시켰다.
무시무시한 딜이었다.
“됐다! 이 녀석, 이제 힘 빠졌어. 프로 선수만 잡으면 다른 애들은 쉽지!”
유명 프로게이머, 흑염룡은 수도승을 잡고 무척이나 바쁘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애초에 수도승은 후반에 힘이 조금 빠지는 캐릭터다.
결국 그는 14킬 5데스라는 대단한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한타 페이즈에서는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정명이 수도승을 잡는 것과 동시에 전투는 쉽게 마무리되었다.
-GG요.
-수고하셨습니다.
게임이 끝나자마자 정명은 헤드폰을 벗으며 숨을 깊게 내뱉었다.
“후, 힘들어. 그랜드 마스터 찍었으니 이제 잡시다. 오늘 고생했네.”
화면에는 승급전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정명은 지루하고도 힘들었던 승급전을 거쳐, 상위 200명만 갈 수 있다는 그랜드 마스터 리그로 올라갈 수 있었다.
송하니는 힘들다는 것을 과장되게 표현하듯, 바닥에 털썩 드러누웠다.
“정말 고생했다구. 갑자기 이상한 녀석이 나와서 빡겜했어.”
“그래. 하마터면 승급전에서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솔로 랭크에서 진리처럼 떠도는 말이 있다.
올라갈 놈은 올라간다.
팀 운이 안 좋았다, 상대편에 특별히 잘하는 녀석이 있었다, 하는 얘기를 할 수도 있지만 계속 하다 보면 결국 자신의 실력에 맞는 리그를 찾아가게 된다는 것인데, 정명은 그것을 증명하듯 어려운 상대를 만났음에도 승급전에서 승리를 따 냈다.
“너희들은 고생했겠지만 구경하는 건 나름 재밌었어. 잘 구경했다.”
“유명한 프로게이머라고 했던가? 잘하긴 잘하네.”
옆에서 경기를 구경하던 메테오와 쿠론이 맞장구친다.
솔로 랭크에서 고수를 만났다는 소문을 들은 다른 팀원들은 우르르 몰려와 경기를 보고 있는 중이었고, 덕분에 정명의 주변은 꽤 시끄러워졌다.
그러나 경기가 끝난 후,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것은 정명의 팀원뿐만이 아니었다.
*
“아, 미치겠다. 한 끗 차이였는데!”
그 시각.
게임이 패배로 끝나자, 흑염룡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경하고 있던 팀원들 또한 탄식을 뱉었다.
흑염룡이 아깝게 승급전에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몇 장난기 많은 선수들은 승급전에서 떨어진 팀원을 보며 낄낄거렸다.
“그러게. 배재현이 이거, 승급전 한 번 더 해야겠네? 킥킥.”
“아오, 혼자서 뭘 해보기엔 한계가 있다. 저쪽은 프로가 둘인데, 이쪽에는 하나잖아. 아무리 나라도 쪽수에서 밀리는데 별수가 없더라.”
“처음엔 해볼 만한 것 같다며?”
승급전 첫판에서 흑염룡, 배재현은 무난하게 게임을 터뜨렸다.
상대가 프로게이머라는 것을 알았기에 특별히 집중했던 것도 있지만, 프로게이머를 제외한 사람들이 대강 게임을 던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판에서 그들을 또다시 만났을 때, 배재현은 무언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한 게임만에 호흡이 그렇게 좋아지냐? 나는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호흡.
서로 합을 맞추는 연계 플레이가 월등히 좋아졌기에, 배재현은 무척이나 애를 먹어야만 했다.
“네가 프로인 걸 뒤늦게 알았나 보지. 아니면 져서 열 받았든가. 그래서 빡겜 해서 터뜨린 거고.”
“그런가? 그런데 송하니, NHG에 들어간 지 몇 개월 안 됐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벌써 저렇게 팀워크를 맞췄어?”
배재현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지만,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팀의 코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우리 바텀 듀오도 저 정도는 했잖아. 저 정도 합 맞추는 데 일주일 정도 걸렸던가?”
“와, 정말요? 진짜 징그럽다, 징그러워. 저 정도로 합을 맞추는 데 일주일 걸렸다고? 이거 재능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배재현은 그렇게 엄살을 부렸지만, 코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보다 더 좋은 재능을 갖고 있는 천재 플레이어라는 것을.
코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번에 했던 게임의 리플레이를 돌려 보기 시작했다.
*
그 후, 며칠 뒤.
정명은 오랜만에 북미의 동료들에게 연락을 받았다.
-정명! 한국에서도 그렇게 날아다닌다니, 역시 대단한데?
-솔로 랭크 영상 봤어. 클래스 여전하더라.
‘뭔 소리지, 이건…….’
정명은 곧바로 그중 한 사람에게 연락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물었다.
-어? 몰라? 네가 흑염룡이랑 붙었을 때 영상 말이야!
‘아, 그거.’
정명의 지인은 그렇게 답하며 동영상 링크를 보내 줬다.
그 영상에서는 정명의 승급전 하이라이트가 보기 좋게 편집되어 있었다.
‘오, 조회수가 꽤 높네. 그래 봤자 나한테는 10원 한 푼 안 오지만.’
정명은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 핸드폰에 연결하여 동영상을 틀었다.
‘편집을 잘하긴 했는데… 조금 머쓱하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슈퍼 플레이로 보일지 몰라도 정명이 보기에 경기는 실력 경쟁 보다는 누가 아마추어의 똥을 잘 치우나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영상이었다.
그리고 이쪽은 프로게이머 2명. 똥을 치울 사람이 더 많았으므로 자신이 이길 수 있었던 것이라 자평했다.
하지만 팬이 편집한 영상이 꽤 좋게 뽑혔기에, 댓글 반응은 찬양 일색이었다.
-이 팀, 다음 경기 언제지? 진짜 기대된다!
-송하니한테 버스 타는 거 아닌가 했는데, 다른 팀원들도 잘하는 것 같네.
-요즘 우가우가 TV에서 개인 방송 중이라고 하던데, 이 정도면 GOO TV로 스카우트되는 거 아님?
정명은 댓글을 읽다가 한 대목에서 잠시 시선을 멈췄다.
‘GOO TV라.’
정명이 승급전을 끝내고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프로게이머 업계에 파란을 일으킬 사건이 생겼다.
우가우가 TV에 맞설 개인 방송 플랫폼, GOO TV가 론칭된 것이 그 사건이었다.
대기업의 지원과 빵빵한 자본, 그리고 우가우가 TV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좋은 조건.
그 조건에 끌린 수많은 유명 선수와 구단이 GOO TV로 이주할 의사를 내비쳤고, 심지어 우가우가 TV를 그렇게 열심히 하던 피닉스까지 GOO TV로 이주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정명은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 우리 팀의 성적은 2승 1패. 최소한 플레이오프 진출은 하고 싶은데…….’
1패는 상위권 팀에게서 받았고 2승은 하위권 팀에게서 얻었다.
그런 정명의 다음 상대는 팀 더블.
지난 윈터 리그에서 10팀 중 5위를 기록한 팀이었다.
정명은 혹시나 하여 다시 한 번 팀 더블의 경기를 보기 위해 TV를 켰다.
그리고 그런 정명에게 차석진이 다가왔다.
“형, 저 뭐 좀 물어봐도 돼요?”
“뭔데?”
“우리도 GOO TV 가나요? 다른 애들은 다 간다는데.”
경기를 앞두고 왜 그런 데 신경을 쓰냐고 할 수도 있었지만, 정명은 굳이 그런 핀잔은 주지 않았다. 요즘 이 이야기가 프로게이머 사이에서는 가장 관심 있는 이슈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GOO TV? 안 가.”
“헉, 왜요? 지금 가야 혜택 많이 받는다고 하던데! 지금 다른 애들도 다 옮길 예정이라 하고. 형도 우가우가 TV 거지 같잖아요! 같이 옮겨요, 네?”
차석진이 떼를 쓰듯 물어봤지만, 정명으로서는 조금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내가 미래를 살고 온 사람인데, 거기 곧 망한다고 털어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 금방 망한다고. 인마, 형이 안 가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야.’
정명은 말을 얼버무리며 팀 더블이 나온 대회의 재방송을 틀었다.
언제나 보는 것이지만, 한국의 경기장은 중국이나 미국보다는 비교적 작다.
때문에 종종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고는 했다. 마치 지금처럼.
-꺄야아아악!
-오빠! 화이팅!
TV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팬들의 조금 극성스러운 응원이었다.
갑자기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쿠론이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정명에게서 리모컨을 홱 낚아챘다.
“아, 시발. 저 익룡 새끼들, 진짜!”
쿠론이 TV 음량을 줄이며 욕을 했다.
익룡이란 조금 극성맞게 응원하는 여성 팬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인데, 쿠론은 어디서 배웠는지 그런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는 했다.
“쿠론, 너 어디 밖에 나가서 그런 말 쓰면 안 된다. 더 말 안 해도 알아듣지?”
“안 해. 누굴 바보로 알아?”
“알면 됐고.”
정명은 쿠론에게 짧게 주의를 줬다.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건, 팬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건 정말 골치 아픈 일이었으니까.
“근데 한 가지만 물어보자. 지금 익룡들이 응원하고 있는 저 녀석, 왜 저렇게 인기가 많은 거야?”
“아, 윈드? 잘생겼으니까 그렇지.”
“잘생겼다고?”
아이디 윈드, 본명 이규혁.
그는 프로게이머에 중에서 몇 안 되는 미남 게이머였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사생활이 썩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팬들이 그런 것까지 알 수는 없었으니까.
소문이야 어쨌건 그는 외모만큼은 꽤 괜찮았기에 수많은 팬들을 몰고 다니고는 했다. 지금 정명이 보는 방송에서처럼.
-역시 윈드 선수, 대단한 인기네요.
-외모만큼이나 실력도 빠지지 않거든요! 인기 있을 만하죠!
“난 잘 모르겠다. 저 사람이 미남이라는 것도, 시끄럽게 저렇게 꺅꺅대는 것도.”
쿠론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감상을 말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정명은 그러냐, 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이번 경기는 되도록이면 이기고 싶었으니까.
‘저 녀석한테 지는 건 진짜 싫은데…….’
이규혁.
몇 개월 전,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정명은 어떠한 기억이 떠오를 듯, 말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겼을 것이다.
수많은 기억이 혼재되어 있는 정명이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은근히 자주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기억이 기분 나쁜 느낌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악착같이 찾아야 나중에 후환이 없다.
정명은 자신의 품에 있던 수첩 하나를 꺼냈다.
[이규혁, 아이디 윈드. GOO TV 방송 첫날에 근거 없는 송하니 스캔들을 퍼뜨림.]
‘나도 참 별걸 다 적어 놨었네.’
그는 과거, 송하니에게 찝쩍거리다가 퇴짜를 맞은 뒤, 앙심을 품고 악의적인 스캔들을 풀었던 악질 게이머였다.
때문에 정명은 그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며칠간 무척 열심히 뛰어다녔다.
이규혁의 GOO TV 첫 방송 날짜는 바로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똑똑똑.
얼마 지나지 않아 연습실에 손님이 도착했고, 정명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연습실의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팀장님.”
“하니는…….”
“매니저랑 같이 잠깐 내보냈어요. 일단요.”
정명은 혹시나 하여 송하니의 소속사에 따로 연락을 취했다. 저 녀석의 입을 막을 수는 없지만, 대응은 최대한 빨리 해 보자는 것이었다.
정명과 팀장은 함께 문제의 개인 방송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단 법무 팀 사람까지 퇴근하지 말라고 부탁해 놨습니다만… 설마 정말로 그럴까요?”
“제보가 있었어요. 악의적으로 그런 루머를 퍼뜨릴 거라고. 그런데 혹시 송하니가 저 녀석과 접촉한 일이 있었나요?”
“아뇨, 없습니다. 원래는 같은 팀이 될 뻔했는데, 달리 갈 팀이 있다며 거부하더군요. 그러고 보니 그 팀이 바로 이 팀이었네요.”
“하하. 그것 참…….”
“잠깐. 뭐라고 말하려는 것 같습니다.”
-방송 뒷이야기 좀 해 달라고요? 오픈 기념으로? 흠… 어떻게 할까.
-요즘 떠오르고 있는 모 팀이 있는데요. 하하, 이거 말해도 되는 건가 모르겠네. 이건 좀 개인적인 일이라서.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미적대며 시청자들을 붙잡아 두려는 얕은꾀인 것이다.
-떠오르고 있는 팀이요? 직접적으로 말하긴 그렇고, 최근에 꽤 괜찮은 슈퍼 플레이 영상을 내보낸 팀이라고 해 둘게요. ‘그분’이 나오는 그 영상이요.
-아무튼 거기에 고등학생 팀원이 있는데요.
그 말을 들은 팀장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어딘가에 연락이라도 할 생각인지,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미모의 아나운서랑 사귀는 것 같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승자 인터뷰를 진행하는 조 모 아나운서냐고요? 거기까지는 말 안 하죠~ 제가 바보도 아니고. 하하.
“엥?”
“어라.”
둘은 맥이 탁 풀렸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뭔가 미래가 바뀌었음을 깨달은 정명은 어이없다는 듯, 한쪽에서 식은 피자를 먹고 있는 차석진을 불렀다.
“석진아, 아무래도 너 스캔들 난 것 같은데?”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