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61화-----------------
“오빠, 뭐 해? 내가 먼저 큐 돌려놓는다?”
“그래, 돌려놔. 금방 갈게.”
연습 게임이 끝난 날의 저녁.
정명과 송하니, 두 명은 솔로 랭크를 시작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몇 판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시간이 늦어서…….’
정명이 솔로 랭크를 한번 파 보자고 제안하긴 했지만, 송하니나 정명이나 솔로 랭크를 주력으로 할 수는 없다.
연습에 있어서 우선순위는 아무래도 팀 단위 연습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솔로 랭크는 어디까지나 후순위.
시간이 남으면 하지만 시간이 없으면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그런 일정.
하지만 정명은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가끔씩만 하려고 했는데 퀘스트를 보니까 뭔가 아쉽네.’
마스터 리그에 올라온 후, 정명은 하나의 퀘스트를 받았다.
퀘스트는 당연히 솔로 랭크에서 1위를 하라는 퀘스트로 지난번, 5위 안에 들라는 퀘스트보다 한층 어려워진 퀘스트였다.
[천상계 전투]
만약 당신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도전하십시오.
정점에 오른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1위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보상: ???
‘이것들이 이제는 보상이 뭔지도 안 알려 주네. 이러기냐 정말?’
솔로 랭크 순위 1위 퀘스트를 보니 조금 구미가 당긴다. 하지만 예전처럼 하루 종일 솔로 랭크만 팔 수도 없는 노릇.
솔로 랭크를 돌릴 시간이 부족한 것은 다른 프로 게이머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명 프로 게이머들의 솔로 랭크 성적이 생각보다 높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명은 어떻게 하면 솔로 랭크 1위를 최단 기간에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솔로 랭크 1위라… 흠, 지난번엔 운 좋게 좋은 아이템을 얻어서 재미 좀 봤었지. 아이템이라…….’
정명은 아이템 상점을 열어 봤다.
목표는 중급 상점.
하지만 정명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중급 상점에서는 지난번, 운 좋게 얻었던 [혈맹] 아이템 같은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혈맹 아이템이라. 상급 상점에 가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됐어, 어차피 비싸서 못 사겠지.’
지금은 꼭 그런 아이템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당시에는 부족한 실력을 팀워크로 메운 것이지만, 지금은 그때 없었던 실력이 있으니까.
그로부터 잠시 후.
상점을 뒤적거리던 정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적당한 아이템을 찾아낼 수 있었다.
혈맹만큼은 아니지만, 서로의 팀워크를 소폭 올려 주는 아이템이었다.
[초보 듀오]
*6개월 정도 호흡을 맞춘 듀오처럼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가격: 12,500 포인트
잔여 포인트: 134,000
‘12,500 포인트? 사지 뭐. 이 정도면 부담 없으니까.’
정명은 아이템을 사서 곧바로 송하니에게 적용시키려 했다.
하지만 아이템 구입 버튼을 누르자마자 경고 창이 떴다.
[이 아이템은 팀원, 송하니에게는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구매하시겠습니까?]
-사용자와 팀원 간의 결속력이 이미 높습니다.
송하니와 정명이 실제 호흡을 맞춘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둘은 평범한 사람이 6개월 정도 호흡을 맞춘 것과 동일한 팀워크를 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을 기준으로 했을 때 6개월인 것이지, 조금 한다 싶은 프로 게이머라면 그것보다 훨씬 빨리 적응한다는 것이었다.
정명은 어떻게 된 일인지 곧바로 이해하고는, 다른 아이템으로 눈을 옮겼다.
‘그럼 이 아이템 정도로 사 볼까? 조금 더 비싸겠지만…….’
[불굴의 듀오]
*척하면 척. 파트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 수 있게 됩니다.
*1년 정도 호흡을 맞춘 듀오처럼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가격: 25,000 포인트
‘와, 씨… 두 배로 올랐네. 이러기냐, 정말?’
두 배로 높아진 가격에 정명이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그런 정명을 송하니가 손짓하며 불렀다.
“뭐 하느라 안 와? 지금 밴 끝났는데. 캐릭터 아무거나 고른다?”
그 말에 정명이 부랴부랴 자리에 앉았다.
“밴 다 했어?”
“어. 픽만 하면 돼. 그런데 라인 가긴 글렀어.”
-1픽 선. 탑 고를 거.
-난 미드. 안 주면 던짐.
“이런, 리그를 많이 올려도 이런 분위기는 여전하네.”
“그러겡…….”
“이제 우리가 누군지 다들 알지 않나? 그러면 양보해 줄 만도 한데.”
“알걸? 이렇게 떠벌리고 다녔는데 알 사람은 알지.”
랭크에서 팀으로 만난 사람들은 라인 양보를 전혀 해 주지 않았고, 결국 둘은 가장 인기 없는 라인인 바텀 듀오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서포터를 서기 싫어하는 것은 두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니야, 네가 서포터 서라.”
“노노, 양보함!”
결국 둘이 가위바위보를 한 후, 정명은 원 딜러. 송하니는 서포터 포지션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주 라인이 아니라고 해도 프로가 아마추어를 못 이길 리 없다.
끝없이 공방이 이어지는 라인전에서 송하니는 사슬을 정확히 적중시킨 후, 정명에게 랜턴을 던졌다.
“와랏!”
“오냐!”
정명의 캐릭터는 악마 사냥꾼.
성능은 둘째 치고, 겉멋 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캐릭터였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returner, 더블 킬!]
깔끔한 킬.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아낌없이 달풍선을 던졌다.
l_logic: 벽꿍각 재는 것 좀 보소. ㄷㄷcharge: 다른 라인 서도 기본 피지컬은 어디 안 가는구나. 됐고, 내 달풍선이나 받아.
깔끔한 스타트에 정명이 씩 웃었다.
“좋네. 이렇게만 하자.”
아무리 마스터 리그라지만 상대는 프로 게이머는커녕 프로 게이머 연습생도 아니다.
그저 게임을 좀 잘하는 평범한 아마추어 듀오.
나중에는 정명이 라인까지 당기니, 미니언은 둘째 치고 경험치까지 못 먹을 지경이 되었다.
경기 중임에도 여유가 생기자 정명은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쓱 훑어보았다.
X-max: 양학 방송 안 한다면서?
바둑이: 마스터 리그인데 무슨 다이아 양학하듯 플레이하네;
“양학 방송 아니라니까요. 이제 마스터 리그에 막 올라와서 그래요.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저희도 이렇게 하기는 힘들 겁니다. 프로들도 좀 섞이고 그러면.”
현재 정명과 송하니가 속해 있는 리그는 마스터 리그였다.
한국 서버에 있는 수백만 개의 아이디 중 랭킹 900위 안에 들어야 진입할 수 있는 리그로, 이곳에서부터 현역 프로 게이머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정명이 이렇게 마스터 리그에서 상대를 압살하고는 있지만, 실력으로 무시당할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그로부터 20분 뒤, 게임이 끝났다.
-GG. 이거 완전 버스 탔네.
-제가 프로 게이머를 몰라뵀네요. 혹시 담에 만나면 라인 양보 꼭 해 드릴게요
대기실이 시끌벅적하다.
사람들은 월등한 실력에 놀란 것도 있지만, 실제로 프로 게이머를 만난 것이 신기했기에 이것저것 말을 걸며 친구 추가 요청을 넣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익숙한 반응.
정명은 쿨하게 거절 버튼을 누르며 다음 게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정명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요즘 뭘 그렇게 열심히 해?”
“솔로 랭크. 조금만 더 하면 순위권에 들 수 있을 것 같아서.”
뒤에서 말을 건 것은 에리였다.
에리는 어느새 훌쩍 높아진 정명과 하니의 점수를 보며 살짝 놀랐다.
“오, 이대로라면 그랜드 마스터도 금방이겠는걸?”
에리는 구경을 하려는지, 하니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에리가 등장하자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헉, 외국인이다! 신기해!
-두유 노 김치? 두유 노 싸이?
-와, 말하는 것 좀 봐. 영어 발음 쩔어!
마지막 채팅을 본 정명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그야 영어 발음은 당연히 좋죠. 미국 사람이니까.”
“응? 사람들이 뭐래?”
“김치 먹을 줄 아냐는데요. 그리고 한국 좋냐고도 물어보네요.”
“먹을 줄 알지~ 그리고 한국은… 좋아! [살랑해여, 코리아!] 막이래.”
에리가 어설프게 배운 한국어를 써먹자, 정명이 큭큭 웃었다.
“큭큭, 한국말 잘하시네요. 그대로 전해 드릴게요.”
짧은 밴픽 후, 정명은 로딩창이 뜨는 동안 다시 채팅창을 읽었다.
“그리고 또… 상대 미드 라이너가 프로 게이머라는데?”
“응? 프로 게이머?”
-저 사람 프로 게이머다!
-누구?
-ㅉㅉ 보고도 모름? 저기 바텀에 탐험가 고른 놈 말이야. 팀 더블의 엑시아잖아.
그랜드 마스터로 가는 관문을 통과하기 직전, 드디어 매칭된 사람 중 프로 게이머가 나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프로 게이머가 나오면 괜히 위축되었지만, 이제는 별다른 느낌도 들지 않는다.
정명은 간단하게 프로 게이머를 만난 감상을 말했다.
“아하, 저 사람이 그 선수예요? 그럼 더 열심히 해야겠네.”
그러나 그런 결심과는 달리, 정명과 하니의 포지션은 이번에도 바텀 듀오였다. 전 판처럼 라인을 양보받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둘의 눈빛은 전 판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진지했다.
상대방이 프로 게이머라면 이쪽도 전력을 다해야 이야기가 성립되니까.
그리고 바텀 라인의 캐릭터들이 5레벨을 찍을 무렵, 정명 쪽에서 먼저 전투를 열었다.
“킬러송 님, 슬슬 이니시 거시지요. 포킹 좀 그만 맞고 싶네요.”
“그럼 그럽시다.”
[바다야, 덮쳐라!]
송하니의 이니시와 함께 정명의 악마 사냥꾼이 다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한다.
목표는 탈진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는 탐험가, 엑시아라는 아이디를 쓰는 프로 게이머였다.
“오, 너 스킬 적중률 좋은데? 이거 잡겠다!”
정명은 상대 서포터의 스킬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도, 최대한 딜로스 없이 상대 캐릭터에게 화살을 꽂아 넣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야, 정글러 온다. 빼자, 빼.”
“엉, 튀자.”
정명과 하니는 1킬만 내고 재빨리 빠졌다.
1킬이라고는 하지만, 이득을 많이 봤다. 이것으로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정명과 하니는 기뻐하기는커녕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귀환하고 복귀하는 사이, 정명은 잠깐 개인 방송의 마이크를 껐다.
“탐험가, 쟤가 프로라고? 그런데 프로치고는 좀 못하는 거 아니냐?”
“내 생각도 그래. 견제도 이상하게 하고, 하여튼 뭔가 어설퍼.”
프로라고 해서 매번 잘할 수는 없다지만, 이것은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은 한타 페이즈로 갔을 때, 조금 더 명확해졌다.
엑시아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한타 때 포지션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어영부영하다가 잘리는 모습을 꽤 자주 보여 줬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채팅창에 제보가 들어왔다.
-저거 아이디만 비슷한 짭임. 프로 아님.
“아, 어쩐지.”
“괜히 긴장했네… GG요.”
사실 아이디가 가짜건 어쨌건 크게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송하니와 정명, 둘의 아이디에 드디어 그랜드 마스터로 갈 수 있는 승급전이 떴다는 것이었으니까.
옆에서 구경하던 에리는 승급전이 뜨자마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오, 대단해! 엄청 빨리 갔어!”
“진짜 초스피드네. 흠, 한 게임만 더 할까. 하니야, 너 좀 늦게 들어가라.”
“응! 그마 승급전, 승승승으로 해치워 버리고 발 뻗고 자는 거야!”
조금 늦은 시각이었지만, 승급전을 띄웠는데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정명은 다시 한 번 랭크 게임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텀 라인으로 밀려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저 프로 게이머 유정명입니다. 이번 밴픽, 제가 주도할 수 있을까요?”
-헉! 진짜로?
-아이디 검색해 보니까 진짜네. 승률 어마어마하다 진짜.
-버스 태워 주시면 감사, 감사…….
이 정도까지 왔으면 이상한 픽 같은 건 하지 않는다.
하니와 정명은 마치 대회처럼 익숙한 캐릭터를 골라, 빡세게 게임을 준비했다.
그리고 밴픽이 끝나자, 정명뿐만 아니라 시청자들 또한 긴장감 속에서 로딩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뒤에서 구경하던 에리가 입을 열었다.
“어라. 저기 수도승, 그 사람 아닌가? 1부 리그 프로 게이머.”
“예? 아이디만 비슷한 가짜라면서요.”
“아니, 그건 나도 들었어. 걔 말고. 저기 ‘시민11’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저 사람 말이야.”
“응?”
에리는 폼으로 팀의 코치를 맡고 있는 게 아닌 듯, 프로 게이머의 부캐릭터를 곧장 알아봤다.
“프로 게이머라는 녀석들은 ‘나 프로 게이머다.’라고 아이디에 표시 좀 해 줬으면 좋겠어요. 너도나도 부캐릭터를 갖고 오니, 이거 모르고 당할 뻔했잖아?”
“너도 아이디 이상한 거 쓰잖아.”
정명은 에리의 말을 무시하며 구글에 아이디를 검색했다.
“시민11의 본 아이디가 뭐냐… 음, 나왔다.”
“누구라는데?”
정명이 대답하기도 전에 프로 게이머를 알아본 시청자들 또한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었다.
-흑염룡 아님?
-시민 11, 흑염룡임.
-미쳤다, 쟤가 여기에 왜 있어?
흑염룡.
최고의 구단, KAO에서 정글러를 맡고 있는 최강의 정글러 중 하나.
정명은 수도승을 고른 유명 프로 게이머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이, 씨. 이건 좀 쫄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