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55화-----------------
박성준.
2위 팀, NAV의 리더이자 미드 라이너.
‘기억난다. 과거에도 엄청나게 유명한 선수였지.’
그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무척이나 특이한 플레이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개싸움.
박성준은 3레벨. 즉 스킬 세 개가 모두 찍히자마자 계속해서 싸움을 건다는 무척이나 무식하고도 공격적인 방법으로 포인트를 따 내고는 했다.
물론 싸움을 자주 거는 것을 선호하는 선수야 기존에도 많이 존재했지만, 그가 유명했던 이유는 별것 없었다.
그러한 싸움에서 손해를 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내가 한 대 맞을 때 나는 2대 때린다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전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싸움의 신이라는 거창한 별명까지 얻게 되었고, 명실상부한 최고의 미드 라이너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싸움의 신이라. 그 잘난 낯짝을 어디 한번 볼까?’
[박성준]
피지컬 (95/97)
판단력 (90/90)
오더 (93/95)
정신력 (94/95)
특수: (감정 스킬을 업그레이드해야 볼 수 있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만만치가 않다.
정명은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가까스로 감추며 태연하게 웃었다.
“아- 박성준 선수라면 싸움의 신이라고 불리는 그분, 맞죠?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컨트롤이 아주 좋으시다고.”
“아이고, 그렇게 부르시면 조금 부끄러운데. 저야말로 소문 많이 들었습니다. 미국 쪽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으시다고요. 나중에 제가 해외 리그 가게 되면, 도움 좀 주셔요.”
“물론이죠. 궁금한 것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중국 리그랑 북미 리그. 어느 쪽이든 다 됩니다.”
박성준은 무척이나 믿음직스럽다며 정명의 번호를 따 갔다. 당장 그가 해외 리그에 진출할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혹시 모르는 것이니까.
그 후, 그는 뒤에 있던 송하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이게 누구야. 송하니잖아! 우리 구단이 영입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왜 안 왔어!”
“미안해요.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
아직 고등학생인 송하니가 뻔뻔한 얼굴로 그런 소리를 했지만, 박성준은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그래? 어우, 아쉬워라. 그럼 나중에 우리 팀이랑 연습 게임이나 같이 좀 해 줘. 나도 디바랑 게임 한 판 해보자.”
“그건 좋아요.”
정명은 NAV라는 팀이 만년 2위를 도맡아 하는 팀이라기에 열등감에 찌들어 있을 줄 알았건만, 박성준이라는 사람은 생각보다 활기찬 사람이었다.
그리고 박성준이 송하니와 사진을 찍고 그것을 SNS에 올리려는 순간, 스태프가 정명을 불렀다.
“조금 이따가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팀 NHG 분들은 안쪽으로 오실게요.”
정명은 곧바로 들어가는 대신, 외국인 팀원들을 챙겼다.
“메테오, 지금 촬영 들어간대요.”
“알았어.”
오늘 오프닝과 프로필 촬영을 하게 될 팀은 정명을 팀을 포함하여 총 3팀이었다.
10팀을 한꺼번에 불러서 촬영하는 것이 아닌, 나눠서 촬영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10팀을 하루에 전부 부른다면 게이머들은 몇 시간씩 대기해야 하는 불쾌한 일을 겪게 될 테니까.
그 후, 몇 시간 뒤.
조금은 오글거렸던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촬영은 별것 없었다.
다만 촬영하는 사람이 거만한 포즈나 표정을 자주 주문하고는 했는데, 너무 어색한 나머지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는 게 고생이라면 고생이었다.
그리고 촬영을 마친 팀원들이 집에 돌아가기 전. 간단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송하니 씨? 왜 NHG란 팀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조건이 더 좋은 팀이 많이 있었을 텐데.”
“맘에 맞는 사람들과 팀을 짜고 싶어서요. 게임은 친구들이랑 하면 더 재밌잖아요?”
송하니,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질문이 집중되었다.
북미에 있을 때 인터뷰를 거의 도맡아서 했던 정명은 조금 어색한 기분을 느끼며 인터뷰 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 혹시 연봉에 대해서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 기사에는 안 내겠습니다.”
“그건…….”
민감한 질문이 나오자, 옆에 있던 매니저가 대신 커트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 예. 그러면 향후 앨범 발매 계획에 대해서라도…….”
인터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무리되었다.
팀원들이 긴 촬영으로 인하여 피곤하다는 티를 팍팍 내었기 때문이다.
특히 쿠론은 5분마다 이거 언제 끝나는 거냐며 대놓고 물어보기 시작했고, 정명은 그것을 말리기는커녕 더 자주하라고 부추겼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아우, 힘들어. 우리 이제 집에 가도 되죠?”
“어. 나도 피곤하다. 연습실 들렀다 갈 필요 없고, 바로 집으로 가면 된다.”
팀원들은 경기를 치렀을 때보다 더 지쳤는지, 흐느적거리며 걷고 있었다.
이 지겨운 방송국 건물을 나가기 직전, 정명은 한 무리의 팀과 마주쳤다. 마지막으로 프로필 촬영을 하게 될 팀이었다.
그런데 그 한 무리의 사람 중 한 명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에요, 형!”
“어? 김준상 아냐?”
정명이 마주친 것은 예전, 중국에서 같이 팀을 짰던 김준상이 있는 팀이었다.
팀 TAQ. 지난 한국 리그에서 4위를 했던 실력 있는 팀.
김준상의 소개로 정명은 팀 TAQ의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프로 게이머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추세답게 TAQ 선수들은 20대 초반의 선수가 많았고, 특히 제일 나이가 어린 선수는 무려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정명은 자신과 10살 차이가 난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너희들이 고생이 많다. 학교랑 일을 병행하느라 힘들지?”
“좋아서 하는 일이라서 그나마 할 만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정명이 마지막 선수와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는 순간, 정명은 이 선수 또한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형은 정말로 제 롤모델이에요. 프로 게이머가 그렇게 돈을 쓸어 담다니, 예전 같았으면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
“그래?”
“예. 해외로 가고 싶기는 한데, 외국에서 혼자 있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아서. 뭐, 한국에 있어도 실력이 늘어나면 제 연봉도 늘어나겠죠.”
그 선수는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제 딴에는 무난한 대화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명은 그를 따라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이런 미친. 저 녀석은… 승부 조작 사건에 연루되었던 녀석이잖아?’
*
며칠 뒤.
선수들이 짧게 했던 인터뷰 내용이 커뮤니티 언벤에 실렸다.
정명은 혹시나 해서 기사를 확인했지만, 그다지 문제될 내용은 없어 보였다. 때문에 별 생각 없이 스크롤을 죽죽 내리기 시작했는데, 기사에서 조금 특이한 것이 눈에 띄었다.
‘댓글 1,128개……. 댓글이 뭐 이리 많이 달렸어?’
외국인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슈 몰이로 충분한데, 개중에는 어지간한 연예인보다 훨씬 유명한 송하니까지 포함되어 있다.
팬들의 관심을 쓸어 담기에는 충분한 라인업인 것이다.
정명은 댓글을 일일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저 팀은 이름을 바꿔야 한다. ‘하렘 게임단’으로.
-나도 미소녀랑 게임하고 싶어. ㅠㅠ-북미 팀이라 실력이 걱정되기는 하는데, 송하니 꼈으니 꼴지는 안 할듯.
-나는 맨 왼쪽에 있는 여성 분이 좋은 것 같아.
?저 사람, 소문으로는 애 엄마라던데.
?개소리 ㄴㄴ.
커뮤니티 반응을 보니, 첫 인상을 꽤 좋게 가져간 듯했다.
무척이나 좋은 출발.
하지만 정명의 기분은 썩 좋지 못했다.
며칠 전, 방송국에서 만났던 한 선수가 정명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 이거는 혼자 끙끙 앓기 보다는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해서 푸는 게 좋겠어. 상담을 할 상대는…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정명은 연습실을 둘러보았다.
부 캐릭터로 욕을 하며 솔로 랭크를 돌리고 있는 송하니. 고양이 모래를 갈아 주고 있는 매니저와 개인 방송을 켜 놓은 메테오.
다들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정명은 그중에서 멍하니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 에리에게로 향했다.
“에리, 드라마 내용 이해돼요?”
“아니. 그냥 그림만 보고 있어. 왜?”
“인생 상담 좀 하려고요.”
“인생… 상담? 네가? 나한테?”
“네. 애들한테 제 고민을 털어놓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자 에리가 킥킥 웃었다.
“뭐, 그건 그렇지. 뭔데? 편하게 말해 봐. 어디 가서 안 떠들고 다닐 테니까.”
에리는 자신의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고, 정명은 에리의 옆에 털썩 앉았다.
“나쁜 사람이 있거든요. 아주 나쁜 사람.”
“나쁜 사람이라.”
“그 나쁜 사람은 곧 나쁜 행동을 저지를 거예요. 감옥에 갈 그런 행동이죠.”
“그래? 그럼 신고하는 게 좋지 않을까?”
“문제는 아직 그 사람이 나쁜 행동을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거예요. 거기다가 이 일은 저밖에는 몰라요. 다른 사람들은 그를 무척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죠.”
“나쁜 일을 무조건 저지른다는 거야?”
“네. 거의 99.9%의 확률로……. 아니, 무조건요.”
에리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손바닥을 짝 마주쳤다.
“아, 나 알아! 그거 영화 이야기지? 마이너리티 리포트. 미래 예지를 통해서 예비 범죄자들을 잡아넣는 영화잖아. 그거 엄청 재밌었는데!”
어떻게 변명할까, 어떻게 돌려 말할까 고민했는데 에리가 알아서 변명거리를 만들어 줬다.
덕분에 정명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로 그거에요. 그런데 그 범죄자가 나중에 자신에게 피해를 줄 예정이라면 에리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건 바로 답해 줄 수 있겠네. 당하기 전에 먼저 쳐야지! 당연한 거 아냐?”
“아직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그럼 그 녀석이 네 뒤통수 때리기를 기다리고 있든가.”
“흐음…….”
정명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선수들을 불러 모아 연습 게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만, 정명이 한국에서의 인맥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연습 게임을 할 팀을 섭외하는 것은 송하니나 차석진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었지만.
“형, 이 팀은 어때요? TAQ. 저번에 방송국 나갈 때 마주쳤던 팀이요. 이 팀이 지금 시간 된다고 하는데.”
“아, 그래. 김준상과… 그 녀석이 있는 팀 말이구나. 좋지. 잘하는 팀과의 연습은 언제나 환영이니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정명의 팀이 좀 많이 지긴 했다.
총 전적은 1승 4패. 이겼던 한 판도 조금은 어렵게 이겼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팀을 새롭게 짜자마자 날아다니는 것을 바라는 건, 너무 날로 먹겠다는 심보니까.
쿠론은 이 연습 게임에 대하여 짤막하게 평가했다.
“보니까 그 미드 라이너 되게 잘하는 것 같던데. 아이디가… 피닉스라고 했던가?”
“응, 맞아. 엄청 잘하네. 그래도 걱정 마. 경기 때는 내가 제대로 마크할 테니까.”
*
며칠 뒤.
정명은 조 추첨식에 참가하게 되었다.
사실 풀 리그이므로 조를 짠다기보다는 대진 순서를 짠다고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정규 리그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대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3번 카메라, 상태가 조금 이상한데요?”
“아오, 이제와서 그런 걸 말해! 미리미리 확인했어야지!”
주변에는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고, 수많은 카메라가 선수들을 찍고 있었다.
이번 조 추첨식을 위하여 각 팀에서 나온 사람은 총 2명.
감독과 오더. 딱 두 사람이다.
하지만 정명의 팀은 감독이 없다.
때문에 이번 조 추첨식에 참가한 사람은 오더인 정명, 그리고 방송국에서 꼭 와 달라고 신신당부했던 송하니, 단 두 명이었다.
그런데 같이 온 정명이 핸드폰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기에, 무척이나 심심했던 송하니는 슬쩍 정명의 핸드폰 화면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오빠, 뭘 그렇게 봐?”
“땅.”
“땅?”
“여기 곧 오를 거야. 엄청.”
정명은 한국에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꽤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이머 업계의 일뿐만 아니라, 이런 소소한 돈벌이까지.
미국에 있을 때와는 달리,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넘쳐 나는 것이었다.
“오빠, 혼자만 돈 벌려고? 나두나두! 나두 같이 돈 벌자!”
하지만 정명은 대답 대신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스태프가 앞에서 곧 방송이 시작된다는 사인을 열심히 보내고 있었으니까.
캐스터가 방법을 설명한 뒤, 선수들이 상자에서 숫자가 적혀 있는 공을 뽑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명 팀의 차례가 다가왔다.
“잘 뽑고 와.”
“오키!”
그리고 송하니가 공을 뽑자마자, 캐스터가 호들갑을 떨었다.
“팀 NHG의 첫 상대는… TAQ입니다! 이거 외국 팀이 한국 리그에 오자마자 김치 맛을 제대로 보겠는데요!”
팀 TAQ.
김준상이 있는 팀이자 연습 게임에서 1승 4패를 했던 팀.
정명은 짧게 한숨을 뱉었고, 송하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사과를 했다.
“미안.”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근처에 앉아 있던 팀 TAQ의 선수가 정명에게 실실 웃으며 말을 걸었다.
“우와, 우리 첫 경기에서 만나게 되었네요. 살살 부탁드려요.”
정명은 그 엄살에, 웃으며 답했다.
“그래요, ‘피닉스’ 마재현 선수. 우리 서로 좋은 경기 펼쳐 보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