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54화-----------------
정명은 곧장 송하니와 함께 연습실로 향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다른 팀원들은 이미 연습실에 도착해 있었고, 팀원들은 새로 리모델링된 연습실을 구경하다가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하나둘 거실로 모여들었다.
“아, 쟤가 걔야? 반갑다. 난 메테오야.”
송하니가 동양에서는 상당히 유명하지만, 서양에서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때문에 메테오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송하니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놀라지 않았고, 깜짝 놀란 건 오히려 송하니처럼 보였다.
“세상에, 외국인이야!”
“그래. 외국인이지. 외국인하고 인사 해.”
“아… 안녕. 아니, Hello?”
송하니는 마치 선거 유세를 하는 정치인처럼 한 명, 한 명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배웠던 영어와 바디 랭귀지를 총동원하여 커뮤니케이션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꽤나 안쓰러워 보였다.
“너, 뭐 하냐? 한국말로 인사해. 되지도 않는 영어 쓰지 말고.”
“그래도 돼? 저기, 아저씨. 한국어 할 줄 아세요?”
그러자 메테오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저었다. 눈치껏 알아들은 것이다.
사실 메테오도 그렇고 에리, 쿠론 또한 지금은 간단한 인사말이나 욕밖에는 아는 한국어가 없는 상태였지만, 정명은 하니에게 영어를 되도록 쓰지 말라고 주문했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어를 써야지. 잠깐 있을 거면 모르겠는데, 1년 이상의 장기 체류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정명은 그렇게 말하며 여태껏 입을 꾹 닫고 있던 차석진의 등을 팡, 쳤다.
“석진아. 멀뚱히 뭐 해. 송하니랑 만나고 싶다며? 인사해.”
그러자 차석진은 마치 태엽 로봇처럼 뚜벅뚜벅 송하니의 앞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만수 고등학교 3학년, 팀 NHG의 서포터. 차석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이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신입사원처럼 깍듯하게 인사하는 차석진.
그 모습에 어이가 없을 법도 하건만, 송하니도 별별 팬들을 다 만난 경험이 있기에 자연스럽게 대처했다.
“어… 응. 반가워! 그보다 나도 고3인데 말 놓는 게 어때?”
“예? 하지만 어떻게 제가 감히…….”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거냐 저건 또.’
정명은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 촌극을 바라보았다.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하니는 연예인 특유의 사교성으로 팀원들과 무리 없이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런 화목한 분위기에 끼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송하니의 매니저 김민서.
그녀는 아무 말도 않은 채, 멀찌감치 떨어져서는 감시라도 하는 것처럼 송하니를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다.
정명은 그녀에게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매니저님.”
“김민서입니다.”
“아, 예. 김민서 매니저님. 저 말괄량이의 뒤치다꺼리 하느라 힘드셨겠어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할 때는 하는 아이니까요.”
다시 이어지는 침묵.
김민서라는 매니저는 정명이 가끔 만날 수 있었던 다른 매니저들과는 조금 성격이 달랐다.
우리 연예인 잘 좀 봐달라고 영업하기는커녕 사교성이 0에 가까웠던 것이다.
정명은 어색함을 견디다 못해, 어떻게든 화제를 찾기 시작했다.
“매니저님, 커피 좀 드실래요? 제가 기계를 좋은 걸로 샀거든요. 라떼도 되는 건데.”
“주시면 감사하죠. 저는 에스프레소로 부탁합니다.”
“어… 정말요? 에스프레소?”
“이상합니까?”
“에스프레소 마시는 사람 처음 봐서… 엄청 쓰지 않아요?”
“일을 하다 보면 바쁠 때가 많아서. 빨리 마시는 걸 선호하거든요.”
민서는 정명이 갖다 준 에스프레소가 조금 식자마자 한 번에 들이켰다.
커리어 우먼처럼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꽤 터프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정명이 이제 매니저님은 집에 가셔도 된다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 순간, 매니저가 먼저 선수를 쳤다.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연습실에 있겠습니다.”
오늘 하루 놀다가는 거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때문에 정명은 김민서가 앞으로도 송하니를 따라 연습실에 오겠다고 말하는 것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아… 연습실에요? 지루하실 텐데.”
“지난 팀에서도 그랬습니다. 하니가 가는 곳은 다 따라갈 겁니다.”
‘지난 팀에서도 그랬다라……. 음, 하긴.’
그 말에 정명은 매니저가 연습실에 붙어 있겠다는 이유를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
프로 게이머 업계 특성상 여자보다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니, 송하니가 혹시나 불안해할까 봐 같이 있어 준 것이었다.
매니저는 정명이 안 된다고 할까 봐 불안했는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공짜 밥 먹을 생각은 없어요. 시킬 일 있으시면 시키셔도 됩니다.”
‘내가 고용한 것도 아닌데, 뭘 시킬 수 있을 리가 있나.’
하지만 정명은 매니저가 연습실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다지 방해되는 것도 아니고, 전략을 외부로 팔아먹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으니까.
그런데 그때, 민서의 앞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갔다.
“고양이……?”
갈색과 하얀색이 섞여 있는 치즈 고양이는 에리가 키우는 고양이였다.
정명이 잡아서 들어 올리자, 고양이는 항의라도 하듯 야옹야옹 울기 시작했다.
“고양이 좋아하세요?”
“아, 네…….”
“핀은 머리 쓰다듬어 주는 걸 좋아해요.”
정명은 그렇게 말하며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뭐가 그리 불만인지, 고양이는 쓰다듬어 줬는데도 계속 바짓가랑이에 붙어 앵앵거리고 있었다.
“뭐지? 사료는… 있고. 물도 있고. 감자 캐 달라는 건가?”
“감자요?”
감자 캔다는 것은 고양이 배변을 치운다는 말이었다.
정명은 보고 배우라는 듯 천천히 모래를 갈아 주기 시작했고, 김민서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런데 그때,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송하니가 일부러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앗! 오빠가 고양이로 민서 언니 꼬시고 있어!”
그 말에, 정명 또한 연극 톤으로 말하며 대응했다.
“그럴 리는 없어요 송하니 씨. 우리 연습실은 연애 금지니까요.”
“뭐? 그런 얘기, 들은 적 없는데?”
“당연히 들은 적 없겠지. 내가 방금 지어낸 거니까. 너, 가수 활동할 때 소속사에서도 그런 거 있지 않았냐?”
“말도 안 돼. 인권 탄압이다! 독재다! 유정명 씨의 탄핵을 요구하겠습니다!”
하니가 거세게 항의했지만, 정명은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시답잖은 이야기는 됐고, 일 얘기나 하자.”
“시답잖은 이야기가 아닌데…….”
내부에 변화가 있는 팀은 무척 시간이 부족하다.
때문에 정명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미 말했던 건데, 너는 못 들었으니까 다시 한 번 말해 줄게. 우리 팀의 목표는 이거야. 한국 리그에서의 우승. 거기에 이어 월드 챔피언십에서의 우승.”
“웅… 그건 뭔가 당연한 이야기 같네. 아마 대부분 팀의 목표가 우승이지 않을까?”
“그건 그러네. 아무튼 지금 내가 제일 궁금한 건 이거야. 한국 팀들의 진짜 실력.”
물론 그들이 플레이하는 것을 보긴 했다. 하지만 TV에서 보는 거랑 직접 싸워 보는 거랑은 천지차이였기에, 경험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려는 것이었다.
“글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한국에는 어떤 팀이 있냐?’ 같은 것은 건너뛰어도 되지?”
“그래. 어떤 선수가 어떤 포지션에 있는지까지 다 외워 놨어.”
한국의 1부 리그에 출전하는 팀은 총 10팀.
가끔 승점 자판기처럼 취급되는 팀이 있는 해외와는 달리, 다들 산전수전 다 겪은 팀들인 것처럼 보였다.
때문에 정명은 이번에 2부 리그에서 우승한 뒤, 승강전을 통하여 올라온 팀을 제외하면 전부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팀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먼저 KAO.”
“거기는 네가 있던 곳 아냐?”
“그렇지. 1년인가? 있었어. 걔네들 되게 잘해.”
송하니가 가장 먼저 언급한 팀은 현 한국 1위 팀이자, 세계 1위 팀, KAO였다.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그 팀은 기존의 1위 팀을 가볍게 짓밟고 1위를 차지했는데, 무려 한국에서 로열로더를 달성한 전설의 팀이었다.
송하니는 KAO에 대해 천재들이 노력까지 하면 어떤 괴물이 탄생하는지 보여 주는 팀이라고 설명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다음은… NAV. 알지? 원래는 1위 팀이었는데 KAO에게 밀려난 그 팀 말이야.”
“알지. 이번에 우승하려고 돈을 엄청나게 처바르는 것 같던데.”
“아, 그건 맞아. NAV가 이번에 나랑 계약하자고 30억 불렀어. 결국 깠지만.”
송하니는 뒤에서 들리는 매니저의 한숨을 애써 무시하며 설명을 계속했다.
역시 높은 위치에 있었던 게이머였기 때문인지, 알고 있는 게 꽤 많아서 정명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옆에서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매니저는 강하다는 팀들의 이야기를 듣자 무언가 답답해졌는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확실히 잡을 수 있는 그런 팀은 없어요?”
“흠, 글쎄요. 이번에 막 1부 리그로 올라온 팀은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기억났다. 그 나이 많은 사람들 있는 팀. 맞지?”
사람들이 가장 만만하게 생각하는 팀은 2부 리그로 떨어졌다가 1부 리그로 겨우 다시 올라온 사람들이 있는 팀이었다.
정명은 자신의 기억에 없는 것으로 봐서는 그렇게 대단한 팀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송하니. 지금 널 탑으로 보낼까 생각하고 있는데. 네 실력은 어때. 여전해?”
“당연하지! 나만 믿어!”
‘흐음, 어디…….’
정명은 자신만만한 송하니의 스탯창을 띄웠다.
[송하니]
피지컬 (93/97)
판단력 (90/92)
오더 (82/85)
정신력 (87/95)
‘어라, 얘 능력치가 원래 이렇게 높았던가?’
송하니의 능력치를 본 게 하도 오래전이라 예전에는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물론, 예전 능력치가 어쨌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정명은 그에 대해서는 신경을 껐다.
“좋아. 오늘부터 당장 빡세게 연습하자고 하진 않겠지만, 너도 이제 슬슬 솔로 랭크부터 하면서 감 살려 놔. 알았지?”
“옛썰!”
조금씩 키워야 할 선수가 아닌, 거의 완성되어 있는 선수가 팀에 들어온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때문에 정명은 이번 리그에서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는 것으로 목표를 상향조절했다.
*
며칠 뒤.
송하니가 정명의 팀으로 이적했다는 소식이 발표되었다.
정명뿐만 아니라, 팀원들의 지인들에게서까지 어떻게 된 거냐는 질문이 쏟아졌지만 전부 무시했다.
그리고 오늘은 리그 오프닝 촬영을 위해 팀원들이 전부 모였다.
팀이 완성된 후, 첫 외부 촬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앞으로의 팀 일정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오늘의 촬영이 끝나면 내일부터 연습 시작하려고요. 그리고 조 추첨식도 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경기인데… 이번에도 송하니가 개막식 때 공연합니까?”
“예. 아무래도. 그럼 인터뷰는 어떻게 할까요?”
“많이 할 필요 없겠죠. 최소한으로 부탁합니다.”
송하니의 개인 매니저이건만, 정명은 김민서를 완전히 팀의 매니저처럼 부려 먹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미용실가서 머리를 만지고 메이크업까지 끝낸 팀원들이 하나둘 연습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명은 평소의 더벅머리가 아닌, 머리에 젤을 잔뜩 바르고 온 석진을 보며 씩 웃었다.
“석진아. 그렇게 꾸미니까 연예인 같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고 다녀.”
“어… 감사합니다.”
“오빠, 나는? 나는?”
“응? 너?”
하니가 히히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평소에도 눈에 띄건만, 풀 메이크업까지 하고 온 송하니는 ‘진짜’ 연예인 같아 보였기에 정명은 엄지를 척 들었다.
“너는 진정한 프로 게이머 같아. 멋져”
“어… 응? 고마워?”
미국과 달리, 방송국에 도착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정명의 팀이 도착하자마자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디 보자… 저 녀석은 팀 GGL에 있던 녀석이고, 저 녀석은…….’
정명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구경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한국 리그 선수들의 능력치가 얼마쯤 되는지 탐색하는 것이었지만.
그런데 그때, 팀 유니폼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정명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팀 NAV의 미드 라이너 박성준입니다.”
‘아, 이 녀석이 바로…….’
몇 년 전, 한국 리그에서 정점을 찍었지만 이제는 매번 준우승만 하고 있다는 그 팀의 선수였다.
정명은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면서 동시에 상대의 스탯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