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53화-----------------
피시방 리모델링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건물에 냄새만 조금 덜 빠졌다뿐이지, 공사는 초스피드로 마무리 단계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구경하러 달려온 메테오는 연습실 이곳저곳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세상에, 벌써 공사가 끝났다니! 이게 바로 한강의 기적인 것입니까? 나는 꼭 한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원래 여기서는 돈 좀 더 쓰면 금방 끝나.”
“아하!”
알기 쉬운 설명에, 메테오가 곧바로 납득한다. 그러고선 다시 연습실을 구경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정명은 메테오가 혼자 구경하라고 내버려둔 채, 소파에 누워 TV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장관이 구속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공항에 나와 있는 리포터…….
-내일의 날씨입니다.
“정명, 잠깐만.”
“응?”
어느새 정명의 뒤로 온 메테오가 TV를 가리켰다.
“방금 전 채널 좀 봐 봐.”
“이거?”
-장관이 비리로 구속되었다는 소식입니다. 한편 청와대에서는 공식 입장을…….
“메테오, 한국 정치에도 관심 있었어?”
“아니, 그거 말고. 에이, 리모콘 줘 봐.”
메테오는 정명에게 리모콘을 뺏어서는 채널을 휙휙 돌렸다.
-보시다시피 공항에 나와 있습니다. 앞으로 30분 뒤. 다음 비행기를 통해 모두의 디바가 도착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도착을 기다리는 기자와 팬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룬 모습입니다. 소속사 측의 공식 입장으로는…….
“저 사람이지, 새로 들어올 팀원이라는 사람이?”
“응. 갑자기 연락이 됐는데, 이 팀에 들어오고 싶대. 아직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건 아니지만, 확정이라고 봐야지.”
하루 전.
정명은 오랜만에 송하니와 연락이 됐다.
하니가 해외에 있어서 통화 음질은 조금 떨어졌지만, 정명은 이 한마디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캐리 머신이 곧 한국에 도착하니 팀에 한 자리 비워 놓으라고 하던데.”
“그거 믿음직스럽군.”
‘실력이야 둘째 치고, 혹시나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한시름 덜었어. 걔가 다른 팀으로 간다거나 이번에도 게이머 생활은 쉰다고 했으면 정말 골치 아플 뻔했으니까.’
메테오는 자료 화면으로 나오는 송하니의 사진을 유심히 보다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정명, 근데 쟤 초등학생 아니야?”
“어, 뭐라고?”
“쟤 초등학생 아니냐고. 아무리 그래도 너무 어려 보이는데?”
메테오는 웃음기 전혀 없이, 진지하게 이상한 소리를 했다.
사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시각 차이인 것인데, 동양인의 눈에도 어리게 보이는 송하니는 서양인인 메테오에게는 완전 어린아이로 보였던 것이다.
“야, 저런 초등학생이 어디 있어? 잘 봐, 가슴도 조금 있잖아.”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라, 그래, 쟤가 분명… 스무 살인가, 스물한 살인가 그쯤일걸?”
메테오는 머쓱해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하니인가 하는 애가 팀에 오는 건, 왜 석진한테는 안 말해 줘? 내가 볼 땐,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기뻐하는 건 석진일 것 같은데.”
“아, 그거?”
정명은 송하니가 팀에 들어올 것이라는 소식을 팀원들에게 귀띔했지만, 단 한 명 차석진에게는 아직 알리지 않았다.
이유는 별것 없고, 그냥 깜짝 등장했을 때 반응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다.
“걔가 아마 송하니의 앨범을 한정판으로 전부 갖고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좋아하긴 하겠네.”
*
며칠 뒤.
정명은 팀원들을 데리고 방송국으로 향했다.
오늘은 한국의 프로 선수들이 해외 리그에서 경기를 펼치는 날인데, 정명이 일일 통역사로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팀원들은 방송국 구경이나 하라고 데려가는, 일종의 덤이었다.
그리고 해설자들은 정명의 팀이 도착하자마자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앗, 안녕하세요. 정명 씨! 이번에는 다른 팀원들도 계시네? Hello!”
한국 리그에서 외국인이 뛰는 게 그리 신기한지, 해설자뿐만 아니라 방송국 직원들의 눈 또한 이곳에 쏠렸다.
금발에 초록색, 파란색 눈동자를 갖고 있는 선수들이 무척이나 신기했던 것이다.
정명은 이 팀원들을 덤으로 생각하고 데려왔는데, 어찌 된 게 오히려 정명이 꿰다 만 보릿자루 신세가 되었다.
그러다가 방송을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허겁지겁 준비를 서둘렀다.
오늘 정명이 해야 할 일을 다시 한 번 들려주던 PD는 막 생각났다는 듯, 송하니에 대해 물었다.
“아, 맞다. 그런데 정명 씨, 송하니에 대해 아는 것 좀 있어요? 조금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또 이 질문인가.’
예전, 정명이 송하니의 팀에서 잠깐 용병으로 뛴 적이 있기에 자주 받는 질문이었다.
물론 아는 것이야 있지만, 아직 하지도 않은 계약에 대해서 멋대로 떠드는 것은 대단한 실례였으므로, 정명은 적당히 모르는 체하기로 했다.
“글쎄요, 저도 잘…….”
“그래요? 뭐, 상관없죠. 오늘은 특별 게스트로 문용철 선수가 있으니.”
“예? 누구요?”
“문용철 선수요. 송하니 동창. 듣기로는 아마추어 시절에 피시방 리그에도 같이 나갔다고 하던데, 뭔가 알고 있는 눈치더라고요.”
“흠, 그래요?”
딱히 신기한 일은 아니었기에, 정명은 그러려니 했다.
정명이 송하니를 알게 된 것도 정명의 피시방이 피시방 리그를 열었을 때 만났던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
오랜만의 한국 방송이 시작되었다.
오늘 해설을 맡은 것은 해설 2명, 캐스터 1명, 그리고 정명과 용철이라는, 송하니와 비슷한 나이 대로 보이는 선수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한국 방송이라 그런가, 괜히 긴장되네. 아는 사람도 없고.’
오늘은 그나마 아는 사람인 이동호 해설도 없다.
해설자는 프리랜서라고 하더니, 해설을 하러 매일 나오는 것은 아닌 듯했다.
정명이 살짝 긴장하여 입을 닫고 있었지만, 정명을 제외하고서라도 4명의 말 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오디오에 공백이 생긴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해설들은 게임을 준비한다거나 하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용철이라는 선수에게 송하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용철 또한 그런 질문이 기꺼운지, 신이 나서 자신과 송하니의 친분을 과시하고는 했다.
정명이 듣기에는 조금 개소리 같은 부분이 많았지만 말이다.
“송하니 걔가 아마추어 때부터 얼마나 잘했냐면, 피시방 리그에 나갔을 때 거기 모인 사람들한테 일대일로 붙자고 해서 몇십 연승을 했다니까요. 정말 신기했죠.”
‘그리고 나한테 졌지.’
“제 생각에는 송하니가 A… 아니면 D모 구단에 갈 것 같아요. 연봉은 최소 20장에서 30장까지 예상하고 있습니다.”
“30장이라는 게… 30억 얘기하시는 거죠?”
“그렇죠. 한국 기업들이 중국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허… 내가 그렇게 돈이 많았던가?’
어이는 없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떤 사람이 유명해지면 그 사람에 대해서 친한 척,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가 끝났다.
그리고 선수 인터뷰와 그에 대한 통역까지 마칠 때쯤, 화제가 정명에게로 넘어왔다.
“수고하셨어요, 정명 씨. 그런데 동시 통역을 되게 매끄럽게 하시네요. 그거 그냥 번역하는 거랑은 차원이 다르게 어렵다고 하던데.”
“고맙습니다. 이런 건 해외 생활이 길어서 꽤 익숙해졌어요.”
“지난번에 했던 통역사도 미국 10년 살았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열 마디를 한 마디로 줄이는 능력이 있다고 엄청 욕먹었죠. 쩝”
그 말에, 다른 해설자가 동의했다.
“그랬지, 그랬어. 아니면 팀에 외국인이 있으니까 연습이 된 걸지도 모르겠네. 아, 그러고 보니 정명 씨 팀에 차석진 선수가 있죠? 그 선수가 용철 선수랑 같은 팀이었었는데.”
“예. 안 그래도 저기 둘이 있네요.”
석진과 용철은 그리 나쁘게 헤어진 것은 아니었는지 무언가를 쑥덕쑥덕 이야기하고 있었다.
“송하니랑 통화? 그건 조금 힘든데… 걔가 전화번호를 하도 자주 바꿔서.”
“뭐야, 친하다며?”
“친해도 소속사에서 가드가 엄청 단단한 걸 어떡하냐? 그 대신 매니저 누나 전화번호는 아니까 기다려 봐. 내가 싸인 받아다 주면 새로 나온 플스7 사 주는 거 알지?”
되지도 않는 소리였지만 석진은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용철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정말로 송하니 매니저라는 사람과 전화 연결을 성공시켰고, 그 모습은 석진의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해 보였다.
전화가 5초 만에 끊어지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바쁘니까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뚜, 뚜…….
누가 봐도 실패.
용철은 핸드폰을 집어넣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 좀 바쁘신가 보네. 나중에… 연락 주신다고 하니까 기다려 보지, 뭐.”
“에휴, 알았다. 나중에 연락 줘라.”
차석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창밖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친구의 호언장담에 기대감이 커졌던 탓이었다.
정명은 그런 석진의 뒤로 다가가 등짝을 탁, 쳤다.
“야, 석진이 인마, 궁상 떨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형이 대신 사인 받아다 줄 테니까.”
정명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진동하고 있는 핸드폰을 꺼냈다.
정명의 핸드폰에서는 방금 전, 용철의 핸드폰에서 들렸던 목소리가 그대로 들리고 있었다.
*
“연락드렸던 매니저, 김민서입니다.”
“유정명입니다.”
모든 일정이 끝난 초저녁.
정명은 송하니의 매니저와 만날 수 있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김민서는 매니저라고 하기에는 입고 있는 옷이나 들고 있는 가방이 전부 명품으로 보였다.
김민서는 정명을 조그마한 카페로 안내했다.
카페 입구에는 오늘은 쉰다고 적혀 있었지만, 문은 전혀 잠겨 있지 않았다.
“송하니가 여기 있나 보죠?”
그 말에 반응하듯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웅웅, 나 여기 있어!”
정명은 목소리를 따라 카페 안쪽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변호사로 보이는 남자를 볼 수 있었고,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하이용! 반가워!”
하니는 반갑게 인사했지만, 정명은 인사 대신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뭐야, 너 아직 학생이야?”
송하니는 학교라도 다녀왔는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정명의 기준으로는 조금 짧은 치마, 그리고 검정색 스타킹.
예전에는 조금 앳된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제법 성숙해진 모습이었다.
‘그래도 아직 애처럼 보이지만.’
정명이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기뻤다.
“응, 나 이제 고3. 아직 팔팔한 고딩이야. 기쁘지?”
“뭔 소리래.”
이상한 농담에 서로 마주 보며 히히 웃었다.
약간 어색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어진다. 하지만 사적인 영역은 여기까지.
공은 공이고, 사는 사.
이제부터는 진지하게 계약에 임해야 한다.
정명은 속해 있는 팀원들, 그리고 현재 팀의 재정 상황 따위의 정보를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런데 송하니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웅웅, 잘 들었어. 그런데 어디다 사인하면 돼?”
“하니야!”
복잡한 계약서는 관심이 없는지, 해맑게 웃으며 자신이 사인할 곳만 찾기 시작한다.
매니저가 허겁지겁 송하니를 말리려는 그때, 정명이 먼저 나섰다.
“야, 네 이름 쓰는 계약서는 앞뒤로 세 번은 읽으란 말 몰라?”
“이잉, 오빠가 알아서 잘했겠지! 설마 날 등쳐 먹는 계약을 하겠어?”
“이게 어디서 귀여운 척, 비음을 섞어? 자. 똑바로 읽어. 너도 이제 어른이잖아.”
정명은 머리 아파서 읽기 싫다며 끙끙대는 송하니의 머리를 우악스럽게 잡고는, 억지로 계약서에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매니저의 눈이 커졌다.
‘이상하다? 슬슬 지랄해야 할 타이밍인데?’
매니저가 볼 때, 송하니라는 사람은 대단한 떼쟁이였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하니가 인내심을 갖고 계약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다. 계약서를 다 읽은 하니는 뿌듯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 읽었어. 그럼 이제 사인한다?”
“잠깐만.”
머리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매니저가 손가락으로 한곳을 짚었다.
“잠깐. 이거 연봉이 너무 적잖아요! 5억 원이라니, 지금 다른 데서 오퍼 들어온 금액만 해도…….”
정명은 연봉이 비교적 낮은 걸 쿨하게 인정했다.
“미안. 내가 그 정도 돈이 없다. 요즘 나름대로 수익이 좋긴 한데, 그래도 대기업하고 경쟁하는 건 무리야.”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뭐.”
“뭐가 괜찮아, 하니야!”
“뭐, 어때. 돈 따질 거면, 중국 구단으로 들어갔지. 자, 그럼 이제 진짜로 사인한다?”
이번에야말로 서명을 하려는데, 한마디도 안 하고 있던 변호사가 서류를 낚아챘다.
“어어? 이리 줘!”
“계약서는 천천히 검토해 보고 드리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요.”
그 말에 송하니의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우씨, 진짜 내 맘대로 되는 거 하나도 없어!”
그 말에 매니저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하니를 바라봤지만, 이내 표정을 풀었다. 매니저는 영원한 을이었다.
정명은 여전한 하니의 모습에 킥킥대고 웃었다.
“그럼 계약 문제는 끝났지? 너 이제 할 거 없으면 우리 팀원들이나 만나러 가자. 소개시켜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