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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49화 (149/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49화-----------------

‘피곤해…….’

잠에서 깼지만 일어나기는 귀찮은, 그런 상태.

정명은 그런 상태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핸드폰을 찾았다.

현대인들은 침대에서 벗어나기 싫을 땐, 누워서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면 된다는 지혜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 84건]

‘이거 답장 다 해 줘야 하는 건가? 귀찮은데.’

문자 메시지는 장문부터 단문까지, 그리고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날아와 있었다.

내용은 ‘축하한다, 나중에 술이나 한잔하자.’ 등 평소에 별로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메시지가 대부분이었기에, 쿨하게 무시했다.

메시지를 대충 확인한 정명은 커뮤니티 사이트로 들어가서 노닥거리기 시작했다.

커뮤니티의 메인에는 대문짝만 하게 이번 리그에 관한 기사가 걸려 있었고, 팬들은 아직 어제의 경기에 대한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아침부터 수많은 글들을 올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프로 게이머 유정명입니다.]

C90 정도야 그냥 바르죠. ㅎㅎ.

너무 쉬우니 연습 좀 더 하고 오셔야 할 듯. 수고.

?님, 사칭 ㄴㄴ

?틀린 말은 아니지. 3 대 떡으로 발랐으니. ㅇㅇ 인정.

‘이놈은 또 뭐야. 난 이런 글 쓴 적 없는데.’

자기가 유정명이라는 놈부터, 10만 명의 서명이 모이면 재경기를 할 수 있으니 서명해 달라는 사람들까지. 커뮤니티에서는 온갖 어그로가 판을 치고 있었다.

‘재미없군. 일어날까, 아니면 더 잘까.’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더 자고 싶었지만, 물을 마시고 싶어서 일어났다.

평소 같았다면 연습 게임 일정이 시작되어 떠들썩했을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상당히 조용했다.

‘아직 다들 자나?’

정명은 거실로 나왔다.

거실로 가니 진한 술 냄새가 정명을 반기고 있었고, 소파에는 에리가 배를 드러낸 채 침을 흘리며 자고 있었다.

어제 우승 기념으로 엄청나게 마셔댄 흔적이었다.

‘처음에 비해 많이 친해진 것 같다니까. 역시 친해지는 데는 술이 최고야. 뭐, 다음 날에 어색할 수는 있지만.’

우승 후, 조촐하게 연 파티에서 정명은 팀원들과 훨씬 친해졌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동고동락한 세월이 있기도 했지만, 리그 우승 보상 또한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모두 내 발밑에 있다.]

리그에서 처음으로 우승했습니다!

이 기념비적인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그 진실은 당신과 당신의 팀원들만이 알고 있습니다.

모든 팀원들은 이번 리그에서 있었던 일을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입니다.

*우승에 걸맞은 보상

-100,0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친하게 지내지 않을래?

-모든 팀원들과의 결속력이 30% 상승합니다.

‘결속력? 한마디로 팀원들과 더욱 친해졌다는 거겠지.’

보상을 받아서인지, 술을 마셔서인지는 몰라도, 정명은 술자리에서 팀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구구절절한 개인사부터 평소에 자주 하던 걱정까지.

그렇게 친목을 다지고 나니, 팀원들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했다.

‘이제 뭐 하지. 한숨 더 잘까?’

탁, 탁!

조용한 연습실 안과는 달리, 밖에서는 간간이 누군가가 공을 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정명은 에리가 걷어차 버린 이불을 다시 덮어 주고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어났네?”

밖으로 나가 보니, 벨라가 혼자 공을 갖고 놀고 있었다. 어제 그렇게 술을 마셨음에도 일찍 일어난 모양이었다.

정명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이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테니스 채를 잡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서브.

공은 무척이나 느린 속도로 날아갔고, 벨라가 받아친 공 또한 무척이나 느린 속도로 날아왔다.

시합을 한다기보다는 캐치볼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서로 조용히 공을 보내기를 잠시.

벨라가 돌연 입을 열었다.

“알지? 나 이번을 끝으로 팀에서 나갈 거야.”

“그러냐. 그동안 수고했다.”

벨라가 폭탄 발언을 했지만, 정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벨라를 한두 시즌만 뛰는 용병으로 영입한다는 것은, 그녀가 팀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끝났던 이야기였으니까.

그리고 벨라는 그 약속대로 본업으로 돌아가기 위해 팀에서 나가겠다는 것이다.

정명은 잠시 말을 고르고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원래는 시드권을 산다는 생각을 못 했어. 어차피 2부 리그에서 시작할 거니까, 대충 사람 하나 때우자는 느낌이었지. 2부 리그면 나 혼자서도 캐리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1부 리그로 갔잖아? 시드권을 사서.”

“맞아. 그래서 조금 걱정했지만, 넌 내 생각보다 훨씬 잘해 주더라. 상당히 놀랐어.”

“그래?”

“그래. 천재다 천재. 게이머로 전업해도 되겠어.”

정명의 칭찬에 벨라가 살짝 웃었다.

탁, 탁.

벨라가 정명이 치기 쉬운 곳으로 공을 던져 줬기에 랠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 정도까진… 사실 난 너에게 업혀간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고.”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 왜, 너 욕 많이 먹었잖아. ‘프로 게임계를 만만히 보는 거냐?’ 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미안하네.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 했어.”

“아, 그거? 신경 쓰지 마. 그런 하등한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이해하겠어?”

“응?”

공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정명은 점점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도 알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두 결과가 좋게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거.”

“어… 뭐, 그렇지.”

“누구는 쉬고, 누구는 연습하나? 아니잖아. 모두 똑같이 연습하는데 승패는 명확히 갈리지. 이유가 뭘까?”

“글쎄, 왜지?”

그와 동시에 벨라의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웃고 있는데도 이상한 느낌을 받은 정명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부족한 거야. 재능이.”

그리고 그 순간, 벨라의 라켓에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정명 같은 아마추어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선수도 감히 받아 낼 엄두가 나지 않는 그런 공을 보낸 것이다.

정명은 데구루루 굴러가는 공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이런 미친, 나를 죽일 셈이냐?”

“걱정 마.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아.”

눈으로는 쫓을 수 있었지만, 몸이 반응하지 못했다.

정명은 순간 힘이 빠져 버려, 테니스 채를 내려놓고 벤치에 앉고 말았다.

‘이런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니, 테니스 쪽 사람들도 참 불쌍하군.’

벨라 또한 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정명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너, 테니스에 대한 재능이 있네. 방금 그거, 내 전력이야. 흔해 빠진 선수들 같으면 눈으로도 못 쫒아. 테니스를 한 적도 없는 네가 내 속도를 따라오다니, 정말 재능이 있어.”

“좋게 봐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벨라는 정명의 대답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10시간, 12시간씩 연습하면 뭐 해? 결과가 있어야지. 얼마나 빡세게 연습했냐? 얼마나 노력했냐? 사실 그딴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안 그래?”

“어…….”

“범재의 시각으로 천재를 이해하려고 하니 안 되지. 쯧. 자기가 못하니, 나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말 같잖지.”

벨라는 마음껏 오만한 마음을 표출하며, 자신을 욕했던 사람들을 비웃기 시작했다.

정명은 벨라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런 말을… 아!’

정명은 바로 어제 받았던 퀘스트 보상을 떠올렸다. 결속력 30% 증가.

즉, 상당히 친해졌기에 이러한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거 테니스 유망주들이 들으면 참 슬퍼할 만한 말인 것 같군. 정상급에 있는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말이야. 지금도 너를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텐데.”

“알 게 뭐람. 그 녀석들은 내가 미끄러지기만을 바라고 있을 텐데.”

“설마.”

“설마는 무슨. 너도 그렇잖아? 이 바닥에서 널 시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레딧에서 이유 없이 널 욕하는 사람들은 어떻고? 천재는 원래 외로운 법이지.”

정명은 그 후로도 벨라와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녀와 꽤 오래 알고 지냈음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처음 알았기에, 물어볼 게 꽤 많았다.

그리고 20분 후.

연습실로 들어가기 전, 벨라가 당부했다.

“그러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방금 했던 얘기. 누구한테도 얘기하지 마. 다른 팀원들에게도.”

“안 한다.”

“좋아, 믿을게. 친구니까.”

벨라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아까처럼 사납지 않은, 순수한 웃음이었다.

‘아, 힘들어. 다시 자야겠어.’

정명은 잠깐 테니스 친 걸로 기가 다 빨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때문에 곧바로 샤워를 하고 자려는데,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해 있는 것이 보였다.

에리에게서 온 문자였다.

-나 물 좀.

거실로 나가니 소파에서 에리가 배를 드러낸 채 자고 있었다. 아까 덮어 줬던 이불은 바닥에 떨어진 채였다.

“에리, 물 가져왔어요.”

아무런 반응이 없기에 몸을 흔들어 봤지만, 에리는 전혀 깨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야, 물 달라며!”

피카쮸 인형으로 얼굴을 퍽 쳤지만 그래도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물병을 옆에 두고 방으로 가려는 순간, 에리가 벌떡 일어났다.

“엉?”

에리는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물병을 발견하고는 입에 대고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고는 인형을 끌어안고 다시 잤다.

정명이 보기엔 참 속 편하게 사는 것 같았다.

‘여기서 제일 속 편한 사람이 이 아줌마 아닐까.’

*

멋지게 우승했으므로, 팀원들의 몸값이 최고조에 올랐다.

정명은 하루에 두 번씩 스폰서 계약 요청을 받고 있었고, 다른 선수들에게도 CF 제안이나 방송 출연 요청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노련한 게이머인 메테오는 첫 공식 일정으로 봉사 활동을 제안했다.

좋은 일을 하는 것과 동시에, 이미지를 좋게 만들 기회라는 것이다.

메테오의 이야기가 솔깃하게 들렸던 정명은 그 제안을 수락했고, 근처 보육원으로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그리고 보육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쓰러졌다.

“애들이 말을 잘 안 들었다고?”

“애들이 다 그렇긴 한데, 조금 힘들긴 했어.”

게임을 가장 많이 하는 연령층인 10대에게 정명은 거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만큼 사람이 몰려 꽤 고생해야만 했다.

애들이 정명의 관심을 얻고자 각종 기행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렇긴 했는데, 거기에 있던 선생님들 말이 애들이 관심 끌려고 못된 짓을 해도 관심 주지 말라고 하더라. 그때 관심을 주면 나쁜 짓이 더 심해진다고. 그게 관심 끄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나 봐. 뭐, 그래서 애들이겠지만.”

정명의 말에, 쿠론이 얼굴을 굳혔다.

“말 안 듣는 아이라. 말을 안 들으면, 음… 엉덩이라도 때려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애들은 그래야 말을 들어.”

정명은 쿠론의 말에 쓰게 웃었다. 저 말을 듣자하니, ‘옛 성격이 또 나오려고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우리 팀에도 말 안 듣는 아이가 있는데. 엉덩이라도 때려 주면 말을 좀 잘 들을까?”

쿠론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려다 자기 얘기임을 깨닫고는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 무슨 개소리야! 아무튼… 그냥 그렇다는 거지. 아, 몰라, 갈래.”

쿠론은 흥흥거리면서 가 버렸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많이 얌전해진 태도였다.

그리고 그 순간,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팀원과의 결속력이 일정 수치까지 올랐습니다.]

[공포의 사령관 스킬이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응?”

[인자한 사령관]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엄마는 항상 바빴고, 나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점점 엄마가 싫어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혼나는 그 순간만이 내가 엄마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와의 유일한 스킨십이 체벌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체벌마저 좋아하게 되었다.

-익명의 게이머 K의 일기 중 발췌.

‘뭐라고 적혀 있는 거지?’

스킬 설명에는 어떠한 말이 길게 적혀 있었으나, 처음 보는 언어였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알 수 있는 말은 그 밑의 효과 뿐.

스킬 설명에는 스킬의 효과는 같은데 공포 수치에 의한 부작용은 줄었다고 적혀 있었다.

정명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메시지창을 닫았다.

‘그럼 이제 어떡한다. 벨라가 빠지게 되었으니, 이제 새 팀원을 구해야 할 텐데.’

다음 시즌을 원활히 진행하려면 지금부터 허겁지겁 바쁘게 사람을 구해야 한다.

다음 시즌까지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호흡을 맞추는 것까지 생각하면 시간이 빠듯하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정명은 이내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결심했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정명에게 쏠렸다. 짐을 싸던 벨라, 과자를 먹던 차석진까지.

순식간에 모든 시선이 모이자 당황한 건 오히려 정명이었다.

“뭘 그렇게 봐?”

“아니, 네가 무슨 대단한 계획이라도 발표할 것 같아서…….”

정명은 큼큼, 헛기침을 하며 목을 풀었다.

“우리가 북미에서 우승했잖아. 그것도 전승 우승이지.”

“그런데?”

“이곳에서는 이제 배울 게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세계 최강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지.”

“그래서?”

“아, 벨라. 말 좀 끊지 말아 봐. 아무튼 그래서… 한국으로 가는 게 어떨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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