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45화-----------------
팀 연습이 모두 끝난 밤 11시, 솔로 랭크를 하기에 딱 좋을 시각.
랭크 게임은 돌리지만, 개인 방송은 하지 않는다.
다른 팀원들에게도 개인 방송 금지령을 내렸다.
리그가 중후반으로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타 팀들은 눈을 벌겋게 뜨고 타 팀의 랭크 게임 정보를 모으고 있을 테니까.
중요한 정보가 새어 나가지 않기를 바랐기에 개인 방송으로 인한 수입을 조금 포기한 것이다.
그리고 차석진은 컨디션이 안 좋은지, 먼저 컴퓨터를 껐다.
“형, 혹시 외모가 예쁘면서도 성격이 착한, 그런 천사 같은 사람은 없는 걸까요?”
차석진이 쿠론을 슬쩍 쳐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도 차석진은 쿠론에게 구박받으며 경기를 해야만 했고, 그래서인지 차석진의 영어 실력은 빠른 속도로 늘고 있었다.
그리고 정명은 차석진과 마찬가지로 쿠론을 슬쩍 쳐다보며 조심스레 답했다.
“있겠지. 모니터 속에는.”
“하… 역시 답은 2D밖에는 없는 건가……. 아무튼 저 먼저 들어갈게요. 힘내세요.”
팀원들이 하나둘 연습실을 나가기 시작한다.
이제 연습실에 남은 것은 정명, 그리고 쿠론.
그리고 정명은 오늘도 쿠론을 옆자리에 앉히고 랭크 게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야,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냐. 긴장 풀어.”
“응? 내가? 아니?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렇지 않다고 하기에는 뭔가 표정과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정명은 아직 아무 짓도 안 했지만, 쿠론은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앞으로 벌어질 일을 깨닫고 벌써부터 위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직은 아직 아무 짓도 안 했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곧 무슨 짓을 할 거라는 말이었으니까.
‘그럼 시작할까.’
[공포의 사령관 스킬을 사용합니다.]
[감히 저항할 수 없는 공포가 팀원들의 마음을 잠식합니다.]
스킬을 사용하는 것과 동시에 방 안의 공기가 급격히 무거워졌다.
그렇게 느낀 것은 정명뿐만이 아니었는지 연습실로 들어오려던 다른 팀원들은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며 연습실 근처에서 후다닥 벗어난 채, 얼씬도 하지 않았다.
‘분명 쿠론은 벨라가 무섭다고 했었지. 확실히 그 말이 맞긴 맞아. 그런데…….’
쿠론은 이렇게 무서운 사람은 처음 봤다며, 동경하는 사람을 보듯 벨라를 쳐다보고는 했다.
그렇다면 공포의 사령관 스킬은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벨라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힘은 벨라가 아니라 벨라 할아버지가 와도 따라 할 수 없는, 인간이 내는 분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였으니까.
솔로 랭크가 시작된 후 연습실에는 정명과 쿠론, 두 명이서 마우스와 키보드를 만지작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침묵만이 돌고 있던 연습실.
여유가 생긴 틈을 타서 쿠론의 플레이를 보고 있던 정명이 입을 열었다.
“야.”
꿀꺽.
옆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쿠론은 마치 교무실에 남아 체벌을 기다리고 있는 학생처럼 떨리는 눈으로 정명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 어?”
“오른쪽 부시에 정글러 있을 것 같은데? 왼쪽 부시로 붙어서 무빙해 봐.”
“어… 응.”
그와 동시에 나오는 한숨 소리.
이쯤 되니, 오히려 정명 쪽에서 말을 하기 조심스러워졌다.
이런 태도는 전에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괜찮겠지……?’
사실 괜찮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네오폴드와의 경기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니까.
정명은 내심 경기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이렇게 말을 잘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정명은 쿠론의 상태창을 살폈다.
[게이머 쿠론의 공포 수치: 20%]
공포 수치.
스킬 설명을 보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하기에 당연히 적당히 조절할 생각이었지만, 어디까지가 적당한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만약 해리 같은 녀석이 팀에 있다면 기꺼이 실험체로 써 줄 마음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녀석과는 팀을 짤 생각이 전혀 없다.
‘이런, 딴생각을 너무 했네. 다시 게임에 집중해야지.’
정명이 고른 캐릭터는 보안관.
원딜러 포지션의 캐릭터였고, 서포터는 쿠론이었다.
쿠론은 삼거리 부시에 와드를 박고 있었고, 정명은 뜬금없이 소리를 빽 질렀다.
“으이구 이 멍청아! 와드 좀 똑바로 박으라니까! 살짝 삐져나왔잖아!”
“제대로 박았는데…….”
“나도 알아. 그냥 해 본 소리야.”
명백하게 쓸데없는 트집.
하지만 쿠론은 평소처럼 멱살이라도 잡을 듯 눈을 부라리는 대신, 입꼬리를 희미하게 올리고 있었다.
정명은 나름대로 쿠론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정명이 처음 스킬을 사용했을 당시, 쿠론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하루 종일 정명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차석진이 ‘혹시 쿠론하고 사귀세요?’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리고 그 후, 쿠론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처럼 초보적인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컨디션이 안 좋은가보다 하고 넘겼지만, 실수가 반복되자 짜증이 절로 나왔고, 정명이 화를 낼수록 실수는 더 잦아졌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정명이 아예 포기하고 내버려둔 순간, 실수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흠,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아니,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 같기도……. 차라리 이제는 잘할 때마다 구박을 해 볼까?’
잠시 후, 몇 판의 랭크 게임이 끝이 났다.
이제 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정명은 개인 연습을 끝내기로 했다.
“수고했다. 이제 당분간 솔로 랭크는 하지 말자.”
이제 쿠론을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게 되기도 했고, 솔로 랭크를 할 시간이 없기도 했기 때문에, 겸사겸사 당분간 솔로 랭크는 그만두기로 했다.
그 선언에 정명은 쿠론이 좋아할 줄 알았건만, 쿠론은 아쉬움 섞인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다는 듯, 정명을 쳐다봤다.
“너… 대체 누구야?”
“응?”
“혹시 동양의 무협 고수라든가 그런 사람이야? 아니 이건 대체… 믿을 수 없어…….”
뭐가 믿을 수 없다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심각한 쿠론의 표정에 정명은 피식 웃어 버렸다.
“누구냐니, 너한테 월급 주는 사람 아니냐. 그건 그렇고 이제 팀원들이랑 잘 좀 지내 봐. 석진이도 그만 괴롭히고.”
그러자 쿠론은 동양 사람들이 인사하듯,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 아니, 알겠어. 노력해 볼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명의 시야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팀 결속력이 A랭크로 상승했습니다!]
*
이틀 뒤.
드디어 네오폴드와의 경기 날이 다가왔다.
준비는 많이 했지만,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은 들지 않는 상황.
정명은 차를 타고 오며, 밴픽을 어떻게 할지 끊임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차가 멈췄고 메테오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드르륵 당겼다.
“다 왔어요, 정명. 그런데 우리도 코치나 매니저 같은 거 좀 뽑읍시다. 운전을 직접 해야 한다니, 이건 좀…….”
“네. 안 그래도 적당한 사람을 찾는 중이에요. 원래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운전 때문에라도 한 명 구해야 할 것 같아요.”
선수들이 하나둘 차에서 내리고, 팀원들은 언제나처럼 선수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정명은 복도에 있는 자판기를 찾아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자판기에 다가간 순간,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팀을 떠나고 어디로 갔나 했더니. 별 듣도 보도 못 한 팀으로 들어갔네. 와, 미어스 쿠론이 저런 이름도 없는 팀에 들어갈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그래서 어쩌라고? 꺼져, 역겨워.”
“와, 섭섭하다. 그게 전 팀의 리더한테 할 말이야?”
말다툼을 하고 있는 것은 쿠론과 해리였다.
정명은 쿠론과 해리가 같은 팀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너, 우리 팀으로 다시 오는 게 어때? 듣자하니 연봉도 우리 팀에 있을 때보다 훨씬 적다며? 돌아오면 지금보다 연봉이 두 배… 아니, 세 배는 올라갈 수 있을걸?”
해리는 그렇게 말하며 손목에 감춰져 있던 시계를 은근슬쩍 드러냈다.
그 시계는 시계에 관심이 없는 정명도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을 정도의 명품 시계였다.
‘뭐랄까… 대단히 추접스럽군. 차석진도 저 정도는 아닐 텐데. 저 녀석, 분명히 여자한테 인기 없을 거야.’
정명은 쿠론과 별로 친하지 않았을 당시, 이런 성깔 더러운 녀석을 누가 데려가나 싶었다. 그만큼 사람 성질 긁어 놓는 데는 재능이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해리가 추근거리는 이유는 모태 솔로인 차석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다.
“이게 진짜… 안 꺼져?”
그리고 쿠론이 주먹을 움켜쥔 순간, 정명이 앞으로 나섰다.
“해리, 술 마셨냐? 주접 그만 떨고 가라. 추하다.”
“뭐야, 당신…….”
갑작스러운 정명의 등장에 해리는 놀라는 듯했지만, 이내 씩 웃었다. 마침 잘 왔다는 태도였다.
“당신 그 녀석에 대해 전혀 모르죠? 그 녀석, 엄청 꼴통이라고요.”
“무슨 소리냐. 이렇게 착한 애가 또 어디 있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하지 마시고요. 그 녀석이 들어간 팀은 좋든 싫든 안 좋은 일을 많이 겪었단 말입니다.”
해리는 그렇게 말하며 정명이 중국으로 가 있는 동안, 쿠론이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쿠론은 높은 연봉을 받으며 프로 리그에 데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팀원들과 자주 싸우기 시작했고, 결국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쫓겨났다.
그리고 두 번째로 들어간 팀은 쿠론을 둘러싸고 남자 선수들끼리 싸우는 탓에 팀이 무너졌다고.
그 다음의 세 번째 팀은 성적이 안 좋아서 6개월 만에 방출당했고, 그 다음에 들어간 팀이 네오폴드였단다.
“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네오폴드에서는 상호 합의하에 계약 해지 3개월 만이었죠. 거기에서는 얼마나 버틸까요? 슬슬 팀에서 쫓겨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해리의 설명을 들은 정명은 어째서 쿠론이 자신의 팀에 이력서를 넣었는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쯤 했으면 업계에 소문 다 퍼졌겠군. 연봉도 확 깎였을 거고. 갈 데도 별로 없었겠어.’
쿠론은 다른 사람들도 많이 다니는 복도에서 그런 소리를 하자, 수치심을 느끼는 듯했다.
얼굴이 붉어진 쿠론이 소리를 빽 지르기 직전, 정명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런 꼴통이지만 네 팀에 들어가면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고?”
“당연하죠. 네오폴드를 하나로 묶은 제 리더십이라면 분명…….”
그리고 그 순간, 정명은 해리에게 보란 듯이 쿠론의 금발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뭐…….”
“꼴통은 무슨. 말 잘 듣는 착한 앤데? 네 리더십이 딸리나 보지.”
미국인들은 스킨십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한두 살 먹은 애들도 아니고, 머리를 쓰다듬는 건 더더욱.
평소 같았으면 손이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짜증을 부렸을 쿠론이지만, 이번만큼은 무척이나 얌전했다.
“네가 지금 여자 꼬실 시간이 있어? 도돈파랑 OMA 감독 대신 복수하느라 바쁜 것 아니었나?”
“…….”
정명이 한 번 더 도발했지만, 해리는 굳게 입을 다문 채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정명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몸을 돌렸다.
“저기…….”
“됐어. 저런 녀석 신경 쓰지 말고 우리는 경기나 준비하러 가자고.”
경기가 시작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음에도, 경기장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는 기대와 걸맞게 팬들의 기대가 대단했던 것이다.
정명은 그런 팬들에게 잠깐 손을 흔들어 주고는, 네오폴드 선수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해리가 길들인 네 명의 팀원들이라……. 근데 영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데.’
정명은 네오폴드 선수들의 눈빛이 죽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게이머 밀리엄의 공포 수치: 50%]
-폭력에 길들여진 상태입니다.
-정신력 20 감소
-집중력 7% 감소
-팀워크 대폭 증가
‘흠, 리더십이라기보다는 훈련을 잘 시켜 놓은 것 같군. 자기 말에 잘 따르도록 말이야.’
정명은 해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평소보다 격앙된 표정으로 팀원들에게 짜증을 부리고 있었다.
‘네오폴드라. 북미 최고의 운영을 보여 준다는 저 팀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쿠론이 팀과 어울리기 시작함으로써, 팀워크가 분명히 나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저 군대 같은 생활을 하는 네오폴드와 비교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상황.
때문에 이번 경기에서 정명은 어설프게 운영을 따라가는 대신, 팀원들의 장점을 살리기로 했다.
일명 중국 스타일이었다.
정명은 오더 스탯을 90으로 만들고 얻을 수 있었던 스킬을 바라봤다.
[운영 전략 No. 33 개싸움]
운영 능력이 부족하지만 피지컬이 뛰어난 팀, 로얄 패밀리아가 개발한 운영법 중 하나.
그들은 이 공격적인 운영법으로 한국 팀에 맞서고자 했으나, 한국 팀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파훼법을 발견해 버렸다.
‘내가 괜히 서포터로 가라고 한 게 아니건만, 미드 라인으로 올라온 걸 후회하게 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