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44화-----------------
쿠론은 차석진을 구박하면서 솔로 랭크를 돌리고 있었다.
정명은 쿠론이 네오폴드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리원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쿠론의 뒤로 다가갔다.
“쿠론, 너 네오폴드에 있었다며? 뭐 좀 물어봐도 되냐?”
“뭔데? 근데 나 거기에는 얼마 안 있었어. 한 3개월쯤 있었나?”
북미의 구단들은 선수와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는 한다.
1년 계약이란 것은 다른 스포츠보다 훨씬 짧은 기간이었는데, 사실 한국에서는 이보다 더 짧은 6개월 계약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그런데 쿠론이 네오폴드에 있었던 것은 그 6개월보다도 더 짧은 3개월. 3개월이면 딱 한 시즌이었다.
따라서 정명은 쿠론이 팀에서 중간에 나왔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내가 어제 이상한 걸 봤거든. 네오폴드의 해리가 다른 팀원들을 때리고 있었는데… 하하, 난 처음에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는데 말이지…….”
“아하, 그거? 네가 제대로 본 게 맞아. 그거 때문에 나도 팀에서 나왔으니까.”
“뭐? 너도 맞았다고?”
“미쳤냐, 그런 양아치한테 맞고만 있게? 해리 그 새끼가 몸에 그림 그리고 온 뒤로 센 척을 그렇게 해대는데, 거기서 한판 붙었지 뭐. 아마 너라도 못 참았을걸?”
네오폴드 특유의 한국 군대식 군기 잡기.
당연히 그런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운영을 아무나 견딜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인이라면 그냥 ‘군대에 한 번 더 왔구나. 더러워도 돈 벌려면 참아야지.’ 하고 버티겠지만, 미국인, 특히 쿠론 같이 한 성깔 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나를 포함해서 그것 때문에 팀을 나간 사람이 꽤 된다. 그리고 그 후임으로 어디서 주워 오는 건지 차석진 같은 애들을 자꾸 팀으로 부르더라. 그 뭐야, 딱 봐도 호구같이 생긴 애들 있잖아.”
“응? 나?”
해리는 그렇게 네 명의 부하들을 포함한 자신만의 구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조금 폭력적인 리더십이 동반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이 말을 충실히 따르는 선수를 길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후, 네오폴드는 북미 제일의 팀워크를 자랑하며 순식간에 북미 1위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북미에서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완벽한 팀워크를 보여 주며.
“아무튼 걔가 좀 양아치야. 원래 그런 놈이었는지, 애들을 때리면 성적이 오른다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말에 정명은 웃으며 말했다.
“응? 굳이 따지자면 너도 양아치 아니냐? 아차, 내 속마음이 또…….”
정명의 농담에 쿠론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한쪽 손을 들었다. 쿠론의 왼쪽 손에는 중지가 곧게 펴져 있었다.
“그래, 그럼 볼일 봐라. 석진이 그만 좀 괴롭히고.”
“잠깐만.”
쿠론은 뒤돌아서 가려는 정명을 불러 세웠다.
그런데 쿠론은 평소 성격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끌었다.
“왜, 빨리 말해. 나 바빠.”
쿠론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정명과 눈을 마주쳤다.
“…지난번에 있잖아, 해리랑 벨라 언니랑 조금 싸웠었지?”
“어, 그랬지. 근데 왜?”
“해리 그 녀석, 또 불러올 수 없나?”
대판 싸웠던 해리를 또 불러와라? 뜬금없는 소리에 정명은 무척 황당해했다.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너도 그놈 싫다며?”
“…….”
쿠론은 들릴 듯 말 듯,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 다시 몸을 돌려 랭크 게임에 집중했다.
“차석진, 이 멍청아. 좀 끌어! 나 혼자 라인전 하냐?”
쿠론은 차석진에게 쓸데없는 트집을 잡으며 다시 경기에 몰입했다.
하지만 쿠론의 혼잣말을 들은 정명은 5초 동안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그 녀석이 오면 벨라 언니가 또 화내 줄 것 같으니까… 라고?’
쿠론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정명은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린 쿠론의 혼잣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들었다기보다는 입모양을 읽고 뜻을 알아챈 것이지만.
‘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 없군.’
정명은 쿠론과 꽤 오래 알고 지냈지만,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랐다.
알고 지냈던 기간이 긴 것이지, 그다지 친하게 지낸 선수는 아니었으니까. 사실 다른 선수도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질 못했다.
*
“오늘 연습 상대가 C90이라고요? 그 엄청 잘하는 애들?”
“네, 그 C90요. 이 녀석들이 비록 네오폴드에게는 졌지만, 우리에게는 분명 좋은 연습 상대가 되어 줄 겁니다.”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팀 연습이 시작되었다.
오늘의 연습 상대는 C90.
네오폴드를 운영으로 이겨 보겠다며 호언장담했지만, 결국은 져 버린 팀.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뜻은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정명은 꽤 어렵게 이번 연습 경기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다들 알지? C90은 131 전략을 쓸 확률이 높으니까, 일단은 그것만 조심하자고.”
“네, 그래요.”
“응.”
그로부터 10분 뒤.
C90과의 연습 경기는 C90과 네오폴드의 경기가 아닌, C90과 TBM의 연습 경기처럼 진행되기 시작했다.
‘일단 미드 라인은 내가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안 나온 상황……. TBM때랑 똑같군.’
별다른 상황 없이 서서히 라인전이 끝나 가고 있었다.
타워가 하나둘 철거되었고, 선수들은 뭉쳐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C90 선수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 순간, 정명은 메시지창이 조그맣게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게이머 말콤이 운영법, 131 스플릿 푸시를 사용합니다.]
‘드디어 왔군.’
C90이 운영하는 것을 옆에서 보거나 다른 팀에게 몇 번 당해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스플릿 푸시를 직접 맛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대응책도 미리 말을 맞춰 둔 상황.
하지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미리 준비했음에도 팀원들은 마치 TBM 선수들처럼 상당히 휘둘리고 있었다.
“으아, 일단 탑에 가야겠는데? 저러다 억제기 깨지겠어!”
“내가 갈까? 그런데 내가 저쪽 탑라이너랑 일대일 붙으면 분명 질 텐데… 어쩌지?”
C90의 경기를 보며 분석을 끝냈음에도, 팀원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이미지 트레이닝과 실전은 그 차이가 무척 컸던 것이다.
‘젠장, TBM이 당하는 걸 볼 때는 저런 거에 왜 휘둘리는지 궁금했는데 막상 당해 보니 진짜 어렵다. 왜 팀워크 타령을 했는지 알 것 같아.’
한타로 붙으면 싸워 볼 만할 것 같은데, 당연하게도 상대측에서 싸워 주지 않는다. 몇 번 당해 봤던 131 구도였지만 C90이 사용하니 그 수준이 달랐다.
결국 첫 경기는 정명 팀의 처참한 패배. 리그 경기가 아닌, 연습 경기라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이래서야 다음 경기도 장담 못 할 것 같은데…….’
첫 경기가 끝났지만 연습 경기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두 번째 경기도, 세 번째 경기도 모두 C90의 승리.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경기에서 정명은 겨우겨우 승리를 얻어 낼 수 있었지만, 말 그대로 겨우겨우 얻어 낸 승리였다.
‘역시 말콤의 말대로 팀워크가 조금 부족한가?’
연습 경기가 끝났지만 다른 팀원들은 쉬지도 못한 채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싶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명은 꽤 자신만만했다. 그야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정명은 방금 떴던 메시지 로그를 다시 한 번 띄웠다.
[연습 경기에서 승리하여 1,1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좋아, 지금까지 모은 포인트는 딱 10만 500포인트. 이거면 오더를 90으로 올릴 수 있다.’
오더를 올린다면 팀의 고질병인 팀워크 문제도 조금은 해결이 되리라.
정명은 그렇게 생각하며 오더 스탯을 90으로 올렸다.
[오더 스탯을 1 구입하시겠습니까?]
[소모 포인트: 100,000]
[구입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더 스탯이 90이 된 순간, 그것을 축하하기라도 하듯, 스킬이 하나 딸려 나왔다.
[오더 스탯이 90이 되었습니다!]
[보상으로 B등급 스킬 1개를 획득했습니다.]
“어… 좋네! 진작 이런 것 좀 퍼 주지!”
생각지도 못하던 선물을 받아 희희낙락하기도 잠시.
스킬에 대한 설명을 정독한 정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스킬 사용 제한: 팀 결속력 A 이상]
-현재 팀의 결속력: B+
‘이런, 젠장! 뭐?’
*
팀의 결속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명은 고민할 필요 없이, 결속력을 높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쿠론하고 친해지면 결속력이 금방 오를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이미 많이 친해졌으니 더 뭘 해 봤자 오르는 수치가 미미할 테지만, 쿠론은 팀에서 겉돈다는 느낌이 조금 있으니까.’
잠깐 생각하던 정명은 팀 내에서 쿠론과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벨라였다는 것을 떠올렸다.
쿠론은 벨라를 언니언니하며 잘 따르고 있었으므로, 쿠론과 어떻게 친하게 지낼지 벨라에게 조언을 구해 보면 답이 나올 것 같기도 했다.
‘시간 끌 것 없지. 바로 갈까.’
그런데 정명이 조언을 듣기 위해 벨라를 찾아간 순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쿠론, 내가 내 물건 허락 없이 만지는 것, 엄청 싫어하는 거 알잖아?”
“죄송합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정말 실망이다. 난 우리가 좀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생각을 다시 해 봐도 될 것 같지?”
어째서인지 쿠론은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벨라에게까지 혼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쿠론이 뭐 또 사고쳤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정명은 그 순간 쿠론이 했던 혼잣말을 기억해 냈다.
‘저런, 미친.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싶다더니. 그 말, 진짜였어? 해리를 다시 부를 수는 없으니까 결국 본인이 나선 거야?’
정명은 꽤나 놀랐다.
쿠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이 아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벨라에게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정명 앞에서 꼿꼿이 목을 세우던 해리마저 도망가게 만든 사람이 바로 벨라다.
그녀는 평소에는 조용히 있지만 아주 가끔 화를 내고는 하는데, 그때마다 정명은 벨라가 기세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의심하고는 했다.
‘저 대마왕에게 시비를 걸다니, 간도 참 크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다음 날.
벨라에게 혼났던 쿠론이 다시 연습실에 등장했다.
쿠론이 풀 죽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정명의 예상과는 달리, 하루 만에 잘 회복했는지 의외로 그녀의 표정은 꽤 좋아 보였다.
‘흠, 혹시 이 녀석, 꾸중 듣는 걸 좋아한다거나 그런 애였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결론밖에는 도출해 내지 못했다.
정명은 혹시나 하여 어제의 벨라처럼 쿠론을 나무라기 시작했지만, 돌아온 것은 욕설과 차가운 시선이었다.
“뭐야, 시비 거냐?”
‘역시 안 되나.’
그동안 게이머 활동을 하는 쿠론에게 야단을 치거나 설교를 한 사람이 없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쿠론이 말을 잘 들었다는 말은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했고, 또 생각해 보니 쿠론에게서 ‘죄송합니다.’ 소리를 나오게 만든 건 정명이 알기론 벨라가 처음이었다.
“야, 사람 너무 차별하는 거 아니냐? 그래도 내가 이 팀의 리던데. 벨라가 말했으면 수긍했을 거면서.”
“벨라 언니는… 대단한 사람이잖아. 무섭고.”
“무섭다고?”
“어.”
쿠론은 짧게 대답하며 주변을 슥슥 둘러보았다.
벨라는 방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것을 확인한 뒤에야 쿠론은 입을 열었다.
“진짜 무섭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사람 중 제일 무서운 사람이야.”
“아니, 뭐 그 정도까지는…….”
“너한텐 화를 안 내니까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난 알아. 그녀만 한 사람은 세상에 몇 없다는 거.”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벨라가 무서운 거랑 네가 벨라를 잘 따르는 거랑 그게 무슨 상관이라는 거야?”
일부러 혼날 만한 짓을 하는 건 또 뭐고.
그 말은 목구멍으로 삼켰다. 정명이란 사람은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쿠론은 자신의 이야기는 다 했다는 듯 몸을 돌려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정명은 멀뚱멀뚱 쿠론이 한 이야기를 되짚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벨라처럼 무서운 사람이 좋다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비슷하게 취향을 맞춰 줄 수는 있다.
정명은 예전에 얻은 스킬 중 이제는 아예 쓰지 않고 있던 스킬 하나를 찾기 시작했다.
‘아, 여기 있네. 공포의 사령관.’
[공포의 사령관]
팀원의 정신을 제압하여, 온전히 경기에만 집중하도록 정신을 몰아세웁니다.
효과: 사용 시, 팀원들의 집중력이 항상 100%로 유지됩니다.
*주의하십시오. 이 스킬을 장기간 사용하면 팀원들이 사용자에게 공포를 느껴, 팀원들과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제 거의 쓸 일이 없기에 기억 속에서 잊혀 가던 스킬이었다.
몇 번, 패닉에 빠진 선수에게 쓰기는 했었는데 그런 경우가 흔한 것도 아니고, 집중해야 할 중요한 경기에서 집중력이 묶여 버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니까.
스킬이 아직 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정명은 멀리 사라져 가는 쿠론을 불러 세웠다.
“쿠론, 연습 시작하기 전에 솔로 랭크 한번 하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