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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43화 (143/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43화-----------------

2~3년 전, 자신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았던 꼬마가 이제는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왔다.

평소 정명의 성격이라면 반가운 마음에 대견하다며 술이라도 한잔 사 주었을 것이다. 물론 좋은 모습으로 만났을 때의 이야기지만.

그리고 이번 만남은 좋기는커녕 최악의 재회였다.

“도돈파는 경쟁자이면서도 저의 친구였습니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항상 노력했고, 이제 그 결실을 맺기 직전이었죠. 그런데 당신이 그 열매를 모두 엎어 버린 겁니다.”

정명은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 일단은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담배를 모두 태운 해리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비 더 꺼내며 말을 이었다.

“거기다 OMA의 디클레어 감독님도 무척 좋은 사람이고요. 듣자 하니 감독이 쓸모없다고 말하셨다면서요.”

“그랬지. 그런데 쓸모없는 거 맞잖냐.”

감독이라는 시스템이 북미에서는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다는 정명의 발언은 제법 큰 파장을 일으켰다.

감독이 별로 하는 게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는 이미 종종 나오고 있긴 했지만,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과 정명이 말하는 것은 그 영향력이 달랐으니까.

괜한 욕을 먹을까 봐 쉬쉬하던 일이 이제는 공론화가 되어 그에 관한 토론이 활발히 진행되는 기폭제가 되었던 것이다.

덕분에 다른 팀을 따라서 감독 제도를 도입하려던 팀들은 줄줄이 계획을 취소했고, 심지어 멀쩡히 잘 있던 OMA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그리고 그 후, 디클레어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 팀 단합 대회 따위의 안 하던 일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그러한 일이 더욱 안 좋은 평가를 만들어 내는 악순환에 빠지고 있었다.

해리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정명은 피식 웃었다.

“고작 그 말을 하러 온 거냐? 괘씸한 녀석, 내가 도와줬던 건 기억도 안 나는 모양이구만?”

“도움이라… 사실 당신의 조언은 별로 도움이 안 됐습니다. 나에겐 서포터가 어울릴 거라고요? 아뇨, 답답해서 못 해요. 그냥 묻어 가는 라인이잖습니까, 그거.”

이것은 논쟁이라기보다는 감정만 소모하는 그런 말다툼이었다.

그리고 그런 말다툼은 정명의 뒤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뭐야, 저 등신은?”

갑자기 들리는 욕설에, 해리와 정명의 시선이 연습실 입구로 향했다.

정명은 처음엔 쿠론이라도 나왔나 생각했지만, 고개를 돌려 보니 벨라가 눈에서 안광이 뿜어져 나올 듯, 해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넌 뭔데 정명이 괴롭히고 있어? 죽을래?”

“당신은… 뭡니까?”

흉흉한 기세의 벨라가 등장하자, 해리가 살짝 움찔했다.

정명이 보기에도 벨라는 당장이라도 해리를 한 대 칠 것처럼 보였다.

‘힘 센 것도 그렇고, 화났을 때 분위기도 그렇고, 이 녀석, 옛날 같았으면 분명 장군감이었다. 싸움 잘할 것 같다니까, 정말.’

진짜 강해 보이는 사람이 나오니, 해리는 우물쭈물하다가 담배꽁초를 휙 던져 버리고는 뒤돌아서 가 버렸다.

조금은 허무한 마무리였다.

“쯧쯧, 등신, 저거. 하여튼 몸에 그림 좀 그리면 지가 뭐라도 된 것같이 구는 애들이 꼭 있다니까.”

“고마워.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네.”

“저런 녀석, 뭐 하러 말 상대를 해 주고 있어. 변호사 비용은 내가 댈 테니까 다음부터는 그냥 갈겨 버려.”

그 후, 정명은 오늘 연습은 쉬자고 한 뒤, 자신의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지금처럼 복잡한 마음이 들 때는 담배라도 피우면 좋겠지만 정명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달달한 탄산음료나 조금 들이켰다.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마지막에는 무척이나 좋게 헤어졌지. 그런데…….’

해리. 성이 뭐였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때 상당히 좋게 헤어졌던 것은 대충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 저렇게 된 것일까?

정명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 네오폴드에 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

“이대로 경기장에 들어가면… 집니다. 분명.”

전 시즌 3위 팀, C90의 연습실.

C90의 탑라이너, 말콤은 정명에게 무척이나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당장 정명이 네오폴드와 경기를 펼친다면, 정명은 높은 확률로 네오폴드에게 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말콤, 네오폴드가 섬머 리그에서 우승한 팀이라는 것은 물론 압니다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죠. 저도 실력 많이 늘었거든요?”

“하하, 당연히 알죠. 요즘 당신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의 팀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죠. 그게 뭘까요?”

말콤의 깜짝 퀴즈에 정명은 순간 고민했다. 부족한 것이 하도 많아서 무엇을 말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명이 답변을 망설이자, 말콤이 웃으며 답을 내놓았다.

“팀워크, 팀워크가 부족해요.”

“팀 운영이라면…….”

“아뇨, 그게 아니라 팀워크요. 정명 당신의 팀은 경기를 운영으로 해 나간다기보다는 특출 난 개인기로 찍어 누른다는 느낌이라.”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이었다.

팀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됐다는 이유도 있지만, 팀 구성원 자체가 조금 불안했으니까.

특히 쿠론은 아직도 서포터인 차서진과 말도 잘 섞지 않았다.

“반면에 네오폴드는 팀워크가 굉장히 뛰어난 팀이죠. 그렇기에 현 북미 리그에서 그들을 잡을 수 있는 팀이 몇 없다고들 말하는 겁니다.”

“말하시는 걸 보면, 말콤, 당신이라면 네오폴드를 이길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그렇게 들리셨나요? 흐흐, 사실 맞습니다. 네오폴드를 이겨 보려고 팀 전체가 그들을 꽤 열심히 분석했거든요. 자신 있어요.”

말콤은 그렇게 말하며 정명에게 C90의 연습 경기를 잠깐 보고 가라고 제안했다.

당연히 이런 제안을 아무에게나 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제안은커녕 이제 연습을 해야 하니 나가라고 했겠지만, 말콤은 정명에게 지금까지의 연습 성과를 자랑하고 싶었기에 이런 제안을 했던 것이었다.

“원래는 안 되는 건데, 정명 씨니까 특별히 참관 허용하는 거예요. 아시죠?”

“물론 알죠. 그럼 조금만 보고 나갈게요.”

잠시 후, C90의 연습 경기가 시작되었다.

연습 경기 상대는 TBM. TBM은 피지컬 90의 괴물 미드라이너, 트레브가 있는 팀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의식했는지 C90의 미드라이너는 상당히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있었다.

“무척 사리시네요?”

“예. TBM의 트레브는 피지컬이 무척 좋으니까요. 라인전에서 이득 볼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피지컬 90이라도 프로가 작정하고 버티기에 돌입하면 솔로 킬 각은 잡기 힘들다.

물론 트레브가 CS 이득은 좀 봤지만 킬은 내지 못한 채, 라인전은 꽤나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C90이 의도한 대로.

타워가 하나둘, 철거되며 한타 페이즈로 돌입할 무렵.

드디어 네오폴드를 물리칠 C90의 비장의 무기가 등장했다.

[게이머 말콤이 운영법, 1-3-1 스플릿 푸시를 사용합니다.]

‘응?’

131 스플릿.

탑과 바텀에 2명의 스플릿 푸셔가 있고, 나머지 3명은 미드에서 농성하는 게임의 전략 중 하나.

다만 솔로 랭크와 같이 아무 데서나 쓸 수는 없고, 팀 중에서도 팀워크가 무척이나 잘 맞아야 쓸 수 있는 전략 중 하나였다.

‘TBM, 엄청나게 휘둘리네. 오더가 신통치 않은가? 아니면 131 스플릿을 당해 본 경험이 별로 없나?’

TBM은 라인전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이득을 키워 가려 했지만, C90에서 131 스플릿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그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C90이 조금씩 차이를 따라잡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노련한 스플릿 운영에 트레브는 그 자랑스러워하던 피지컬을 제대로 활용도 하지 못한 채, 게임을 내주고 말았다.

[승리!]

마침내 화면에 승리 표시가 커다랗게 떴다.

그리고 말콤은 의기양양하게 정명을 돌아보았다.

“보셨죠? 네오폴드를 처음으로 잡는 팀이자 이번 윈터 리그 우승 팀은 우리가 될 겁니다.”

‘확실히 굉장히 까다롭게 운영하긴 하네. 팀워크와 운영이라…….’

이제 볼 건 다 봤다.

첫 경기를 참관한 정명은 곧바로 연습실로 돌아왔고, 연습실에서는 마침 쿠론이 차석진에게 구박을 하고 있었다.

“아오, 이 멍청아! 똑바로 안 할래? 와드 이상한 데 박았잖아!”

“미안…….”

정명은 연습실에 돌아오자마자 한숨을 푹 내뱉었다.

‘팀워크와 운영이라. 확실히 우리 팀에게 부족하긴 한 것 같군.’

*

며칠 뒤, 경기장.

정명은 C90과 네오폴드의 경기를 보기 위해 직접 경기장을 찾았다.

팀원들에게는 ‘방송으로는 알 수 없는 게 있죠. 직접 현장의 분위기를 알아보고 싶습니다.’ 따위의 말을 했지만, 사실 방송으로 보면 시스템 메시지가 뜨지 않기에 직접 참관하러 경기장에 온 것이었다.

그리고 정명은 조금 늦게 경기장에 도착했고, C90과 네오폴드의 경기는 이미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게이머 말콤이 운영법, 1-3-1 스플릿 푸시를 사용합니다.]

‘드디어… 연습실에서 봤던 그것이로군.’

드디어 본격적인 운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3-1 스플릿의 결과는 TBM의 연습 경기와 판박이처럼 보였다. 네오폴드는 TBM처럼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오폴드가 평소답지 않게 허둥지둥하고 있네요.

-정말 그렇습니다. 노련한 운영에 끌려 다니고 있어요. 한타를 걸 거면 확 걸든가, 스플릿을 막으려면 막든가. 이도저도 안 되고 있거든요, 지금?

‘잘하면 C90이 사고 한 번 치겠는데? 1-3-1 스플릿을 정말 잘 갈고닦았어.’

사실 1-3-1 스플릿이라는 전략이 이번에 처음 나온 전략은 아니다.

하지만 C90은 정명의 시스템 메시지에 뜰 정도로 그 전략을 상당히 잘 갈고닦았고, 이대로라면 C90의 승리로 경기가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메시지가 하나 더 떴다.

[게이머 해리가 스킬, 냉혹한 지휘를 사용합니다.]

‘뭐, 냉혹한 지휘?’

게임을 살펴보던 정명은 화들짝 놀라 곧바로 메시지 로그를 열었다.

[냉혹한 지휘]

* 결속력 대폭 증가

* 집중력 20%상승

* 지속 시간 30분

* 팀원들의 공포 수치가 60 이상이어야 사용 가능합니다.

‘이건 가혹한 지휘 스킬이랑 무척 비슷한데?’

가혹한 지휘.

정명이 북미에 처음 왔을 시절 자주 애용했던 스킬이자, 이제는 그 효율이 떨어진다 생각하여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는 그 스킬.

그리고 냉혹한 지휘 스킬은 가혹한 지휘 스킬의 완벽한 상위 호환 스킬이었다.

‘지속 시간이 30분이나 되다니. 이거 완전 사기 아니야?’

그 후, 정명은 네오폴드라는 팀이 운영으로 유명해졌다는 게 어떤 뜻이었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네오폴드는 언제 스플릿 푸시에 휘둘렸냐는 듯, 차근차근 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는 오더에 혼선이 없는 것 같네요. 이제야 북미 제일의 운영과 팀워크를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네오폴드의 팀워크가 괜히 한국의 팀과 비교되는 게 아니거든요.

잠시 후, 1경기는 결국 네오폴드의 승리로 끝났다.

정명은 나머지 경기는 방송으로 보기로 결정하고는, 직원들만 드나들 수 있는 복도를 통해 건물 바깥으로 향했다.

그런데 나가는 도중 희미하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호기심이 동한 정명은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휴, 멍청이들아. 131 스플릿 따위에 휘둘리면 어떡해? 쪽팔리지도 않아?”

‘저건 해리 아닌가?’

정명은 본인의 좋은 눈을 활용하여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그들이 하는 짓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1경기가 끝난 뒤, 해리는 팀원들을 ‘집합’시켜 놓고 머리를 툭툭 치며 팀원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보던 광경인데… 그래, 한국에서 많이 봤지 저런 건. 그런데 저게 미국에서도 가능한 일이야?’

정명은 곧장 OMA의 리원에게 전화를 걸어, 해리에 관한 이야기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해리는 OMA의 도돈파와 친한 것처럼 보였으므로, OMA의 다른 선수들 또한 무언가 들은 게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 팀은 원래 그래요.

“원래 그렇다고요? 난 무슨 한국 군대에서 기합 받는 모습을 보는 줄 알았는데?”

-그 팀이 원래 그랬던 건 아니고… 말 잘 듣는 애로 채워 넣은 거예요. 근데 이거 꽤 유명한 이야긴데?

리원의 말에 따르면, 네오폴드가 보여 주는 엄청난 팀워크의 비결은 한국 군대처럼 빡센 규율과 구단 운영에 있었다.

리원은 한국의 군대 같다는 정명의 말을 전혀 부정하지 않았다.

“근데 미국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정명, 당신은 보니까 미국에 대해서 이상한 판타지가 있네요. 여기라고 뭐 다른가요? 사람 사는 데가 거기서 거기지. 그 해리라는 사람, 엄청 양아치예요. 예의도 없고.

정명은 갑자기 중국에서 만났던 비앤비라는 선수가 떠올랐다.

SNS에서 정명의 욕을 하다가 걸렸고, 그 일로 꽤나 곤욕을 치렀음에도 정신 못 차리고 뒤에서 욕하다가 또 걸렸던 그 선수.

당시 정명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의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리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무척 고마워했으나 양아치 근성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는 정명에게 리원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쿠론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나?”

“쿠론요?”

“쿠론의 전전 팀이 네오폴드였잖아요. 저보다 잘 알고 있을걸요?”

*

‘뭐지, 이건 데자뷰인가.’

1시간 후.

연습실에 돌아온 정명은 마치 데자뷰를 겪는 것처럼 지난번에 봤던 모습을 똑같이 볼 수 있었다.

“시발, 짜증 나게. 야, 와드 똑바로 안 박아? 살짝 빠져나왔잖아!”

“미안”

쿠론은 언제 한국어 욕을 배웠는지, 차석진에게 말할 때면 간간히 한국어 욕을 섞어 쓰기 시작했다.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쿠론이 차석진을 구박하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정명은 이제 그런 쿠론의 행동에 제동을 걸기로 했다. 팀의 가장 큰 약점인 팀워크 향상을 위해서.

‘이 팀에 와서는 잘 지내겠다더니, 쯧. 저걸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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