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42화 (142/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42화-----------------

2경기에서 도돈파와 정명은 서로의 캐릭터를 바꾸는 듯한 밴픽을 보여 줬다.

만약 2경기에서 도돈파가 이겼다면 완벽한 자존심 회복이 되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승부는 OMA의 패배.

도돈파는 졌고, 그는 다른 캐릭터를 골라서 졌을 때보다 훨씬 더 큰 후폭풍을 감당해야만 했다.

[OMA의 아쉬운 패배.]

[신 VS 구. 패기와 경험의 대결이 재미있는 이유.]

[쇼맨십인가, 오만인가?]

[감독은 대체 무얼 하고 있었나?]

경기가 끝난 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수많은 기사가 떴다.

도돈파는 너무 꼴사납게 졌고, 대중들은 항상 친절하고 예의바르던 사람이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보다 그런 사람이 망했다는 이야기를 더 좋아했으므로 이번 경기는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기사에 달린 댓글의 반응도 썩 좋지 않았다.

-나 같으면 쪽팔려서 프로 게이머 은퇴함.

-대체 뭘 믿고 갱킹 금지 같은 걸 제안한 거지?

-이놈, 거품이었던 것 아님?

‘하여간 인터넷 세상이란…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기다렸다는 듯 물어뜯는다니까.’

하지만 확실히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반응이 격했다. 그리고 정명은 그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퀘스트 성공]

도전자의 도전을 성공적으로 물리쳤습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도전자들은 감히 당신의 팀에게 도전할 생각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 50,000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는 다른 팀의 도전을 받지 않습니다.

* 패배 팀 선수 전원의 카리스마와 명성이 대폭 하락했습니다.

‘5만 포인트라. 나쁘지 않군. 가끔은 이런 도전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정명은 만족스레 웃으며 개인 방송을 하기 위해 카메라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아무리 시즌 중이라도 주말이면 개인 방송을 잊지 않고는 한다.

하루에 새로 생기는 채널 수만 100여 개에 다다르는 시장.

이렇게 치열한 시장에서 하루라도 쉬면 랭킹이 쭉 내려간 뒤, 그대로 잊혀져 버리고는 하기 때문에 여유가 되면 개인 방송을 통한 시청자와의 소통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명의 개인 방송 순위는 꽤 낮았다. 정명은 미국에 와서는 솔로 랭크뿐만 아니라 개인 방송을 잘 하지 않았으니까.

따라서 오늘 이런 정명의 행동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정명은 개인 방송을 하기 전,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개인 방송으로 잠시 시선을 돌렸다.

‘여고생과 함께 하는 방송, 수영복 입고 하는 방송, 인간 쓰레기의 방, 달달한 목소리와 함께하실래요? 라…….’

트이치TV의 메인 화면을 슬쩍 보니, 어떻게든 관심을 끌기 위하여 별별 제목들이 난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실 그렇게 이상한 모습은 아니었다.

개인 방송을 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에게는 일명 ‘제목 어그로’가 필요하니까. 수많은 채널 중에서 일단 시선을 끌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정명은 단순히 요즘에는 이런 게 유행인가 보다, 생각하며 개인 방송 채널의 이름을 정했다.

[프로 게이머 유정명의 방송]

‘음, 좋아. 완벽해.’

이것은 일종의 자신감이었다.

‘제목 어그로? 나는 그런 거 필요 없다. 내 이름이 곧 제목 어그로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자신감.

그리고 정명은 시스템의 설명을 보며 그런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명성: 4,999]

-우승 경력은 없지만, 자타 공인 북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 평가받고 있습니다.

-명성 수치가 2,500 이하, 혹은 정신력이 75 이하인 게이머들은 당신을 상대할 때 자기도 모르게 위축됩니다(모든 능력치 5% 감소).

-명성 수치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 이상 명성을 쌓으려면 2회 이상의 우승 경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정명이 솔로 랭크에 들어가자마자 다른 프로들에게서 메시지가 빗발쳤다.

-정명 씨, 듀오 랭크 ㄱㄱ?

-한 수 가르쳐 주세용!

-안녕하세요. XL게임즈의 탑 라이너…….

[친구 추가 요청이 84건 있습니다.]

‘이런, 거절 메시지 보내는 것만 해도 한참 걸리겠네…….’

그런 인기는 시청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같은 프로 게이머들에게도 정명은 연예인 비슷한 존재로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정명과 같이 게임을 하면 개인 방송 수입 또한 크게 오르니, 같이 듀오하자는 러브콜이 넘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서 정명이 파트너로 선택한 사람은 쪽지로 애걸복걸 매달리던 사람이 아닌, 메시지를 보낼까 말까 눈치만 보고 있던 한 여성 게이머였다.

-예? 저랑 듀오를 하고 싶으시다고요?

-네. 지금 개인 방송 하고 있는데, 상관없으시죠?

-상관이야 없죠. 저도 지금 개인 방송하고 있으니까. 초대 주세요.

[OMA_리원 님이 파티에 참여했습니다.]

‘이 녀석이 성격 별로 안 좋다고 하던 그 녀석인가? 아니, 게이머치고 성격 좋은 사람이 드물기는 한데.’

정명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OMA의 탑 라이너, 리원이었다.

몇 없는 여성 게이머이자, 쿠론과 비교되는 실력파 선수.

사실 OMA가 짜증난다고는 하지만, 그 구성원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1순위는 감독. 그는 치울 수 있다면 제일 먼저 치우고 싶은 그런 사람이었고 2순위는 도돈파였다. 사실 도돈파 또한 조금 거슬리는 정도지, 은퇴시켜 버리고 싶다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머지는 별생각 없다. 만나서 커피를 마시든, 같이 개인 방송을 돌리든 상관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격한 반응을 쏟아 냈다.

-착하네. OMA랑 사이 별로 안 좋을 텐데도 쟤네랑 듀오해 주다니.

-바보야, 저건 착한 게 아니라 호구인거야 호구. OMA에서 짤리고 나서도 정신 못 차린 듯?

-정명이 그동안 스캔들 하나 없었지만, 남자이긴 남자인가 봐. 미인이랑 듀오하고 싶어 하는 거 보면.

-나도 여자다! 이 누나랑 듀오하자 정명아!

리원은 정명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서 초대를 보냈다고 생각했는지 꽤나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대회에서 보여 주셨던 것처럼 캐리 가능하시죠? 그러면 나중에 커피라도 한 잔 사 드릴게요.”

“그거 고맙네요.”

그런데 리원과 같이 하는 듀오 랭크 방송 첫판부터 조금 민망한 장면이 나왔다.

게임에 들어가고 나서 보니, 상대편에 도돈파의 아이디가 보였던 것이다.

“어? 대뜸 1픽으로 탈주닌자 선픽 박더니, 걔가 도돈파였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리벤지 매치 만들어 줬을 텐데. 왜 말 안했어요, 리원.”

“아하하하, 개인 방송은 연습실이 아니라, 제 집에서 하는 거라… 몰랐어요.”

뜻밖의 매치에 리원도 무척이나 어색해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마침 정명이 고른 것은 꼬마 마녀. 탈주 닌자를 카운터치기 무척 좋은 챔피언이었다.

*

[변해라!]

라인전이 무르익을 시각.

정명이 일방적으로 탈주 닌자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꼬마 마녀 캐릭터의 스킬 특성상, 미드에 오는 근접 캐릭터에게 악몽을 만들어 줄 수 있다.

특히 탈주 닌자 같은 암살자 캐릭터가 궁을 쓰고 어떻게든 킬각을 만들어 보려고 해도 순식간에 피를 뻥튀기해 버리니, 절대로 잡힐 일도 없었다.

카운터 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것이다.

덕분에 조금 여유가 생긴 정명은 채팅창을 슬쩍 쳐다봤다.

파리새: ㅉㅉ. 도돈파가 너무 못하네. 나 다이아 1인데, 사실 프로면 카운터 픽 같은 거 별로 상관없음. 라인만 잘 당기면 어떻게든 CS 챙길 수 있으니까. 여기 채팅방에는 무슨 스톤즈밖에 없는 듯?

정명은 그 채팅을 보고는 말했다.

“그건 아니고… 프로니까 카운터 픽이 더 크게 작용하는 거예요. 조금의 차이로도 승부가 갈리니까. 그러니까 밴픽 싸움이 중요한 거고요.”

파리새: 어! 내 말에 답변해 줬다!

파리새라는 시청자는 정명이 자신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했음에도 자신의 채팅을 봐 준 게 기뻤는지 히히덕거렸다.

그 후, 정명은 채팅에서 눈을 돌려 게임에 집중했다.

그런데 화면에는 조금 이질적인 메시지가 나타나고 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특정 선수를 압살했습니다.]

[게이머, ‘도돈파’의 카리스마와 명성이 하락합니다.]

‘역시 그렇군. 이렇게 될 것 같았어.’

시스템에 이렇게 된다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받은 퀘스트와 시스템에 적혀 있는 설명으로 볼 때, 정명의 행동은 상대의 명성을 떨어트리기에 딱 좋은 행동이었다.

그렇게 3시간이 흘렀고, 그러한 메시지가 4번 떴다.

사람이 별로 없는 최상위권 솔로 랭크 특성상, 보던 사람을 계속 보게 되곤 하는데, 운 나쁘게도 도돈파는 계속 정명의 상대 팀에 배정됐고 또 연속으로 4경기를 내리 졌던 것이다.

[게이머, ‘도돈파’의 카리스마와 명성이 하락했습니다.]

[게이머, ‘도돈파’의 카리스마와 명성이 하락…….]

메시지 로그를 훑어보던 정명은 조금 민망해졌다.

“리원, 도돈파 선수 기분 조금 상할 것 같은데, 듀오 랭크는 이쯤할까요?”

“네? 왜요? 그가 기분 나쁜 거랑 우리가 듀오 랭크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

3시간 전. 조금은 눈치를 보던 처음과 달리, 리원은 이제 도돈파가 기분이 나쁘든 말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사실 북미에서는 이게 정상적인 태도였다. 한국과는 달리, 같은 팀이라도 ‘넌 너고, 난 나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비록 그동안은 도돈파가 팀을 꽉 잡고 있었기에 팀원들이 도돈파의 눈치를 봤던 것이지만, 이제는 그 장악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좋아. 나쁘지 않군. 이대로 해 나가도 되겠어.’

정명이 리원과 파티를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OMA를 안에서부터 공략하기 위해서.

정명은 그 이후, 리원뿐만 아니라 도돈파를 제외한 다른 OMA 멤버들과도 듀오 랭크를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며칠 후.

그런 노력의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명은 같이 듀오 랭크를 돌리고 있던 리원에게 지나가듯 말했다.

“감독이라는 게, 한국을 따라한 거잖습니까. 한국에서나 가능한 거지, 북미에서는 글쎄요.”

“별 쓸모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한국의 감독은 뭐랄까. 조금 강압적인 분위기에요. 이거 해, 저거 해. 굳이 비교하자면 군대식이라고 해야 할까.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해서 효율이 올라가는 점도 분명 있으니까.”

“하지만 북미에서는 다르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거는 리원, 당신이 더 잘 알 것 같은데요. 만약 당신에게 이제부터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명상과 체조를 하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거절합니다. 저는 저만의 생활 패턴이 있으니까.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네요. 한국에서는 감독이 그렇게 시키면 해야 한다는 거죠? 이곳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지만.”

명성이 높으면 이런 게 좋다.

‘북미 팀이 이제 한국 팀을 넘어 월챔 우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궤변을 늘어놓아도 적당한 근거를 대면 사람들은 아, 그렇구나 하면서 어느 정도는 믿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명의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건 리원뿐만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시청자들 또한, 모니터 너머에서 정명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OMA의 감독, 디클레어의 명성과 카리스마가 대폭 하락했습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겠지만…….’

정명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감독은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곧 알게 될 것이었다.

*

그러던 어느 날.

정명은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메일 하나를 받았다.

-어제 무한직업 보니까 북미 프로 게이머 이야기 나오더라. 도돈파라는 사람이라던데, 그거 혹시 네 친구 아니냐?

이번엔 모두와 같이 볼 필요가 없으므로, 자막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정명은 호기심에 무한직업의 ‘북미 프로 게이머 이야기’를 시청했다.

‘그런데… 도돈파는 언제 나오는 거야? 권투 선수만 나오네?’

방송 분량은 미국으로 건너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권투 선수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도돈파에 대한 이야기는 극히 드물었다.

그리고 그 방송의 영어 자막이 풀린 날. 도돈파의 명성은 또다시 하락했다.

[게이머, ‘도돈파’의 카리스마와 명성이 소폭 하락했습니다.]

[팀 OMA가 명문 구단에 도전할 자격을 상실했습니다.]

*

야심한 밤.

정명이 화이트 보드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항목에 줄을 그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항목은 ‘북미 솔로 랭크 1위 달성하기’였다.

“너도 참… 독하다. 이렇게 단시간에 1위를 찍다니.”

“시즌 중이니까 프로들이 많이 없기도 하고. 솔직히 조금 쉽기는 했어. 솔랭은 한국이 제일 빡셌고 그 다음이 중국, 마지막으로는 북미. 뭐 당연한가.”

벨라는 정명이 화이트 보드를 정리하는 모습을 멀뚱멀뚱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제는 어떻게 되는 거야? 지난번에는 맞췄지?”

“뭐가?”

“도돈파 말이야. 개인 방송 1위, 팬클럽 회원 수 1위, 솔로 랭크 1위 등등…….이제 지가 자랑하던 걸 싹 다 털렸는데 어떻게 나올 것 같냐고. 지난번에는 걔가 어떻게 나올지 맞췄잖아. 이번에도 맞출 수 있어?”

“글쎄.”

정명은 5초 정도 생각하고는 말했다.

“만약 나라면 연습실을 한번 찾아왔을 거야.”

“어, 나 알아! doo-gea-za하러 오는 거 맞지? 그렇지?”

도게자.

땅 위에 바짝 엎드려 극히 공손한 태도로 용서를 구한다는 뜻의 일본어였다.

정명은 벨라가 별 단어를 다 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뭘 잘못했다고 사과해. 무엇보다 자존심 상해서 사과는 안 하지.”

“그러면 뭐 하러 연습실에 와?”

“패배를 선언하려고.”

“응?”

“사과는 안 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 ‘내가 졌다.’고.”

“뭐야, 그게.”

하지만 정명의 예상은 틀렸다.

도돈파는 연습실에 찾아오기는커녕 어쩌다 만나도 눈도 안 마주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도돈파는 정명을 따라하는 것을 관두었다.

*

정명의 예상은 사실 반은 맞았다.

연습실에 누군가가 찾아오기는 했던 것이다.

추운 겨울, 눈이 내리는 연습실 마당.

팔에 문신이 가득한 청년은 담배를 피우며 무심한 표정으로 정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습니까? 도돈파 그 녀석,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징징거리고 있더군요. 상실감이 무척 컸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했냐는 말입니다. 당신은 이미 가진 게 많잖습니까.”

“원래 내 것이었던 것을 다시 되찾아 왔을 뿐이다. 그렇게 불쌍하면 네가 가진 것을 주는 건 어떤가?”

정명을 찾아온 사람은 SAO 시절, 프로 게이머가 되니 마니하며 부모님과 함께 정명의 연습실에 방문했던 천재 게이머. 해리였다.

그리고 해리는 이제 현 북미 1위 팀, 네오폴드의 에이스가 되어 정명을 당당히 마주하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