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40화-----------------
만약 직장 동료 중에서 자신을 따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자신이 입었던 옷을 똑같이 사 입는다거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은 불쾌한 감정을 느낄 것이었고, 그것은 정명 또한 마찬가지였다.
‘뭐야, 이 등신은. 메X몽이야? 자존심도 없어?’
정명이 보기엔 바보 같은 짓으로 보였지만 그래도 효과는 있는 듯했다.
무슨 심정으로 그런 일을 하는지 짐작하기는 힘들었지만, 확실히 그들은 정명을 따라 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비교적 쉽게 인기를 쌓아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굳이 분석해 보자면, 내가 중국에 간 동안 OMA를 떠올리게 스토리를 보여 줌으로써 팬들의 그리움을 달래 준 것이 제대로 먹혀들었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리고 연습실로 돌아와 그들의 과거 행적을 찾아보니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따라 하고 있다고. 내가 쌓아올린 명성을 훔쳐서 자신의 것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고.
‘그래도 어쩌겠어. 석진이한테 말한 것처럼, OMA 연습실로 가서 걔네들을 쥐어 팰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경기 준비나 잘할 수밖에.’
그렇게 씁쓸한 마음으로 화면을 끄려는 순간, 뒤를 지나가던 쿠론이 한마디 보탰다.
“그 꼴 보기 싫은 낯짝은 뭐 하러 계속 보고 있냐?”
“마침 잘됐다. 잠깐 와서 이것 좀 봐라. 웃긴 거 있다.”
그리고 정명은 쿠론을 포함한 팀원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추측과 그 근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벨라는 마치 샘송의 갤럭시를 욕하는 잡스처럼, 도돈파라는 사람의 욕을 하기 시작했다.
“이놈들, 카피캣이야. 너를 따라 하고 있다고!”
“그런 것 같지?”
“그런 것 같지가 아니야. 이 정도면 확실하지! 기다려, 내가 당장 팬클럽에 화력 지원을… 아니, 피트를 불러서 도돈파라는 녀석 고소해 버리자. 사회의 쓴맛을 보여 줘야겠어.”
벨라는 주먹을 치켜들며 말했지만, 정명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보다는 일단 다음 주 경기에서 OMA를 꺾어 놓는 게 더 급해. ‘진짜’의 실력을 보여 줘야 다음 이야기가 된다.”
지난 시즌 OMA의 순위는 2위. 정명이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지금 설레발쳤다가 나중에 리그에서 OMA에게 깨지기라도 하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니, 알았어. 이 일은 네 의견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래. 우리 벨라, 말도 잘 듣고 참 착하다.”
벨라에게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명이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간다는 것은 아니었다. 싸움을 걸 때는 확실히 이길 수 있을 때만 걸고 싶었던 것이었을 뿐인 것이다.
‘OMA라. 이것 참, 내가 힘겹게 끌어올린 팀을 내 손으로 때려 부술 고민을 해야 하다니. 정말 아이러니하군.’
오늘 오후에 같이 연습을 할 상대는 TBM이었다.
과거에는 우승을 놓치지 않고 있었으나 지금은 3, 4위에 머물러 있는 팀. 하지만 과감한 선수 영입과 코치진 대폭 확대로 반전을 꾀하고 있는 팀이기도 했다.
“정명, 뭐 할 거예요? 불여우? 탈주 닌자?”
“저 독뱀 술사요. 요즘은 그게 재밌더라고요.”
“독뱀 술사 좋죠. 손이 좀 빨라야 쓸 수 있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래서 정명 씨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여느 때처럼 밴픽이 흘러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메테오는 여느 때와 같은 것처럼 보이는 밴픽에서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해 냈다.
“흠, 후픽으로 탈주 닌자라. 트레브 녀석, 정명 씨에게 몇 번 깨지더니 이제 어떻게든 후픽을 가져가려고 애를 쓰는 것 같은데요?”
트레브.
북미에서 괴물과 같은 피지컬을 갖고 있다고 소문난 흑인 선수.
실제로 그는 상태창의 피지컬 수치가 90을 나타내는 괴물이었고, 정명 또한 그에게 지고 이기는 것을 반복하고는 했다.
하지만 최근엔 그 대결 구도가 조금 바뀌었다.
‘탈주 닌자면 카운터 픽이긴 한데… 독뱀 술사면 숙련도 레벨이 5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숙련도 레벨 5.
정명은 피지컬 90이 된 이후로, 숙련도 5짜리 캐릭터를 상당히 많이 만들어 냈다.
[올마스터를 향하여]
*특정 캐릭터에 대한 기교를 한계치까지 끌어내었습니다.
*당신을 상대하는 팀들은 이 캐릭터를 밴시킬지 심각하게 고민할 것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캐릭터의 숙련도를 끌어올리십시오. 올마스터를 향하여.
-현재 마스터한 캐릭터의 개수: 10/110개
현재 정명의 피지컬은 90. 여기에 숙련도 보정을 더하면 피지컬은 91이 된다.
피지컬이 70, 80이던 시절에는 피지컬을 1 올린다 하더라도 그렇게 티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지컬이 90으로 넘어온 후, 정명은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피지컬을 1만 올려도 분위기가 상당히 바뀌게 된다’고.
“형, 괜찮겠어요? 탈주 닌자가 그림자로 표창 날리면서 긁어 대면 독뱀 술사로는 무지 까다로울 텐데.”
“그거야 맞을 때 이야기고.”
“그래도 조심하세요. 카운터 픽이 괜히 카운터겠습니까?”
차석진의 생각대로 트레브는 어떻게든 딜 교환을 통해 킬각을 재보려고 끊임없이 싸움을 걸고 있었다.
적절한 기력 조절, 페이크, 기만을 통한 방심 유도.
피지컬 90짜리 선수가 다루는 암살자 캐릭터의 플레이 모습은 상당히 화려했다.
하지만 그곳에 실속은 없었다.
[끼야아아악!]
화면에서 캐릭터가 요란한 소리를 냄과 동시에 궁극기가 들어갔다.
트레브는 잠시 바텀으로 로밍이라도 가보려 화면을 돌렸고, 정명은 트레브의 빈틈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아우, 살살 좀 합시다. 이거 조금만 한눈팔아도 배에 칼빵이 들어오니. 나 원 참…….
-당신하고 싸울 때는 진짜 경기처럼 빡집중해야 하는 것 알아요?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모르죠?
트레브가 채팅으로 불평했지만, 트레브라는 선수는 정명이 봐줄 만큼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기에 무시했다.
‘미드는 이겼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들 잘하고 있군.’
피지컬만은 좋은 벨라, 그리고 북미 리그에서 이미 검증된 선수라고 할 수 있는 메테오와 쿠론. 마지막으로 한국인 특유의 노예 생활로 실력을 끌어올린 차석진까지.
정명은 이번 연습 경기도 이겼다고 생각하며 다시 미드로 화면을 돌렸다.
2시간 뒤.
다른 팀원들은 연속 게임에 지쳐 잠시 쉬고 있었지만, 정명은 TBM의 코치진과 채팅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공부를 할 때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것보다 오답 노트를 정리하는 게 더 중요한 것처럼, 두 팀은 피드백을 공유하며 뒷마무리를 놓치지 않았다.
“벨라는 와드를 좀 아끼지 말고 박아야 할 것 같고, 쿠론은 라인전에서 너무 공격적으로 경기를 펼치다가 죽는 게 좀 있으니까 그 점을 주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하긴, 듣고 보니 그런 경향이 조금 있기는 하네요.”
“그 이외에는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팀워크가 단단한 건 엄청난 강점 아니겠습니까?”
정명의 팀이 갖고 있는 강점.
개성 있는 4명이 모였음에도, 싸움 한 번 없이 정명이 리더로서 팀을 잘 이끌고 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일 걱정스러운 것은 쿠론이었지만 쿠론은 벨라가 컨트롤을 잘했기에 생각보다 문제가 되지 않았다.
“토머스, OMA랑 우리가 붙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그거야 당연히… 말 안 합니다. 하하.”
다른 팀원들은 휴식을, 그리고 정명은 피드백을 공유하던 시간이 지났다.
정명은 다음 판에서 지적받았던 부분들을 수용하여 문제점을 하나씩 고쳐 나갔다.
“벨라야, 부시에 핑키 와드 좀 박아 봐.”
“하지만 그 돈으로 아이템을 사면…….”
“네가 100골드 쓰는 것보다 상대에게 300골드를 주지 않는 게 더 중요해. 그냥 사.”
그리고 정명은 귀환한 틈을 타서 바텀으로 화면을 돌렸다.
“석진아, 쿠론이 너무 앞으로 나가면 네가 조절해 줘야지. 지금도 CS 먹자고 너무 나대고 있잖아.”
“어…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하죠? back? retreat?”
“더듬더듬 단어 생각하지 말고, 잘 모르겠으면 핑 찍어 그냥.”
정명이 지적한 부분을 수용하니, 전 판보다 경기가 훨씬 수월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엉망진창이었지만, 이제는 뭔가 팀으로써 움직이는 것 같다.
정명은 게임을 플레이하며 그렇게 느꼈다.
*
그 시각.
한국에서 온 촬영 팀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방송국 옆 거리 있지? 거기로 나가자고.”
도돈파, 김진성을 촬영하기 위해 한국에서 날아온 촬영 팀의 프로그램은 무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은 정명을 촬영했던 극한도전과 매우 비슷한 콘셉트를 갖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사실 비슷한 게 아니라 거의 똑같았다.
어떠한 컨셉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 우후죽순으로 비슷한 프로그램이 생기는 건 방송계에서는 무척이나 흔한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라는 주제는 이미 한 번 방송했으므로, 후발주자로서 더 나은 것을 보여 주어야 수지타산이 맞았다.
그런 의미에서 촬영 팀은 오늘 지루한 연습실의 모습을 촬영하는 대신, 거리로 나왔다.
[프로게이머에게 게임 과외를 받는다면 누구에게 받고 싶으신가요?]
두 사람을 비교하는 설문 조사가 거리에 나타났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사람의 자리에다가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설문 조사가 꽤 진행된 뒤.
간판에 붙여져 있는 스티커를 보며 PD는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왜지? 요즘 잘나가는 건 정명이 아니라 도돈파, 김진성이라고 하지 않았나? 맞지?”
“그러게요… 알 수가 없네요.”
자체 평가에선 그랬다.
커리어: 도돈파
최근 기세: 동률
개인 랭크: 도돈파
최고 팀 순위: 도돈파
대부분의 비교에서 도돈파, 김진성이 유정명을 눌렀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20 대 80. 정명의 압승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방송 망하겠어.”
이번 방송의 주인공은 정명이 아니라 도돈파다.
결국 방송이 망할 것을 우려한 PD는 직접 거리로 나가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스티커를 어느 쪽에 붙이셨나요?”
“저는 정명 쪽에다요.”
“이유가 있나요?”
“음… 그냥요!”
정명을 뽑은 이유는 다양했다.
자상하게 가르쳐줄 것 같아서, 리더십이 좋은 것 같아서, 잘생겨서, 유명해서 따위의 이유였다.
그리고 PD는 운 좋게도 한국 유학생에게 이러한 결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설명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연식이 좀 된 페라리랑 풀커스텀 된 새삥 아우디가 있어요. 품질 면에서는 아우디가 꿀릴 게 없죠. 만약 PD님에게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르라면, 어떤 차 타실래요?”
“어… 아우디요.”
“흥미롭네요. 정말요?”
“아뇨, 저도 페라리요. 그런데… 두 사람의 차이가 그 정도인가요?”
“아마도요. 솔직히 도돈파는 정명의 하위 호환 같은 느낌이라서. 아니, 그 선수가 나쁜 선수라는 의미가 아니라 굳이 둘을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예요.”
그 말에 PD는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촉이 안 좋아. 차라리 이럴 바에는…….’
리스크를 분산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PD는 중대 결심을 하고는 뒤에 멀뚱멀뚱 서 있던 카메라맨을 돌아보았다.
“야, 권투 선수 촬영하러 간 스태프 있지? 걔는 지금 촬영 분위기 어떻대?”
“상수요? 상수 말로는 5분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요. 나름 괜찮은 장면을 많이 잡았다고.”
“그래? 그거 다행이군. 좋아, 그럼 팀을 나누자. 이쪽의 인원을 나눠서 그쪽에 지원을 좀 보내야겠어.”
*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이걸로 끝이죠? 끝이라고 해 주세요.”
마지막 연습 게임이 끝난 뒤.
애처롭게 말하는 석진에게 정명은 웃으며 그렇다고 얘기했다.
연습실에 틀어박혀 폐관수련을 한 지 며칠.
드디어 OMA와의 첫 경기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OMA와는… 정말로 첫 만남이로군. 그동안 연습 게임도 한 번 하지 않았으니.’
팀 간의 다툼은 꽤나 흔하다.
솔로 랭크에서 만나서 싸우다 욕을 할 수도 있고, 경기장에서 다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싸웠다고는 해도 어지간해선 연습 경기와 같은 교류는 제대로 이루어진다. 연습 경기를 할 팀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하지만 정명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OMA와는 일절 교류를 하지 않았다.
상대가 그 ‘어지간한 팀’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명은 내일 경기에서 무조건 이길 것이라 다짐하며 방금 전에 떴던 메시지창을 살폈다.
[연습 게임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명문 구단 보너스 30%
-연승 보너스 30%
-1200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연습 게임인데 1200이라. 예전에는 리그에서 2 : 0으로 이기면 2,000을 줬는데.’
당시 연습 게임에서 줬던 포인트는 끽해야 300, 400 정도. 지금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였다.
‘오더 스탯을 올려 볼까. 오더를 올리면 팀워크가 훨씬 좋아질 텐데…….’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정명의 상대, 도돈파는 한국에서도 상위권에 위치하던 젊은 프로게이머. 피지컬이 북미 선수의 평균을 훨씬 웃도는 선수였다.
‘포인트가 아슬아슬하게 되니까 이번에는 이걸로…….’
[피지컬 스탯을 1 구입하시겠습니까?]
[피지컬을 91로 올리기 위해서는 120,000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구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