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39화-----------------
OMA.
예전에는 정명의 연봉을 무척이나 높여 주었던 고마운 팀이자 신분 상승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팀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당시 구단주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을 비싸게 팔아 버리고 잠적한 것이었는데, 괘씸하게도 그 구단주는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OMA의 구단주는 정명이 팀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위권에서 빌빌대고 있던 팀, 겨우겨우 상위권까지 끌어올려 줬더니 가치가 올라가자마자 그걸 팔고 잠수를 타? 하여간 돈이 얽히면 믿을 수 있는 놈이 없어진다니까.’
그 후, 구단주가 바뀌며 구단의 운영 스타일도 바뀌었다.
당시 새롭게 부임한 감독은 정명에게 상당히 적은 연봉을 제시함으로써 자진 탈퇴를 유도했다.
이미 정명의 나이가 많이 차서 기량 하락이 예상되고, 또 그 돈이면 더 잘하는 한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팀에서 반 강제적으로 나오게 된 것은 정명뿐만이 아니었다.
실력이 그저 그런 것으로 평가받던 에리와 조시 또한 팀을 나오게 되었는데 덕분에 그 셋은 OMA에 대한 감정이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그 셋은 팀을 월드 챔피언십까지 올려놓았던 주역이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팀을 나가 달라는 요구였기 때문이다.
과거의 악연을 떠올리며 한숨을 쉰 정명은 자신에게 뜬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방어전]
당신은 명문 구단의 입지에 오르며 수많은 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권리에는 책임과 의무가 뒤따르는 법.
당신에게는 도전자의 도전을 받아들일 의무가 있습니다.
겁 없는 도전자에게 진짜 명문 구단이 무엇인지 보여 주십시오.
*이 퀘스트는 임의로 거절할 수 없습니다.
‘도전자라. 나는 기존에 쌓았던 명성, 그리고 10연승을 한 끝에 겨우겨우 GLG에게 도전 자격을 얻을 수 있었지. 지금의 OMA가 도전 자격을 얻을 수 있을 만큼의 위치라는 것인가?’
메시지를 잠시 바라보던 정명은 그동안 미뤄 두었던 팀 OMA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
“요즘 연승한다더니 진짜 물올랐네요. C90을 이렇게 쉽게 잡다니!”
“C90이 뭐 옛날의 C90입니까. 실력도, 순위도 예전 같지 않은데. 이 정도는 해 줘야 우승을 운운할 자격이 되죠.”
다음 날.
정명의 연습실에 리그의 해설자 두 명이 방문했다.
슈퍼위크를 앞두고, 요즘 수많은 이슈를 몰고 다니는 팀을 구경한다는 이유였다.
“과연, 예전에는 정명 혼자서만 잘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팀의 밸런스가 무척이나 잘 맞춰진 것 같은 느낌이에요. 원맨팀을 벗어났다고 해야 하나? 쿠론도 전 구단에 있을 때보다 훨씬 움직임이 나아진 것 같고요.”
그 말에 쿠론이 이쪽을 잠시 쳐다봤으나 곧 관심 없다는 듯 흥, 하며 고개를 돌렸다.
‘쿠론이라. 확실히 잘하고 있지. 내 팀원이라서 더 좋게 보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여성 게이머 중에서는 탑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정명은 그녀의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미어스 쿠론]
피지컬: 83/89
판단력: 87/95
오더: 55/70
정신력: 65/84
‘나도 이력서를 받아 봤지만, 이 정도의 능력치를 가진 선수랑 계약하는 게 쉽지가 않아. 오히려 싸게 계약한 감이 있다.’
상태창을 열어 본 정명은 해설자에게 확신을 갖고 말했다.
“쿠론 정도면 여자 게이머 중에서는 탑급 선수 아닌가요? 우리 팀의 자랑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정명은 요즘 쿠론의 칭찬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녀와 알고 지낸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별로 친해진 것 같지 않았으니까. 정명 쪽에서 조금 다가가 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눈치 없는 해설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말하긴 좀 그렇긴 한데, 그게 예전에는 맞는 말이었죠. 그런데 요즘은 아니에요. 그녀를 뛰어넘을 만한 선수가 나타났거든요.”
“엥? 누구요? 그럴 만한 사람이 있나?”
“리원. 지난 시즌부터 OMA로 이적한 선순데, 실력이 엄청나요. 미인이고요.”
“아, 그 사람… 금발의 키 큰 사람 맞죠?”
정명 또한 리원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야 곧 OMA와 맞붙게 되는데, 상대 팀 멤버가 누구인지도 모르면 말이 안 되니까.
‘확실히 미인이긴 했지만, 실력은 알 수 없지. 확실히 파악하려면 모니터로 지켜보는 게 아닌, 직접 맞붙어 봐야 안다. 아니면 상태창을 찍어 보든가.’
해설자는 2군의 에이스였던 그녀를 OMA가 빼왔다고 덧붙였다.
“듣기로는 계약금을 상당하게 불렀다고 하는데, 꽤나 파격적인 금액이라고 하더라고요. 구단주가 돈이 많나 봐?”
“그 돈, 나한테나 좀 주지. 괘씸한 녀석 같으니.”
“하하, 정명 씨는 한국인 T.O에 걸리잖아. OMA에는 이미 엄청난 실력을 지닌 한국인 선수가 이미 있으니까 그건 안 되지.”
OMA에 새로 들어간 한국인은 둘. 그리고 해설자는 그중에서 ‘도돈파’라는 아이디를 가진 선수를 주목했다.
“도돈파. 이 사람이 진짜야. 요즘 엄청 인기를 끌고 있어요. 내 생각엔 요즘은 정명 씨보다 이 사람이 인기가 있을걸?”
도돈파라는 한국인은 OMA의 미드라이너이자 오더였다. 그리고 요즘 가장 핫한 선수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거 알아요? 그 사람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던 게이머였어요. 한국에서 이미 실력이 검증된 사람이라는 거지. 그런데 북미 리그로 오자마자 2부 리그부터 시작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한국의 1부 리그에서 활약하던 사람이 북미의 2부 리그부터 시작한다? 왜요?”
“나야 모르죠. 아무튼 순식간에 2부 리그를 박살 내 버리고 OMA에 스카우트됐어요. 전설의 시작이죠.”
해설자들이 연습실을 떠난 뒤.
정명은 해설자의 이야기가 신경 쓰였기에 다시 한 번 그들의 영상을 살펴보았다.
‘6개월 전 영상인데도 불구하고 그때 같이 활동했던 애들은… 없군. 역시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칼같이 자른 거야.’
정명이 OMA에서 나올 당시, 정명과 함께 나와야 했던 선수들은 정명, 조시, 에리 3명.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아 있던 2명의 선수는 그대로 팀에 남아 있게 되었는데, 이제 보니 그 2명의 선수들의 모습 또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뭐, 됐어. 알아서 잘살고 있겠지. 그보다 도돈파라. 본명은 김진성?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정명은 과거의 기억을 열심히 떠올려 봤으나 끝끝내 누구인지 기억해 내지 못했다. 갈수록 과거의 기억이 희미해져 갔기 때문이다.
결국 정명이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얼마 없었다.
‘예전에 캐나다에서 살았기에 영어를 잘한다, 나와 같은 미드라이너이자 오더, 그리고 2부 리그를 씹어 먹고 올라온 선수이며, OMA를 상위권으로 올려놓은 장본인. 요약하면 이 정도인가.’
잠시 그의 플레이 영상을 확인하던 정명은 이제 해설자가 말했던 리원이라는 여성 게이머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금발의 서양인. 예쁜데 성격 더러움. 피지컬보다는 꼼꼼한 플레이 스타일을 선호. 그리고 또…….’
*
며칠 뒤, 경기장.
정명은 차석진에게 OMA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들려주었다.
북미 쪽에서는 이미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얘기였지만, 차석진은 전혀 모르는 이야기였으니까.
“와, 진짜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럼 쿠론이 OMA 꼴 보기 싫다고 먼저 차에 들어간 건…….”
“쿠론도 에리가 잘려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었으니까. 그녀도 OMA라면 이를 갈고 있지.”
“으아… 너무 살벌한 이야기네요. 어른들의 세계예요. 그럼 형은 어때요? 쿠론처럼 복수를 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나요?”
“지금 생각해도 화나는 일이긴 한데, 어쩌겠어.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아우, 형은 너무 착해서 탈이에요. 나라면… 음, 나라면…….”
“어쩔 수 없다니까. 가서 쥐어 팰 수도 없고. 마음 같아서는 현실 갱을 가도 수십 번을 갔어.”
오늘 정명 팀의 경기 순서는 첫 번째였고, 이미 경기는 끝났다. 일이 끝났으니 집에 가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명은 다음 경기에서 OMA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고 가기로 했다.
‘감독은 아직 같은 녀석이지? 재수 없게.’
모니터에서 시선을 내리니 정명을 잘랐던 감독이 보였다.
감독은 경기에서 이기고 있었기 때문인지 표정이 꽤나 좋아 보였다.
-OMA! OMA!
-다 잡아 버려! 그렇지!
TV에서 볼 때와는 달리, 현장에서는 팬들의 환호성이 더욱 크게 들렸다.
정명은 그러한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도전할 자격이 있다고 할 만하다. 만약 우리가 GLG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OMA가 먼저 GLG에게 도전했겠지. 우리와 비교할 만해. 인기도, 실력도.’
정명에게는 무척 거슬리는 소식이었지만, OMA 감독은 꽤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지난 시즌, OMA가 TBM을 이기고 2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명이 있던 시절, 3, 4위에 머물렀던 것에 비교하면 상당히 성공적인 리빌딩이라 평할 만한 것이다.
시스템은 OMA 측의 도전이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정명이 OMA에 도전하는 입장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를 내치면서까지 감독이 만들고 싶었던 게 이런 팀이었나?’
잠깐 고민했지만 이제는 의미 없는 일이다.
경기가 모두 끝나자 정명은 고개를 돌려 떠날 준비를 했다.
잠시 뒤.
저녁 시간이 되었기에 정명의 일행은 적당히 근처 음식점을 찾아 차를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차가 막히며 앞으로 나아가기가 힘들었다.
“야, 다른 곳으로 가자. 여기 왜 이렇게 사람이 많냐. 너 때문 아니야?”
쿠론이 정명에게 농담을 건넸다.
이 음식점 골목은 정명이 지난번, 정명이 카메라가 보는 앞에서 팬들에게 사진을 찍어 줬던 그 장소였기 때문이다.
정명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창밖을 살폈다. 왜 이렇게 차가 막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슨 촬영이 있나 보네. 그래서 조금 사람이 몰렸어.”
“미친, 저게 보인다고?”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는 이제 막 경기를 마치고 온 OMA 선수들이 있었다.
정명은 처음에는 그들 또한 음식점을 찾고 있는 줄 알았지만, 곧 그 옆에 있는 촬영 팀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이 한국에서 온 촬영 팀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 내가 방송 안 하겠다고 하니까 저쪽을 찾아갔구나?”
한국에서 온 촬영 팀은 OMA에 들어간 한국인 선수들을 찍고 있었다.
얼마 전, SSB에서 정명을 촬영했던 방송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기에 수많은 유사 프로그램이 생겨났고, 저것은 그 아류작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차가 그들에게 가까이 갈수록 인터뷰 내용이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팀에 특이하게 여성분이 있으시네요. 게다가 무척 미인이시고.”
“감사합니다. 그래도 지난 2부 리그 우승 출신이에요. 여자라는 건 관계없지요.”
“김진성 선수, 북미에서 솔로 랭크 1위도 찍으셨다고요?”
“예. 지난 시즌에 1위를 찍었죠. 하지만 솔로 랭크는 겨울에 리셋되거든요. 이번에도 1위 달성을 목표로 달려 볼 생각입니다.”
그 인터뷰를 듣고 있던 쿠론이 버럭 화를 냈다.
“저것들이 진짜. 이 골목이 지들 거야? 메테오! 경적 좀 울려 봐요. 길에서 좀 꺼지라고 하게.”
이번만큼은 정명 또한 쿠론의 말에 동의했다.
짜증스러운 경적이 울리자 사람들이 하나둘 비켜서기 시작했고, 정명이 탄 차는 겨우겨우 혼잡한 골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저것들을 직접 보니까 짜증이 확 치솟네. 우리 조금 멀리 가더라도 다른 데서 먹자. 저것들이랑 또 마주치기 싫어.”
“정명, 괜찮죠?”
쿠론이 말했고, 메테오가 정명에게 다시 물었다.
그리고 정명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짜증이 치솟아 오르는 정도인 쿠론과는 달리, 당사자인 정명은 전투력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다음 OMA전은 무조건 이긴다. 포인트? 다 부어, 그냥.’
조용히 차를 타고 가던 정명은 조금 뜬금없게도 아껴 두었던 포인트를 투자하여 스탯을 올려 버렸다.
[판단력 스탯을 1 구입하시겠습니까?]
[소모 포인트: 100,000]
[구입에 성공하였습니다.]
[현재 능력치]
피지컬 (90/100)
정신력 (89/100)
오더 (89/100)
판단력 (90/100)
[잔여 포인트: 81,200]
‘판단력 90. 이것으로 또 하나의 스탯이 90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90의 영역으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바뀐 것은 없어 보였다.
스탯을 올릴 때는 원래 이랬다.
바뀐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순간,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정명은 불현듯 무언가가 떠올라서 메테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메테오, OMA 말이에요. 우리가 떠나고 나서 인기가 엄청 떨어지지 않았어요?”
“맞아요. 욕 많이 먹었죠. 주축이었던 선수들은 어디론가 떠나서 없고.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다가 올해 스프링 시즌부터 조금 달라졌어요. 저기, 도돈파라는 사람이 실력으로 팀을 끌어올린 뒤부터요.”
최근엔 OMA에게 팬클럽까지 생겼다.
비록 정명과 달리 팬이 자발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구단 측에서 만든 공식 홈페이지 비슷한 것이었지만.
‘잠깐만, 그런데 이거… 뭔가 이상한데?’
처음에는 몰랐지만, 천천히 생각해 보니 알 수 있었다.
영어를 잘한다, 정명과 같은 미드라이너이자 오더, 그리고 2부 리그를 씹어 먹고 올라온 선수이며, OMA를 상위권으로 올려놓은 장본인. 그리고 그 외의 다른 일들 까지.
그리고 지금, 그들은 정명이 한국에 유명세를 떨친 계기가 된 이 장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팬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거…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인데?’
그 성공 스토리는 정명의 이야기와 무척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행보까지도.
OMA의 선수들은 정명의 아메리칸 드림 성공 신화를 똑같이 따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