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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33화 (133/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33화-----------------

들어온 메일은 총 16통. 그리고 그중 10개의 메일이 이력서로 보였다.

정명은 왠지 모르게 긴장된 마음으로 메일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고, 명망 있다 할 정도면 이 녀석은 아닐 테고, 전성기가 지났다고 판단되는 이 사람도 아닐 테고. 셔플, 이 사람인가? 그런데 호들갑 떤 것에 비해 이 사람은 좀…….’

이력서에 셔플이라는 꽤 유명한 사람이 있긴 했지만, 시스템이 말한 사람이라고 하기엔 조금 실력이 떨어지는 게이머였다.

그 후, 이력서를 계속 넘겨 봤지만 선수들의 수준은 고만고만했고, 정명은 솔직히 실망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력서를 넘길 때쯤, 정명은 시스템이 말한 사람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고, 이력서 상단의 이름을 보자마자 헛웃음을 지었다.

‘이 녀석은… 플레이 영상을 확인할 필요도 없겠군.’

*

며칠 뒤.

마침내 차석진이 미국에 도착했다.

차석진은 새로 지어진 정명의 팀 연습실에 도착하자마자 연습실에 대한 감상도 없이, 여자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형, 형! 방금 누구예요? 지금 엄청 예쁜 사람 나간 것 같은데!”

“석진아, 넌 형이 비싼 돈 주고 마련한 연습실은 거들떠도 안 보고 여자 타령이냐? 안 되겠다, 넌 사고 칠 것 같으니까 다시 한국으로…….”

“아, 진짜 아닙니다. 믿어 주세요. 저 차석진, 초등학교 이후로 여자와 손 잡아 본 적도 없습니다.”

“자랑이다. 그런데 누구라고?”

“엄청 예쁜 사람이요! 키는 조금 조그맣고 금발에 단발인데…….”

“야, 넌 내 경기는 다 챙겨 봤다는 놈이 그 녀석을 못 알아봐? 쿠론이잖아.”

이력서의 마지막 선수이자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은 선수는 쿠론이었다.

처음에는 과연 누굴까 두근두근하다가 아는 사람이었기에 정명은 조금 맥이 빠졌지만, 동시에 확실히 그녀라면 그런 소리를 들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쳐 본 거라 못 알아봤어요. 와, 그럼 제가 이제 저분과 팀이 된다는 건가요?”

“다른 사람 오는 것 보고. 그런데 쟤보다 나은 사람이 올 것 같지는 않아서 그렇다고 봐야겠지.”

계약 만료로 팀에서 나온 쿠론은 지난 대회에서도 괜찮은 활약을 펼쳤기에, 커리어만 놓고 본다면 손색이 없다.

때문에 정명은 그녀에게 연락하여 쿠론의 면접을 진행한 뒤, 나중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통보한 후 조금 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에리?라는 분은 왜 안 보여요? 형이랑 친하잖아요.”

“미쳤냐? 면접 보는 데 엄마가 따라오게? 만약 그랬다간 평생 놀림권 획득이다. 엄청 쪽팔리는 거 아니까 그런 짓은 안 하지.”

“그래도 아는 사람인데…….”

“여기서는 안 통한다. 쿠론도 실력 테스트까지 하고 갔어.”

만약 그녀가 ‘우리가 남이가? 과거의 인연을 생각해서 뽑아도!’ 따위의 말을 했으면 당장 이력서를 분쇄기에 갈아 버리려고 했지만, 막상 진행된 인터뷰는 꽤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조금 철이 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제 딴에는 팀원과도 잘 지낼 거라고 얘기는 하는데, 잘 감시해야지. 아무튼 그 일은 됐고, 따라와. 네가 지낼 방을 소개해 줄게.”

그날 이후, 팀 구성은 급물살을 탔다.

정명은 쿠론의 입단을 확정 지었으며, 팀원을 뽑는 동안에도 자신이 없는 동안 북미 게임계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멤버를 영입하며 팀 구성을 마무리 지었다.

“저 이번에는 정말 은퇴하려고 했는데,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까 당분간만 함께할게요. 대신 꼭 이번에야말로 저 우승 좀 시켜 주십쇼. 저에게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입니다.”

“물론이죠. 이번에야말로 꼭 우승해 봐요.”

정명의 팀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이는 메테오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GLG라는 유명 팀에 몸을 담고 있던 게이머였는데, 원래는 힘든 프로게이머의 생활을 접고 개인 방송 쪽으로 전향할 예정이었지만, 정명이 ‘그래도 우승은 한번 해 봐야 하지 않겠냐.’는 논리로 설득하자 마음을 돌렸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이 명망 있는 게이머에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지. 프로게이머 생활 4년 동안 우승을 한 번도 못 한 것이 커리어의 흠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하지만 우승을 한 번도 못 한 것은 정명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정명은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뒤, 메테오는 마침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이것으로 팀 구성이 완료되었다.

메테오와 악수를 하는 것과 동시에 메시지창이 뜬 것은 덤이었다.

[축하합니다. 드디어 당신의 팀이 완성되었습니다!]

[보상으로 스킬 강화권이 주어졌습니다. 현명하게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스킬 강화권? 이건 또 뭐야?’

*

마침내 모든 팀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선수들은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몇 번 대화를 나눈 이후 어느 정도 어색함이 사라진 듯 보였다.

딱 한 명, 영어가 서툰 차석진만 빼고.

“저, 그런데 형. 이 팀에 코치님이라든가 감독님은 없어요?”

“그런 거 없다. 사실 눈에 차는 사람을 못 찾아서 일단은 이대로 갈 거야.”

정명은 그렇게 말하며 영어가 서툰 차석진을 대신해 북미 팀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 윈터 시즌의 목표는 이 팀이다. 팀 네오폴드. 우리는 이놈을 잡을 거야.”

정명은 모니터에 떠 있는 팀 마크를 가리켰다.

북미에서 최고라고 불리던 TBM. 그들을 꺾고 1위 자리에 올라간 C90. 그리고 C90을 꺾고 올라간 팀이 바로 네오폴드였다.

“TBM? C90? 뭔가 설명을 복잡하게 하시네요. 그러니까 네오폴드라는 팀이 지금 북미에서 제일 잘한다는 거죠?”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렇지. 거기에 엄청 잘하는 선수가 있다고 했는데… 저기요, 메테오! 그거 누구였죠? 네오폴드에서 엄청 잘한다고 했던 사람이요.”

“아, 해리요? 그 사람은 진짜 천재죠. 성격이 조금 더럽다고는 하던데 그건 모르겠고요.”

메테오는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다섯 명의 선수 중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그 사람은 정명의 눈에 꽤나 익은 사람이었다.

“분위기 읽는 건 빠른데, 피지컬이 조금 아쉽다고 평가되는 선수죠. 그렇다고는 해도 이곳에서 1티어급 선수로 평가받기에는 부족하지 않지만요.”

‘이 녀석, 역시나 성공했군. 이렇게 될 줄 알았어.’

해리.

정명이 SAO에서 활동하던 시절, 부모와 함께 연습실로 찾아와 프로게이머에 대한 조언을 듣고 갔던 그 꼬마(18화 참조).

당시 정명은 과거의 기억대로 해리가 서포터를 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했는데, 어째서인지 해리는 미드라이너로 활동 중인 것으로 보였다.

“천재? 흠, 그래요. 그 사람의 상대는 제게 맡겨요. 자신 있으니까. 그럼 우리도 한 시간 뒤에 첫 연습 경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연습 게임은 일부러 중위권 팀에게 요청했다.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지만, 처음에는 손발도 안 맞는 데다 되도록 이겨야 사기가 오를 테니까.

그런데 연습 게임 시작 전, 이례적으로 상대 팀의 코치가 정명의 연습실에 방문했다.

“오, 연습실 괜찮네. 돈 좀 썼겠어.”

“어서 와요, 브룩.”

연습실에 온 사람은 전 XTC의 코치, 브룩이었다.

브룩은 OMA에 이어 XTC까지 정명을 서포트하는 코치로 참여했었는데, 정명이 돈을 벌기 위해 잠시 일을 쉰 사이 북미의 한 구단에 새로 자리를 잡았고, 정명과는 지금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었다.

잠시간의 반갑다는 인사를 한 후.

대화의 주제는 이번 연습 게임으로 넘어갔고, 그는 팀이 최근 영입한 슈퍼루키라는 선수를 자신의 아들인 것처럼 자랑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새로 영입한 선수인데, 아주 기대가 커. 우리가 그를 영입하기 위해 얼마를 썼는지 맞혀 볼래?”

“어… 한 85,000달러쯤?”

“그건 네가 OMA로 옮겼을 때 받은 연봉 아니냐? 사실 그것보다 조금 더 돼. 10만이야.”

“아이고, 재수 없어라. 나처럼 검증된 사람도 아니고 생 초짜가 기대되는 루키라는 이유로 10만을 받아 가다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명은 내심 기분이 좋았다.

연봉이 늘어난다는 것은 수명이 짧은 것으로 유명한 프로게이머들의 대우가 그만큼 좋아진다는 것을 뜻했으니까.

정명은 자신이 고생했다고 하여, ‘나 때는 이렇게 힘들었는데. 너희들도 똑같이 힘들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흠, 뭐 아무튼. 그래서 새로 들어온 선수니까 제가 뭐 눈치껏 봐주거나 해야 하는 것은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오히려 조금 빡빡하게 해 줬으면 좋겠어. 우리도 그의 한계를 알아봐야 하고, 또 본인에게도 무척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그보다 너야말로 미드에 오랜만에 서는데, 괜찮겠어?”

“괜찮죠, 그럼. 과장 좀 보태서 고향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새로 팀을 짜며, 정명은 다시 한 번 포지션 변경을 감행했다.

정글러로 활약할 때 라인전이 터진다면 게임이 손쓸 도리 없이 떠내려가고는 했는데, 그게 한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라인전이 터지면 게임도 터지고, 내 속도 터졌지. 이번에는 그런 일을 최대한 줄인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첫 연습 게임이 시작되었다.

*

‘얘 뭐 하냐, 대체.’

정명은 슈퍼루키라는 사람의 환영술사가 움직이는 모습을 잠시 살펴보았다.

스킬로 인한 환영, 그리고 빠른 기동력.

왔다 갔다 하며 스킬을 쓰는 모양새를 보면 손은 빠른 것 같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저건 정명이 보기에 전혀 쓸데없는 움직임, 즉 그냥 겉멋이었다.

“그를 면접 볼 때 우리가 놀란 게 있는데…….”

“뭐요, 피지컬 좋다고요?”

“알아보는구나?”

하지만 그와 동시에 까불까불 움직이던 캐릭터가 번쩍번쩍 창을 몇 대 맞더니, 움직임이 조금 둔해졌다. 위축이 된 것이다.

“바쁘게 움직이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맞히기 어렵다거나 하지는 않네요.”

“그, 그래?”

정명은 백발백중으로 스킬을 맞추며 딜 교환을 한 뒤, 상대를 먼저 귀환 보냈다.

가뜩이나 환영술사는 라인 클리어가 좋지 않은 캐릭터. 이런 상황 하나하나가 바로 CS 격차가 벌어지는 것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여유가 생겨 다른 라인을 쭉 살펴보니, 아직 호흡을 제대로 맞춰 보지 못한 바텀라인을 제외하고는 라인전에서 우위를 점하며 잘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좋은 스타트야. 확실히 OMA 때보다 실력이 많이 올라갔어. 나도, 팀원들도.’

딱히 운영을 위해 이것저것 말할 필요는 없었다.

라인전에서 승부가 나자, 상대 쪽에서 먼저 항복 사인을 보내왔으니까.

정명은 코치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루키라는 사람, 혹시 기죽었을까요? 저도 이제 여기서 노인네 취급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라나는 새싹을 밟는다면 꿈자리가 사나울 거예요.”

“기죽기는? 문자 보니까, 오히려 빨리 다시 게임하자고 하는 분위기인 모양인 것 같던데. 솔로 킬까지 당해서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 봐.”

“그것도 좋죠. 그럼 곧바로 진행하겠습니다.”

*

‘이건… 완전히 지도 게임이로군. 정명이 라인전을 한 수 가르쳐 주고 있는 모양새야.’

그 후로 한 판, 그리고 두 판. 총 네 게임이 진행되었고, 그것이 마지막 경기였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도 슈퍼루키라던 사람은 기를 못 펴고 있었다.

‘이건 경험 부족… 아니 경험을 제외하고서라도 손 또한 정명 쪽이 더 빠르다. 이래서야 라인전에서 매번 솔로 킬을 당하는 게 당연하지.’

다른 라인은 최소 비등비등하거나 약간 유리하게 진행될 때도 있었지만, 유독 미드라인만큼은 매번 일방적으로 밀리거나 솔로 킬을 당했다. 마지막 게임까지.

연습 게임이 모두 끝난 후.

자신의 연습실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라탄 코치가 손을 흔들었다.

“많이 배우고 간다. 그리고 네가 인터뷰에서 우승이 목표라고 하던 거,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네.”

“칭찬 고마워요. 그럼 잘 가요!”

날씨가 매우 추웠기 때문에 정명은 서둘러 연습실로 돌아갔다.

연속 다섯 경기가 꽤 힘들었는지 선수들은 각자 편한 형태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고, 정명 또한 잠시 소파에 누워 시스템을 만지작거렸다.

[연습 게임 승리! 보상으로 7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흠, 700포인트라. 연습 게임치고는 꽤 많이 주… 아, 맞아, 더블 샷이라는 스킬 때문이었지, 참.’

*더블 샷: 획득 포인트가 두 배가 됩니다.

‘어? 잠깐만. 근데 이거 혹시…….’

스킬을 뭘 올려야 좋을까?

처음에 스킬 강화권을 받았을 때, 정명은 그것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하려고 했다. 이런 아이템은 분명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닐 테니까.

하지만 연습 게임에서 포인트를 획득했다는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던 정명은 나중에 엄청난 스킬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방침을 철회했다.

‘지금 바로 올린다.’

[스킬 강화권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실행한 명령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스킬 강화 성공! 스킬 더블 샷이 오버 클럭으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오버 클럭: 획득 포인트가 세 배가 됩니다.

‘좋아, 이거면 가능성이 보인다.’

포인트 10만의 벽. 그 돌파의 해답은 바로 이곳에 있었다.

*

“정명! 우리 팀에 관한 기사가 떴어요!”

경기를 얼마 앞둔 어느 날.

웹서핑을 하며 쉬고 있던 메테오가 호들갑을 떨며 정명을 불렀다.

“그래요? 최근 인터뷰한 게 없는데. 아, 그냥 분석 기사구나?”

그리고 기사를 읽은 정명은 진저리를 치며 한숨을 쉬었다.

“하, 그놈의 요즘 뉴비들은 엄청나다는 소리. 이거 무슨 유행어예요? ‘정명 선수는 아름다울 때 퇴장하는 것에 실패했다. 한참 후배에게 치욕을 당하는 모습을 팬들은 보고 싶지 않을 거다.’라니.”

“근데 요즘 뉴비들의 재능이 뛰어난 게 사실이긴 해요. 제가 왜 은퇴하게 됐냐면, 사실…….”

“아, 약한 소리 말고, 딱 기다려요. 내가 다음 주 경기에서 그놈을 박살 내면 이런 소리도 쏙 들어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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