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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28화 (128/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28화-----------------

저녁을 배불리 먹고 난 뒤, 휴식 시간.

정명은 소파 위에 누워, 게으른 자세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6시간 만에 켠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와 메일이 수도 없이 쌓여 있었다.

‘이 사람에게는 다시 연락 안 해도 될 것 같고. 이 사람은 그만 좀 연락하지, 부재중 전화가 20통이 찍혀 있네.’

1년 전만 해도 정명을 알아보는 사람은 꽤 드물었다.

하지만 이젠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귀찮을 지경이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의 전화는 대부분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이었으니까.

‘예능 프로는 나갈 시간이 없고, 한 PD? 이 사람은 내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때 날 무시했으니 거르고, 개인 방송 같이하자는 건… 조금 생각해 볼까.’

정명은 핸드폰 번호를 하나 더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베게 위로 핸드폰을 휙 던졌다.

그런데 핸드폰을 던지자마자 핸드폰이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아, 귀찮게.’

정명은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가서 핸드폰을 들었다.

밤중에 전화한 만큼, 별것 아닌 이유로 전화했으면 당장 차단할 생각이었지만, 이번에 전화를 건 사람은 조금 뜻밖의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캐릭터 스킨 제작을 담당하고 있는 마가니입니다. 올스타전 스킨 제작이 완료되어서 연락드렸는데요.

“스킨이요? 무슨 스킨이요?”

-…그 왜, 올스타전 일대일 매치에서 우승하셨잖습니까. 그것을 기념하기 위한 스킨이죠. 이미 정명 씨의 중국 서버 아이디에는 스킨을 넣어 놨습니다.

마가니는 스킨 판매금의 5%가 분기마다 입금될 것이라고 전하며 전화를 끊었다.

정명은 자신을 모티브로 한 스킨까지 생기자 기분이 묘해졌다.

‘기념 스킨이라…….’

야심한 밤.

보통 때라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잠들었을 정명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솔로 랭크 하시게요?”

“응. 오랜만에 개인 방송 좀 해 보려고. 안 한 지 오래됐으니까.”

실은 자신을 모티브로 했다는 스킨을 사용해 보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괜히 쑥스러워 말을 돌렸다.

티웨이는 솔로 랭크를 할 거면 같이하자 제안했고, 정명은 흔쾌히 수락했다.

정명은 곧바로 개인 방송 사이트에 접속했다.

메인 화면을 보니 밤이 늦었음에도, 수많은 BJ가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고자 눈물의 똥꼬쇼를 벌이며 어떻게든 눈길을 1초라도 끌어 보려 애쓰고 있었다.

“어, 저 사람 조금 예쁜 것 같아요. 한번 들어가 보죠?”

티웨이의 요청에 부응하여 정명은 한 여자 BJ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여자 BJ는 오그라들 정도의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달풍선 감사합니당! 후아는 너무너무 기뻐요!

“어? 왜 끄세요? 한창 재밌어지려고 하는데.”

“네가 나중에 시간 내서 봐라. 딱 10초 봤는데, 아… 너무 꼴 보기가 싫다.”

문제는 저런 미인이 그렇게 자존심 버려 가며 되도 않는 애교를 떨어도, 순위는 겨우 350위였다는 것이다.

정명은 프로 게임단의 제안을 걷어차고 스트리밍 사이트와 전속 계약을 맺은 유망주들을 떠올리며 혀를 쯧쯧 찼다.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겠지. 지금이야 선수 안 하고 전문적으로 스트리밍 방송을 한다고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갈지. 2년이나 가면 다행이겠군.’

“나도 이제 해야겠다. 티웨이, 지금부터는 말조심해라?”

“예.”

[환영합니다. 37일 11시간 만에 접속하셨습니다.]

-오, 이 사람 오랜만에 방송하네.

-방송 아직 안 하나? 언제 해요?

정명이 로그인을 하자마자 접속자들이 줄을 이었다. 아직 방송을 하지 않아 검은 화면밖에 보이지 않을 텐데도, 사람들은 기대감을 나타내며 삼삼오오 모여 떠들기 시작했다.

팀 랭킹 3위, 올스타전 일대일 매치 우승, 충성도 높은 팬클럽 등.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와, 진짜 대단하다. 로그인만 했는데 5분 만에 실시간 랭킹 200위를 돌파했어요! 미쳤다, 진짜.”

티웨이는 계속해서 우와, 우와, 하며 감탄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정명은 담담했다.

“5분은 아니지. 사실 더 걸렸어.”

“네? 음… 7분이었나? 아니, 10분쯤?”

“아니, 3년 정도. 여기까지 오는 데 그쯤 걸렸지.”

*

“상대가 엄청 잘하는 사람이라고요? 아, 유정명? 알죠, 알죠. 근데 그거 아세요? 프로랑 아마의 차이는 한타에서 나요. 그러니까, 라인전이나 솔로 랭크에서는 프로랑 아마의 경계가 희미해진다는 얘기예요.”

시청자들이 상대편에 있는 사람에 대해 경고했지만 인기 BJ, 보보는 자신만만했다.

그는 온갖 구단에서 러브콜을 받던 중국의 슈퍼 루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를 신경 써야 하는 프로보다는 조금 더 자유로운 아마추어 쪽이 더 좋았기에, 전문 BJ가 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게임 시작으로부터 10분 후.

보보는 카운터 정글을 오는 정명의 캐릭터, 설원 산적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이거 좀 이상한데요? 저 사람, 제가 어디 갈 때마다 기다리고 있네요. 아무래도 방플하고 있는 것 같은데?”

방송 플레이. 즉 상대방의 화면을 보며 게임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사실 개인 방송을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방플을 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이고, 개인 방송을 하며 방플을 하면 쌍욕을 얻어먹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보보의 추측은 시청자에 의해 금방 부정되었다.

-아닌데? 내가 지금 두 화면 다 켜 놓고 있는데, 방플 아님.

-아님. ㅋㅋ BJ 지금 엄청 쪽팔릴 듯.

보보는 그 시청자 둘을 곧바로 채팅 금지로 만들고, 일부러 화난 척 연기를 했다.

“저 사람이 먼저 방플 했으니 나도 방플 해야겠네. 아시죠, 이거 정당방위예요.”

보보는 뻔뻔하게 방플을 시작했지만, 크게 나무라는 시청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원래부터 대리 게임, 패드립, 방플 등… 비매너 짓을 일삼는 것을 콘셉트로 잡은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맵핵을 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고 있음에도 그다지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ㅋㅋ 맵 다 보고도 지네.

-AAIG 영입 제안 깠다면서? 그것도 뻥친 것 아님?

과격한 시청자들은 보보가 약점을 보이자마자 물어뜯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지고 있는 사람의 방송에서 떠나, 정명의 방으로 몰려가 버렸다.

*

-저 녀석, 방플 중임. 완전 개매너!

팬들이 분개했지만, 정명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괜찮습니다. 개인 방송이 원래 다 그런 거 감안하고 하는 거죠.”

방플로 인해 갱킹이 모두 막혔다. 하지만 정명은 빠른 타워 철거를 통해 한타 페이즈를 되도록 빨리 열어 버렸고, 방플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시켰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 저 사람이 누구라고요? 올 라운더? 모든 캐릭터를 잘 다뤄? 하하… 한 가지 캐릭터라도 잘 다루라고 하세요. 스트리밍 사이트가 선수들 많이 빼갔다고 하더니, 송사리들만 빼갔나 본데요.”

오랜만에 방송을 켰음에도 정명의 방송 랭킹은 5위까지 치솟았다.

인상적인 플레이에 사람들은 달풍선을 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30분 만에 적립금이 700만 원을 돌파해 버렸다.

그것을 슬쩍 본 정명은 선수들이 왜 그렇게 스트리밍에 목을 매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요즘 저런 사람들 많다는 거. 프로 제의 거절하고 개인 방송 쪽으로 가닥을 잡은 사람이죠? 근데 아셔야 할 게, 저런 사람 트럭으로 갖다 놔도 프로 못 이겨요.”

게임이 끝난 뒤.

고작 한 게임을 했지만, 한창 열 내면서 게임을 하다 보니 조금 피곤해져서 10분간 쉬기로 했다.

“아, 힘들어. 몇 년 있다가 카난이 스트리밍 사이트 다 먹으면 저런 놈은 방송 금지 하라고 좀 부탁해야겠다. 지금은 해 봤자 어차피 딴 곳으로 옮기니까.”

“카난? 영화배우요?”

“배우? 그건 모르겠고, 새로 사귄 부자 친구 있어.”

“그분이 이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높은 직책을 갖고 계신가 보죠?”

정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높은 직책이라기보다는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굳이 그런 얘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저 사람, 그래도 인기 엄청 좋아요. 실력뿐만 아니라 말재주도 있고. 악동 같은 느낌이죠. 오늘은 져서 조금 인기가 주춤하지만, 곧 회복할 겁니다. 안타깝지만.”

“그래? 상관없어. 그 재주 살려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해.”

“예?”

예상치 못한 대답에 티웨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정명을 쳐다봤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야 더 큰 절망감을 맛보지. 앞으로 길어야 2년이겠네.”

“아… 정말 성격 나쁘시네.”

인기를 얻는다는 것이 항상 좋은 일만 생긴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인기를 얻은 만큼, 악의 또한 함께 받게 된다. 그것은 이유가 있을 때도 있고, 이유가 없을 때도 있다.

그리고 지금 정명이 방송국에서 우연히 만난 우드는 그런 악의의 선두 주자였다.

‘저 뚱보는… 우드네. 아침부터 재수 없게.’

우드.

올스타전 연습에서 키보드를 부수는, 일명 샷 건 쇼를 했다는 소문이 돌자 실력은 좋아도 인성은 개차반이라는 평가가 도는 게이머였다.

우드와는 올스타전 이후, 보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되었다.

퀘스트 내용에 적혀 있던 말대로 된 것인데, 사실 올스타전은 그저 방아쇠에 불과했고, 원래부터 사이가 나쁘기는 했다.

‘에이씨, 다른 데로 돌아가자.’

정명은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며 발길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우드가 저 멀리 사라지자, 우드의 뒤통수를 보며 그의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우드]

피지컬 (91/93)

정신력 (57/75)

오더 (60/71)

판단력 (71/85)

*친밀도: 10(적대)

*현재 이 게이머와 적대 상태입니다. 적대 상태를 풀기 전에는 영입, 정보 공유, 연습 게임 등의 행위가 불가능합니다.

*영입 관련

-현재 연봉: 1,000,000$

-적정 시세: 800,000$

-영입 성공률: 0%

정명은 상태창을 열자마자, 눈을 잠깐 크게 떴다.

상태창에는 못 보던 정보가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정명이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보여 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정보를 읽고 있던 정명은 마지막 부분을 읽다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하이고, 이놈 연봉, 거품이구만? 아니, 그것보다 이런 놈 안 쓴다니까 그러네.’

정명은 우드의 영입 성공률이 100%가 된다 할지라도 그를 영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5개월 전, 정명은 올스타전을 위해 우드와 함께 생활했다. 그리고 그때 가장 짜증 났던 것은, 우드는 연습실에서 빵을 돌아다니며 먹는데, 그때 흘린 빵 부스러기를 치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쌓여서 대판 싸우게 됐지. 아니, 지금 당장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상태 메시지에 호기심을 느낀 정명은 다른 사람들의 상태창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런 정보가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번, 퀘스트를 마무리 지으며 무언가 메시지가 나타난 사람들에게만 이런 정보가 뜨는 것 같기도 했다.

‘팀을 창단하라고 부추기기라도 하는 건가? 하지만 팀 창단을 하기엔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팀을 창단하려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확신을 가지는 것.

팀을 만드는 게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이제 정명의 나이는 30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시간 낭비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으니까.

‘송하니와 떠들었을 때는 분위기에 휩쓸려 긍정적으로 대답하기는 했지만… 돈도 문제고. 송하니, 고것이 먼저 말을 꺼냈으니 운영 비용은 네가 대라고 해 버려? 아니, 그런 기둥서방 짓은 취향에 안 맞아.’

정명은 머리가 복잡해지자,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 뽑아 마시며 머리를 식혔다.

‘너무 걱정이 많은 건가? 어휴, 모르겠다. 기분 전환으로 남은 포인트라도 다 털어 내자.’

[현재 능력치]

피지컬 (89/100)

정신력 (85/100)

오더 (89/100)

판단력 (89/100)

[사용 가능한 포인트 36,080, 사용 포인트 16,000]

[정신력 스탯을 구입했습니다. 현재 스탯: 86]

[정신력 스탯을 구입했습니다. 현재 스탯: 87]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쩝, 정신력까지 89로 올리기에는 한 끗 부족했다.’

그래도 이번 시즌이 끝나기 전에는 모든 스탯을 89로 올리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스탯을 89로 만드는 순간, 무언가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지. 안 그러면 스탯을 90으로 올리는 데 드는 10만 포인트… 감당 못 한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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