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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18화 (118/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18화-----------------

김준상은 뭐가 그리 급한지, 아침부터 정명을 찾아와 투덜대기 시작했다.

“아, 정말. 그 녀석, 원래 XTC로 갈 예정이었죠? 왜 그런 녀석을 밖에다 풀어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녀석을 왜 뽑아 사서 고생하나요. 쯧쯧, 경고를 했건만.”

XTC와 비엔비가 계약을 해지한 직후, 기다렸다는 듯 비엔비를 낚아채 간 팀이 있었다. 김준상이 속해 있는 AAIG였다.

“당연히 그놈은 별로라고 말했죠. 했는데, 감독 입장에서는 실력만 있으면 그만 아니냐는 소리를 해서… 어차피 식스맨인데, 좀 써 보다가 안 되면 빼자는 건데, 연습실에서 같이 생활하는 건 선수라고요.”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비엔비는 AAIG로 가서도 말썽을 일으키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힘들어요?”

“힘들죠. 서로 성향이 반대인 사람들을 하루 종일 붙여 놔 봐요. 실력은 둘째 치고, 일주일도 못 가서 싸웁니다. 그렇게 일이 년을 보내라? 흠, 게임에서 킬을 내기 전에, 현실에서 먼저 킬이 나오지 않으면 다행일 것 같네요.”

“감독이나 코치한테 어필 좀 해봐요. AAIG의 에이스면 그 정도 말은 할 수 있잖아요?”

“했죠. 했는데, 그랬더니 선수 하나에 팀이 좌지우지되는 게 말이나 되냐고 난리를 피워서… 지금 심정대로라면 감독한테 찾아가서 저놈이랑 나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엄포를 놓기 직전이라니까요.”

정명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비엔비가 지금 김준상을 공격하기 위해 쓰고 있는 논리는 자신을 공격하던 때와 같은 맥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돈 보고 합니다, 돈 보고. 낯선 땅에 와서 돈 버는 재미라도 있어야 버티지, 안 그랬다면 진작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 같네요.”

하지만 정명이 보기엔 김준상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중국 생활을 꽤나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연습실로 돌아갈 때, 예쁘고 돈 많은 중국인 팬이 차로 김준상을 데리러 온 것을 보면 말이다.

‘저놈은 말로는 불평하면서도 재미는 혼자 다 보고 있다니까. 저러다가 코 꿰이지.’

*

그렇게 김준상을 보내고, 일주일 뒤.

정명에게 한 개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AAIG 감독의 메시지였다.

‘뭐지, AAIG의 감독? 내 번호는 김준상이 줬나 본데…….’

긴 메시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번에 AAIG에 새로 들어간 팀원, 비엔비에 대한 비난이 집중되고 있으니 너무 자극적인 인사는 피해 달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 팬들의 반응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정명으로서는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본인 스스로도 많이 반성하고 있으니,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고? 저기요, 매니저님! 이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어떤 거 말씀이신가요?”

정명의 부름에 허둥지둥 달려온 매니저가 공손하게 정명의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곧이어 메시지를 대강 보자마자 내용을 알아봤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아, 이거요? 이 녀석, 트위터 계정으로 뒷담화한 일이 꽤나 유명해졌거든요. 덕분에 신입 주제에 싸가지 없다며 욕을 엄청 먹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연락한 모양이네요. 큭큭, 그래도 그렇지, 구단주가 직접 양해를 구할 줄은 몰랐네요. 이 녀석, 그래도 실력은 좋은가 봐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매니저는 크게 웃기 시작했다.

서포터인 사오미가 웃음소리를 듣고 흥미가 동했는지 둘에게 다가와 대화에 참여했다.

“지금 막 궁금한 게 생겼는데요, 선수들을 뽑을 때 인성 같은 건 안 보나요? 그 왜, 로열 패밀리아의 명장, 타웨혼 감독도 인성을 가장 먼저 보신다고…….”

“인성 같은 걸 신경 쓰는 감독이 어디 있냐? 성적만 잘 나오면 그만이지. 인성은 좋으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그만인 옵션 같은 거야.”

매니저의 핀잔에, 정명이 거들었다.

“그 말이 맞아. 타웨혼? 내가 로열 패밀리어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들었는데, 그 사람도 실상 인성은 전혀 신경 안 쓴다고 하더라. 인성이 더러우면 악동이다 뭐다 해서 적당히 이미지로 포장하면 된다고. 네가 들은 건 그냥 인터뷰용으로 한 말 아닐까?”

“하지만 팬들이 선수를 욕하면 팀 이미지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텐데…….”

“괜찮아. 내가 여기서 1년쯤 보니까, 성격 더럽고 툭하면 패드립 치고 다녀도 실력만 있으면 인기 끄는 데 전혀 문제없더라고. 물론 실력도 없는데 성격도 더러우면 최악이겠지만!”

*

풀 리그이므로 모든 팀은 무조건 한 번 이상은 만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명은 꼴 보기 싫었던 비엔비를 경기장에서 봐야만 했다.

“뭐야, 저 녀석 식스맨이라고 하더니 오늘 나오네?”

경기 시작 2시간 전.

정명은 저 멀리서 비엔비, 그리고 AAIG의 사람들이 복도를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것은 정명뿐만이 아니었는지, 곳곳에서 야유가 울려 퍼졌다.

-우우우우우!

-감독은 뭐 하냐! 저런 놈을 아직도 데리고 있고!

그 모습에 안쓰럽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최소한 XTC의 매니저는 아니었다. 뿌듯하다는 미소가 얼굴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면.

“오, 정명, 생각보다 당신의 팬이 꽤 많나 봐요. 이러다 머지않아 팬클럽도 생기겠어요.”

“하하,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매니저는 저 버릇없는 녀석을 혼내 주라며 난리법석이었지만, 정명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저런 녀석, 일일이 신경 쓰기에는 급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며칠을 한솥밥을 먹었으니 이 정도는 정으로 해 줘야겠네, 한국인의 정으로.’

정명은 시간이 되자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게임 시작 후, 밴픽 단계에서 비엔비가 그렇게 싫어했던 ‘소드마스터 이’ 캐릭터를 한 번 더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이건 못 보던 픽인데요? 웨우 씨, 이 픽은 어떻게 보십니까?

-제가 한국 서버를 자주 해 봐서 아는데, 한국에서 저런 거 고르면 트롤 소리 듣습니다. 안 쓰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에요.

해설가들은 이상한 픽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정명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건너편에서 얼굴을 굳히고 있는 비엔비를 슬쩍 보고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소드마스터 이의 숙련도: LV3]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수준입니다. 당신은 이 캐릭터의 장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습니다.

*피지컬이 보정되지 않습니다. 숙련도 LV3은 피지컬 89까지만 적용됩니다.

‘쩝, 아쉽군. 89까지는 피지컬이 보정돼서 +3이 되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다니. 진짜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90의 벽을 넘어야 하는데, 90… 90이라.’

정명의 경험상 탑 티어라고 불릴 정도의 실력이 있다고 평가되는 선수들은 스탯 90을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손이 진짜 빠르다고 평가받는 선수들의 피지컬은 대부분 90을 넘었고, 게임을 정말 똑똑하게 한다는 사람들은 판단력이 90 이상이었다.

‘그리고 연습을 정말 독하게 한다는 사람은 정신력이 90을 넘었지. 정말 엄청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라니까.’

때문에 숙련도 보정으로 90까지는 어떻게든 비벼서 만들어 볼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숙련도 레벨 5까지는 가 봐야 무언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껏 정명이 플레이했던 100가지가 넘는 캐릭터 중 숙련도 레벨 5를 달성한 캐릭터는 하나도 없었으므로, 크게 기대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정명은 입맛을 다시며 게임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

미드라인이 새로 들어온 사람이라 걱정했지만, 오히려 미드라인은 별문제가 없었다. 상대방도 새로 충원되어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라인전이 무척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명은 미드에 핑을 찍었다.

“한 번 가 보자.”

“네!”

XTC에 새로 온 미드라이너, 네르가 불여우의 궁극기로 상대방에게 접근하는 순간, 정명의 캐릭터도 부시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비엔비의 캐릭터 태엽 로봇은 재빨리 점멸을 사용하여 위기를 벗어났다. 상대에게 점멸이 남아 있을 때는 갱킹 성공률이 대폭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갱킹 시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명은 기회만 있으면 집요하게 미드를 후벼 팠고, 비엔비는 중국에서의 첫 경기라 무척이나 긴장한 듯 제대로 된 움직임을 보여 주지 못했다.

-CC기가 전혀 없는 캐릭터인데, 성공률이 좋네요.

-비엔비, 좀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평소라면 그 모습을 엄청나게 깠을 해설자들이었지만, 비엔비가 중국 첫 무대라는 것을 감안했는지 무척이나 완곡하게 에둘러 이야기했다.

물론, 첫 경기라고 욕을 안 먹게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쯤 저 사람, 커뮤니티에서 욕 엄청 먹고 있겠는데요. 멘탈이 남아나질 않겠어요.”

“신경 쓰지 마. 중국어 잘 모를 테니까. 그리고 예전에 얘기했던 대로, 실력이 괜찮아지면 인기는 다시 쌓일걸?”

“…예. 그 전까지는 인성도 더럽고 실력도 없는 그런 선수로 기억되겠지만요.”

정명은 숨겨진 맛집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미드만 집요하게 들이팠다.

하지만 자연스레 다른 곳에는 신경을 덜 쓰게 되었기 때문에 부작용도 발생했다.

XTC의 바텀라인을 잡아먹은 AAIG의 원 딜러, 김준상이 무럭무럭 커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미드까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쟤네, 용 싸움 해 볼 생각인가 본데. 티웨이, 그냥 너도 탑에서 내려와라.”

“지금요? 아니면 싸우기 직전에 텔레포트 탈까요?”

“지금. 야, 근데 이거 자리 안 좋…….”

말이 끝나기도 전에 AAIG에서 먼저 이니시에이팅을 걸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명 또한 숨겨 두었던 무기 하나를 꺼냈다.

[5초 영웅]

이 스킬을 쓰는 사람을 상대하려면 상대방에서도 영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집중력이 늘어납니다.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을 정도로.

*피지컬이 95로 늘어납니다. 슈퍼 플레이가 일상이 될 정도로.

*판단력이 95로 늘어납니다. 상대방을 어떻게 상대할지에 대한 무수한 방법이 떠오릅니다.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피로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현재 정명의 정신력 스탯은 82.

정명의 경험상 82의 정신력 스탯으로는 기껏해야 경기당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었으므로, 신중하게 판단해서 써야 하는 스킬이었다.

‘이걸 쓰면 조금 머리가 아파지기는 할 텐데… 지금 써야겠다. 아끼면 똥 된다.’

[5초 영웅을 사용합니다.]

스킬을 발동 하자마자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막 와드로 텔레포트를 타는 티웨이, 그 와중에도 헛짓거리를 하며 일명 ‘공기팡’을 날리고 있는 비엔비. 마지막으로 마크하는 사람 없이 프리 딜을 넣고 있는 김준상의 역병 쥐까지.

정명의 목표는 물론 원 딜러였다.

-소드마스터 이, 화력 좋거든요? 붙기만 하면 순삭입니다!

서포터인 지옥 간수가 정명을 떨어뜨리려 애를 썼지만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버리는 정명 때문에 스킬을 쓰는 족족 헛방질이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실은 여유를 가지고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피하고 있는 정명이었다.

중계진의 해설대로, 소드마스터 이가 원딜에게 붙기만 하면 녹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하나 잡았다. 다음은?’

5초 영웅 스킬이 아직 1.5초 정도 남아 있었다.

두리번두리번 사냥감을 찾는 정명의 시야에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는 비엔비의 태엽 로봇이 들어왔다. 정명의 캐릭터는 여지없이 몸을 날렸다.

*

[리그에서 2 : 0으로 승리했습니다! 7,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휴… 다들 수고했어. 간만에 빡세게 게임했네.”

강적, AAIG전 에서의 승리.

아직 초중반이라 섣불리 결과를 예상하기엔 시기상조이지만, 매니저는 벌써부터 김칫국을 잔뜩 퍼마시고 있었다.

“AAIG를 2 : 0으로 꺾다니! 이번 시즌엔 4위… 아니, 3위까지 가능할지도 몰라요. 안 그런가요?”

정명은 매니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소파에 앉아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최대한으로 벌 수 있는 포인트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흠, 남은 포인트를 따져 보면 나머지 경기를 2 : 0으로 가져간다고 해도 안 되겠는데. 앞으로 그 녀석들을 상대하기 전에 90스탯까지는 올리고 싶었는데, 그거는 좀 힘들겠지,’

스탯 90의 아쉬움.

쉽게 가져갈 수 있었던 경기였지만 김준상의 슈퍼 플레이로 경기가 어렵게 풀렸기 때문에 그 아쉬움은 더 컸다.

김준상 역시 피지컬 90짜리 원 딜러였으니까.

“정명, 승자 인터뷰 좀 부탁해요.”

“제가요? 알았어요.”

정명은 생각을 뒤로하고 리포터가 건네주는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정명 선수의 움직임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팀 ME의 정글러, 샤우윈보다 낫다는 소리도 있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XTC의 다음 상대가 팀 ME죠. 어떤가요, 이길 자신 있으신가요?”

팀 ME는 중국의 1위 팀이자, 지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준우승을 한 팀이었다.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기색이 역력한 리포터의 질문에 정명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냥… 열심히 할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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