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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17화 (117/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17화-----------------

일정보다 중국에 조금 일찍 귀국한 정명은 성적에 관한 것은 미뤄두고, 한가롭게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점심시간.

식당가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던 정명은 핸드폰을 꺼내, 잠시 국내외의 이슈를 살펴보았다.

거물 스타 선수들의 계약 소식이 하나둘 오피셜로 갱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치란 놈은 완전 호구네. 팀에 대한 의리는 무슨, 돈 더 주면 나가야지. 그리고 또… 와, 송하니가 12억을 받고 이적했어? 이거 한국 기업에서 무리 좀 한 것 같은데?’

그러는 사이 다시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었고, 정명은 그제야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식당가로 들어갔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어라, 뭐지, 다 어디 갔어?’

북적거려야 할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길거리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적당한 식당으로 들어가자,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은 벽에 걸려 있는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생방송으로 진행 중인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역사적인 대결이 벌어지는 순간입니다. 오늘의 대결, 어떻게 보시나요?

-이번에야말로 중국이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니겠습니까? 한국과의 실력 차가 꾸준히 줄어들어 이제는 엇비슷해진 지금이야말로 한국에게서 우승컵을 뺏을 찬스라고 생각합니다.

-시청자분들도 같은 생각이실 겁니다. 이번에는 다르니까요. 우드, 냐메이와 같은 천재 선수들이 대륙을 지키고 있으니까 이번엔 무언가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정명은 가게 내의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게의 모든 사람들은 음식을 먹는 것도 잊은 채, TV 화면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 식당에서 월드챔피언십에 별 관심이 없는 건 정명뿐이었다.

‘어휴, 또 한국 대 중국이 결승이야? 아니, 그나마 한국 대 한국전이 아닌 게 다행이네. 결국 한국이 이기겠지만.’

지금 중국 해설들이 늘어놓고 있는 ‘이번에는 다르다.’, ‘한국과의 실력 격차는 좁혀지고 있다.’ 따위의 말은 중국이나 미국 같이 한국을 뒤따르고 있는 나라들의 단골 멘트였다.

물론, 그것이 증명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정명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도 경기는 시작되지 않고 질질 끌고 있었다.

정명은 나중에 다시보기로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식당을 나왔다.

*

이제는 윈터 리그를 준비해야 했다.

아직도 아무도 없는 연습실로 돌아온 정명은 다른 팀원들을 기다리며 방 청소를 하고, 심심풀이 삼아 솔로 랭크를 몇 번 돌려 볼 생각이었다.

정명은 먼저 현재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현재 능력치]

피지컬 (88/100)

정신력 (82/100)

오더 (81/100)

판단력 (82/100)

평균 능력치 83.2

어느새 정명의 능력치는 만렙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 정도 스탯이면, 이번 리그에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해 봐도 될 것 같은데? 아쉬운 건, 이젠 스탯이 더럽게 안 오른다는 거야. 젠장.’

정명을 놀리기라도 하듯, 정명의 스탯이 오르는 만큼, 새로 등장하는 신인의 실력도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명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뭐, 내 무기는 스탯이 전부가 아니니까. 좋아, 그럼.’

입맛을 다신 정명이 솔로 랭크 시작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컴퓨터에서 알림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뭔가 싶어 확인해 보니, 에리의 화상 통화 요청 메시지였다.

“오, 에리.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응, 나야 잘 지냈… 휴,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못 지냈어.”

에리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좋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중국 특유의 질 나쁜 공기를 오래 마시다 보니, 폐가 나빠져서 급히 미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원래 폐가 안 좋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악화될 줄은 몰랐어. 회복을 위해 일단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미안.”

“미안할 게 뭐 있어요? 걱정 말고 잘 치료하세요. 음, 그렇다는 건 쿠론도?”

“나를 따라오겠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에리의 유일한 가족, 쿠론은 현재 XTC의 미드라이너를 맡고 있었다.

때문에 주요 전력중 하나인 쿠론이 떠난다는 것은 팀의 리더로서 말려야 할 소식이었지만, 에리의 친구이기도 한 정명의 입장에선 에리에게 해줄 말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요. 몸조리 잘하세요. 어차피 계약이 끝나는 시점이니,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XTC의 매니저는 참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팀에서 쿠론이 빠진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매니저는 정명의 앞에 정체불명의 서류를 잔뜩 내려놓았다.

“뭐예요, 이게?”

“뭐긴요. 지금 당장 영입 가능한 선수들 리스트죠. 빨리 확인해 보세요. 남들이 채 가기 전에 좋은 사람을 잡아야죠.”

그 말에 정명은 쓴웃음을 지었다. 매니저가 발 빠른 대처가 고맙기는 했으나, 그 수고가 물거품이 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매니저님, 이미 제가 지금 생각해 두고 있는 사람이 몇 있어서요.”

“예? 누구요? 아, 말하지 말아 봐요. 제가 요즘 선수 보는 안목이 많이 넓어졌거든요? 한 번 맞혀 볼게요. 얼마 전 QAQ에서 탈퇴한 스피드 맞죠? TV에서 보니까 이 사람이 요즘 뜨는 선수라던데. 아니면…….”

정명은 몇몇 중국 선수를 거론하는 매니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에는 지난 시즌을 끝으로 망해 버린 팀들, 그리고 그로 인하여 백수가 된 선수들의 명단이 있었다.

‘이 사람으로 해볼까. 내 기억으로는 이 사람도 제법 괜찮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것 같은데…….’

쿠론이 빠진 후, 가장 크게 변화한 점이라면 역시나 팀의 외국인 T.O가 하나 남는다는 것이었다.

한 개의 팀에는 2명의 외국인 선수만 소속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기에 그동안 한국인 선수를 넣지 못했지만, 쿠론이 나감으로써 빈자리를 한국인으로 채워 넣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한국인을 저격한 규정이겠지만, 의도치 않게 쿠론에게도 적용됐었지. 이참에 한번, 한국인 선수를 써봐야겠다.’

*

이 동네는 소문이 참 빨리 퍼진다.

최근 정명이 한국인 선수를 영입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그 소문을 접한 다른 팀의 감독은 XTC의 연습실까지 구경 와서 정명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오, 저기에서 솔로 랭크를 하고 있는 저 사람입니까? 실력이 제법 좋아 보이는데.”

“그렇죠? 2부 리그에 있었다고 하는데, 잘 키우면 쓸 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팀과 잘 섞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겠지만요.”

정명이 영입한 사람은 비엔비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었다.

구단주가 부재중이라 계약서는 아직 쓰지 않았지만 계약을 하기로 구두로 얘기를 끝냈고, 3일 전부터 팀 호흡을 맞춰 보고 있었다.

“감독님의 팀도 선수 모집 중이지 않으세요?”

“예. 식스맨이지만요. XTC가 이번에 겪은 일처럼, 선수가 언제 빠질지 모르니까 식스맨을 하나 두려는 거죠. 정 선수도 이참에 식스맨까지 구해 놓는 게 어떻습니까?”

“그건 좀 제가 꺼려져서요. 선수가 경기도 못 뛰고 벤치를 지켜야만 하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나 해서 식스맨을 안 두고 있어요.”

정명의 말에 감독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월급만 제때 주면 벤치에 앉혀 놓든 경기에 내보내든 상관없다는 입장이었으니까.

그는 이러한 주제로 정명과 힘을 빼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어 가려 애썼다.

“혹시 비엔비 말고 눈여겨본 다른 사람도 있습니까? 그래, 티무셔라는 사람은 어떨까요? 출전 경기 수는 적어도 실력은 괜찮은 것처럼 보이던데.”

“예. 알긴 아는데, 저는 일단 보고 나서 결정하는 사람이라서요. 직접 보지 않고서는 어떻다고 말씀을 드리기가 좀 그래요.”

“아날로그적이시네요. 혹시 선수를 뽑는 나름의 기준이라도 있으십니까?”

감독은 나이 차가 상당함에도 정명에게서 무언가를 배워 가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한 모습에 의문을 가진 정명이 그 이유를 물어보자, 감독은 속내를 순순히 털어놓았다.

“요즘 유명해요, 정명 선수가.”

“제가요? 뭐… 그럭저럭 인지도는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요.”

“그게 아니라, 재능 있는 선수들을 싹 쓸어간다는 것으로요. 솔직히 선수 고르는 거, 열 명 중 한 명만 잡아도 성공이잖습니까. 이상한 놈들도 많고. 그런데 정명 씨는 참… 눈이 좋다는 평가가 많아요. 그래서 정명 씨가 눈여겨본 사람을 뽑아 가는 사람들도 생겼다니까요.”

조금은 황당한 말에 정명은 굳이 뭐라 하지 않고,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그것참, 이삭줍기 같네. 내가 흘리는 걸 줍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걸 들으니까.’

*

쿠론을 대신할 새 미드라이너는 모두의 환영 속에 XTC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하지만 환영식 때 잘랐던 케이크를 다 먹기도 전에 새로운 팀원과의 생활은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제가 일주일간 생활하면서 되게 이상한 점을 많이 봤거든요.”

“뭐가?”

“면접도 그 사람이 보고, 결정도 그 사람이 하고. 완전히 감독이 따로 없어요.”

새로 온 미드라이너, 비엔비는 한국에 있는 다른 선수와의 화상 통화에서 불평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정명이나 자신이나 똑같은 선수다. 하지만 정명에게 너무 많은 권한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중대사가 감독이나 코치의 주도하에 이뤄져야지,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뭐가 이상해? 에이스가 팀 분위기를 주도하는 게 그렇게 이상해?”

“그 권한을 넘어섰다니까요. 이거 제대로 된 팀에 온 건 맞는지 모르겠네.”

그렇게 불만이 쌓여가길 며칠.

여느 때와 같이 진행하던 연습 게임에서 비엔비는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

“게임이 길어지네. 사오미, 네가 적당히 끌려 봐라. 한타 열어 보게.”

정명의 캐릭터는 소드마스터 이.

정글러치고는 캐리력이 그나마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캐릭터였다.

극후반의 대치 상황.

상대방이 이니시에이팅을 걸려는 낌새를 눈치챈 정명이 오더를 내렸다.

“어, 그래. 그렇지. 그냥 끌려! 한타 가자!”

하지만 정작 마지막 한타 오더를 내린 정명은 구석에 숨어 있었다.

그동안 실컷 얻어맞은 다른 팀원들이 빈사 상태에 빠져 죽기 일보 직전에 이르러서야 정명은 모습을 드러냈다.

‘쟤네 궁 다 빠졌겠지? 지금이다. 가자!’

정명이 붙자마자 상대 원 딜러가 딱 세 방 만에 썰려 나갔다.

그리고 다음 목표는 미드라이너. 다른 팀원들의 발악으로 피가 반 정도 깎여 있었기에, 잡는 건 쉬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한타의 결판이 났다.

[XTC_jung, 펜타 킬.]

남은 시간은 60초. 다행히 라인은 좋았다.

정명 혼자서 2차 포탑, 억제기, 그리고 넥서스까지 부숴 버리고 게임을 마무리 지었다.

평소라면 수고했다는 선수들의 말이 연습실을 채울 타이밍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혼자 뿌듯해하는 정명에게 비엔비가 다가와서는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 이게 뭐예요. 한타 하자고 한 사람이 숨어 있으면 어떡합니까?”

“뭐가. 원래 이렇게 쓰는 캐릭터인데.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잘됐으니까 상관없는 거 아냐?”

비엔비는 결과보다는 그런 식의 플레이 방식이 짜증 나는 거라는 말까지는 꺼내지 못하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럼 그런 캐릭터를 왜 합니까. 아무도 안 쓰는 거잖아요.”

“자꾸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연습 게임에서 안 하면 이런 캐릭터를 언제 해 보겠냐?”

비엔비는 할 말이 더 남았지만, 이제 막 팀에 들어온 신입이라는 자신의 입장을 자각하고는 그대로 입을 닫았다.

말다툼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며칠 뒤, 한국에서 알게 된 한유리로부터 메일 한 통이 날아오면서 비엔비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오빠, 이거 오빠 얘기 아닌가요? 커뮤니티 사람들이 이거 무조건 오빠라고 지목하던데?

한유리가 보낸 사진에는 어떤 사람의 트위터 대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휴, 더러운 중국의 꽌시 문화. 친한 사람 편만 들어주는 게 너무 짜증 난다.

?구단주한테 말해 보지 그래.

-해 봤어. 안 통함. 내 생각엔, 구단주가 부모인 듯.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싸고 도는 게 설명이 안 됨.

그곳에 적혀 있는 것은 구단, 그리고 팀원들에 대한 불평불만들이었다.

한유리의 말을 들어 보면, 이 뒷담화가 한국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꽤 이슈가 되었던 것 같았다.

[이미 탈퇴한 회원입니다.]

‘계정을 탈퇴한 걸 보니, 본인도 일이 커진 걸 인지는 하고 있나 보군. 그렇다면 무슨 낯짝으로 연습실에 나올지 궁금해지는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명의 궁금증이 해소될 일은 없었다. 비엔비는 그날로 연락을 끊고, 연습실에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구단의 코치는 비엔비의 일 때문에 정명이 무척이나 상심했을 것이라 생각하여 정명을 위로해 주려 했지만 정명은 오히려 무척이나 덤덤해 보였다.

“괜찮아요. 이런 일 많이 겪었어요, PC방에서.”

“PC방에서?”

“네. 알바 하다가 아무 얘기도 없이 잠수 타는 애들이요. 그러면서 그동안 일한 시급은 내놓으라고, 안 주면 노동청에다 신고한다고 하는 애들이요. 얘 보니까 딱 그 생각나네.”

정명은 연습실에 나타나지 않는 비엔비를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다른 한국인 선수를 팀에 데려왔다.

비록 비엔비보다 피지컬적인 부분은 낮지만, 성격도 유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몇 주 뒤.

드디어 윈터 리그가 막을 올렸고, 정명은 리그를 준비하느라 그간 있었던 일들을 잊어버릴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AAIG의 김준상이 연습실 문을 두드렸다.

“아, 정말, 여기 주인장 좀 나와 봐요. 폭탄을 다른 곳으로 막 돌리면 어떡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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