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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115화 (115/226)

-----------------레벨업 프로게이머 115화-----------------

부산의 D-star 리그 시작 직전.

아이러니하게도 시합을 치르는 선수만큼이나 긴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경기장 맨 앞에서 경기를 기다리고 있는 키카오 프렌즈의 팬, 이치로였다이치로는 이번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하여 도쿄에서 부산까지 날아온 열혈 팬이었는데, 그는 무대로 뚜벅뚜벅 올라가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얼굴을 찌푸렸다.

“야, 저 오징어는 뭐냐? 스태프인가?”

이치로는 팀 키카오의 미인 선수들이 나오는 것을 기대했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무대에 처음 나타난 것은 처음 보는 어떤 남자였다.

이치로의 말에, 그의 한국인 친구 김형철은 그를 슬쩍 웃으며 말했다.

“오징어라니 큭큭. 그래도 너보단 훨씬 잘생겼는데?”

“아, 그래서 누군데. 스태프는 아니지? 넌 이런 거 잘 알잖아.”

“용병이야. 소미가 다른 일 한다고 탈퇴했으니까, 어디서 다른 놈 구해 왔겠지.”

“용병? 아, 그렇지. 이건 다섯 명이 하는 게임이니까, 한 명이 더 필요하지.”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이치로는 팀 키카오의 나머지 선수들이 하나둘 등장하자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하니 쨩, 하니 쨩! 다이스키! 당신을 만나러 바다를 건너왔어요!”

그렇게 한창 환호하며 소리를 지르던 이치로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진지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그보다 걱정이네. 용병을 구해 왔다는 게 하필 저런 녀석이라니.”

이치로의 진지한 말에, 형철은 ‘이 녀석이 웬일로 경기 이야기를 하지?’라 생각하며, 살갑게 대답했다.

“그래. 해외에서 뛰던 사람이긴 한데, 잘 모르겠어. 나름 괜찮은 성적을 냈다고는 하는데, 그래 봤자 해외 리그니까. 검증이 덜 됐어.”

“아니, 그 말이 아니라 그 용병이 시커먼 남자라는 게 불만이라는 말이야. 비기닝이라든가, 제니퍼 같은 쓸 만한 여자 선수들도 있을 텐데.”

그 말에, 형철은 이치로와 경기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 대신 조용히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법 잘하는데? 반응도 좋고, 움직임도 나쁘지 않아. 최소한 팀에서 1인분은 하는 것 같다. 좋아, 이번에도 땄군.’

*

그 시각, 팀 키카오 프렌즈의 부스 안.

정명은 손을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시야에 나타난 메시지를 읽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팀원들과 친하게 지낸다면 더욱 완벽한 팀플레이를 펼칠 수 있습니다.]

‘다 아는 걸 굳이 왜 귀찮게 말해 주는 거야? 저리 가라, 진짜.’

초보자 버프라고 하던 것은 버프라고 하기보다는 귀찮은 것일 뿐이었다.

정명은 정말 초보자에게나 나타날 법한 메시지를 거칠게 치웠고,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콤보 넣어, 콤보! 언니, 너무 느려요!”

계속해서 팀원을 닦달하고 있는 것은 송하니였다.

송하니는 오더는 아니었지만 승부욕이 무척 강했기에, 팀원이 실책을 저지를 때마다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다른 팀원들은 그 모습에 숨을 죽였고, 심지어 항상 무언가 불만이던 영주조차 여기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뭔지 알겠다. 송하니가 잡아먹었구만, 이거.’

군대에서도 계급이 낮은 후임이 만만한 선임과도 맞먹을 때가 있는데, 실력이 전부인 이곳에서라면 오죽할까.

정명이 보기에 송하니는 여기서 리더 자리를 꿰찬 듯했고, 그것은 게임 내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다섯 명 다 모일게요. 언니, 저한테 W 좀 걸어 주세요.”

송하니가 다시 오더를 내렸다.

모이라는 말에 정신이 든 정명은 잡생각을 지우고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오랜만에 겪는 VS 한국전 경기라 정명은 내심 긴장했지만, 경기 자체는 의외로 쉬웠다.

탑과 미드, 2라인이 라인전에서 이긴 상황이었으므로 그들이 태워 주는 버스를 잘 타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쉽게 이기면 좋지, 뭐. 그냥 분위기 정도만 익혔다고 생각해야겠네.’

그리고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과 동시에, 정명에게 퀘스트 완료창이 떴다.

[튜토리얼 퀘스트 완료!]

무척 힘들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계속 정진하십시오.

당신의 앞길에 승리만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포인트 200

*포인트 부스터(6번 남음)

*첫 승리는 기념할 만한 일입니다. 모든 팀원들은 오늘의 승리를 오랫동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일주일간 팀원과 친해지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언제나와 같은 완료 메시지와 보상 목록.

하지만 정명은 이번엔 실소를 흘릴 수밖에는 없었다.

‘포인트 200? 귀엽네. 하하…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에서의’ 첫 경기였지만.’

정명은 언제나처럼 참 알 수 없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메시지를 넘겼다.

그리고 진짜 보상은 다음 메시지에 있었다.

[D-star 리그 4강에서 승리했습니다.]

[10,000(+3,000)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역시, 리그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주는 포인트가 증가한다는 가설이 맞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북미에서 5,000포인트 주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하.’

정명은 오랜만에 포인트가 제법 많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며, 팀원들을 따라 부스에서 나왔다.

다음 날.

정명은 팀 키카오의 연습실에서 한국의 커뮤니티 사이트, 언벤에 접속하고 있었다.

자신의 한국 데뷔전에 대해 팬들이 어떻게 느꼈는지, 무척이나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미믹: 남자1 여자 4… 저기, 혹시 팀명이 하렘 게임단인가요?

맹탕: 근데 쟤네 약간 팀워크가 잘 안 맞는 듯. 다른 사람 쓰지. 제니퍼라든가.

?분홍토끼: 당연하지, 멍청아. 호흡 맞춘 지 얼마나 됐다고. 용병이 괜히 용병이냐? 생각 좀. ㅎ;

전프로임: 정명인가? 걔 플레이 이상함. 피지컬 딸려 보임.

?분홍토끼: 피지컬 좋은데? 존문가 등판 ㄴㄴ해.

언벤을 대충 살펴본 결과, 크게 나쁘지도 않고 크게 좋지도 않은 보통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정명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댓글을 다는 사람에게는 누군가가 일일이 반박 댓글을 달아 주고 있었기에, 정명은 그 사람의 댓글에 주목했다.

‘뭐지, 나랑 아는 사람인가? 아니, 이렇게 할 만한 사람은 딱히 내 주변에 없는 것 같은데…….’

‘분홍토끼’라는 사람은 열심히 정명을 변호하는 댓글을 달고 있었고, 정명은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댓글을 대충 확인한 정명은 소파에 누워 있는 송하니를 슬쩍 바라봤다.

송하니는 핸드폰을 열심히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꽤나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요즘 애들은 너무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사는 것 같아. 눈 나빠지겠네.’

정명은 그런 생각을 하며 연습실의 컴퓨터를 켰다.

다른 팀원들이 화장실을 가거나 잠시 간식을 먹는 시간.

정명은 그 틈을 이용하여 솔로 랭크를 돌리고 있었는데, 상대편의 무척이나 낯익은 아이디가 눈에 들어왔다.

중국의 3위 팀이자 김준상이 있는 팀, AAIG였다.

‘얘네도 한국으로 전지훈련 왔나 보네. 하긴, 월드챔 피언십에 나가는 팀은 너 나 할 것 없이 전부 몰려왔으니까.’

잠시 그때의 생각을 떠올리는 정명의 뒤로, 한유리가 다가왔다. 솔로 랭크 하는 것을 구경하려는 것이었다.

“AAIG… 정명 씨, 저 사람들이랑 하다가 졌죠?”

“아뇨, 이겼죠. 우리가 진 건, 중국의 로열 패밀리아예요.”

“아…….”

“근데 그렇다고는 해도 쟤네가 만만한 애들은 아니더라고요. 특히 저기, 김준상이라는 애가 있는데, 걔가 피지컬이 꽤 좋거든요.”

“그래요? 그러면 음… 이거 끝나고 연습 한번 하자고 할까요? 우리는 시간 되는데.”

30분 뒤, 갑작스럽게 중국 AAIG와의 대결이 성사되었다.

그 팀도 한가했는지 연습 게임이 가능하겠냐는 정명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습 게임을 시작하기 직전, 한유라가 정명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아, 그리고 정명 씨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한유라는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대회 아니니까 정명 씨가 오더를 맡아 주면 안 될까요? 정명 씨가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고 싶어서요.”

“응? 그건…….”

“그건 저도 궁금하네요. 부탁드립니다.”

유라와의 대화에, 코치가 끼어들었다.

코치는 팀의 성적을 끌어올린다는 정명의 소문을 들었다면서, 한번 보고 싶다며 부탁했다.

“코치로 있으면 이것저것 소문을 많이 접하게 되어, 하위권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하시던데, 그 비밀을 한번 볼 수 있을지요?”

그 말에 다른 사람들까지 기대 어린 눈으로 정명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결국 정명은 어깨를 으쓱이며 부탁을 수락했다.

“그래요.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을 상대로 오더라. 이거 참, 뭔가 어색하네.’

하지만 정명이 오더를 맡게 되자, 확실히 달라지는 부분이 있었다.

오더가 아니기에, 그동안 쓰지 못했던 스킬들을 풀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승리의 오오라: 팀 전체의 결속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승리의 기운이 팀원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액티브 스킬을 발동하면, 한 시간 동안 팀원들의 집중력이 20% 상승합니다.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연습 게임이라 무심결에 조금 기분이 풀려 있던 팀원들의 정신이 바짝 조여졌다.

그리고 정명이 사용하고 싶었던 스킬은 하나 더 있었다.

‘송하니와의 결속력이 제법 높아졌지? 같이 있던 시간은 짧은데, 생각보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오르는 것 같단 말이야.’

정명은 다시 한 번 송하니와의 결속력을 확인했다.

[결속력 66/100]

결속력이 65가 넘었기에, 이제부터 송하니와의 연계 스킬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정명은 게임 시작과 동시에, 팀워크를 올려 주는 스킬을 발동시켰다.

[임시 동맹] 스킬을 사용합니다.

-미드라이너와의 팀워크가 B+랭크로 유지됩니다.

-이 사람에게 있어, 당신은 믿을 수 있는 동료입니다. ‘협공’ 시보다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게 됩니다.

‘좋아. 저쪽이 원 딜러를 주축으로 움직이는 팀이긴 한데… 일단 미드 위주로 가 볼까.’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자, 정명은 곧장 미드로 향했다.

“야, 가자. 핑 찍으면 알지?”

“응!”

상대방의 곰 마법사가 라인 중간을 넘어섰다.

그리고 그 순간, 핑을 찍을 필요도 없이 두 사람은 동시에 곰 마법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야호! 이거 참 쉽네. 헤.”

경기는 하니의 말대로, 참 쉽게 흘러가고 있었다.

애초에 AAIG의 미드라이너가 이기기 힘든 싸움인데, 정명의 백업까지 갖춰지자 가는 족족 미드라이너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기 시작 전, 상당히 잘하는 팀이라고 정명이 미리 말해 뒀던 것이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오빠, 오빠, 우리 뭔가 조금 되는 것 같지 않아? 솔직히 1년간 호흡 맞췄던 소미 언니보다 더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아.”

“그래? 소미 언니가 들으면 섭섭하겠네.”

“괜찮아! 어차피 이제는 은퇴한 언닌데, 뭐.”

미드가 무너지니, AAIG의 에이스, 김준상이 무언가 활약을 해볼 수도 없었다.

정명은 바텀라인의 4인 다이브를 통해, 김준상이 성장할 가능성을 0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자 김준상에게서 한글로 된 채팅이 날아왔다.

-항복이요. 20분은 안 됐는데, 방 깨고 다시 하죠. 이거 못 이기겠네요.

그 채팅을 보며, 정명은 허탈하게 웃었다.

‘이것 참, 이렇게 쉽게… 그토록 고전한 상대였는데……. 이래서 구단들이 스타 선수를 영입하려고 기를 쓰는 건가? 아니면 선수와의 호흡이 중요한 걸지도 모르겠네…….’

첫 경기가 끝나고, 10분간의 쉬는 시간.

코치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정명에게 다가왔다.

“이대로 몇 경기 더 연습해 보죠. 그리고 결과가 괜찮으면 이번 마지막 경기에서 오더를 정명 씨로 돌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지 않나요? 솔직히 말해서, 이 팀이 곧 해체될 팀만 아니었으면 정명 씨를 영입하려고 고민 중이었을 겁니다. 하하.”

*

그 시각, 부산의 한 호텔.

현직 프로게이머, 김형철은 이번 리그의 마지막 두 팀, 팀 키카오와 팀 로크의 전력을 분석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로크 쪽이 우세하군. 아무리 송하니가 미드에서 버티고 있다지만, 키카오에서 1명 빠진 게 은근히 커.’

그가 볼 때, 팀 로크가 이길 확률은 최소 60% 이상이었다.

“하지만 키카오는 엄청 잘하는 팀이잖아? 확신하는 이유라도 있어?”

김형철의 친구이자 돈줄, 이치로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지만, 김형철은 로크의 전력이 우세하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키카오? 잘해. 잘하는데, 한 명 빠진 게 크지. 탑솔러면 그나마 좀 나은데, 빈 게 정글러니까 한숨 나오는 상황이라고. 용병의 실력 문제가 아니라, 팀워크 문제니까.”

“탑솔……?”

“보통 혼자 노는 라인이거든. 거기다가 로크와 키카오의 정규 리그 성적은 동률. 그런데 로크는 전력이 그대로이고, 키카오의 전력은…….”

길어지는 설명에, 이치로는 김형철의 말을 급히 끊었다.

“야, 그런 것까진 모르겠고, 그럼 네 말 믿고 로크에다 10만 건다?”

송하니의 열렬한 팬, 이치로의 변절에 형철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송하니 팬이라며. 근데 너무 쉽게 바꾸는 것 아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덕질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거든? 이번에 송하니 토끼 인형이 포함되어 있는 절판된 앨범이 옥션에 나왔는데, 그거 사려면…….”

“알았어, 알았어. 나는 역 배당에는 취미 없는 사람이니까 걱정 말고 걸어. 이번에 키카오가 이기면, 걔네 도핑 검사 해야 돼. 그만큼 이기기 힘들어. 그리고…….”

김형철은 말을 하다 말고,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기억에서 정명은 여전히 그냥 그런 선수였다.

그리고 며칠 뒤.

D-star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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