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14화-----------------
매니저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송하니가 가리키고 있는 아이디만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하지만 팀의 코치는 그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손바닥을 짝, 마주쳤다.
“아, 그거 나 알아. 짧은 시간 활동했지만, 엄청 유명했던 팀이었지. 이름 대면 알 만한 사람들도 이 듀오를 만나겠다고 휴가까지 반납한 채 돌아왔다는 소문도 있었고.”
“오, 역시 경험 많은 코치는 달라. 뭘 좀 아는구나! 에헴, 내가 그때의 일을 자세히 말해 줄게. 잘 들으라구.”
송하니는 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고, 팀원들은 이 이야기가 진짠지 가짠지 반신반의하며 멍하니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수많은 고수를 물리치고 랭킹 5위를 차지하자마자 그만뒀지. 아차 싶었거든. 너무 혈기왕성한 시기라서 그만 일을 저질러 버렸던 거야.”
언제나 그렇듯, 송하니의 이야기는 진실과 허풍이 반쯤 섞여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팀의 왕언니, 한유라는 피식피식 웃으며 송하니의 볼을 꼬집었다.
“그런데 의외네. 그 사람, 욕도 엄청 많이 하고 다녔잖아. 그래, 이 입에서 그런 험한 말이 나왔다는 거지, 응?”
그 말에, 하니는 볼이 꼬집혀 발음이 잘 안 되는 상태에서도 황급히 부정했다.
“아니, 구거 나 아냥. 나는 모두의 아이돌이니까, 고운 말만 하는 소녀라궁… 헤, 헤헤, 헤.”
사람들은 조금 놀라거나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애초에 방송 경기도 아니고, 자료도 썩 많이 남아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야기를 무척이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 딱 하나 있었다.
용병을 선발하는 내내, 계속 틱틱대며 삐딱 선을 타던 정영주였다.
“이야기가 조금 샜는데,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하니,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좋아. 한번 봐 보자고. 그 늙다리가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갖고 있는지 말이야.”
*
다음 날.
팀 키카오의 연습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는 정명은 평일 아침부터 피시방에 나와 있었다.
일하기로 되어 있었던 아르바이트생이 연락을 끊고 잠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아르바이트생은 큰 실수를 한 게 틀림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돈을 받아가는 꿀 알바는 전국을 아무리 뒤져 봐도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근데 아무리 평일 아침이라도 그렇지, 손님이 한 명도 없는 건 너무한 거 아냐?”
사실 그럴 만도 했다.
맞은편에 생긴 대형 피시방에서는 지금도 이벤트 도우미들과 함께, 한 시간에 500원이라는 파격적인 정책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었으니까.
‘슬슬 피시방을 정리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하여튼 피시방이라는 사업은 너무 수명이 짧아.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힘들고, 주기적으로 컴퓨터 업그레이드도 해 줘야 하고 말이야.’
정명은 손님이 없었기에 핸드폰만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정명에게 때마침 메시지가 날아왔다. 메신저를 확인해 보니, 송하니에게서 날아온 메시지였다.
-님아, 지금 ㅇㄷ?
정명이 피시방이라고 답했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정명이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도 슬슬 까먹고 있을 때쯤, 드디어 첫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들어온 사람은 조금 말라 보이는 남자였다.
그 남자는 자리에 앉기보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피시방을 살피고 있었다.
‘뭐야, 이놈은. 거기다 피시방에 양복?’
이상한 손님은 말도 없이 나가 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이번에는 무척이나 시끄러운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안녕! 여전히 장사 안 되네~ 내가 알바할 때는 사람 넘쳤는데!”
“어… 뭐야, 하니잖아.”
들어온 손님은 하니였다. 그것도 그 남자랑 함께 있었는데, 하니는 그 남자를 팀의 매니저라고 소개했다.
“사람이 많으면 불편하니까, 혹시나 해서 매니저 씨 먼저 보내 봤지. 뭐, 이 피시방이면 사람 없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하니는 그렇게 말하며, 사람이 많으면 변장을 하고 만났을 것이라 덧붙였고, 그 말을 들은 정명은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변장? 네가 무슨 연예인이냐? 쯧쯔, TV에서 이상한 것만 배워 가지고.”
“일단 말해 두는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어. 내가 지금 밖에 나가기만 하면… 에휴~ 됐다. 허구한 날 외국에만 있는 외국인에게 무슨 말을 하겠어. 말을 말아야지.”
“그래, 말하지 마라.”
“아니, 진짜 들어 봐. 내가 나가기면 하면!”
송하니는 자신의 인기를 자랑하고 싶었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그런 송하니를 옆에서 팔꿈치로 툭툭 치는 사람이 있었다.
정명이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갈색 머리에 귀에 피어싱을 하고 있는 여자였다.
“친구랑 같이 왔네?”
“응. 울 팀에 있는 언니야. 영주라고 해, 정영주.”
조금 까칠해 보이는 여자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정영주입니다.”
정영주는 그렇게 말하며 송하니에게 눈짓을 보냈고, 송하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 오빠, 이 언니랑 랭크 좀 돌려 주라, 이 언니가 오빠 팬이래.”
“랭크? 랭크 게임?”
정명은 다시 갈색 머리 여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언니라는 사람은 팬이라고 하기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정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을 보면, 팬이라기보다는 싸우자고 온 사람 같았다.
“어려울 건 없는데, 나 카운터 봐야 돼. 오늘도 알바가 도망가서 나온 거야.”
“제가 대신 보겠습니다.”
매니저라는 사람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명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요, 그럼. 피시방 알바해 본 적 있으신가 봐요?”
“아뇨, 가르쳐 주시면…….”
그리고 그 말을 받은 건 한숨을 다발로 뱉으려는 정명이 아니라,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하니였다.
“그냥 지금부터 문 닫아. 오늘 여기 통째로 빌릴게.”
“어, 진짜로?”
“응. 얼마면 돼?”
얼마면 돼. 그 말에 정명은 무심코 ‘오, 아이돌 스웨그, 대단해!’라며 감탄할 뻔했다.
지금 이곳이 손님이 하나도 없는 피시방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 생각까지 다다른 정명은 얼마라고 답해 주기보다는 한숨을 쉬며 피시방의 문을 탁, 잠갔다.
“에휴, 너한테 돈을 받긴 뭘 받겠냐. 알았어. 오늘은 문 닫지, 뭐. 어차피 오늘 장사 망했어.”
“야호!”
여러모로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랭크 게임을 같이한다는 게 어려운 것도 아니니 못 해 줄 것도 없다.
정명은 영주 옆에 자리를 잡았고, 정명의 팬이라던 정영주는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정명을 쳐다봤다.
“저기, 게임할게요?”
“예.”
송하니가 자신의 조그마한 비밀을 털어놓았을 당시, 다른 사람들은 웃으며 신기하다, 그 거짓말 진짜냐 정도의 반응을 보였지만 영주는 달랐다.
‘내가 가야 할 길이 바로 거기에 있었어. 나도 그런 경지까지 올라갈 수만 있다면…….’
평범한 재능을 갖고 있는 정영주는 천재들을 질투하면서도 동경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영주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둘의 플레이에 매료되었으며, 그 듀오가 사라지자 가장 아쉬워한 사람 또한 바로 정영주였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아이디에 로그인을 한 것을 보면 진짜 같기도 하고……. 뭐, 게임을 해 보면 알겠지. 진짜인지 아닌지.’
둘의 포지션은 미드 정글 듀오. 예전에 하니와 정명이 한 것 그대로였다.
게임을 하며 영주는 은근히 정명에 대해 물었다.
“하니에게 들었는데, 예전에 하니를 가르친 적도 있다고 하시던데, 그거 진짠가요? 저 천재를?”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그건 쟤가 아마추어일 때 이야기죠. 지금은 저보다 더 잘할걸요?”
점수대가 점수대이니만큼, 그리고 한국 서버이니만큼 솔로 랭크를 하는데도 수준이 만만치가 않았다.
게임이 잘 풀리지 않자, 정명은 스킬을 사용하려 했지만 사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볼 뿐이었다.
[팀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집중력 강화 스킬 같은 건 다 막혔네. 이런… 이 녀석이 나를 아직 팀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송하니는 태평한 모습으로 매니저와 함께, 마음대로 가게의 아이스티를 뽑아 먹고 있는 중이었다.
“하니야, 이거 마음대로 뽑아 먹으면 안 되는 거 같은데…….”
“괜찮아요, 괜찮아. 헷, 이거 공짜로 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다.”
‘에이씨, 저 녀석은 도움이 안 된다. 빨리 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빨리 끝내는 게 낫겠는데.’
상대는 구단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유명한 아마추어.
요즘 아마추어들의 수준이 장난 아니라는 소문이 진짜였는지, 프로가 아님에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미드를 이쯤에서 끊어 주는 게 좋겠지.’
“지금 미드로 갈 거예요. 준비해요.”
“지금요? 지금은 와 봤자 할 게 없을 것 같은데… 알았어요.”
정영주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정명의 판단대로라면 상대방의 정글러가 미드에 갱킹을 넣을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정명이 미드에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상대방의 정글러가 덮쳐들었다.
“어!”
영주가 깜짝 놀라 탄성을 질렀고, 정명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스킬인 1초 용사 스킬을 사용하여 대응했다.
정글과 미드의 2 : 2 전투였다.
“빼지 말고, 붙어!”
정명은 미니언에 겹쳐 있는 상대 캐릭터에게 용케 스킬을 넣으며, 궁극기 모션을 취소시켰다.
하지만 상대는 여전히 살아 있는 상황이었기에, 정명은 할 수 없이 연속으로 스킬을 사용했다.
[주의하십시오.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뭐 해요! 당신도 점멸로 따라붙지 않고!”
“네, 네! 아, 잡았다…….”
연속해서 1초. 과도한 스킬 사용 때문인지 정명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아, 이마를 부여잡았다.
‘겨우 잡아내긴 했는데, 머리가 좀 아프네. 쯧.’
순식간에 끝났던 2 : 2 소규모 싸움이었지만, 실력을 대충 가늠하기에는 충분한 플레이였다.
그리고 모습을 바로 옆에서 겪었던 영주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손이 꽤 빠르시네요. 진짜든 아니든, 딱지치기로 월드 챔피언십 가신 건 아닌 것 같아…….”
“뭐가요?”
메카 듀오로 활동할 때보다는 조금 부족한 움직임이었지만, 쉽게 볼 수 없는 컨트롤임은 분명했다.
그 순간을 복기하며 멍하니 있던 영주는 송하니가 오자마자 계약 얘기를 꺼냈다.
“응? 뭔데, 뭔데? 뭐 했어?”
“하니야.”
“응?”
“이 사람이 낫겠다. 계약하자고 하자.”
정명은 그제야 뒷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계약 얘기부터, 팀원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위해 일명 메카 듀오로 활동한 과거까지 까발렸다는 것 전부.
“야, 이게 무슨 소리야. 계약은 조금 생각해 본다고 했잖아.”
“미안, 미안. 그렇게 얘기가 됐어. 어… 화났어?”
“아니, 됐다. 하지, 뭐. 지금은 별다른 일도 없으니까.”
약간 불평을 하긴 했지만, 정명은 결국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꽤 용돈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명은 그제야 리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리그가 일주일 만에 끝난다고? 무척 짧네…….”
“이번 리그는 LOH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도 하다 보니까 일정이 그렇게 된 거야. 요즘은 이런 리그가 제법 있다구.”
리그는 6강으로 진행되며, 송하니의 팀은 이미 부전승으로 4강에 진출한 상태였다.
“그래, 우리 첫 상대는 누군데?”
“팀 IWC. 천천히 조이는 운영이 일품인 팀이야. 정규 리그에서도 참 속 썩이던 녀석들이지, 응. 뭐, 그래 봤자 나한테는 안 되지만. 헷.”
“그래, 좋겠다.”
“아무튼 이제부터 우리 연습실로 나오라구. 이 녀석들 잡으려면 남은 시간이라도 열심히 해야 하니까.”
“연습은 누구랑 해? 지금 연습 상대가 남아 있나?”
정명은 이런 시즌을 포함하여, 항상 괜찮은 연습 상대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기에 이런 질문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하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연습 상대는 많지. 여긴 한국이니까.”
*
일주일 후, 부산의 한 경기장.
주변에서는 온통 한국어가 들렸다.
한국어를 쓰는 관중부터 시작해서, 저 멀리에는 개인적으로 잘 아는 이동호 해설까지 보였다.
정명으로서는 무척이나 어색한 광경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정명은 막 도시로 상경한 시골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오빠, 오빠, 뭘 그렇게 신기하게 보고 있어?”
“처음으로 한국 리그에 참가하는 것이 뭔가 어색해서. 어휴, 참 멀리도 돌아왔다, 정말.”
“그래?”
“어. 내가 처음으로 리그에 나가려 했을 땐 뭐랄까,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못 나갔으니까.”
그 안 좋은 일 때문에 연습생 생활을 때려치우고 한국을 벗어나, 북미의 밑바닥부터 시작한 것이기도 했다.
“그럼 가자. 내가 만약 한국 대회 첫 출전에서 이기면, 기념으로 저녁 쏠게.”
정명이 그렇게 말하며 경기장으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명은 퀘스트 메시지이겠거니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메시지를 띄웠지만, 이번에는 조금 특이했다.
[리그 첫 출전!]
[모든 것이 어색한 당신에게 초보자 버프가 부여됩니다.]
정명은 황당하다는 듯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지금 몇 년차 게이머인데, 초보자 운운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