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 프로게이머 113화-----------------
“네가 있는 팀의 용병으로 들어오라고?”
정명은 무슨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냐는 듯 하니를 쳐다봤지만, 하니의 표정은 진지했다.
“왜, 바빠? 근데 어차피 할 일 없잖아.”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너희 팀 사람은 어쩌고? 거기다, 리그 다 끝났는데 용병을 왜 구해?”
“응? 우리 팀에 있던 소미 언니가 팀을 나가게 되었잖아? 그래서 한 명 구하는 거지. 팀원이 네 명이 되었으니까.”
하니는 자신의 팀에 일어난 일을 정명이 아는 게 당연하다는 걸 전제로 이야기했지만, 한국 프로 게임판의 가십거리에 관심이 없는 정명으로써는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처음부터 좀 말해 줄래? 그래, 무슨 리그가 열리는지부터 말이야.”
정명의 말에 하니는 기쁜 듯 과장스럽게 팔짱을 끼었다. 아는 체 할 수 있어서 기쁜 것이었다.
“이것 참, 할 수 없네.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밖에. 근데 이거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된다? 나도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는 전제하에 들은 이야기니까.”
“알았다, 알았어. 어디 가서 말 안 할게.”
그리고 송하니는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형제 팀이 이제 다 없어질 거야. 그렇다면 두 팀 중 하나는 해체되겠지.”
“흠, 그래? 벌써 그렇게 되는 건가.”
그것은 정명이 이미 과거에 알고 있었고, 과거에도 예측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때문에 정명은 밋밋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고, 그 모습을 본 하니는 정명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형제 팀이란, 그 왜 있잖아. 한 기업에서 두 개의 팀을 운영하는 것을 말해. 그러니까, 그거를, 뭐라고 말해야 하나…….”
“사전적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 아무튼 그거 안됐네. 실업률이 높아지겠어.”
정명의 덤덤한 반응에, 하니는 무척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안 놀라, 기껏 알려 줬는데! 이거 지금 몇몇 사람밖에는 모르는 거거든?”
“그야 뭐, 이렇게 될 수순이었으니까. 다들 알고 있던 사실 아닌가?”
한국에서 형제 팀을 없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두 가지가 대표적이었다.
하나는 형제 팀의 경기 조작 논란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해외에 빠져나가는 선수들을 지키기 위한 자금력 확보.
정명의 기억보다는 시기가 조금 빨라졌지만,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기에 전혀 놀라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는데, 아직은 한국뿐인가.”
“하지만 한국에서 하면 다 따라할걸? 서울대에서 입시 정책을 내놓으면, 다른 대학에서도 다 따라 하는 것처럼!”
“그건 잘 모르겠고,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게 리그가 열리는 거랑 무슨 관계가 있는데?”
송하니의 말은 두서가 없어 알아듣기 조금 힘들었지만, 정명은 적당히 알아들었다.
‘이번에 열리는 리그는 공개 경연 비슷한 건가 보군. 이렇게 대단한 실력을 지닌 선수가 계약에서 풀렸으니, 관심 있는 팀은 연락 주세요, 라고. 뭐, 그래도 팀을 못 찾는 선수가 더 많겠지만.’
팀이 네 명이 되었지만, 그 리그에 나가고 싶으니 용병이 되어 달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너희가 거기에 끼겠다고? 왜?”
“아이, 진짜. 우리 같은 유명한 팀이 몇 개는 있어야 이야기가 되지, 응. 리그의 흥행 말이야. 두유 노 송하니?”
그 말에 정명은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송하니는 정색하며 말했다.
“주목받는 건 중요해. 그래야만 선수들에게 최대한의 기회를 줄 수 있으니까.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리그를 개최하는 의미가 없어. 뭐, 그렇다고 일부러 져줄 건 아니지만.”
“오, 너, 참… 제법이네. 다 컸어.”
정명이 엄지를 추켜세우자, 하니는 쑥스러웠는지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 그런 대단한 이유만 있는 건 아니고, 사실 우리도 별로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는 못 했거든. 겨울에 팀 해체하는 것 때문에, 언니들이 집중을 못 해서… 월드챔피언십 결정전에서 떨어진 것도 그런 이유가 좀 있어. 그래서 만회 좀 해 보려고 했지. 팀 해체하기 전에.”
“뭐, 팀 해체? 왜 이렇게 갑자기…….”
갑작스러운 폭탄 선언에 정명은 화들짝 놀랐지만, 송하니는 정명이 이상한 데서 놀란다며 황당해했다.
“이런 거야, 뭐… 다들 알고 있던 사실 아닌가?”
송하니의 연습실에서 이야기를 하고난 뒤의 다음 날.
정명은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고 있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넘어간 옛 동료, 조시였다.
“조시, 잘 지냈어? 그런 것 같네. 살 많이 빠진 것 보니.”
“응. ‘잘 지냈어.’ 하하…….”
조시는 한국에 잘 적응했는지 어색한 한국어로 인사했고, 정명은 그 모습을 보며 하하 웃었다.
“오, 한국말 잘하네. 완전히 한국인 다 됐다, 야.”
조시는 손목 재활 치료를 하며,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나름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듯했다.
“학원에서 애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너무 게임 이야기만 해요. 대화할 주제가 그렇게 없는 건가?”
“혹시 너를 알아보고 그러는 건… 아니겠군. 모습이 이렇게 변했는데, 알아보는 게 신기하지.”
“그래서 나랑 일대일 떠서 진 사람들은 더 이상 게임 얘기 꺼내지 말라고 못 박았죠. 그랬더니 이제는 더 심하게 게임 얘기를 해 대서… 하하.”
잠시 후, 이야기의 주제는 돌고 돌아 정명의 근황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정명은 상담 겸 어제 송하니에게 받은 제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래요? 용병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이라. 근데 왜 거절하셨어요? 용돈이나 벌면 좋을 것 같은데.”
“나야 뭐, 웬만해서는 하려고 했지. 그랬는데 알았다고 하자마자 뭔가 이것저것 계약서를 잔뜩 들이밀더라고. 조금 보다가 머리 아파져서 생각 좀 해 보겠다고 하고 나왔어.”
송하니는 기존의 계약서 외에, 다른 서류들을 잔뜩 꺼내 놓았다. 그리고 이게 뭐냐는 정명의 질문에 ‘나도 잘 몰라. 매니저가 적당한 사람 찾으면 이거 주래.’ 따위의 말을 할 뿐이었다.
때문에 정명은 천천히 보겠다고 하며 계약서만 받아 왔고, 그 행동에 조시는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요. 자고로 도장을 찍어야 하는 종이는 앞뒤로 세 번을 살펴보라고 했어요. 급하게 그 자리에서 결정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말은 또 어디서… 아, 그래, 너 혹시 송하니 기억나냐? 그 왜, 우리가 OMA에서 활동할 때, 피시방에서 같이 연습한 적도 있잖아.”
“당연히 알죠. 한국에서 LOH 할 줄 아는 사람치고, 그 팀 모르면 간첩이에요. 그때는 그렇게 유명해질 줄 몰랐는데, 싸인이라도 받아 놨어야… 어, 근데 혹시 연락 왔다는 팀이?”
“맞아. 팀 키카오인가. 그 팀에서 제안했거든. 그런데 방금 말대로 계약서부터 들이밀길래 일단 깠지.”
“미쳤어요? 당장 계약해야지!”
조시는 무척이나 흥분하며 말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연락하라는 둥, 1분 전과는 전혀 다른 태세 전환을 보였던 것이다.
“그분들과 같이 경기를 뛰는 건, 엄청난 행운이에요. 아, 솔직히 사심이 좀 들어가 있는 말이긴 합니다.”
조시는 살을 빼기 전에는 만화 캐릭터에 신경 쓰더니, 한국에 온 후로는 걸그룹이나 아이돌 그룹에 애정을 쏟고 있었기에, 이쪽에 관련된 지식에 무척이나 해박했다.
정명은 내친 김에, 그런 조시에게 몇 가지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면 그 팀이 곧 해체한다는 것도 알고 있겠네?”
“공공연한 비밀이죠. 소미는 가수 한다고 하고, 혜리는 배우 한다고 하고. 다들 힘든 프로생활은 접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려는 것 같아요. 이미 러브콜도 많이 받았다고…….”
프로게이머는 수명이 짧다.
전성기라고 해 봐야, 20대 초반. 24살, 25살이 넘어가는 순간,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
그런데 훨씬 젊고, 기존의 선수들보다 더 재능 넘치는 인재들이 자꾸만 모여드니, 기회가 왔을 때 다른 길을 찾아보려는 그들의 시도는 어찌 보면 현명하다고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저는 충분히 이해해요. 혹시 요즘 새로 들어오는 신입 선수들 봤어요? 완전히 경력 같은 신입이더라고요. 저 같은 건 이제 퇴물 다 됐죠, 뭐.”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나중에 만나는 것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카페를 나가기 전, 조시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정명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혹시 멤버 중에 한유리라고 알아요?”
“그게 누구… 아, 그래, 얼굴을 본 적은 있어. 왜?”
“같이 사진 좀 찍을 수 있는 기회 좀 만들어 줘 봐요. 사실 제가 꽤 팬이라. 헤헤.”
그 시각, 팀 키카오 프렌즈의 연습실의 흡연실에서는 팀 키카오의 게이머, 정영주와 이지민의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영주야, 새 팀 찾는 건 어때?”
“몇 개 팀에서 들어오긴 했는데, 그냥 그래. 잘 모르겠어.”
팀 해체가 결정된 이후, 선수들은 시즌보다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이번의 선택이 1년을 좌우하게 되니까.
그 말에 정영주와 마찬가지로 아직 계약할 곳을 찾지 못한 이지민은 연습실 안쪽을 보며 담배 연기를 훅 내뱉었다.
“아~ 나도 인기인 되고 싶다. 하니 책상 보니까, 여기저기서 오퍼 많이 온 것 같던데.”
“그 녀석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지. 걔는 천재잖아. 심지어 지금도 실력이 오르고 있고. 보니까 팀에서 서로 모셔가고 싶어서 난리인 것 같던데.”
둘은 나에게는 왜 재능이 없니, 하니가 조금 연예인 병에 걸린 것 같니 하고 떠들다가 연습실로 내려왔다.
그러자 맨 먼저 보인 것은 방바닥에 널브러진 서류를 골똘히 바라보는 팀의 코치와 다른 선수들이었다.
“영주야, 지민아, 왔어? 그럼 슬슬 마무리할 거니까, 의견 좀 내 봐.”
의견. 용병으로 누굴 뽑을지 얘기해 보라는 말이었다. 네 명으로 대회에 나가거나 사람이 없다고 아무나 뽑을 수는 없으니까.
그 말에 영주는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 뿌려져 있던 선수 분석 자료 중 한 장을 코치에게 내밀었다.
“전 얘요. 피지컬도 좋고, 사교성도 좋은 것 같아서 팀에 쉽게 녹아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주가 뽑은 것은, 요즘 떠오르고 있는 신인 선수였다.
뛰어난 재능, 싹싹한 성격, 그리고 넓은 캐릭터 폭까지. 요즘 가장 기대되는 선수 중 한 사람이 바로 코코넛이라는 선수였다.
‘무엇보다 잘생겼지. 캬…….’
하지만 그런 속마음은 숨긴 채 말했고, 옆에 있던 한유리는 다른 의견을 내었다.
“난 얘, 루이. 실력도 제법 괜찮고, 나이가 어려서 말을 잘 들을 것 같아. 무엇보다 여자니까, 우리 팀에 빨리 녹아들 수 있겠지. 안 그래?”
‘바보 같긴. 당연히 코코넛을 써야지.’
그렇게 생각한 영주는 상냥한 어조로 하니에게 의견을 물었다.
“하니야, 네 생각은 어때? 네 생각에도 코코넛이 제일 좋지?”
그 말에, 모든 시선이 하니에게로 모였다. 나이는 제일 적었지만, 암묵적으로 팀의 리더는 송하니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모두가 볼 때, 그녀의 감은 상당히 정확했고, 몇 번 빼고는 틀린 적도 거의 없었다. 그것은 요즘 조금 삐딱한 노선을 타고 있는 정영주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지. 지금까지 해 온 것을 말이야. 물론, 그 감이라는 건 게임 한정이지만.’
하지만 영주가 볼 때, 이번에는 그 감이 조금 틀린 것 같았다.
하니는 밝게 웃으며 선택한 것은 예비 후보군에도 없던 사람이었으니까.
“응, 난 이 사람이 좋을 것 같아!”
그녀가 꺼내 든 것은 왠지 낯선 사람의 프로필 사진이었다.
그 방에 있던, 한유리를 제외한 사람들은 그 사람이 누군지 열심히 떠올려야만 했다.
‘어디서 봤더라?’
딱 보기에도 신인은 아니었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여러 선수들에게서 하니를 만류하는 말이 쏟아졌다.
“나이가 좀 많지 않나……. 하니, 너보다 열 살은 많다고 적혀 있는데?”
“네가 잘한다고 하니까 잘하기야 하겠지만, 베스트 멤버로 넣기에는 좀.”
“하니가 원하면 테스트라도 보러 오라고 하는 게 어떨까?”
의견이 분분해졌지만, 하니는 자신의 주장을 바꾸지 않았다
“아이, 진짜, 이게 제일 좋은 선택이라니까! 아, 그래, 내가 진짜 감추고 있던 거 보여줄게. 이거라면 분명 실력이 증명될 거야!”
컴퓨터를 뒤적거리는 하니를 보며, 정영주는 잘 편집된 플레이 영상이라도 보여 주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 영상은 잘된 것만 보여 주기에 실력을 세탁하기에 무척이나 좋으니까.
하지만 하니는 영상을 트는 대신, LOH 로그인창에 들어가 게임에 로그인했다.
“에헴, 어때! 우리가 이런 사람들이었다고!”
“이게 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뭐냐니, 이 아이디를 몰라? 한때 한국 서버에서 엄청 날렸던 아이디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