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전문 영업 방해꾼 (1) >
그 후로, 정명은 팀원 몇 명의 포지션을 변경했다.
급작스러운 포지션 변경에 일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서로간의 포지션이 겹치므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명이 정글, 쿠론이 미드. 그리고 조시가 데려왔던 사오미는 서포터.
마지막으로 기존 XTC의 선수들이 각각 탑과 원딜러를 맡았다.
그리고 맨 처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은 쿠론은 마우스를 까닥이며 정명을 쳐다봤다.
“포지션 바뀌고 처음 게임 하는 거니까, 못해도 뭐라고 하지 마. 그러면 진짜 양아치인 거 알지?”
“넌 포지션 안 바뀌었잖아. 넌 못 하면 안 돼. 그러면 벌칙이 있어.”
그 후, 하나 둘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개막전까지 딱 시간이 2주 남았으므로, XTC는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일정을 꽤 빡빡하게 잡았기 때문이다.
“리빌딩 이후, 첫 연습게임 시작이네요. 같이 잘 해 봐요.”
포지션을 변경하지 않은 탑 라이너, 티웨인이 웃으며 화이팅을 했다.
그런데 씩씩하게 손을 풀던 티웨인은 연습상대의 아이디를 보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 뭐죠? 팀 wevo? 저거, 지난 번 스프링 시즌에서 3위 한 팀 아닌가요?”
“맞아. 쟤네가 먼저 연습 하자고 해서 OK 했지. 듣기로는 특집 방송에서 내 모습이 인상 깊어서 우리랑 한 번 해보고 싶었다고 하더라.”
XTC의 예상 순위는 중하위권. 그리고 wevo의 예상 순위는 최상위권이다. RPG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보스전이 나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티웨인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 돌렸다.
“쟤네를 어떻게 이겨요! 실력 차이가 엄청 나는데!”
“져도 되니까, 그냥 해. 괜히 연습게임이냐?”
"그건 그런데, 하지만......“
“무슨 특집 방송? 나도 좀 알려줘.”
중국 방송을 보지 못 하기에 혼자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었던 쿠론이 보채듯 물었고, 그 대답은 매니저에게서 나왔다.
“미국에서 방송했던 거요. 정명이 에리랑 같이 원딜로 선 그 모습이 인상깊었나보던데요? 그래서인지 다들 그 말을 꺼내더라고요. 원딜로 설 생각 없냐고.”
그 말에, 쿠론은 옆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에리에게 시선을 던졌고, 에리는 극히 거부한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사실 원딜은커녕, 정명은 이제 라인을 서지 않는 정글러 포지션이다.
그리고 그 소식을 막 전해들은 wevo팀 선수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wawa : ? 정명선수가 정글러로 바뀌었다고요?
-네. 포지션 변경 했어요. 하지만 새로운 미드라이너도 상당히 실력 좋은 사람이에요.
wawa : 흠, 아쉽네요. 소문의 그분이랑 한 번 해 보고 싶었는데.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
시간낭비 하기 싫다는 듯, 두 팀은 곧바로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게임을 시작하기 직전, 정명은 방금 자신과 채팅을 한 사람의 아이디를 유심히 보며 천천히 기억을 떠올렸다.
‘저 사람, 기억난다. 파리에 갔을 때 봤던 사람이었지? 아마 피지컬이 89였던가...’
지금 쿠론의 피지컬은 72. 때문에 지금 저런 괴물과 붙여버리면, 너무할 정도로 일방적인 싸움이 될 것이다.
때문에 정명은 쿠론을 포함한 팀원들에게 첫 판은 버티는 것에 중점을 두라고 주문했다.
“야, 그냥 버텨. 알지? 저 사람, 되게 잘 하는 사람이라고.”
“거절. 어떻게 싸워보지도 않고 꼬리를 마냐?”
하지만 그런 자신감과는 달리 당연히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질 나쁜 괴롭힘을 당하는 것처럼 쿠론은 중국에 온 이후, 첫 연습게임에서 조리돌림을 당해야 했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wawa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20분 뒤, 쿠론은 벌써 세 번째 솔로킬을 당하고 있었다.
정명은 계속 한숨만을 푹푹 내쉬는 쿠론을 보며 피식 웃었다.
“솔로킬 3번째네. 야, 내 말 맞지? 인정해라.”
“갑자기 무슨 소리야. 갱킹이나 와 봐. 저 녀석, 한 번 더 올 것 같으니까.”
“대답부터 해라. 내 말이 맞았지? 그냥 버틸걸 그랬잖아.”
“아오, 그래! 네 말이 맞아. 됐냐? 근데 이건 네가 해도 별 수 없거든? 쟤, 손 엄청 빠르다고!”
그렇게 한창 신경질을 부리던 쿠론은 갑자기 해탈했다는 듯, 몸에 힘을 쭉 뺐다.
“후... 됐고, 이거 항복 하자. 답 없다 이거. 게임 터졌어.”
“그 말도 벌써 세 번째 군. 조금 더 근성 있게 해 봐라. 아직 20분도 안 됐다.”
북미에서는 나름 괜찮은 실력으로 주목받던 쿠론으로써는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실력 격차였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 또 그 다음 경기에서도 쿠론은 솔로킬을 당했고, 정명이 생각하기에 1%정도 겸손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
그리고 그 다음 날.
드디어 섬머 시즌의 일정이 나왔다.
매니저는 모니터에 빠질 듯, 얼굴을 가까이 대며 XTC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우리는 개막 이후 3일차에 경기 일정이 잡혀있네요. 상대는 팀 Puppet. 스프링 시즌, 중위권으로 시즌을 마무리 지었던 팀이에요.”
매니저의 말에, 정명이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가 적응 할 때 까지 조금 쉬운 팀이 나오길 바랬는데, 어쩔 수 없나.”
사실, 이제 쉬운 팀이라고 해 봐야 몇 팀 없었다.
정명이 생각하기에 확실히 이길 수 있는 건 최하위권의 3팀 정도. 그리고 그 이상의 팀은 이긴다고 100% 확신하지 못 하는 팀들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특별한 변수를 만들려면, 나랑 이 녀석이 뭔가 하는 수밖에는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한 정명은 뒤돌아서 자신의 방으로 가려는 쿠론을 붙잡았다.
“안 되겠다. 넌 나랑 따로 저녁에 솔로랭크 좀 돌리자.”
“뭐? 다른 애들은 쉬러 가는데?”
“원래 미드랑 정글이 가장 중요한 법이야. 잔말 말고 연습실로 나와. 첫 경기를 지면 기분 나쁘잖아.”
“씨, 힘든데!”
그리고 솔로랭크를 돌리러 가는 둘에게, 티웨이가 다가왔다.
“정명, 솔로랭크 돌릴 거면, 스트리밍 방송을 켜는 게 어때요?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돌리는 게 좋아요.”
“개인방송? 굳이 그럴 필요 있나? 귀찮기만 하던데.”
정명은 중국에 와서 한 번도 개인방송을 켜지 않았다.
중국어를 할 줄 모르기에 켜봤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지금이라면 상관없는 문제였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방송이 요즘 돈이 엄청나게 되는걸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자신 연봉의 몇 배를 번다고도 해요. 어제 같이 게임했던 wawa선수만 봐도, 평균 시청자 수가 80만이라고...”
평균 관전자 수 80만.
한국 리그의 결승무대 시청자 수가 20-30만 근처임을 감안하면, 상대도 안 되는 수치였다.
티웨이의 제안에, 정명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그래. 조만간 해 볼까? 돈이야 많으면 좋으니까.”
......
“이거 방송 하고 있는 것 맞아? 야, 그런데 왜 달풍선 들어오는 소리가 안 들려?”
“우리는 막 방송을 시작한 사람인데, 그렇게 되겠냐? 인지도 쌓으려면, 한 달은 더 있어야 해.”
잠시 뒤.
둘은 개인방송을 켠 채, 솔로랭크를 돌리기 시작했다.
쿠론과 정명의 아이디는 외국인용으로 지급받는 프로게이머용 아이디. 처음부터 점수가 플래티넘 급으로 설정되어있고, 점수도 잘 오른다.
하지만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밑에서 놀아야 하기에, 본의 아니게 양민학살을 하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와 미드 되게 잘 하네. 대리인가?
-버스 타네요. 감사합니다.
팀원들이 고맙다며 인사했지만, 그것을 알아보지 못 하는 사람이 있었다.
“쟤네들이 뭐래?”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자꾸 물어봐? 별 말 아니야. 우리 잘한대.”
쿠론은 말이 안 통하는 게 답답했는지, 말이 통하는 상대 옆에 가면 말이 많아졌다.
북미에서 게임 할 때는 욕 하다가 채팅금지까지 먹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말이 아예 안 통하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그런 낮은 리그임에도 불구하고, 다음 판에서 쿠론은 고전을 면치 못 했다.
정명이 쿠론의 컨디션이 안 좋은 건가하고 생각할 쯤, 한대 더 얻어맞은 쿠론이 버럭 화를 냈다.
“아이 씨, 우리 정글은 뭐 하냐?”
“너 블루버프 주려고 대기하고 있었는데. 괘씸하네. 그냥 내가 먹을까?”
정명은 농담을 던지면서도, 인상을 찌푸렸다.
‘상대 미드라이너, 대리인가? 그것도 프로급 이상. 아무리 봐도 이쪽에 있을 실력은 아닌데?’
현재 이곳은 플래티넘~다이아구간. 쿠론을 이길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상대를 대리로 판단한 정명은 미드를 집중 공략해주기로 했다.
“다른 라인, 다 버린다. 저기 저놈 한 놈만 패자.”
“하, 이제야 말이 통하네.”
그런 기세등등함과는 달리, 둘의 호흡이 잘 맞지 않아 번번이 상대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둘은 누가 뭐래도 프로선수들이었고, 초반의 불리함을 잘 극복해 내어 후반까지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30분 뒤, 정명은 찝찝해 하면서도, 백작을 잡자고 오더를 내렸다.
“상대 미드라이너 잘랐으니까, 한번 시도해 보자. 뺏기면 망하는 거지만...”
‘아쉽다. 그 스킬까지 샀다면 완벽하게 먹을 수 있는 건데.’
미드포지션에는 그에 어울리는 스킬들이 있고, 정글포지션에는 그에 어울리는 스킬들이 따로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정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글러만 가지고 있는 스킬인 ‘강타’를 잘 쓰게 해주는 스킬이었다.
정명은 백작의 피가 줄어들수록, 더욱 긴장하여 남은 피를 쳐다보았다.
상대 정글러 또한, 기회를 엿보며 달려들 타이밍을 재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드할 때는 몰랐는데, 강타 싸움이라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이럴 경우, 강타 싸움은 5:5 싸움이 아니다.
정명이 생각할 때, 보통 들어가는 쪽이 6, 방어하는 쪽이 4. 먼저 치고있는쪽이 불리한 것이다.
광역스킬을 난사하며 들어가면 HP빠지는 것, 스킬 쿨 타임 보다보면 정신없어져서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니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타가 열렸고, 백작의 피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강타 데미지는 1100...이거 놓치면, 욕 더럽게 먹는데. 젠장.’
하지만 정명은 그런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하여, 강타싸움에서 승리했다.
[레드팀이 히드라 백작을 처치하였습니다.]
“먹었다!”
정명의 팀은 백작 버프의 힘으로 마지막 한타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상대를 전멸시키자마자 그대로 넥서스로 달려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게임이 승리로 끝나는 순간, 땡그랑 소리와 함께 달풍선 10개가 정명의 아이디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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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방송이나 솔로랭크를 돌릴 때는, 경쟁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XTC의 첫 상대인 팀 퍼펫은 그 개인방송 화면을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어때? 본 건 두 명이지만, 듣기로는 저 두명이 제일 잘 한다고 하더라.”
“애매하네요. 각자 역량은 좋은 것 같은데, 팀워크가 부실하다고 해야 하나.”
퍼펫의 감독과 미드라이너는 각자의 의견을 이야기하며, XTC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게 10분간 토의한 결과, 나온 결론은 꽤 심플했다.
“별로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안 드네요. 이 팀에 대한 분석은 최소한으로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 짓기로 하고, 방금 미드라이너 있잖아 대리였지?”
“뻔해요. 액티비티겠죠. 프로 때려치우고, 개인방송만 하고 있는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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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랭크를 끝낸 후, 정명은 아까 전, 적이었던 미드라이너에 대해 떠올렸다.
'대리 기사인 것 같긴 한데, 프로급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대리기사나 하고 있다고?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정명의 눈앞으로 퀘스트창이 올라왔다.
[히든 퀘스트 No. 96]
생태계 교란종인 대리 기사를 사냥하십시오.
1. A급 대리기사 : [1/10]
2. B급 대리기사 : [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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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급 대리기사 : [0/100]
*1번 목표로 퀘스트를 진행합니다.
아무래도 꽤 잘 나가는 대리기사를 잡았기에, 퀘스트가 발동한 것 같았다.
정명은 떨떠름하게 퀘스트 정보를 읽었다.
“내일부터 두더지 잡기 시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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