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96화 (96/226)

< 33. 대타출동 (1) >

정명은 조시의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손목이 아프다고? 얼마나?”

“별거 아니에요. 하하, 사람들 놀라겠네. 얼굴 펴세요.”

조시는 별것 아니라고 했지만, 정명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가 없었다. 그동안 손목 부상으로 인하여 은퇴한 프로게이머를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시의 말 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행동해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이곳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정명은 애써 웃은 뒤, 자신에게 다가온 리포터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앞으로 승강전을 준비하셔야 하는데요, 어떠신가요. 자신 있으신가요?”

“예. 다들 감이 확 살아있어서, 컨디션만 유지한다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내일 당장이라도 승강전 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정명의 말에, 다른 팀원들은 과장스럽게 피곤함을 어필하며 쓰러지려고 했다. 그리고 리포터는 웃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내일 당장 승강전을 치러도 괜찮은 것은 정명, 당신뿐인 것 같네요. 하지만 전승으로 우승한 팀이니 분명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것으로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사람들은 긴장이 풀렸는지 하나 둘, 곯아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시 또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할 때 쯤, 정명은 손목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조시. 네 손목 말인데, 일단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어. 리그도 끝났으니, 시간은 좀 남잖아.”

“네. 별 것 아닌 것 같긴 한데, 가보긴 할 게요. 그런데 매니저님. 여기 괜찮은 병원 있어요?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아무 데나 가기에는 조금 그래요. 신용이 안 간다고 해야 하나...편견일지도 모르지만요.”

조시의 말에, 운전을 하고 있던 매니저가 백미러를 흘끔 보고는 답했다.

“아뇨, 잘 생각하신 겁니다. 이곳이 시골은 아니지만, 급하다고 아무데나 가면 만족할만한 의료지원을 못 받으실 거예요. 아무래도 미국과 비교하면 수준이 조금 떨어지니까요.”

“어, 그럼 어떻게 해야...?”

“중국의 상류층들이 가는 병원을 소개시켜 드릴게요. 가격은 조금 세지만, 시설이나 서비스는 괜찮을 겁니다.”

“좋아요. 비싸봐야 미국만 하겠어요? 휴일이 끝나면 저 좀 그쪽으로 데려다 주세요.”

......

중국 땅은 넓었다. 숙소에 도착하려면 앞으로 한 시간은 더 달려야 했고, 어느새 조시를 포함한 모든 팀원들이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보던 정명은 퀘스트 완료창이 떴던 것을 기억해내고는, 시스템 창을 열었다.

‘자유 스탯 포인트? 신기하기도 해라. 이건 일단 남겨둘까? 나중에 제일 비싸게 먹히는 스탯에 하나 넣어주면 되겠지 뭐. 아마 그건 피지컬이겠지만.’

그 후, 정명의 눈은 중국 팬들의 사랑을 더욱 많이 받는다는 메시지를 지나쳐, 스킬이 업그레이드되었다는 메시지로 향했다.

[하급 스킬이 중급 스킬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초급 중국어 -> 중급 중국어

-일상생활의 대화 정도는 구사할 수 있게 됩니다.

-자유자재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연습이 필요 *제니 스카우터 -> 진실의 눈 -상대방의 정보를 더욱 정확히 알 수 있게 됩니다.

보상의 효과로 중국어 스킬, 그리고 상대방의 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스킬의 레벨이 오르며 능력이 한 단계 상승했다.

모두 지금 무척이나 필요한 스킬들이었기에 정명은 보상이 무척이나 후하다고 생각했다.

‘히든 퀘스트라고 했던가. 일반 퀘스트보다 훨씬 엄청난 보상인데...이걸 또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또 깨고 싶다.’

정명은 몇 가지 가정을 떠올려봤다.

‘조금 힘들면서도 대단한 업적? 이번에는 전승 우승을 했으니, 다음에는 아예 전패라도 하면...아니, 솔직히 그건 아니고.’

잠시 고민하던 정명은 운전을 하고 있던 매니저에게 의견을 구했다.

“특별한 업적이요? RPG 게임 얘기인가요?”

“아뇨. 이 업계 얘기요. 우리가 전승 우승을 한 것처럼, 뭔가 특이하면서도 대단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게 없을까요?”

하지만 역시나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한다던가, 그런 뻔 한 것들만 떠오를 뿐이었다.

결국 잠이나 잘까 하던 정명에게 매니저가 썩 괜찮은 의견을 냈다.

“한 챔피언만으로 솔로랭크 1위를 달성한다거나 하는 건 어때요? 조금 소소한가?”

“흠, 소소하긴 한데.....제법 괜찮은데요. 특이해요.”

“하다보면 미드 캐릭터로 정글을 잡는다거나 해야겠지 만요. 하하하, 못하면 진짜 민폐니까, 되도록이면 하지는 마세요.”

@@@@@

다음 날.

정명은 아침부터 솔로 랭크를 돌리고 있는 조시를 쳐다봤다. 평소라면 바로 지나쳤겠지만, 오늘은 시선이 조금 오래 머무르고 있었다.

‘등급이 오른 스킬...이건 조시에게 맨 먼저 사용해 볼까?’

그리고 정명은 정말로 오랜만에 조시의 상태창을 불러왔다.

피지컬 (64/85) / (69/85)

정신력 (55/80)

오더 (65/83)

판단력 (69/82)

결속력 : 66/100

-오랫동안 우정을 쌓은 동료입니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생각을 대충 알 수 있습니다.

-서로 같은 화면에 있을 시, 판단력이 +3 상승합니다.

상태 : 가벼운 부상

-피지컬이 5 하락합니다.

‘뭔가 잡다한 게 늘어났네. 그리고 역시나 부상...과연 조시와 승강전을 같이 할 수 있을까.’

조시는 무의식적으로 손목을 주무르며 게임을 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정명은 예비 선수를 갖다 놔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혹시 모르니까, 예비로 사람 한 명 등록해뒀으면 좋겠는데. 이번 승강전 까지만 도와줄 적당한 사람이라. 당연히 없겠지? 지금 시기에.’

정명은 조시를 대체할 인력을 떠올려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리그가 한창 열리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팀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프로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방송에 출연할만한 의지가 있는 사람.

아무리 사람 많은 중국이어도 이렇게 조건이 많이 걸린다면 별 수 없다. 사람은 많아도, 쓸 만한 사람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정명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매니저씨, 혹시 적당한 사람 없을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안 떠오르는데.”

“글쎄요. 다른 팀의 연습생은 어떨까요? 그 조건에 무척 부합하는 것 같은데. 숨겨진 보석이 있을 지도 모르고요.”

뜻밖의 말에, 정명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다른 팀의 연습생을 막 불러도 되나요?”

“미리 양해 구해 놓으면 되죠. 어차피 빛도 못 보고 있는 사람들인데. 적당히 페이도 걸어 두면 사람도 많이 올 것 같고.”

“흠...역시 그 방법밖에는 없나. 아쉽지만 어쩔 수 없긴 하네. 그럼 몇 사람 추려보죠.”

그렇게 말 하면서도 정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른 팀의 주전멤버라도 아쉬울 판에, 팀의 연습생? 흠, 어쩌면 다음 번 승강전을 노려야 할지도 모르겠어.’

정명은 예전, 북미에서 에리와 처음 만났을 때 참관했던 리그경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던 거지만, 매니저가 말했던 것처럼 숨겨진 보석 따위는 없었다.

올라올 사람은 이미 다 올라왔고, 남은 사람들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 운이 나빠서 주전에서 탈락했다거나 하는 것 따위의 케이스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 사람은 피지컬이 딸리니, 팀워크가 부족하니 하며 선수를 고르고 있을 여유는 없다.

그리고 정명이 매니저와 뽑을 사람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하려던 그 순간, 조시가 손을 들며 말했다.

“저도 한 사람 추천해도 되요?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인데.”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네. 제가 보기엔 실력이 괜찮던데, 한 번 불러 볼게요.”

@@@@@

그 다음날부터, XTC의 연습실로 몇 명의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면접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정명은 중국어 능력이 꽤나 올라갔기에, 직접 면접을 봤다.

“경력은 얼마나 되세요?”

“2년 정도요.”

“최고 솔로랭크 성적은 그랜드 마스터 150위...그러면 연습실 생활은...”

면접은 평균 40분 정도로 진행되었다.

정명과의 1:1 문답 10분, 그리고 다른 팀원들과의 연습 게임 한 판 30분 정도.

그리고 정명은 연습 게임을 하기 위해 연습실로 들어가는 면접자의 뒷모습과 자신이 노트에 적은 내용을 번갈아 봤다. 노트의 내용은 전부 한국어로 적혀 있었다.

‘저 사람은 안 되겠네. 쯧쯧. 유명 팀의 연습생으로 있다고 하더니.’

고유특성 : 정치

-팀원들의 사기를 주기적으로 저하시킵니다.

겉으로 보이는 능력치, 그리고 연습 경기 내용도 꽤나 괜찮다.

하지만 그런 장점들을 모두 덮어버릴 정도의 정말 쓰레기 같은 특성을 갖고 있는 게 문제였다.

‘뭐가 이리 극과 극이냐. 이 사람도 그렇고, 저 사람도 그렇고.’

인성, 연습 태도, 실력 등 모든 게 흠 없는 사람도 있었다. 다른 팀원들은 내심 이 사람이 뽑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정명의 생각은 달랐다.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피지컬. 피지컬이 문제였던 것이다.

피지컬 : [65/67]

‘이건 솔직히 재능이 없어. 안타깝지만, 연습을 해도 안 될 거다. 지금이야 어찌어찌 따라간다고 생각하겠지만...’

정명은 잠시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 정명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단발머리의 그 사람은 어쩐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정명의 인사에, 그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목소리로 뜬금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열심히 할게요. 뽑아주세요.”

“아, 그게...”

“시키는 거 다 할게요. 제발요.”

......

한 시간 뒤, 모든 면접이 끝났다.

결과는 자료 검토 후, 나중에 결정될 것이라 말했지만 정명은 이미 마음을 정한 뒤였다.

정명은 신기하다는 듯, 자기소개서를 뒤적거리고 있는 조시를 보며 물었다.

“조시, 마지막에 왔던 그 어려보이는 사람. 네가 추천했던 사람이지?”

“네. 어때요? 제가 보기엔 꽤 괜찮았는데.”

“면접 본 사람 중 그나마 나은 것 같기는 하던데...어디서 만난 사람이야? 너 중국어도 잘 못 하잖아.”

조시는 게임 클라이언트에서 친구 찾기라고 적혀있는 버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버튼, 혹시 눌러 봤어요?”

“......아니. 그런데 뭔지는 알아. 뭐라더라? 3달러 정도 내면 귀여운 여자애나 랭커 급의 실력자가 게임을 같이 해준다고 했던가.”

“네. 맞아요. 정확히는 20위안. 그거 제가 해봤는데요.”

“어...그래, 귀여운 여자애가 나오던?”

정명의 물음에, 조시는 정말로 씁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귀엽다고 보기엔 음, 조금 사기였고요.”

“그거 유감이네.”

“랭커 급의 실력자가 같이 게임을 해준다고 했던 것 있잖습니까. 그것도 고작 다이아 리그 급의 사람들이 나오더라고요. 네, 그것도 사기죠.”

이대로 말이 끝나면, 조시가 멍청하게 6달러 정도를 날린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그리고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기에, 정명은 얌전히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사기가 아닌 게 딱 하나 있더라고요. 그 밑에 있는 메뉴요.”

그 말에, 정명은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귀여운 남자와 즐겁게 게임 (100위안)]

정명은 그 버튼과 조시를 번갈아 봤다.

“하...여기서 만난 사람이야? 진짜로?”

조시는 자랑스럽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며칠 뒤.

조시를 병원에 데려다주러 나갔던 매니저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날아들듯,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조심해요, 넘어지겠어요. 뭐가 그리 급해요?”

매니저는 정명의 말을 무시하고, 곧바로 자기 할 말을 꺼냈다.

“정명!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어요. 뭐부터 듣고 싶어요?”

“왠지 좋은 소식을 나쁜 소식이 상쇄시켜 버릴 것 같아서 듣기 싫어지지만...나쁜 소식부터 들을게요.”

“좋은 소식 말씀이시죠?”

“아니, 그게...”

“우리의 승강전 상대가 정해졌어요. 팀 펀치에요. 요즘 하락세인 그 팀이요!”

“음...네. 그게 좋은 소식인가요? 이미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매니저의 뒤로 암울한 얼굴을 한 조시가 슬금슬금 걸어왔다.

매니저는 조시의 손목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나쁜 소식은, 조시가 손목 부상으로 당분간 연습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거죠. 선수 영입을 서둘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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