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 폐막 >
며칠 뒤.
양복을 입은 한 명의 여자가 정명을 찾아왔다. 그 사람은 정명도 익히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조시. 혹시 정명 보셨나요?”
“네. 연습실 안에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 여자는 XTC 구단주의 비서였다.
비서는 조시에게 볼 일이 끝났다는 듯 바로 고개를 돌려 앞으로 나갔고, 조시는 비서가 무슨 일로 왔는지 무척이나 궁금했기에 비서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비서는 정명을 보자마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음, 당신은 구단주의...”
“비서입니다. 오늘은 그동안의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알려드리려고 왔습니다.”
비서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냈다. 용건만 말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때의 일은 잘 덮었습니다. 생방송이 아니라 5분의 시차를 둔 방송이었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어요.”
“그런가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주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당신도, 열혈인 당신 코치도. 이스포츠판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과격한 행동에 민감한 편이니까. 기분은 알겠지만요.”
그런 큰 소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중국의 모든 구단들은, 치부와도 같은 이번 일을 감추고 싶어 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아무리 뒤져봐도 그 날의 소동에 대한 일은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비서는 태블릿PC를 켠 뒤, 정명에게 몇 개의 이스포츠 관련 기사를 보여줬다.
-인기선수 S***** 팬들과의 부적절한 관계?
-익명의 게임 관계자의 폭로, X****선수의 인성은 쓰레기 -팀 엔터의 돌연 후원 중단? 앞으로의 일정은 알 수 없어....
정명은 그 기사를 이미 봤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거. 요즘 커뮤니티에서 가장 떠들썩한 화제죠. 그런데 이건 왜...?”
“구단 측에서 적당히 흘려보낸 기사입니다. 화제 전환용이죠.”
그 말에,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조시가 흥분하여 달려들었다.
“우와, 정말요? 그럼 이 기사들이 다 진짜란 말인가요?”
“진짜도 있고 가짜도 있고. 앞의 두 개는 모두 진짜입니다만.”
“오, 오오....그럼 S는 누구에요? 시크릿 선수인가? 아니면 스페셜?”
조시의 열정적인 물음에, 비서는 잠시 망설이다 답했다.
“이건 비밀로 해 주셔야 합니다. 어디 가서 말 하시면......”
“당연하죠~ 저 입 무거워요.”
“석세스 선수입니다. 곧 팀에서 나가게 될 사람이기도 하죠. 듣기로는 유부녀에게도 손을 댔다고 하는데, 워낙 죄질이 좋지 않아 영구 퇴출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캬, 유부녀라니 능력도 좋네. 안 그래요 정명?”
“조시, 당신도 조심하십시오. 어린 팬들 중에서는 앞뒤 분간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있습니다. 팬들이 알몸 사진이라도 보낸다고 해서, 반응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 인기 많은 건 정명일 텐데 왜 나에게...”
비서는 조시의 뒷말을 무시하며 다른 서류를 꺼냈다.
“그리고 이 부분부터는 특히 더 보안에 신경써주셔야 합니다. 외부로 나갈 일이 절대 없는 자료이니까요.”
비서는 그렇게 말하며 옆에서 열심히 듣고 있던 조시를 쳐다보았다.
“어디 가서 말 하시면 안 됩니다.”
“아 예. 그런데 아까부터 왜 저한테만...”
비서는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협회장과 그 애인의 사진입니다. 처음 보시죠?”
정명은 그 사진을 받아들었다.
“예. 처음 보는 사람이네요.”
“그 사람도 당신을 본 적이 없을 겁니다. 앞으로 볼 일도 없을 테고요.”
“휴, 이것 참 이상하네요. 서로 만난 적도 없고 얼굴도 사진으로만 본 사이인데 이렇게 악착같이 싸웠다니.”
비서의 말로는, 그의 회사는 망하고 그의 일본인 애인은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그리고 협회장은 감옥에 갔는데, 자칫 잘못하면 수십 년을 감옥에서 썩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어...이런 말 하기는 뭐한데, 그 사람 돈도 많지 않나요? 인맥을 잘 쓰면 금방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가진 것이 많았던 만큼, 적이 많았으니까요. 이곳에서는 그렇게 법대로만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른바, 정치적 판단을 적용해 감옥에 더 처박아둘 수 있다는 뜻이죠.”
비서의 말에, 정명은 얼굴을 굳혔다.
“어.....그 정도인가요?”
“그 정도입니다.”
조금 심각한 이야기에, 분위기가 급격히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 무거워진 분위기에서 조시가 다가왔다.
“어! 나 이 사람 알아요. 유명한 사람인데!”
왠지 들떠있는 조시의 목소리에, 둘의 시선이 조시에게로 모였다.
그리고 조시는 협회장 옆에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이 사람, 일본의 유명한 AV 배우잖아요. 나도 예전에 한창 신세 좀 졌던 사람인데! 이 사람, 벌써 일본으로 돌아갔대요?”
@@@@
그리고 그 후, 한 달이 흘렀다.
그 목적조차 불분명했던 중국 리그 협회는 해산.
꼬여있던 일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정명은 아무런 고민 없이 연습에만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조시는 실실거리며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정명에게 말을 걸었다.
“으음, 팬이 자꾸 메신저 아이디 알려달라고 하는데, 알려주면 안 되겠죠?”
“당연히 안 되지. 엄청나게 피곤해질 거다. 진짜 친한 거 아니면 쉽게 알려주지 마.”
조시에게도 이제 중국 팬들이 많이 생겼다.
“이제 다시 연습 할까? 쉬는 건 결승전이 끝나고 해도 늦지 않잖아.”
계속 1위를 수성한 덕분에, XTC는 결승전에 제일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동안 XTC가 이루어 낸 전적은 15연승 무패. 중간에 연패가 끊길 뻔한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조금은 운 좋게 연승 행진을 지켜나갔다.
“연승이라서 괜히 부담되는데요. 5전 3선승제인데, 1패라도 하면 멘탈 나갈 것 같아요.”
“중요한 건 결승에서 이기는 거지, 연승을 하는 게 아냐.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갖지는 말자고.”
XTC의 결승전 상대는 계속 2위를 수성하고 있던 팀인 엑스페셜. 이 팀도 XTC와의 대결을 제외하면, 패를 내주지 않았던 상당한 실력의 팀이었기도 하다.
정명은 연습을 하기 전, 팀원들의 실력이 얼마나 올라갔는지를 살폈다.
[팀의 결속 랭크 : C]
*이제 팀이라고 불릴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왔습니다.
프로팀에게는 몰라도, 아마추어팀을 상대로는 무조건 이길 수 있습니다.
‘일명 프로 팀 판별기라고 불리는 정도라는 건가. 뭐, 여기에다 버프 효과를 합하면, 어디 가서 꿀릴만한 팀은 아니게 된다는 거지.’
하지만 발전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봇 라인 선수들.
그리고 그 중, 서포터가 실력의 향상이 미미했던 것이다.
‘일단 두고 보기로 할까. 슬럼프인지, 재능인지, 연습을 안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못 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두고 본다고 해도, 계속해서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팀원을 교체해야만 할 것이다.
정 운운하며 뒤쳐지는 사람을 계속 데리고 간다면, 그야말로 다 같이 죽자는 것일 뿐이었으니까.
‘그럼 나도 뒤쳐지지 않게...남은 포인트를 전부 써야겠다. 내일은 중요한 경기니까.’
정명은 바로 시스템 창을 불러, 마지막 남은 포인트를 오더 스탯에 투자했다.
[오더가 1 올랐습니다.]
[오더가 1 올랐습니다.]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스탯을 올릴 수 없습니다.]
[능력치 알람]
피지컬 (80/100)
정신력 (70/100)
오더 (79/100)
판단력 (79/100)
[잔여 포인트 : 7020, 부족 포인트 : 2980]
80까지 올릴 수 있을 줄 알았건만, 79->80을 올리기 위해 드는 포인트가 갑자기 1만으로 올라, 79에서 멈추게 되었다.
‘아쉽지만 할 수 없지. 이길 자신이 없는 것도 아니고.’
......
다음 날. 대망의 결승전 날이 밝았다.
조시는 끝없이 늘어져있는 줄을 바라보며 헉 소리를 냈다.
“허, 줄이 대체 어디까지 서 있는 거야...혹시 주최측에서 비싼 경품이라도 뿌렸나요?”
“결승전인데 이 정도야 당연하죠. 경품이야 뭐.....게임 스킨 정도고요.”
대기실에서 상대팀 선수들과 만난 XTC 선수들은 예의바르게 악수하며 한명한명 인사했다.
큰 일이 한 번 터지니, 선수들 모두 매너 플레이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엑스페셜의 미드라이너는 정명과 악수하며 엄살을 피웠다.
“정말 살살 좀 해주세요. 당신을 상대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팀원들은 CS가 왜 그 모양이냐고 욕 하고....엄청 힘들다고요.”
“하하, 전 그저 열심히 할 뿐인 걸요.”
긴장을 풀기 위한 잠깐의 농담 후. 곧바로 밴픽이 시작되었다.
해설자는 어떤 캐릭터가 나올지 나름대로 예상하며, 흥미진진하게 밴픽을 바라보았다.
-XTC는 과연 세 번째 픽으로 무엇을 고를 것인지? 아, 가시도치인가요? 갱킹 하기 좋은 캐릭터죠. 거기다가 저 캐릭터는 승률이 100%거든요.
-그거 말고, 다른 것도 승률 100%지만요. 어느 것을 골라도 승률은 일단 100%입니다.
이제는 정명이 라인전에서 이기는 것은 뭔가 당연한 게 되어 있었다.
때문에 상대 미드라이너는 최대한 방어적인 캐릭터를 골랐고, 그것을 눈치 챈 정명은 바로 대응에 나섰다.
“라인전에서 애쓰기 보다는 다른 라인으로 지원에 집중하는 로밍캐릭터를 고르는 게 낫겠네요. 스펠도 텔레포트로 바꾸고.”
그리고 그런 XTC의 의도는 잘 맞아 떨어졌다.
정명은 탑 근처에서 나오지 않는 미드라이너를 상대하는 대신, 다른 라인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라인 밀어 넣었어. 상대방은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으니, 지금 탑 간다. 조시, 네가 먼저 몸 대. 다이브 가자.”
다가오는 미니언 웨이브, 멀리 있는 상대 정글러. 완벽한 3인 다이브 각이었다.
XTC 선수들은 거기에 더해, 적절한 타워 어그로 관리로 타워에 대한 데미지를 3명에게 분산시켰다.
-첫 킬! 첫 번째 퍼스트 블러드가 정명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역시 명불허전이네요!
-정글러가 뒤늦게 도착하지만, 이미 모두 빠진 뒤입니다. 엑스페셜팀이 XTC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 하고 있어요.
정명은 귀환을 하며, 옆에 있던 조시와 손바닥을 짝 마주쳤다.
“역시 베테랑 정글러답다. 호흡이 척척 맞네, 그냥.”
정명은 그렇게 킬을 하나 둘 먹기 시작했고, 곧이어 혼자 6킬을 먹으며 전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게임중반.
정명과 상대의 원딜러가 길목에서 마주쳤다.
“어, 지금 도우러 갈게요!”
“아냐. 괜찮을 것 같다. 마법 저항력 아이템 하나 없는 원딜러 정도야, 쉽지.”
정명은 그렇게 말하며 캐릭터를 빼지 않고 앞으로 전진시켰다.
무럭무럭 큰 카드맨이 스턴을 먹이고 카드를 던지자, 상대의 원딜러가 슥 녹아내린다. 일명 ‘원콤’ 이었다.
-아....성장격차가 너무 나는군요. 다른 라인에 가서 킬을 너무 먹고 왔어요.
-솔로킬은 내주지 않았지만, 게임을 내줬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카드맨이 돌아다니지 못 하게 붙잡아뒀어야 했습니다. GG네요.
첫 번째 게임을 이기고 난 뒤, 엑스페셜은 실력 격차를 느꼈는지 조금 기운이 빠진 듯 했다.
그런 일방적인 경기가 결승전 내내 계속되었고 경기는 꽤나 일방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시간 뒤.
3:0으로 XTC가 우승을 차지하며, 모든 경기가 마무리 되었다.
-XTC의 3:0 승리! 드디어 팀 XTC가 결승전에서 엑스페셜을 꺾고, 우승을 차지합니다!
-전승 우승이라니. 듣도 보도 못 했습니다. 이런 팀은 빨리 올려 보내야 해요. 생태계 교란종입니다.
-당연하죠. 승강전에서 이길 확률도 무척이나 높아 보이니, 꼭 그렇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어야 해요!
폭죽이 터지며, 박수갈채가 무대를 뒤덮는다.
그와 동시에, 리포터가 [상금 100만 달러] 라고 적혀있는 커다란 종이를 가져와 조시에게 안겨줬다.
“오오, 100만 달러!”
“1/5 해도 20만 달러네! 사고 싶은 거 있었는데!”
갑자기 목돈이 들어오니, 팀원들은 무척이나 기쁜 듯 했다.
하지만 정명은 그 상금을 생각하며 기뻐하기 보다는, 다른 것을 바라보며 웃었다.
‘월드 챔피언십 이후로, 이런 괜찮은 보상은 처음인 것 같은데.’
[로열로더 (히든 퀘스트)]
*히든 퀘스트 No. 77 달성. 축하합니다.
*보상 습득
-포인트 20000점을 얻었습니다.
-피지컬 스탯 1, 정신력 스탯 2개를 얻었습니다.
-자유 스탯 포인트 1개를 얻었습니다. (유효기간 1년) -명성이 대폭 상승했습니다. 열성팬 6명, 일반 팬 2100명이 증가합니다.
-하위 등급 스킬 2개가 중급 스킬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산전, 수전 공중전을 뚫고 이뤄낸 전승우승의 보상은 무척이나 달콤했다.
‘후, 한 판이라도 질 까봐 심적 압박이 엄청났는데 이렇게 보니 보람은 있네.’
그리고 무대 중앙으로 모인 XTC 사람들은 다 같이 트로피를 높게 들어 올렸다.
“우리가 이겼다! 연봉 올려주세요!”
“1부 리그로 가자!”
중국으로 소속을 옮기고 나서 첫 번째 시즌.
구단주는 1년 내에 1부 리그로 올라가길 원했지만, 아무래도 그 시기가 조금 당겨질 것 같았다.
물론 승강전에서 이겨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있지만 말이다.
그렇게 다들 환하게 웃고 있는 도중, 정명의 시선이 조시에게로 향했다.
‘조시의 표정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정명은 조시의 팔을 툭툭 치며 물었다.
“조시, 왜 그래? 표정이 안 좋은 것 같은데.”
“갑자기 손목이 좀 아픈 것 같아서요. 아, 걱정 마세요. 이제는 괜찮아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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