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돌파구 (2) >
세계 최고의 리그라 불리는, 한국의 1부 리그.
송하니와 그 친구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런 최고의 리그에 막 발을 내딛은 사람들이었고, XTC는 이제 막 리빌딩을 마친 팀이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주관적으로 봐도 XTC의 전력이 무척이나 열세인 상황.
하지만 XTC의 사람들에게서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연습게임 이었으니까.
“하니양, 그 승리 포즈 좀 보여주세요. 총 쏘는 그거요!"
-한 방이면 충분해. 빵~
“너희들 대체 뭐 하냐. 연습 안 할래?”
연습게임을 하기 전, 시시덕거리는 팀원들을 정명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중국인 팀원들은 꽤나 들떠 있었지만, 정명은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팀 간의 연습게임은 조금 풀어진 분위기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승점이 걸린 본 무대는 수능이라고 할 수 있고, 연습게임은 혼자 시간 정해놓고 하는 모의고사라고 할 수 있으니까.
집중력과 그 절박함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10분 후.
연습게임을 막 시작하기 직전, 정명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송하니가 탑이네? 미드 아니었나?”
“그것도 몰라요? 바꾼 지 한참 됐는데.”
티웨이가 그것도 몰랐냐며 핀잔을 준다.
거기다 송하니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불여우, 좋아하는 노래장르는 일렉트로 따위의 묻지도 않은 정보를 늘어놓았다.
정명은 그런 말들을 적당히 흘리며, 포지션이 바뀌었다는 정보만 머릿속에 새겨놓았다.
“그래, 뭐 포지션이야 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꾸고는 하니까 상관은 없겠지. 요즘은 탑이 캐리하는 게 유행하고 있기도 하고.”
포지션을 너무 자주 바꾸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다. 어차피 솔로랭크를 하다보면 한 라인 뿐만 아니라 다섯 개의 포지션을 돌아가면서 하게 되니, 어색할 것도 없으니까.
그리고 잠시 뒤, 마침내 게임이 시작되었다.
하니하니 : 게임 시작!
송하니의 아이디는 하니하니.
지난 번, 정명이 메카 어쩌구 하는 아이디는 쓰지 말라고 했기 때문인지 아이디를 바꿔버린 듯 했다.
‘저 녀석이 조금 더 성장하게 된다면 상관없겠지. 솔로랭크에서 그렇게 날뛰었던 게 자신이었다고 떠벌려도 말이야.’
일종의 도핑 효과 덕분에 실력이 일시적으로 상승했었던 정명과 송하니.
그 듀오는 단 둘이서 한국의 솔로랭크를 초토화 시켜 놓았었고, 그 뒤로 정명은 송하니가 거만해지거나 쓸데없이 과도한 관심을 받을까 우려되어 아이디를 바꾸라 했던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송하니는 자신의 천재성을 깨닫고 이미 거만해질 만큼 거만해져 있는 상태였지만.
-그거 알아? 만나는 감독들마다 그러는데, 나만큼 실력이 금방 오른 게이머는 손에 꼽는대. 나 혹시, 천재?
“에이씨, 너 그냥 잠이나 자라. 딴 팀이랑 해야겠다.”
-아이, 농담이지~ 아, 지금 부시에 정글러 있지? 그냥 가면 안 돼?
그와 동시에 조시의 붕대괴물이 곧장 송하니의 살인악어에게 달려들었다.
상황은 2:1.
송하니의 HP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송하니는 캐릭터는 금방 죽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송하니가 잡히려던 그 때, 송하니의 살인악어가 궁극기를 사용하며 일시적으로 캐릭터의 크기와 HP를 늘렸다. 전형적인 낚시였다.
[하니하니, 더블 킬!]
[하니하니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하니하니 : 나 잘했지? *^^*
'아나, 진짜...저거 더 키우면 답 없는데.'
게임은 꽤나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정명이 기억하기로는 송하니의 피지컬은 80대를 넘어섰다. 그리고 그런 송하니를 상대하는 티웨인의 피지컬은 60대 후반.
잘 해봐야 버티기인데, 티웨인은 그 버티기마저 안 되는지 자꾸만 킬을 내줬다.
이제는 1+1행사로 조시까지 킬을 내준 상황.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정명은 결국 마우스를 잡고 있던 힘을 살짝 풀었다.
“이거 터졌네. 그냥 연습한다고 생각 하자, 편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연습게임이 끝났다.
당연하게도 결과는 XTC의 패배.
하지만 정명은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저쪽은 한국의 1부 리그로 올라갈 만큼 실력이 검증되었고, 호흡을 오래 맞춘 팀이니까.
리빌딩한지 얼마 안 된 자신의 팀과는 상황이 다른 것이다.
게임에서 졌지만, 다른 팀원들은 자존심도 없는지 그저 히히덕거리기 바빴다.
“송하니랑 게임했다!”
“이거 트위터에 올려서 자랑해도 될까요?”
“당연히 안 되지. 연습게임 정보를 퍼트리지 않는 건 기본 아니냐?”
이러나저러나 XTC는 오랜 만에 연습을 할 수 있었고, 정명은 그런 송하니가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졌다.
팀 간의 실력 차가 큰 만큼, 친분이 없었다면 성사되지 못했을 매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명은 연습게임을 종료하기 전,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야, 너 제법 잘 하네. 처음 만났을 때랑은 완전 달라.”
-당연한 거 아냐? 이제는 내가 더 잘 하거든?
씩씩하게 대답하는 송하니에게 정명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입만 살아서는. 야, 너, 우리 팀으로 와라. 나도 편하게 버스 좀 타 보자. 매 번 캐리하느라 힘들다.”
-으헤헤, 그거 나 꼬시는 거? 나 이제 몸값 되게 비싸졌는데?
정명은 농담이었다고 말하려 했지만, 그 전에 송하니가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흐흥, 그래도 오빠 팀이면 생각 해 볼게.
“내 팀? XTC?”
-아니? 여기까지만 말 할게. 히히, 그럼 다음에 봐!
......
오랜만에 연습을 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때문에 조시는 뭔가 아쉽다는 듯,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다른 팀의 연락을 기다렸다.
“아, 이제 누구랑 연습해야 하나. 중국 측에서는 아직 연락 없죠?”
“걔네들은 이제 하자고 해도 안 해 줄 거야. 괘씸해서라도.”
하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결국 정명이 ‘그냥 솔로랭크나 할까’ 생각을 굳히고 있을 때 쯤, 핸드폰에 메일이 도착했다.
“어라, 다른 한국 팀에게서 연락 왔네. 2부 리그 팀이라도 괜찮으면, 연습 하자는데.”
“대만 쪽에서도 연락 왔어요. 언제든지 OK래요.”
다행스럽게도 연습 상대가 한 번 뚫리니, 그 다음부터는 그게 기폭제라도 된 듯 연습게임이 줄줄이 잡혔다.
그리고 그 이후, 정명은 중국과의 연습게임을 잡을 생각을 아예 버렸다.
@@@@@
그 후로 몇 주가 지났다.
코치는 연습실 방 한 가운데 걸린 리그 순위표를 틈이 날 때마다 바라보며, 웃음꽃을 피웠다.
“후, 후후. 몇 번을 봐도 아름다운 스코어야. 무패행진이라니, 이 기록이 리그 끝까지 이어지면 좋겠는데.
1위 XTC 3승 0패 (+6)
2위 엑스페셜 3승 0패 (+5)
3위 큐어 2승 1패 (+3)
.....
10위 녹스 (0승 3패) (-5)
리그에 참여한 팀은 총 10팀. 그 중에서도 XTC는 단독 1위를 달리며,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격파한 팀으로 따지면 3연승, 경기 수로 따지면 6연승. 쾌조의 스타트였다.
그 모습을 보며 실실 웃고 있던 코치는 막 생각났다는 듯, 정명에게 말을 걸었다.
“아 참, 정명. 아직까지 구단주에게서는 별 말 없지?”
“네. 노력은 해 본다고 하던데 별로 기대는 안 해요. 그래도 뭐 상관없어요. 그놈들이 연습을 해주던 안 해주던.”
“맞아. 우리랑 연습을 안 하면 지들 손해지 뭐. 우리가 훨씬 실력이 좋은 팀인데, 우리가 연습해달라고 애원한다? 어림도 없는 일이지.”
“이제는 늦었어요. 만약 연습 금지 조치가 풀린다고 해도, 쟤네들이 진심으로 사과하기 전까지는 연습게임을 해줄 생각이 전혀 없거든요.”
......
다음 날.
매 주 마다 있는 경기 날이 밝았다.
정명은 자신에게 손을 뻗는 팬들의 손을 맞잡아주며, 더듬더듬 인사했다.
“고마워요. 열시미 하께여.”
“오, 중국말이다! 정명, 중국어 할 줄 알아요?”
“조금요, 조금. 배우고 있어요.”
정명이 더듬더듬 중국어로 얘기하자, 팬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중국에 진출한지 한 달째.
어느 새 정명도 꽤나 중국에서 인지도를 쌓았다.
방송 출연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나오고 있는 상황.
이대로만 가면, 성공적으로 중국에 정착할 수 있을 듯 했다.
“정명, 시간 다 됐습니다. 부스로 들어가 주세요.”
“예. 지금 갑니다.”
스태프의 말에, 정명이 곧장 부스로 들어가 셋팅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 정명의 상대는 팀 녹스.
원래는 첫 번째로 상대했어야 할 팀이지만,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제야 그들을 상대하게 되었다.
현재 무패로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XTC와 10위 팀의 싸움.
당연하게도 게임은 일방적으로 XTC가 두드려 패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경기를 해설하는 해설자들은 간간히 기계적인 리액션만을 해주며, 일찍 퇴근할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아, 해설 안 하냐고요? 솔직히 말해서, 할 게 없어요. 이미 승패는 났거든요. 났는데, 그냥 버티는 거죠 뭐.....
XTC가 질 확률은 0%. 그것을 알기에 해설자들도 경기 해설보다는 적당히 프로리그 뒷얘기로 시간을 때우며, 지루한 해설이 되지 않게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한 이유들로 빨리 끝내달라는 해설자의 기도가 통했는지, XTC는 게임을 시작한지 20분 만에 상대의 본진을 터트리며 게임을 끝내버렸다.
[2부 리그에서 승리했습니다. 포인트 2000점을 획득합니다.]
[4연승 보너스! 포인트가 50% 추가로 지급됩니다.]
언제나처럼 뜨는 포인트 지급 메시지.
하지만 오늘은 한 줄의 메시지가 더 떴고, 기계적으로 시스템 메시지를 읽던 정명의 눈이 빛났다.
‘연승 보너스...이런 것도 있었나?’
그동안 연승을 한 적은 꽤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4연승을, 그리고 한 번도 지지 않고 모두 2:0으로 보내 버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포인트가 이 정도로 벌린다면, 모아두었던 포인트를 사용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다람쥐가 먹이를 숨기듯이, 정명은 여유 포인트를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2부 리그에서도 상당한 포인트 수급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지금, 포인트를 쌓아 둘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정명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스탯을 올리기로 했다.
[현재 능력치]
피지컬 (80/100)
정신력 (70/100)
오더 (71/100)
판단력 (75/100)
잔여 포인트 : 33020
잔여 포인트 3만.
상대하기 힘든 상대를 만났다면 진작 사용했을 법도 하건만, 지금 능력으로도 2부 리그 팀은 쉽게 이길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쌓아두었던 포인트들이었다.
‘피지컬은 지금 올릴 엄두도 안 나고...그럼 판단력을 80으로 올려볼까?’
[사용 가능한 포인트 31020, 사용 포인트 5000]
[판단력을 올리시겠습니까?]
‘와, 5000. 세상에, 와.’
스탯을 1 올리는 데 드는 포인트는 5000점. 언제 봐도 무시무시한 가격이다.
하지만 그것을 지불할 만한 가치는 있을 것임을 알고 있기에 망설이지 않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판단력이 1 올랐습니다.]
[판단력이 1 올랐습...]
[판단력이 79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판단력을 올릴 수 없습니다.]
*선행조건 : 오더 포인트가 80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떴지만, 정명은 대수롭지 않아했다.
‘그래? 그러면 오더를 올리지 뭐.’
[오더가 1 올랐습니다.]
[오더가 1 올랐습니다.]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스탯을 올릴 수 없습니다.]
[잔여 포인트 : 3020]
‘나쁘지 않네.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면 익숙하지 않은 캐릭터를 잡아도, 상대를 때려눕혀줄 수 있을 것 같다.’
거만하다기 보다는 정확한 현실인식이었다.
원래는 라인전에서 질 가능성이 1%였다면, 정명은 막대한 포인트를 투자하여 그 확률을 0%로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연습 금지조치.
정명이 다른 해외 팀과의 연습을 했기에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고는 해도, 기분 상으로는 무척이나 거슬렸다.
중국 팀의 생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메이는 정명과의 대화에서 심플한 해답을 냈다.
“정명이 이 바닥에서 인기가 더 높아지면, 협회장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걸요? 여기 팬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아시죠?”
“정론이네. 근데 무슨 수로 팬들의 지지를 얻어? 난 중국인도 아닌데.”
정명은 중국에서 제대로 녹아들려면 중국 국적이라도 따야 하지 않나 걱정했지만, 메이의 생각은 달랐다.
“요즘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송하니라는 선수도 중국인이 아니에요. 그건 상관없어요. 아무튼 지금 3연승중이죠? 경기 수로 따지면, 6연승.”
“어, 그렇지.”
“계속 연승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마도?”
“그러면 계속 연승 해 보세요. 혹시 알아요? 전승으로 우승할 수 있을지...전승우승은 아직 없으니까, 분명 큰 이슈가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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