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87화 (87/226)

< 28. OMA (5) >

할 것 없는 비행기 위에서의 시간.

정명은 핸드폰을 통해, 자신이 중국에서 계약을 진행하는 동안 이루어진 북미의 이적 시장 정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와, 싱글리프트가 TBM으로 갔어? 이건 좀 놀라운데. 구단주가 절대 안 내어줄 것처럼 말하더니.’

싱글리프트는 GLG라는 인기 팀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였다.

그가 없는 GLG는 상상할 수도 없었고, 다른 네 명의 팀원의 인기를 합쳐 봐야, 싱글 리프트 혼자의 인기에도 못 미쳤다.

마치 OMA에 있는 정명처럼 말이다.

정명은 충격과 놀라움을 표시하는 게시판 여론을 보며, 괜히 뜨끔한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배신자라고 욕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조건만 맞았으면 나도 OMA에 남았을 거라고.’

싱글리프트의 경우에는 팬들이 욕을 하는 건 둘째 치고, 전 팀의 선수들과 서로 SNS에서 싸우고 있었다.

너는 참 엿 같은 녀석이었다느니, 성격이 쓰레기라느니 하는 그런 추잡한 개싸움.

정명은 자신의 팀원들을 떠올렸다.

다행스럽게도, 나름 원만하게 지냈던 OMA 선수들을 생각해보면 자신이 떠난다 하더라도, 이런 추잡한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간다고 하더라도, 잘 할 수 있겠지? 다른 녀석들은.’

탑 라이너 웨이홍, 원딜러 아이작, 정글러 조시 같은 다른 팀원들은 내버려둔다 하더라도 알아서 잘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정명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서포터 에리였다.

에리는 정명이 억지로 설득하서 데리고 온 사람이었으니, 정명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나이 때문에 선입견이 생길 거란 말이지. 나 참, 상태창을 남들에게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때우는 도중, 길고 긴 비행 끝에 정명은 다시 미국 공항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명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타이밍 좋게 에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정명아. 혹시 시간 되니? 잠깐 내 이야기 좀 들어줄 수 있어?

“예. 되죠.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어...그게 있지, 전화로 말 하기는 좀 그렇고, 아무튼 우리 집으로 와. 연습실 근처인데, 정확한 위치는.....

막 귀국한 상태여서 조금 피곤하지만, 정명은 알았다고 대답하며 에리의 집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의 집에 도착한 정명은 현관에서 잠시 멈칫거렸다.

‘들어가기 왠지 좀 그러네. 혼자 있는 건 아니겠지.’

여자 둘이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려니 왠지 꺼려지는 정명이었다.

하지만 정명은 이내 초인종을 눌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어, 그래. 정명이 왔구나. 응, 그래. 정명이......어서 들어 와.”

혼자 중얼거리듯 말 하는 에리의 눈은 살짝 풀려 있었다.

그리고 정명이 방 안으로 한걸음 내 딛자마자, 그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어라. 술 마시셨어요?”

“조금. 조금밖에 안 마셨어.”

“그런 것 치고는 방에 술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요.”

정명은 그렇게 말 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이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 방이 좁다는 느낌은 받지 못 했다.

또한, 선반에 잘 진열되어 있는 작은 곰 인형과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애의 방이라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방이었다.

그런데 그 한 가운데 있는 테이블에는 그런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술병들 좀 봐. 세상에, 이걸 혼자 다 마신거야?’

분위기를 보아하니, 모두 혼자 마신 모양.

정명은 에리의 주량에 감탄하면서도, 걱정스레 물었다.

“대낮에 무슨 술을 이렇게 마신 거예요. 몸 버려요.”

“내애애애애가, 너무 속상해서 그래! 있지, 나 오늘 OMA에 새로 왔다는 사람들 만나러 갔다? 그런데...나보고 나가 달래!”

새로운 코치와 스태프들에게서 에리는 계약 해지를 요구받았다고 한다.

나이를 생각하면, 슬슬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이놈도 그렇고, 저놈도 그렇고 다 나쁜 놈들이야. 흐끄윽...”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데도 말인가요?”

“계약해지 안 하면, 벤치로 돌리겠대. 하지만 계약해지에 동의해 주면, 돈을 좀 더 주겠다고 하더라. 퇴직금도 얹어줄 테니 합의 보자고.”

에리는 씩씩거리며 맥주 한 캔을 딴 뒤, 벌컥벌컥 들이켰다.

정명은 에리가 자신에게 건네는 술을 거절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요,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다른 팀으로 이적인가요?”

“몰라. 놀까? 돈도 많이 들어왔구...응, 그러자. 백수 할래.”

아무래도 술에 취한 상태로는 제대로 된 이야기 진행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정명은 방 안을 슥 둘러봤다.

“애는요?”

“애?”

“당신이 기르고 있는 꼬마요. 어디 나갔나요?”

“아, 쿠론? 어디더라. 어디...아 그래. 프로게임단에 들어간다고 테스트 보러 갔어. 엄마 대신 돈 번다고. 응...”

‘역시나, 그렇게 되는 건가?’

과거의 기억속에서도 쿠론은 지금 정도의 시기에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정명은 에리가 뒤늦게 프로게이머가 되어, 혹시나 쿠론의 앞길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정명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한, 소소하게는 바뀌어도 큰 틀에서는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만약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녀석은 아마 잘 해 나가겠지. 재능이 있으니까.’

그 후, 신세 한탄을 하던 에리는 펑펑 울다가 지쳐 잠들었다.

정명은 그런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집에서 나왔다.

“휴, 나도 이젠 모르겠다. 퇴직금 잔뜩 받았다고 했으니, 굶어 죽진 않겠지.”

그렇게 에리의 집에서 나와, 몇 발자국 걸은 정명은 또다시 의문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조시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정명, 잠깐 와서 내 얘기 좀 들어줄 수 있어요? 내가 슬픈 일이 있어서 그래요, 부탁합니다.

‘데자뷰 인가?’

정명은 이런 일을 전에 겪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반문했다.

“혹시 구단에서 계약 해지한다고 하던?”

-어라? 어떻게 알았어요? 아직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한 건데.

“그냥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정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시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시가 나왔다.

“들어오세요.”

“뭐야, 너도 술 마셨어?”

“네. 조금요.”

아니나 다를까, 조시 또한 만취한 상태였다.

그리고 조시의 방 테이블에도 역시나 술이 있었는데, 정명은 어이없다는 듯 세 개의 텅 빈 맥주 캔을 쳐다봤다.

‘얘는 무슨 이거 세 개 마시고 저렇게 취한 건가?’

“크흡.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연봉 동결에 주전 경쟁이라니, 월드챔피언십에 나가서 활약한 게 누군데!”

“흠...야, 조시야.”

“네.....네?”

“너. 나랑 일 하나만 하자.”

그리고 그 후.

정명이 OMA에서 같이 일했던 몇몇 동료들과 함께 중국의 XTC라는 구단으로 이적한다는 공식 기사가 발표되었다.

@@@@@

며칠 뒤, 중국 공항.

한국의 인기 아이돌 가수, 한성은 공항에 나와 있는 사람들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공항에 사람이 왜 이렇게 많지? 야, 매니저!”

“넷!”

“사람 불러서 길 뚫어야겠다. 사람들 좀 불러봐.”

중국에 오는 것을 비밀로 하고 비행기를 타기는 했지만,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이러한 일은 사생활이 많이 사라진 아이돌 가수의 숙명 비슷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성은 경비 넷을 대동한 채, 선글라스를 끼고 공항으로 나섰다. 그런데...

‘뭐야, 여기 중국 맞지? 웬 서양인들이 이렇게 많이...’

이상하게도 공항에는 노란머리의 서양 사람들이 가득했다. 한성의 주 팬층이 아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 나와 있던 사람들은 한성을 전혀 모르는 듯 했다.

그보다는 아예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무척이나 한가한 한성의 주변. 경호 따위는커녕, 혼자 걸어 나와도 아무 상관이 없을 듯 했다.

때문에 한성을 경호하던 공항 직원들은 ‘넌 뭔데 경호를 요청했냐.’ 는 의문이 담긴 시선을 던지기 시작했고, 한성은 민망하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그 순간, 한성의 뒤에서 환호성이 퍼졌다.

“정명! 중국에서도 힘내요. 응원할게요!”

......

한성이 중국의 직원들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있던 그 시각.

열렬히 환호하는 팬들을 뒤로하고 겨우 차에 올라탄 조시는, 정명이 받은 선물들을 보며 물었다.

“그건 다 뭐에요?”

“먹을 거랑, 편지랑, 이상한 상자. 이따가 뜯어봐야겠다. 그런데 조시, 방금 전에 경호원 잔뜩 데리고 다니던 사람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았냐?”

“잘 모르겠는데요. 그보다 정명, OMA의 오피셜 기사 떴어요. 한 번 보세요.”

[OMA, 리빌딩 완료. 이제는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향해.]

정명은 화면을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아, 이거 봤어. 새로 온 OMA 감독, 허세 장난 아니더라.”

기사 사진에는 환하게 웃는 디클레어와 OMA 선수들이 있었다.

계약 기간이 많이 남은 탑 라이너, 웨이홍과 원딜러 아이작은 OMA에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비싸게 영입했다는 한국인 선수가 디클레어의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기사 끝을 장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팬들은 갑자기 변화하는 OMA에 대해 놀라워하면서도, 달갑지 않아 하는 입장이었다.

오필리아 : 갑자기 OMA를 키운 주축 선수들이 다 빠져버렸네. 이제는 OMA가 OMA답지 않은 것 같아.

?맞아. 다른 팀이 되어버린 느낌. 그냥 OMA 채널 구독 해지해야겠다.

?나도, 나도. 처음 보는 선수들이 갑자기 우리가 OMA 입니다. 라고 하는데, 팬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때문에 OMA의 인기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반의 반 토막 난 구독자 수, 티셔츠 판매량, 팀 아이콘 판매량.

이를 회복하려면 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었다.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정명의 행보는 꽤나 주목을 받았다.

정명은 재계약을 하지 못한 조시와 코치, 그리고 몇몇 스태프까지 중국에 데려가며, 꽤나 큰 이슈를 일으켰는데, 한국에서 중국. 또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사람들은 그동안 많이 있었어도, 미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 때문에, 미국의 방송국은 정명이 활동하게 될 리그를 중계하기로 결정했다.

팀 OMA의 인기는 식었지만, 정명이라는 선수 자체의 인기는 그대로였으니까.

여러모로 따져본 결과, 돈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한 시간 뒤.

정명과 그 일행은 무사히 연습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시는 연습실을 둘러보며 짧게 감탄을 했다.

“좋은데요? OMA보다 훨씬 좋은 것 같아요.”

“내 생각도 그래.”

깨끗한 건물과 겉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장비들.

또한, 공기의 질을 의식했는지 공기청정기만 다섯 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정명이 들어오자마자, 매니저라는 사람이 재빠르게 달려왔다.

“안녕하십니까. XTC의 매니저, 황반뚱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어라. 영어 할 줄 아시네요?”

“당연하죠. 저 이래봬도 4년제 대학 나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요즘 영어 못 하면 취업이 안 된다고요.”

매니저의 환대에 정명은 웃으며 연습실에 들어왔지만, 금방 얼굴을 찌푸렸다.

연습실에 있던 선수들이 담배를 뻑뻑 피우며 있었기에, 연습실에 연기가 자욱했던 것이다.

“앞으로 연습실 내에서 흡연은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담배 좀 꺼달라고 해주실래요?”

정명에게 대들었던 정글러의 목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봤기 때문일까?

매니저는 바람처럼 선수들에게 달려간 뒤, 선수들의 뒤통수를 치며 중국어로 욕설을 내뱉었다.

[야, 병신들아. 뭐해 빨리 담배 안 끄고.]

그런 과격한 행동에 정명과 같이 온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매니저를 만류했지만, 매니저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얘네들은 무식해서 때려야 말을 듣는데요?”

“아니, 안 됩니다. 우리 연습실에서 폭력은 있을 수 없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다들 이렇게 하던데요. 저도 구단의 지원을 받아서 한국의 프로게이머 시스템을 배워 온 사람입니다.”

그 말에, 정명은 한숨을 푹 내뱉었다.

“나 참, 한국에서 별 걸 다 배워오셨네. 아무튼, 앞으로는 연습실 내 금연입니다. 폭력도 금지에요. 아시겠습니까?”

정명은 중국 문화를 이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이런 부분에서 타협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저들 입장에서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냈다고 생각하며 짜증낼 수도 있겠지만, 정명은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맞춰주는 게 아니라, 니들이 나에게 맞춰야 할 거야. 아쉬운 것은 내가 아니니까.’

정명에게 한 소리를 들은 매니저는 머쓱하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더니, 정명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아직 발표는 안 된 건데, 방송국 가서 미리 빼왔습니다. 리그 대진표요. 한 번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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