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 OMA (1) >
월드 챔피언십까지 끝난 시점.
프로게이머로써는 방학 비슷한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시간은 엄청 널널했지만 정명은 한국에 돌아가서 쉬는 대신, 미국으로 향했다.
‘가 봐야 뭐 해. 집에 가서 잠이나 자겠지. 그럴 바에 개인 방송 하면서 용돈이나 버는 게 낫다.’
그런데 겨우겨우 도착한 미국 공항에서 정명은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월드챔피언십 8강까지 돌파하여 금의환향을 한 이 시점에서, 과연 공항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팬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정명은 자신의 시스템창에 떠오른 명성 수치를 지긋이 바라봤다.
[명성 : 2950]
*평가 : 최상급의 북미선수 중 한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활동한 기간이 짧아 대중적인 인기는 부족할지 몰라도, 매니아층의 지지도가 높습니다.
‘으음, 애매하네. 한 명 정도는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연예인처럼 사생활이 없는 것은 물론 최악이지만, 적당히. 조금씩 알아봐 주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런 걱정과는 달리, 다행스럽게도 정명은 공항에서 자신을 마중 나온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팬이라기보다는 아는 사람이었지만.
“오, 코치님!”
“컹!”
“어.....너도 안녕, 누렁아.”
정명을 기다리고 있던 팬들의 정체는 OMA의 코치와 하얀 색의 대형견. 그리고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금발의 꼬마숙녀였다.
그리고 그 금발의 꼬마는 정명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어색한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아뇽하세여. 캐서린입니다.”
“응, 안녕. 한국어 잘 하네. 하하.”
소녀는 빙긋 웃더니, 개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도니. 너도 인사해.”
“컹!”
정명은 자신을 향해 짖는 개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는, 코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얘는 누구에요?”
“내 딸 캐서린. 네 엄청난 팬이야. 널 무척 만나고 싶어 해서 데려왔지.”
정명이 캐서린을 쳐다보니, 캐서린은 쑥스러워 하는 듯 개의 털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코치는 정명의 얼굴을 보더니, 곧바로 손짓했다.
“아, 정명 피곤하지? 일단 움직이자고. 내가 숙소까지 데려다줄게.”
세 명과 한 마리의 개가 코치의 차에 올라탔다.
캐서린이라는 꼬마는 정명의 옆자리에 앉았고, 정명의 옆으로 바짝 다가오며 물었다.
“정명, 혹시 요즘 트위터해요?”
“나 그거 아이디도 없는데. 왜?”
“역시 아니죠? 휴, 다행이다. 요즘 자기가 유정명이라는 사람이 설치고 다니거든요. 근데 이 사람, 하는 게 조금 저질이라.”
캐서린은 그렇게 말하며 노트북의 화면을 보여줬다.
그곳에서는 자신이 유정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트위터 계정이 나타나고 있었다.
-팀원들이 좀 더 제대로 했으면 4강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아. 윈디님. 프로필 사진이 굉장히 예쁘시네요. 저랑 맞팔 하실래요?
정명은 허허 웃으며 자신을 사칭하는 사람의 트위터를 읽다가 캐서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맞팔이 뭐야?”
“조금 더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그래? 아무튼 이거 나 아냐. 난 트위터를 포함해, SNS는 전혀 안 해. 귀찮거든.”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럼 이 괘씸한 녀석은 언니한테 말해서 처리해야겠네.”
“언니?”
“팬클럽에 있는 변호사 언니요. 그보다 정명, 팬클럽 좀 자주 접속해 주세요. 모두들 당신과 얘기하고 싶어 한다고요.”
“그래. 이제는 조금 한가해졌으니까, 노력해 볼게.”
......
잠시 뒤.
연습실에 도착한 코치는 뜬금없이 정명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정명은 그 손을 맞잡으면서도, 뭔가 싶어 쳐다보았다.
“정명, 아마 이게 OMA에서 내 마지막 일이 될 것 같다. 그동안 즐거웠어.”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구단과의 계약이 만료됐거든.”
“어....저기, 그게...”
뜬금없는 폭탄선언에 정명이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이 순한 인상의 코치는 정명이 OMA에 들어오기 전부터 코치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정명은 아쉬움과 놀라움의 감정을 담아, 코치와 맞잡은 손을 쳐다보았다.
‘꽤 잘 하던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왜...아니, 그보다 왜 선수들에게 말 한마디 없이?’
분위기가 갑자기 내려가자, 코치는 일부러 밝게 웃었다.
“하하, 괜찮아. 위로할 필요 없어. 이미 다른 일자리 잡았으니까. 그보다 나 있잖아. 그동안 코치로써 잘 했지 않아? 돌이켜보면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그 물음에, 정명은 진심을 담아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정말로. 나중에 또 봐요.”
짧은 인사를 끝으로, 정명은 코치와 헤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지긋지긋해질 정도로 익숙해진 연습실 문을 열며, 한숨을 푹 내뱉었다.
‘에효, 호텔은 돈 아깝고, 집은 없고. 결국 갈 곳은 이 지긋지긋한 연습실 밖에는 없구나. 나중에 돈 더 모으면 집 구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지.’
텅 빈 연습실에는 딱 한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명처럼 딱히 갈 곳이 없는 조시가 개인방송을 돌리며 과자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조시는 연습실로 들어오는 정명을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 정명. 왔어요? 꽤 늦으셨네요. 우리는 거의 10일 전에 미국에 왔는데.”
“어, 그렇게 됐어. 마지막 경기까지 보느라, 조금 느긋하게 있었거든. 그보다 너 코치 소식 들었냐?”
“무슨 소식이요?”
“코치가 계약 만료돼서 짐 쌌다는 소리 말이야. 이제 얼굴보기 힘들 거라던데?”
정명의 말에 조시가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 정말요? 처음 듣는 소리에요. 막내 스태프 얘긴 들었는데.”
“막내 스태프? 걔는 또 왜?”
“계약 만료됐다고 나간다고 하더라고요. 어, 이번에는 유난히 OMA를 떠나는 사람이 많네요. 안 그래요?”
@@@@@
며칠 뒤.
한가롭게 커뮤니티 사이트를 둘러보던 정명은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윈터 시즌 스폰서 기업, ‘언더워치’의 후원으로 북미의 인기선수들을 모아, 팬미팅을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정명은 그 공지를 읽고는, 조금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공지를 한 번 더 읽기 시작했다.
“뭐야, 왜 난 없어? 아니, 당연히 없겠지. 따로 연락 받은 것도 없는데.”
팬미팅 참가 팀은 GLG, C90, TBM. 월드챔피언십 전, 북미에서 가장 인기가 많던 세 팀이었다.
스폰서가 주관하는 홍보용 팬미팅을 꼭 하고 싶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명은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월드챔피언십에서 8강까지 간 게 누군데, 아직도 인기구단이 GLG, C90, TBM이야? 나참.’
정명은 팬미팅 공지사항을 닫으며, 자신의 팬클럽 정보 창을 띄워보았다.
[팬덤 결성 LV2]
-불매 운동 : 사용자와 대립하는 기업에게는 적극적으로 불매운동을 펼쳐, 기업을 압박합니다.
-광고 효과 : 되도록이면 사용자가 광고를 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합니다.
*팬클럽이 더욱 발전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명성 수치가 3000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포인트를 소모하여, 팬덤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현재 명성 : 3000
팬덤 등급 상승 시 필요한 포인트 : 5000
‘포인트 아까워서 안올리려던 거였는데, 이렇게 되면 약 올라서 올릴 수밖에 없지 않겠어?’
정명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웃었다. 그리고 등급 상승 버튼을 눌렀다.
[팬덤의 등급이 상승했습니다!]
[팬덤 결성 LV3]
*팬클럽 제 1지부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팬들은 충성도가 무척 높은 팬층입니다.
적당히 관리만 해 준다면, 이 팬들은 당신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열성 팬클럽 회원 - 67명
총 회원 - 6632명
월 후원금 - 4512달러
‘월 후원금? 가만히 있어도 돈이 들어온다고? 하, 이건 좀 마음에 드는군.’
그리고 정명이 팬 등급을 올린 직후,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유명한 테니스 선수이자 정명의 팬클럽을 만든 장본인, 벨라였다.
“벨라야. 오랜만.....”
-나 지금 커뮤니티 사이트 봤는데, 혹시 팬미팅 요청 거절했어? 왜 OMA가 없지 이거? 응?
벨라는 인사도 생략한 채, 속사포처럼 팬미팅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말이 빠른 것을 보아하니, 조금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하하,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연락을 못 받았는데.”
-역시 그렇지! 이 개새끼들. 구닥다리 퇴물들만 초청하고, 미쳐돌아가......
벨라는 평소에 보여주던 태도와는 달리, 무척이나 격양된 모습이었다.
흥분하여 한참을 떠들던 벨라는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밝게 외쳤다.
-그래! 차라리 우리끼리 팬미팅을 여는 거야. 어때?
“뭐? 우리끼리?”
-걱정 마. 내가 싹싹한 애들로만 데려갈게. 널 귀찮게 하지 않을 거야.
@@@@@
역시나 OMA를 빼고 팬미팅을 연 것은 좋은 판단이 아닌 듯 했다.
팬미팅 공지사항의 댓글 란은 기대된다는 말 보다는, 악플로 꾸역꾸역 채워지고 있었다.
pangya44 : 팬미팅은 좋은데...OMA는 대체 어디가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패배자들만 모아놨냐?
ActiveXXX : GLG가 있는데 OMA가 없음 ㅋㅋ. 응, 안가. 내수용 팀끼리 재밌게 놀아.
‘흠, 욕 먹는 것 보니, 저쪽 팬미팅은 잘 안될 것 같네. 그럼 이쯤에서 신경 끌까. 나랑은 이제 관계없는 일이니까.’
댓글을 천천히 바라보던 정명은 화면을 끄고, 자신의 팬클럽이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정명의 말 대로, 이제는 정명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정명이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본 것은 코치의 딸, 캐서린과 하얀색 개였다.
캐서린은 지난 번 만났을 때처럼 정명에게 한국어로 수줍게 인사했다.
“오빠, 안ㄴ,안녀엉?”
“어, 그래. 안녕. 또 보네. 도니도 안녕.”
“컹!”
캐서린이 한국어로 말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오파? 그게 무슨 뜻이야?”
“친분이 있는 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이야. 인터넷에서 봤어.”
“어, 그럼 나도. 오쁘아! 오파?”
팬클럽에 가입했다는 것만 해도, 꽤나 코어한 팬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보통은 그 선수를 좋아한다고 해도, 번거롭게 팬클럽까지 가서 가입하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열성 회원으로 분류된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정명에게 상당한 호의를 품은 사람들뿐이었고, 덕분에 팬미팅은 단 하나의 트러블도 일어나지 않은 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팬미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쯤, 얌전히 있던 캐서린이 정명에게 다가왔다.
“저기, 정명. 이런 말 하는 거 무척 실례일 것 같은데,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아뇨. 하지 마세요.”
“어...”
“장난이에요. 말해보세요. 되도록이면 답해 드릴게요.”
“이번에 OMA랑 1년 계약 끝나죠? 재계약 하는 거예요? 아니면...딴데 가요?”
그 말에, 모든 팬들의 시선이 모였다.
정명은 이걸 말해도 되나 싶었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벨라가 엄선한 우수 회원들. 어느 정도는 믿어도 되는 사람들이었다.
“사실 생각해두고 있는 계획은 있어요. 지금 단계에서 말하긴 조금 조심스럽지만요.”
“음...그럼 팀을 선택할 때 어떤 것 위주로 보세요? 역시 연봉인가?”
그 말에, 정명의 입이 닫혔다. 이건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질문이 아니었으니까.
‘포인트, 연봉, 분위기, 등등...보는 건 많지만 일단 제 1 조건은 포인트야 포인트. 포인트를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환경에 있어야 해. 물론 이걸 솔직하게 말 할 수는 없고.’
그렇게 팬들과 친목을 다지던 시각.
잘 놀고 있던 벨라가 급하게 다가와, 정명의 팔을 툭툭 쳤다.
그리고는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며 물었다.
“이 신문기사 좀 봐봐. 이거 알고 있었어?”
“응? 뭐가?”
그리고 무심하게 눈을 내리깔며 기사를 본 정명은 꽤나 놀랄만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OMA, 사모펀드에 팔리다. 경영권을 포함해, 5억 달러에 매각계약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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