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프랑스로 간 사람들 (1) >
올해 월드 챔피언십이 열리는 곳은 프랑스 파리.
파리가 무척 좋은 곳이라서 같은 이유로 파리에서 열리는 것은 아니고, 이번 월챔은 유럽에서 열리는 순서가 되었기 때문에 파리에서 열린 것이었다.
그리고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조시와 에리는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다들 조심해요. 파리는 화려한 겉보기와는 달리, 꽤나 위험하대요. 인터넷에서 봤어요.”
“정말? 그러면 이따 마트에 들러서 총이라도 하나 사둘까? 호신용으로.”
“오..총. 에리, 혹시 미국에 있는 집에도 총 있어요?”
“당연하지. 여자 두 명이서 살려면 호신용으로 하나 필요한 걸? 그 왜, 지난번에도 집에 들어온 도둑을 내가 샷건으로...농담이야. 무서워하지 마.”
정명과 그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정된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명은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로비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햐. 그야말로 올 스타네. TV에서 자주 보던 사람이 엄청나게 많이 모여 있어.’
평소라면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중국과 한국의 정상급 선수들.
파리에 온 것은 OMA가 가장 늦은 것인지 다른 선수들은 이미 파리에 도착해있었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 정명은 지나가는 척, 재빨리 다른 선수들을 스캔하기 시작했다.
[우드]
피지컬 : 90/93
운영능력 : 65/80
팀워크 : C+
포텐셜 : A+
‘미친, 피지컬이 90 이상인 놈도 있잖아? 저건 절대로 못 이긴다.’
정명이 처음으로 상태창을 열어본 사람은 중국의 우드.
중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원딜러이자, 실력파 선수 중 하나였다.
다만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많은 인기를 얻다보니 꽤나 성격 나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이쪽 업계는 실력이 깡패였으므로, 그런 것은 사소한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대부분 피지컬이 상당했다. 다섯 명 모두 피지컬이 80 아래로 가는 선수가 없을 정도로.
정명이 생각할 때는 올스타전에 나온 사람들 중, 피지컬이 80 아래로 가는 사람들은 북미 선수들 밖에는 없을 듯 했다.
잠시 뒤.
OMA 팀원들을 포함하여, 호텔 로비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은 짐도 풀지 않은 채 다른 선수들을 구경하고 있는 정명. 그리고 로비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중국, 대만 사람들뿐이었다.
그리고 정명 또한 이제 볼 정보는 다 봤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던 때, 정명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뭔가 되게 오랜만이네요?”
“엥? 아니, 당신은...”
이제 방에서 쉬려는 정명을 부른 사람은 자칭 미녀 기자, 타칭 짝퉁 기자인 메이였다.
정명은 놀랍다기보다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메이를 돌아보았다.
“메이 당신이 여기는 어떻게 온 거에요?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소식이 끊기더니, 웬 프랑스에?”
“어떻게 오긴요. 팀 관계자로 왔죠. 중국의 No.1 팀인 로얄 패밀리아의 미녀 매니저, 그게 바로 저라고요.
메이는 과장된 몸짓으로 빙그르르 돌며 자랑했고, 정명은 꽤나 놀랐다.
로얄 패밀리아는 중국 랭킹 1위로 월챔에 올라온 대단한 팀이었고, 방금 전, 정명이 상태창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던 중국의 원딜러. 우드가 속해있는 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메이는 정명이 놀란 것이 만족스러웠는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던가요? 사실, 오히려 기자를 그만둔 게 오히려 잘 된 일이 되었어요. 지금은 그 때에 비해, 월급을 배는 받고 있죠!”
“아 예... 그것 참 다행이네요. 고맙다고는 안 하셔도 됩니다.”
“당연히 안 해요. 저도 그 때는 당신의 뺨이라도 때려주고 싶었으니까. 뭐, 지금은 당신이랑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해도 되죠?”
메이는 그땐 정말 무서웠다느니, 때려주고 싶었는데 싸우면 질 것 같았다느니 하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메이의 수다를 듣던 정명은 피곤한 기분이 들어, 메이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제가 좀 피곤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精靈寶可夢....."
“네?”
그렇게 작별인사를 하려는 정명에게 한 중국 선수가 다가왔다.
그 중국 선수는 굳은 표정으로 메이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기 시작했고, 떠날 타이밍을 놓친 정명은 그들의 옆에서 멀뚱멀뚱 서 있어야만 했다.
‘이 녀석은...로얄 패밀리아에 속해있는 콴이라는 녀석이었지? 오늘 유명인 정말 많이 보는군.’
그는 짧게 몇 마디를 덧붙이고는 원래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정명이 고개를 돌려보니 중국에서 온 올스타 다섯 명이 모두 이곳을 보고 있었다.
“뭐라고 하던가요? 저 녀석들, 마치 어미새를 바라보는 새끼들처럼 보고 있는데.”
“우리 애들이 조금 독점욕이 강해서...다른 팀의 사람이랑 오래 대화하고 있지 말라고 하네요.”
“아니 그건 또 무슨...당신 인기 많아요?”
“정명. 당신은 저를 짝퉁 기자라며 무시하고는 하는데, 저 이래봬도 나름 엘리트거든요? 중국의 명문 대학을 나왔고, 영어 동시통역 가능, 무엇보다 한눈에 반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매력적인 외모! 이런 저를 무시하는 건 당신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주셨음 해요.”
“네? 외모라면 우리 팀에 있는 아줌마보다 한참 밀리시는데요?”
잠시 뒤.
메이와의 잡담을 마친 정명은 작별인사를 건넸고, 메이는 막 생각났다는 듯, 정명의 뒤에 대고 말했다.
“아, 그리고 소식 들었어요. 이번 올스타전 첫 경기를 유럽 팀이랑 붙는다면서요? 부담 많이 되시겠네요. 그래도 힘내세요!”
이번에야말로 숙소로 돌아가려던 정명은 메이의 말에, 또다시 고개를 돌렸다.
“뭐요? 올스타전 일정이 벌써 나왔어?”
@@@@@
올스타전은 월드 챔피언십 일주일 전에 열리게 된다.
북미, 중국, 한국, 유럽, 대만, 브라질. 총 여섯 개의 팀이 올스타전과 월드 챔피언십을 치르게 되는데, 그 중에서 브라질이 가장 실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정명이 파리에 도착하고 난 다음 날.
정명은 같이 올스타전을 치를 선수들과 만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숙소를 나서며 불평하는 것 또한 물론 잊지 않았다.
‘아무리 처음 여는 거라 어설프다지만, 일정을 참 거지같이도 잡았네. 피곤한데 씨...’
북미의 올스타전 대표로 참가한 것은 C90의 2명과 TBM의 2명. 그리고 정명이었다.
정명은 다섯 명이 모이자마자, 올스타전 상대에 대해 물어보았다.
“애기 들었습니다. 우리 대전 상대가 벌써 정해진 모양이던데 어떻게 된 건가요? 원래는 오늘 제비를 뽑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제가 그냥 빨리 하자고 했어요. 우리 팀이 오늘 그 시간에 연습게임 일정이 있었거든요.”
“그럼 다른 사람이 제비를 뽑으면 되잖아요?”
“예? 대진을 결정하는 제비는 제가 뽑아야죠. 제가 리더인데”
정명의 말에 대답한 것은 C90의 원딜러, 펙토르였다.
그는 마치 자신이 북미 팀의 리더라도 되는 것 마냥 행동하고는 했다.
사실 이것은 C90이 이뤄낸 업적. 즉, 1년 동안 북미 리그에서 우승하여 TBM에게서 북미의 제왕 자리를 뺏어왔기에 취할 수 있는 태도였다.
그리고 5분 뒤.
기껏 다섯 명의 올스타 선수들이 모였음에도, 그들은 연습을 하지도 않은 채 잡담만 하다 헤어졌다.
모두가 개인연습을 한다며 떠나고, 남은 사람은 정명과 C90의 서포터, 해리 뿐.
정명은 휑한 연습실을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몇 번 모이긴 했는데, 잡담만 하고 연습은 한 번도 같이 한 적이 없네요. 지금이라도 조금 합을 맞춰봐야 하는 것 아니에요?”
“글쎄요. 아무래도 우리들은 올스타전보다는 개인 연습에 비중을 두고 싶어서요. 거기다가 올스타전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서 연습하는 것은 중국이나 한국 팀 밖에는 없을 걸요? 너무 걱정 마세요.”
해리의 말도 일리가 있긴 있었다.
올스타전에서 이기면 팬들 기분이야 좋겠지만, 선수가 그곳에 시간을 투자하기에는 개인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얼마 없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팬들이 뽑은 첫 올스타전’ 이라는 것이었다.
정명은 자신의 메시지 창에서 어른거리는 퀘스트를 보며, 한숨을 뱉었다.
[올스타전의 열망]
팬들은 자신의 손으로 투표한 선수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만약 그런 팬들의 기대에 부흥한다면, 당신의 팬덤은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이벤트 전처럼 보이겠지만, 주의하십시오.
만약 일정 수준 이하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면, 팬들은 언제고 악플러로 변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보상은 당신이 보여준 퍼포먼스에 따라 차등 부과됩니다.
*본 퀘스트는 사용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진행됩니다.
‘너무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주면 큰일 난다고 이것들아...’
다시 한 번 퀘스트를 확인한 정명은 해리를 마지막으로 설득해보기로 했다.
“펙토르? 그 녀석 좀 설득해주시면 안 될까요? 같은 팀이시잖아요. 그 녀석이 한다고 해야, 연습이 될 것 같은데.”
“글쎄. 저보다는 정명 씨가 말 하는 게 더 잘 먹힐 걸요?”
“제가요?”
“제가 정명 씨와 펙토르의 대화를 보면서 느낀 게 있는데, 평소 펙토르 성격대로라면 바로 욕이나 주먹이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많이 있었거든요? 근데 정명에게는 꽤나 조심스러운 것 같더라고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올스타전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어느 날.
정명의 지속적인 요청 덕분에, 북미팀은 드디어 연습게임을 해볼 수 있었다. 딱 한 판만 말이다.
그것도 제일 약체라고 평가되는 브라질 팀을 상대로 한 것이었기에 당연히 승리를 거둘 수 있었고, 게임이 끝난 뒤. 펙토르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냐는 듯 정명을 쳐다봤다.
“너무 걱정 마요. 다른 팀들도 다 연습 안 했을 테니까. 그냥 이벤트 전이라고 생각하세요.”
......
올스타전 당일.
북미 팀 선수들은 올스타전을 ‘그냥 이벤트 전’이라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게임이 시작하기도 전에, 레딧에서는 올스타전에 관한 기대로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커리어센터 : 당연히 북미 팀이 유럽 팀을 박살낼 수 있겠지? 난 이미 1만 달러 걸었다!
스트로우 : 자랑스러운 우리 북미 팀. 믿고 있습니다. 화이팅!
인포메이션 : 지면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 할 줄 알아라.
?쯧쯧. 응원해줘도 모자를 판에, 왜 말을 그딴 식으로 하냐?
무조건적인 북미 팬들의 믿음.
그리고 연습을 하지 않았기에 그 믿음을 배신할 수밖에 없는 북미 선수들은 왠지 속이 거북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괜찮습니다. 어차피 중요한 건 올스타전이 아니라, 월챔에서의 경기니까요. 오늘 진다고 해도, 월챔에서 이기면 사람들의 기분은 곧 풀릴 겁니다.”
펙토르는 자기 합리화를 하듯 말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본인마저도.
‘지랄, 기분이 풀리기는커녕, 폭동이 안 일어나면 다행일 것 같은데.’
잠시 뒤.
정명은 유럽 올스타와의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부스로 들어갔다.
유럽의 올스타로 뽑힌 미드라이너는 아마추어로 활동하다 이제 막 프로게이머가 된 17살 애송이.
하지만 정명이 살짝 살펴 본 결과, 이 애송이는 피지컬 80 중반이 넘는 고수중의 고수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자신보다 실력이 좋은 선수인 것이다.
‘안 되겠다. 이대로 멍청하게 지면, 아무리 올스타전이라도 욕을 엄청나게 먹을 거야. 그럴 바에는 나만이라도 살아야겠어.’
정명은 엉망진창으로 진다면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에, 곧바로 시스템창을 불러왔다.
그리고 송하니와 게임을 하며 해금되었던 특성 하나를 열었다.
[특성을 구입했습니다!]
[잔여 포인트 : 9871 포인트]
[승부욕]
게임에서 이기지 못하면 분이 안 풀립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승부욕이 불타올라, 캐릭터를 다루는 능력이 한 단계 상승합니다.
*숙련도 상승은 LV 4 까지만 적용됩니다.
*숙련도 상승 캐릭터는 일주일에 한 번만 변경할 수 있습니다.
‘좋아. 이거라면, 어떻게든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아마도.’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올스타전 픽밴.
정명은 자신이 픽한 캐릭터와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드맨의 숙련도 : LV 4 대마법사]
캐릭터를 다루는 솜씨가 장인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에 대하여 생각할 때, 이 캐릭터부터 떠올릴 것입니다.
*묘기와도 같은 슈퍼플레이가 낮은 확률로 나오게 됩니다.
[피지컬이 77 + (3)으로 보정됩니다.]
‘좋아. 만약 팀이 지더라도 나 혼자라도 잘 해놓으면 욕은 안 먹겠지?’
ⓒ 추어탕맛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