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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 프로게이머-71화 (71/226)

< 24. 한국에서의 훈련 (2) >

정시영 : 우리가 북미에서 게임했으면 월드 챔피언십 티켓 중 하나는 우리가 가져갔을 걸? 북미잼이라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지.

노국진 : 유정명? 걔 우리 팀에 있다가 분탕치고 나간 연습생 아닌가? 그런 사람이 월드챔피언십 대표랍시고 거들먹거리다니, 세상이 참 이상하게 돌아가네.

NPG에 속해있는 선수들은 직접적으로 욕은 안 해도, 은근히 거슬릴만한 이야기들을 떠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딧으로까지 이 이야기가 퍼졌고, 북미 사람들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단, 아주 조금만 드러냈지만 말이다.

-쟤네들은 뭔데 설치고 다님? 지들은 얼마나 잘났다고.

-미국으로 건너 와라. 나랑 스파링 한 판 붙자!

NPG 선수들의 도발을 본 북미 사람들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그 내용에 반박하지는 않았다.

북미 대표로 나간 선수들이 세계대회에 나가서 매번 맞기만 하고 오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북미와 함께 싸잡아 욕을 먹은 정명은 그런 말들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 새끼가? 북미를 무시하는 건 상관없어. 내 일 아니니까. 하지만 나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가뜩이나 마음에 안 들던 녀석들인데, 저쪽에서 먼저 시비를 걸어 준다.

정명으로써는 명분이 생겨 오히려 좋았다. 저 녀석들을 엿 되게 만들어줄 명분이.

정명은 한국에 오자마자 신고식을 치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과 공개적으로 한 판 붙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단, 그들과 거하게 한 판 붙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일단 저놈들의 실력이 어떤지 알아봐야지. 한국 선수들은 하위권이라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잘하고는 하니까.’

조금 구질구질하지만, 정명은 NPG 사람들의 실력이 상당히 좋다면 싸움을 피할 생각이었다.

모든 일을 감정적으로 처리하기에는, 이제 정명이 짊어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미의 대표 팀이야. 쓸데없는 싸움을 해서 진다면 망신당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엄청난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조금 창피하지만, 간을 좀 봐야지.’

정명이 NPG 연습실을 나왔던 것이 1년이 넘었다.

흐름이 빠르게 변하는 이 바닥을 생각해보면, 정명이 그 때 갖고 있던 NPG에 대한 정보는 많이 변했을 것이다.

거기다가 정명은 당시 연습생일 뿐이었으므로, 1군의 실력이 어떤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들의 진짜 실력을 알아보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었으니까.

정명은 곧바로 홈페이지에 올라온 NPG의 정규리그 재방송을 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NPG가 요즘 하락세라더니, 정말 별 것 아니잖아? 이 정도면 쉽게 잡을 수 있겠는데?”

캐릭터의 이해도, 피지컬, 팀워크, 운영능력. 어디 하나 좋은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명은 그런 하락세의 원인을 스폰서가 빠진 것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스폰서를 못 구했다더니, 티가 금방 나네. 확실히 돈을 못 받으면 의욕이 안 나지. 예전처럼 정신력으로 버텨라 따위의 말이 통할 세대도 아니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무조건 이긴다고 할 수 없었다.

정명에게는 확신이 필요했다. 저 녀석들을 100%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때문에 정명은 그 확신을 얻기 위해, 차를 몰고 옆 도시로 향했다.

잠시 뒤.

정명은 한 건물 앞에 도착하고는, 숨죽여 한 건물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건물은 오랜만에 와보는 NPG연습실 건물이었다.

‘시간은 점심시간. 밥을 먹으려면 무조건 나와야 한다.’

그런 정명의 생각이 통했는지, 얼마 기다리지 않았음에도 원하던 목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건물에서 나온 사람과 사진을 비교해보던 정명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저 놈은 미드라이너 정시영이라는 놈이네. 어디....’

[정시영]

피지컬 : 64(-5)/80

운영능력 : 68(-5)/82

팀워크 : C (-1)

포텐셜 : C+

[슬럼프] : 임금을 받지 못하여 선수가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 까지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그 외에 다섯 명의 팀원들이 전부 나왔다. 그리고 정명은 NPG 선수 모두에게 슬럼프 패널티가 걸려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 이 정도인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제법이네. 슬럼프 패널티가 없었다면 대결을 조금 고민했을지도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도 수준은 비슷비슷했다. 굳이 비교해보자면 북미리그에서 그럭저럭 중위권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

상위권은 안 된다. 요즘 북미리그의 실력도 상당히 많이 올라갔으니까.

그리고 모든 일을 마친 정명은 일종의 현자타임 같은 것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

다음 날.

PC방에 팀원들을 불러 모은 정명은 그들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NPG와의 악연을 설명했다.

게임은 혼자 할 수 없으므로, 경기를 하려면 팀원들을 비롯한 OMA 팀의 양해를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 그쪽에 이야기는 안 꺼냈습니다. 불필요한 시비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그 녀석들을 꼭 부숴버리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쇼.”

정명의 말에, 한창 관광을 마쳐서 기분이 좋았던 에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정명 덕분에 이렇게 한국까지 와서 놀러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성공했는데, 그 정도 협력이야 당연히 해줄 수 있지!”

“형, 저도요. 지금껏 받은 게 얼만데, 그 정도 사소한 일이야 도와줄 수 있죠. 거기다 무조건 이길 수 있는 상대라면서요? 그렇다면 뭐...하하.”

그 말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 또한 웃으며 정명의 부탁을 승낙했다.

평소에 행실을 잘 해놓은 덕분에, 팀원들은 조금 무리한 부탁이라도 발벗고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팀원들의 답변을 받은 정명은 곧장 언벤 커뮤니티 게시판에 가서 NPG에게 선전포고를 날렸다.

-제가 북미 팬들의 자존심을 살리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NPG놈들, 제가 때려눕히겠습니다!

?이거 진짜 정명? 인증 좀 부탁...

?헐. 제발 싸워라. 꿀잼매치 예상된다. 설마 NPG, 그렇게 시비 털어놓고 꽁지 빼는 것은 아니겠지?

?NPG에서 코치를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희야 좋지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7 그런 정명의 말에 NPG측은 기다렸다는 듯 떡밥을 물었고, 곧이어 NPG와 OMA의 이벤트 매치가 펼쳐지게 되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판을 키워야 하는 법.

정명은 친분이 있는 한국의 해설자, 이동호에게 연락하여 혹시 이 대결을 방송으로 내보낼 수 있냐 물었다.

아주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동호는 반가워하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다.

“정말 괜찮겠어요? PD야 당연히 좋아라 하겠지만, 혹시나...”

“안 져요. 그럼 방송은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

이틀 뒤, 방송국.

갑자기 펼쳐진 이벤트였지만, 이런 희귀한 매치를 놓칠 팬들이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장에는 호기심을 가진 수많은 팬들이 몰려들었고, 관객석을 가득 채웠다.

경기 시작 전, 팀 OMA가 경기장에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OMA에게로 쏠렸다.

정확히는 키가 훤칠하고 신사 같은 분위기인 아이작과, 30대 특유의 성숙미를 뽐내는 에리에게만 말이다.

잠시 뒤. 눈치만 보던 팬들은 조금씩 조금씩 OMA 선수들에게로 다가왔고, 어느 새 OMA 사람들은 팬들에게 둘러싸인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몰랐던 에리는 정명의 곁에 붙으며 멋쩍게 웃었다.

“후후, 애들 귀엽다. 우리 딸 보는 것 같아. 정명, 이 학생들 뭐라고 하는 거야?”

“같이 사진 찍자고 하네요. 그리고 어...손 한번만 잡아 봐도 되냐고 묻네요.”

“당연히 되지. 자.”

에리는 마법소녀 옷을 입고 있는 한 여자애와 손을 맞잡고 손을 붕붕 흔들었다.

그러자 그 소녀는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좋아했다. 쑥스러우면서도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그런 소동이 있은 후, NPG측은 은근히 기가 죽은 듯 했다.

온라인상에서는 맘대로 지껄였지만, 바로 눈앞에서 외국 사람들을 보니 괜히 영어 울렁증이 도지는 것 같고 무섭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세팅이다 뭐다 하며 질질 끄는 정규리그와는 달리, 이번에는 곧바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

-첫 킬이 나왔습니다! 이야, 이거는 실수라고 하기 힘들겠는데요. 완전히 피지컬에서 밀렸습니다!

-이거는 정글러가 풀어줘야겠네요. 지금 이 상태로 내버려두면, 정시영 선수 무조건 망합니다.

그냥 해도 한창 파워업 한 정명에게 이길 수 없는데, 슬럼프 패널티까지 짊어진 상태에서는 오죽할까.

시작 한지 5분만에 솔로 킬을 따 낸 정명은 캐릭터 시체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리그에서 그랬다가는 크게 지탄받을 행위지만, 이것은 이벤트전일 뿐이니까. 겉보기에는 말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평소에는 조용조용히 1인분만 하던 다른 팀원들까지 전 라인에서 킬을 따 내기 시작했고, 어느새 스코어는 5:0이 되었다.

-한 명이 5데스를 몰아서 하는 것 보다, 전체적으로 1데스를 안고 있는 게 더 치명적이거든요? NPG,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합니다.

-NPG, 상대가 북미 팀이라고 해서 너무 만만히 본 것 아닌가요? 상대는 월드 챔피언십의 진출권을 따낸 팀입니다. 나름의 저력이 있는 팀이에요!

NPG선수 전체에게 부여된 슬럼프 효과. 그리고 한창 기세를 끌어올린 OMA팀원들.

아무리 붙어보기 전 까지는 모른다고들 하지만, 결국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고 첫 경기는 무난히 OMA의 승리로 끝났다.

그렇게 한 판이 끝난 후, 팀 부스에 들어간 NPG 코치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야, 정시영이 이새끼 똑바로 안 해?”

“죄송합니다.”

“솔로킬을 대체 몇 번 당하는거얏! 너 이번에도 그따위로 하면 오늘 밤, 집합이야. 알았어?”

하지만 그런 코치의 말은 오히려 역효과였다.

집합을 한다는 말에 슬럼프 효과가 더욱 강화되었고, OMA는 2부 리그 팀을 잡는 것 마냥 손쉽게 승리를 따냈다.

그리고 3전 2선승제로 약속되었던 경기는 2:0으로 끝. OMA의 승리였다.

조금은 일방적인 경기에 팬들은 무언가 허무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NPG의 코치는 고개를 숙인 채, NPG의 감독에게 욕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정명은 코치에게로 가서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나 같은 인재를 몰라보고 쫓아내시더니, 참 대단한 팀을 만들어 내셨네요. 싱거웠습니다.”

“이 새끼가...뭐가 어째? 어쩌다가 운 좋게 이겼다고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만약 불닌자만 밴 되지 않았어도, 우리가 무조건 이겼어! 시발, 내가 오냐오냐 하면서 키워놨더니...”

2:0으로 승리를 따냈지만 코치는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다.

그리고 정명은 바로 그 순간, 보상의 등급이 나뉘어져있던 의미를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서 끝내면 아마 기본보상이겠지. 분명해.’

정명은 지금 ‘우리가 이겼다. 그러니까 꺼져!’ 하고 코치를 쫓아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1등급 보상. 즉, 기본 보상만을 받게 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정명은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는 코치에게 다가가 한 가지 제안을 내밀었다.

“좋아요. 한 판 더 하죠 뭐. 이번에는 불닌자 밴 안 할게요. 하하, 이거 마치 바둑에서 돌 몇 점 깔고 시작하는 것 같은데요?”

그 뒤로 재경기가 이어졌다.

정명은 약속한대로 불닌자를 밴 하지 않았고, 상대 미드라이너는 기다렸다는 듯 불닌자를 픽해서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LOH에선 절대적으로 강한 캐릭터라는 것은 없으므로 정명 또한 기다렸다는 듯, 카운터 픽을 들이밀었으니까.

-네, 또다시 솔로 킬.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네요.

-지금 5킬 먹은 정명 선수, 완전 괴물입니다. 지금 성장치로 보면, 아마 혼자서 세 명은 상대할 수 있을걸요?

어렵게 따낸 세 번째 게임 또한 싱겁게 끝났다.

그렇게 게임이 끝난 후, 정명은 또다시 코치에게로 찾아갔다.

“이번에는 어떤가요? 더 할 말 있으신가요?”

“그래 새꺄! 너, 일부러 불닌자 픽 유도 한 거지. 카운터 픽 하려고! 진짜 이런 치사한...”

코치는 침을 튀기며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정명은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좋아요. 한 판 더 하죠 뭐. 이번에는 조금 더 봐드릴게요. 그 대신, 또 한번 졌을 때도 변명 하시면 때린다?”

그렇게 시작된 다음 경기에서 정명은 아예 밴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해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25분 뒤. OMA는 NPG에게 또 한 번 승리를 거두었다.

총 4:0의 스코어. 이쯤 되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명은 이번에도 NPG측의 자리로 간 다음, 코치에게 물었다.

“한 판 더 할까요? 흠, 근데 이번에는 어떻게 해 드려야 하지. 밴픽도 풀어줬고, 이번에는 1킬 주고 시작하기라도 해야 하나...”

코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깨달았던 것이다. 몇 판을 해도 결과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때문에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짐을 챙겼다.

아마 정명이 NPG에 있던 시절과 팀 분위기가 같다면, 오늘 NPG 선수들은 매타작을 피하지 못하리라.

정명은 팔짱을 끼며 쓸쓸히 퇴장하는 NPG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가 2단계겠지. 마음속으로부터 패배를 이끌어내게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보상 때문이 아닌, 연습생 시절에 억울한 일을 당해야만 했던 정명 개인의 욕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정명은 마지막으로 3단계 조건을 달성하고자 했다.

“너희는 너무 나댔어. 분노한 북미 팬들의 분노를 받아라...”

목표는 NPG와 후원계약을 맺으려 했던 한 자동차 회사.

정명은 북미의 커뮤니티 사이트로 간 다음, 은근슬쩍 버스터콜 요청(공격 요청)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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