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70화 (70/226)

< 24. 한국에서의 훈련 (1) >

우리도 한국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코치의 물음에, 정명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한국 전지훈련이 효과가 있냐 없냐를 떠나서 거의 대부분의 팀들이 한국으로 떠났으니까.

미국에 남아 있어봐야 연습할 팀이 없기에, 혼자 남아 솔로랭크나 하고 싶지 않다면 되도록 가는 게 좋다고 말이다.

그리고 잠시 뒤.

늘어지게 자던 팀원들은 정명과 코치의 이야기를 전달받았고, 팀원들은 한국으로 가는 것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 했다.

그 중에서 가장 호들갑을 떨었던 건 조시였다.

“오, 한국? 나 알아. 서울 한복판에는 김씨 일가의 동상이 지어져 있다며. 맞지?”

“아니. 그런 거 없어. 찾아보면 비슷한 건 있을 지도 모르지.”

“아...그래? 그럼 샴푸는 가져가야 하지? 그곳에 가면 살 데가 없잖아. 다 산밖에는 없는데.”

“거기서도 살 수 있어. 아마존 밀림 같은 곳 아니다.”

전지훈련이라기보다는 소풍 같은 분위기가 퍼졌지만, 상관없었다. 사실 반쯤은 놀러간다고 보는 것이 맞았으니까.

한국에 가기로 결정하니, 겨우 한가해졌던 일정이 다시 바빠졌다.

팀원들은 집안일 같은 개인적인 일을 서둘러 처리해야 했고, 동시에 비자문제를 마무리 지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직 정명만이 그런 모든 일에서 자유로웠고, 그 사실을 알아챈 수많은 사람들이 정명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

텅텅 빈 연습실.

연습실 테이블 의자에는 두 사람이 앉아있었다.

한 명은 정명. 그리고 한 명은 OMA의 사무실 사람.

그리고 정명은 처음 보는 사무실 사람이 건넨 서류를 읽으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게임 중독 예방 프로그램 참여라. 이거 꼭 해야 하는 건가요? 조금 껄끄러운데.”

“당연히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는 그저 이런 제안이 들어왔다, 라고 말씀만 드리는 거죠. 뭐, 방금 말씀하신 그것은 저희로써도 별로 추천드리지는 않지만요.”

사무실 사람이 정명에게 건네준 것은 정명에게 들어온 일거리들이었다.

미디어 관련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월드 챔피언십에 진출한 선수들 중, 몇 명을 자신의 프로그램에 출연시키고 싶어 했다.

그리고 TBM 사람들은 이미 많이 나왔기에 신선한 인물을 찾으려다 보니, 정명에게까지 연락이 온 것이었다.

정명이 머뭇거리자, 사무실 직원은 웃으며 말했다.

“내키지 않으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저는 하는 것을 추천 드려요. 뭐랄까. 개인의 가치를 올린다고 해야 할까요. 인지도 측면에서는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인지도라. 좋죠. 조금 유명해지니까 개인방송 수입이 수직상승하던데, 거기서 더 번다고 해서 나쁠 것 없죠.”

정명은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서류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잠시 뒤. 살짝 고민하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한 곳을 짚었다.

“그럼 이것부터 시작 할까요. 게이밍 헤드셋 광고촬영. 이런 건 괜찮을 것 같네요.”

그 후, 정명은 게임 일이라기보다는, 비지니스적인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게임 페스티벌 참가, 광고 촬영, 그리고 팬 사인회 까지.

원래는 GLG에게 갔을 일이었지만 그들이 월챔 선발전에서 탈락한 후, OMA에게 온 일도 상당했기에 이렇게 일이 몰렸던 것이었다.

그렇게 보냈던 시간이 일주일.

바쁜 나날을 보냈던 정명은 피곤한 기색으로 오늘의 일정을 살펴보았다.

“비지니스 스케쥴은 이게 마지막인가. 딱 좋네. 슬슬 피곤하던 참이었는데. 이제 한국으로 가야 할 시간이기도 하고.”

한국으로 떠나기 전, 정명의 마지막 일정은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었다.

쇼 이름은 멍청한 게이머.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고, 한국에도 상당한 팬들을 갖고 있는 TV 토크쇼였다.

아무나 나올 수 없는 곳인 것이다.

정명 또한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피곤하지만 열심히 하자는 마음을 다잡았다.

방송국 스튜디오에 도착한 뒤.

정명은 TV에서나 보던 유명 인사를 실제로 만날 수 있었다. ‘멍청한 게이머’ 의 진행자, 조든 슬랭스키였다.

그는 정명에게 환한 미소를 띄우며 다가와서는 말했다.

“긴장되세요? 조금 불안해 보이시는데."

“네. 많이요.”

“하하. 걱정 마세요. 별 것 없으니까. 그저 우리는 신작 게임의 리뷰를 하거나, 당신에 관한 몇몇 이야기들을 할 겁니다. 이상한 것 안 시켜요.”

“아...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제가 예능 쪽은 잘 몰라서...”

하지만 그 후 방송에서 겪었던 일들은 정명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상한 일들이었다.

조든은 정말 쓰레기 같은 게임을 정명과 함께 하고는 그 게임 CD를 부숴버리거나, 태우는 등의 리액션을 선보였고, 마지막에는 발로 게임을 하며 진정한 발컨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직접 보여줘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우스꽝스러운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정명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정명은 갑자기 뜬 메시지창을 확인하며 미소지었다.

[팬덤 결성 LV2]

당신의 팬클럽이 한 단계 발전했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팬덤은 당신을 위해서 기꺼이 목소리를 높일 것입니다.

-불매 운동 : 사용자와 대립하는 기업에게는 적극적으로 불매운동을 펼쳐, 기업을 압박합니다.

-광고 효과 : 되도록이면 사용자가 광고를 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합니다.

*기업들은 이런 분위기를 이미 감지하고 있습니다.

*팬클럽이 더욱 발전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음, 이건 마음에 드는데? 방송 출연료나 광고비를 받은 것보다 훨씬 더 말이야.’

메시지를 확인한 정명은 팀원들과 함께 연습실을 나섰다.

오랜만에 한국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

한국으로 온 OMA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다.

선수, 선수들의 가족, 스태프, 스태프의 가족.

일 때문이라기보다는, 겸사겸사 한국 관광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에리랑 같이 한국으로 온 쿠론은 주위를 둘러보며 불안한 듯 제 엄마에게 매달렸다.

“엄마, 사람들이 자꾸 쳐다봐.”

“응, 그러네. 정명, 우리 뭐 이상해?”

“아뇨. 그냥 금발의 파란 눈 외국인을 보니깐 신기했나 보네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사실은 그들의 외모가 조금 눈에 띄는 것이었지만, 쿠론이 또 기고만장해 할까봐 정명은 적당히 둘러댔다.

일정과 계획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다 세워놓았다.

이미 C90과 TBM을 비롯한 월드 챔피언십 팀들은 진작 한국에 도착한 상태.

그렇다고 해서 조급해할 것은 없지만, 느긋하게 있어서도 안 된다.

잠시 후.

정명은 팀원들과 스태프를 미리 알아둔 호텔에 몰아넣었고, 집으로 가서 짐만 풀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아이디를 받아야지. 프로게이머들이 아이디를 새로 파서 1레벨부터 시작한다면...정말 시간낭비일 테니까.’

목적지는 방송국 건물 안에 있는 게임사의 사무실.

그곳에서 정명은 다섯 개의 아이디를 받았다.

처음부터 다이아 리그에 올라가 있고 모든 스킨이 장착되어 있는, 일명 ‘슈퍼계정’이었다.

사실 직원은 정명을 제외한 네 개의 아이디를 주려 했지만, 정명이 우겨서 다섯 개의 아이디를 받았다.

정명의 한국 아이디는 송하니와 함께 갖고 놀다가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구석에 박아둔 상태이니까.

그리고 목적을 달성한 정명은 무척이나 피곤했기에, 서둘러 집에 가려 했다.

건물 내의 카페에서 우연히 본 남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래. 한 번쯤 마주치는 것도 이상하지 않지. 한국은 워낙 좁은 곳이니까.’

정명이 노려보고 있는 것은 평범한 30대 남자였다.

그 남자는 어떤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비굴해보일 정도로 굽실굽실 대고 있는 모습이었다.

“흠, 일단 우리, 쪽에서 회의 해볼, 게요. 즉시 대답은 불가합니다.”

“예. 물론이죠. 기다리겠습니다. 연락 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외국인은 카페에서 나왔고, 남자 또한 카페에서 뒤따라 나왔다.

그리고 정명과 눈이 마주친 남자는 눈을 크게 떴다.

“너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배 나온 거 보니까, 잘 지내신 것 같네.”

정명과 마주친 남자는 정명이 한국에서 연습생으로 지내던 시절, 정명을 NPG에서 퇴출시켰던 장본인이자 정명과 대판 싸웠던 인물인 NPG의 코치였다.

그는 뜻밖의 재회에 무척 놀라는 듯 했으나, 이내 표정을 수습하고는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볼일이지? 우리가 이렇게 인사를 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나?”

“하하. 친한 사이는 아닌데, 성적 부진을 비웃어줄 정도로 나쁜 사이인 것 같기는 하네요. 안 그런가요?”

NPG의 섬머리그 성적은 3승 15패.

중위권에 안착해있던 1년 전과는 달리, 지금은 완전히 하위권으로 밀려난 상태였다.

정명의 말에 코치는 얼굴이 뻘개지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 답했다.

“그래. 나도 네 소식은 들었다. 북미 허접들 잡고 요즘 잘 나가는 척 하고 있다지? 한국에서는 연습생이었던 주제 말이야.”

“예. 우리가 월드챔피언십에 나가는 것을 보면, 당신네 팀보다 훨씬 잘 나가는 것 같네요.”

서로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말싸움.

그리고 코치가 막 언성을 높이기 직전.

카페에서 나갔다고 생각한 외국인이 그들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는 모습을 본 코치는 급히 입을 닫았다.

“많이 컸다 너. 다음에 두고 보자.”

코치는 조용하게 중얼거리며 카페를 빠져나왔고, 그 뒤로 정명은 손가락 중지를 들어올렸다.

‘그래. 너보다는 커진 것 같네. 예전에는 손짓으로 날 움직이던 당신이 이렇게 만만하게 보일 정도면 말이야.’

그리고 그런 정명에게 한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던 외국인이었다.

“안영하세요. 저, 혹쉬...”

“한국말 잘 못 하시면, 영어로 하세요.”

“아, 그렇죠. 안녕하세요. 정명선수 맞으시죠?”

“예. 혹시 절 아세요?”

정명의 대답에, 외국인 남자는 무척이나 기쁘다는 듯 답했다.

“당연히 알죠! 저도 LOH 팬인데요. 정명선수가 GLG의 스케스벤에게 솔로 킬을 따낼 때는 정말 손에 땀을 쥐고 봤습니다!”

남자는 정명에게 상당한 호의를 갖고 있었는지, 묻지도 않은 사실을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이번에 자신의 회사가 한국에 신차를 출시하게 되었다든지, 그것을 홍보하기 위해 스폰서 계약을 맺을 거라는 사실 등을 말이다.

그리고 스폰서 운운하는 대목에서, 정명이 이야기를 멈췄다.

“NPG라. 지금 너무 하락세인 팀 아닌가요? 굳이 그 팀을 후원해야 할 필요가 있나?”

그 말에, 남자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한데요, 다른 팀들은 모두 스폰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딱히 대안이 없어서요.”

“흠, 그러면 이 팀은 어때요? 2부 리그 팀이지만, 요즘 기세가 좋은 팀인데...”

정명은 NPG대신 송하니가 속해 있는 팀을 소개해줬고, 남자는 검토는 해 보겠다며 돌아갔다.

‘원래는 거의 결정 난 사안이지만, 당신이 소개한 팀이니, 한 번은 더 보겠다.’ 라는 태도였다.

사실, 정명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추천이 불발되어도 별 상관이 없었지만.

‘그냥 그 녀석들한테 스폰서가 가는 게 싫었을 뿐이야. 뭐,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

며칠 뒤.

정명은 NPG 계약과 관련된 언벤 커뮤니티 기사를 보며 혀를 쯧쯧 찼다.

“NPG, 스폰서 계약 사실상 불발. 사상 처음으로 스폰서 없는 1부 리그 팀이 될 위기...인가. 쯧쯧, 그러니까 착하게 살았어야지. 안 그래?”

그 기사를 읽은 후, 정명은 NPG에 관한 것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저런 과거의 망령에 묶여있어 봐야, 자신만 손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나저나 혼자 있으니까 참 좋네. 조용한 게 마음에 들어.”

정명은 자신의 부모님이 운영하던 PC방을 통째로 빌렸다.

OMA의 임시 거점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동안 장사는 못 하겠지만 다른 곳에 가서 게이밍 하우스를 만들며 고생하느니, 이렇게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니까.

정명은 핸드폰 메신저를 내려다보며 연습 상대를 찾았다.

‘누가 좋을까. 한국까지 왔으니 북미 팀은 당연히 제외하고 찾아보면...’

OMA가 상대할만한 팀은 꽤나 많았다.

한국 팀들은 다들 수준이 높았으니까.

상위권만 잘 하고 하위권은 별 볼일 없는 북미와는 달리, 한국은 상당한 상향평준화가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메신저 창을 죽죽 내리던 정명은 퀘스트 창 하나가 뜨는 것을 발견했다.

[악의에는 악의로]

과거의 악연 중 하나가 당신에게 앙심을 품었습니다.

그 악의가 당신을 향하기 전에, 싹을 밟으십시오.

이번 퀘스트에서는 행위에 따라 추가 보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1등급 : 기본 (100%)

2등급 : 보너스 (150%)

3등급 : 퍼펙트 클리어 (200%)

“뭐야? 이건. 내가 얼마나 착하게 살고 있는 사람인데, 이런 이상한 퀘스트가...”

그리고 정명이 퀘스트 창을 닫는 것과 동시에, 한국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전부 언벤의 게시판을 읽어보라는 말들이었다.

친구들의 말 대로 언벤 게시판 분위기를 확인한 정명은 허허 웃었다.

NPG 선수들이 트위터에서 정명을 상대로 귀여운 도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미는 월드 챔피언십 시드권을 두 개로 줄여야 공평한 것 같습니다.

우리 팀에서 연습생으로 있던 사람이 북미 대표로 있는 것을 보면, 말 다했죠.

ⓒ 추어탕맛집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