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55화 (55/226)

< 16. 솔로랭크 돌파 (4) >

팀플레이의 끝을 보여준다는 듀오의 소문을 듣고 온갖 괴물들이 그 듀오를 잡기 위해 한국 서버로 몰려오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정명과 송하니는 음료수를 쪽쪽 빨며 나른하게 있을 뿐이었다.

정명은 순식간에 치고 올라간 랭크 순위를 보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솔로랭크 5위 달성도, 남은 시간도.”

“응? 남은 시간? 아, 오빠 곧 휴가 끝난댔지? 나도 슬슬 방학 끝나 가는데.”

정명과 송하니, 둘이서 하루 10시간씩 랭크게임을 돌린 덕분에 정명의 순위는 수직상승하며 단숨에 15위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몇 판만 이겨도 순위가 쭉쭉 오르던 하위권과는 달리 이제는 순위가 잘 오르지 않았고, 그 때부터는 순위도 순위지만 한판한판 이기기가 무척 힘들었기에 어려움은 배가 되었다.

정명은 이 모든 일의 원흉인 퀘스트 창을 다시 한 번 열어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휴가 나와서 쉬지도 못 하고 이게 무슨 짓거리인가 싶기도 하지만...이미 너무 멀리까지 왔다. 오늘, 그리고 내일.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이 기나긴 싸움을 끝낸다.’

정명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뒤, 아침부터 PC방에 나와 있는 송하니에게 의욕적으로 말했다.

“가자 하니야. 오늘이야말로 분명 5위를 찍을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렇게 되면 정말 보답할게. 기대해도 좋아. 그럼 지금부터 바로...”

“아, 미안. 나 이제 슬슬 카운터 봐야 하니까.”

“응?”

송하니는 그렇게 말하며 야간 알바와 인수인계를 하더니, 이내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정명은 그 모습을 보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하....이걸 대신 해줄 수도 없고.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어디 대타를 할 만한 사람이...’

잠시 뒤, 정명은 몇 명에게 연락을 보내고는 피시방 구석에 앉아서 커뮤니티 사이트를 열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여기도, 저기도 전부 우리 얘기뿐이군. 하긴, 갑자기 어디서 튀어 나온 건지도 모를 녀석들이 한국 솔로랭크를 순식간에 접수해버린다면 관심이 쏠리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그동안 애써 무시했지만, 이렇게 보니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자신들이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끌었다는 것을.

사실, 모르고 싶어도 자꾸만 뜨는 메시지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기는 했다.

[모든 한국 팬들이 당신의 행보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정체를 밝히고 모든 명예를 차지하십시오.]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당선될 확률 99%

*팬클럽 결성 가능

*??? 해금 가능

[당신의 명성이 해외로까지 퍼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구단주들은 당신이 누구인지 무척 궁금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 이후로도 이 막대한 보상을 차지하라며 메시지창이 이것저것 떴지만, 정명은 그 메시지 창을 보고는 화풀이하듯 확 치워버렸다.

“아오 씨. 안 해, 안 한다고. 하루 뒤면 없어질 실력인데 밝혀봐야 뭐해. 누구 약올리냐?”

더욱 골치 아픈 것은, 정명의 퀘스트를 방해하는 이슈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명은 한숨을 쉬며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읽은 글 1위에 올라와 있는 글을 클릭했다.

그것은 작년 월드챔피언십 1위 팀의 미드라이너인 불칸의 인터뷰였다.

-그 듀오 중 한 명이 ‘우리를 이기면 누구인지 알려주겠다’ 라고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몇몇 분들은 너무 거만하다며 비판했지만, 제가 보기에 그들은 거만할 자격이 있어요. 그리고 아마 지금쯤이면 ‘한국 솔로랭크가 겨우 이 정도 였어? 푸하하...’ 하면서 실망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우리가 나선 것이죠.

-나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 듀오가 막 게임을 끝낸 뒤, ‘다음 게임 찾기’를 누를 때를 노려 우리도 같이 게임을 찾을 겁니다. 그러면 높은 확률로 만날 수 있겠죠. 그리고 한국 프로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인터뷰는 길었지만, 내용을 요약하자면 ‘자신들도 이번 전쟁에 참여하겠다’ 라는 것이었다.

휴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을 위해 귀국했다는 불칸의 말을 본 정명은 욕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이 개새끼들아! 얕보긴 누가 얕봐. 너희가 더 잘 하는 거 아니까 그만 와 시발.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쟤네는 또 왜와? 미치겠네.”

정명이 그렇게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혼자 놀고 있던 도중, 구원 투수가 왔다. 정명의 친구가 알바 대타를 하러 PC방에 온 것이었다.

정명의 친구 명훈은 PC방에 도착한 뒤, 정명은 보이지도 않는지 송하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정명에게 말을 걸었다.

“쟤는 누구냐? 혹시 네 애인?”

“애인은 무슨. 그냥 아는 동생이야.”

“그럼 나 좀 소개 시켜 줘. 쟤 진짜 귀엽다...몇 살이야?”

“소개는 무슨. 관심 있으면 네가 스스로 쟁취해야지. 개소리 말고, 일 안할 거면 돌아가. 시급 15000원 받고 대타 서줄 사람 널렸어.”

정명의 말에 명훈은 곧바로 카운터로 달려가, 송하니에게 이것저것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고 잠시 뒤, 송하니는 얼굴을 팍 찌푸린 채로 정명에게 다가왔다.

“저 사람 왠지 싫어. 기분 나빠. 정명오빠 혹시 저 사람이랑 친해? 아니지? 응?”

명훈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명은 하니의 말에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명훈이 대타를 서준 덕분에 정명은 마음 편하게 게임을 계속 할 수 있었으므로, 정명은 기쁜 듯이 말했다.

“휴, 대타를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치 하니야?”

하지만 게임을 하게 되어 좋은 것은 정명뿐이었고, 송하니는 계속되는 강행군에 체력적으로 무척 힘든지 불만을 드러냈다.

“아니, 이봐요 유정명씨. 근데 이거 꼭 해야 하는 일이야? 처음에는 그냥 한 번 시도해보는 거라고 하더니, 지금은 완전 목숨 걸고 하는 것 같은데?”

“솔직히 나도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근데 딱 내일까지만 더 해보자. 그러면 써클박스360인지 뭔지 다 사줄게.”

내일까지라는 말은 아이템의 지속시간이 딱 내일까지라는 말이었다. 정확히는 딱 14시간, 내일 새벽 1시까지가 아이템의 지속시간이었다.

때문에 정명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져만 갔고, 그런 조급한 마음과는 반대로 상대의 실력은 점차 하늘을 뚫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라인전에서 항상 이기는 모습만 보여주던 송하니는 급기야 솔로킬을 당할뻔 한 위험을 겨우 넘겼고, 곧바로 정명에게 도움 요청을 보냈다.

“어어, 오빠. 저 사람 무지 잘 한다. 도저히 못 따라가겠어. 너무 빨라!”

“어디...후, 확실히 그렇네. JP바오바오? 중국의 프로인 것 같은데...예전에 팀 아서스 상대할 때가 생각 날 정도다. 피지컬이 장난이 아니야.”

상대편 미드라이너 바오바오는 피지컬 수치가 80은 가뿐히 넘는 것 같은 사람이었다. 어지간한 프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게임은 피지컬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송하니의 구원요청을 받은 정명은 재빨리 신호를 보냈다.

“좋아, 그럼 그거 한 번 하자 그거. 저 놈 한번 잡아서 성장세를 꺾어 놔야 해.”

“응! 스킬 콤보 말이지? 그럼 자...간다!”

[스킬 wombo combo를 발동합니다.]

*남은 쿨타임 시간 : 60분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송하니의 잿빛 군주가 궁극기로 상대를 확 밀쳐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서슬여왕의 광역기 콤보. 마치 축구의 티키타카처럼 탁탁 이어지는 궁극기 스킬 연계였다.

스킬 연계에서 중요한 것은 상태이상 스킬을 동시에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미 기절해있는 캐릭터에게 속박 스킬 따위를 써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0.1초의 싸움에서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지고 있을 수는 없었고, 프로라고 할지라도 되는대로 스킬을 우겨넣는 게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플레이였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둘은 스킬과 평타를 풀 콤보로 넣으면서도 스턴 시간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며 HP가 풀로 차있던 상대팀 미드라이너를 한 번에 제압해버렸다.

[강한친구 MeKa님이 JP바오바오를 처치했습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스킬 연계.

그리고 그 모습을 구경하던 팀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달타냥 : 다른 건 몰라도, 궁극기 연계는 진짜 갓갓이다. 핑퐁처럼 스킬을 서로 하나씩 돌리는데, 저거 호흡 1년 이상 맞춰도 시도하기 쉽지 않음.

눈보라맨 : ㅇㅇ. 메카콤보는 아무도 못 따라 할 듯. 저거 쓰면 무조건 1킬은 따 내더라. 근데 경기에서 한번밖에는 안 보여줌. 메카콤보만 계속 하면 둘이서도 경기 박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쉽다.

그런 둘의 플레이는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이름까지 붙여져 있었다.

송하니의 아이디가 MeKa이니 메카콤보. 참 간단한 이름 짓기였다.

그리고 그런 스킬 덕택에 겨우 승리를 따낸 정명은, 게임이 끝나자마자 아이디를 검색하여 그들이 누구인지 찾아내기 시작했다.

“웨이보, 바오바오라...WC라는 중국 팀이라고 뜨는군. 젠장.”

“WC...Water Closet? 화장실?”

“그게 아니라, 월드 클래스라는 작년 월드챔피언십 3위 팀 말이야. 미쳤네. 얘네 들은 뭘 주워 먹겠다고 오는 거지?”

웨이보와 바오바오. 그들은 JP미디어의 사장이 둘을 견제하기 위해 보낸 사람들이었고, 월드 챔피언십 3위 팀이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송하니를 솔로킬까지 낼 뻔하며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었다.

“으으...월드 챔피언십 3위? 어쩐지 엄청 까다롭더라. 더 이상은 안 보였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런 송하니와의 바램과는 달리, WC 선수들은 계속해서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작정하고 달려드는 듯 싶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정명에게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확인해 보니, 조시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지금 뭐 해요? 말해야 할 게...

“안녕 조시! 뭔가 오랜만인 것 같네. 근데 내가 지금 좀 바빠! 통화는 다음에 하도록 하자.”

-예? 하지만 그 일이 좀 급한데...

“아, 그거? 알고 있어. 근데 나도 좀 급해서. 그럼 다음에 보자!”

정명은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서둘러 끊어버렸다.

“뭐야?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전화를 그렇게 끊어도 돼?”

“어. 보나마나 우리 이야기 하려는 거겠지. 그런 전화는 이미 많이 받았으니, 지금은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네. 시간도 없고.”

하지만 저녁도 거르며 랭크게임을 돌렸음에도, 순위는 거의 올라가지 않았다.

승,패,승,패,승,패....6시간동안 한 결과는 플러스 마이너스 0.

6시간 전과 같은 점수대였다.

그리고 어느덧 한국의 랭크게임은 중국, 한국, 그리고 한국에 휴가를 나온 유럽의 프로 선수들까지 달려들어 아마추어들은 이제 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최강의 실력자들이 미어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경기가 마무리 될 때쯤 같은 편으로 게임을 하던 프로 선수들이 정명에게 무언가를 슬쩍 알려주기 시작했다.

리스팩 : 다음 게임에서 불칸이랑 프로팡이 기다린다 하던데요. 지금 대기 중이라 함 ㅋㅋㅋ 하양글 : ㄷㄷㄷ...괴수대전이 시작되는가요? 지금 중국의 WC도 님들 게임 끝나기만을 기다리면서 대기 중이라던데. 와, 월드챔피언십 팀 총집결인가? 대단하다.

그리고 정명은 그 채팅을 보며, 다시 한 번 욕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

“이...망할. 안 듣는 게 좋았을 얘기로군. 이제 앞으로 한 판만 이기면 5위 가능할 것 같은데, 왠지 이대로 10위까지 떨어질 것만 같다.”

이제 아이템의 남은시간은 1시간. 밴픽 시간까지 따지면, 딱 1경기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시간이었다.

“음...차라리 그냥 조금 쉬었다 하는 게 어때? 우리도 많이 지쳤구...”

“아니. 이게 마지막 판이다. 어쩔 수 없어.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바로 돌린다.”

WC, 그리고 불칸과 프로팡까지. 세계에서 손꼽히는 선수들이 둘을 노리고 있었고, 아무리 아이템의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런데 잠시 뒤, 정명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응? 쟤네가 우리 편이네?”

저런 괴물들을 어떻게 상대해야하나 머리 빠지게 고민하던 것도 잠시, 불칸과 프로팡. 한국 최고의 미드라이너와 정글러라고 평가받는 두 명이 정명의 팀에 배정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송하니와 정명 그리고 불칸과 프로팡이 한 팀이 되었고, 그 상대로 월드챔피언십에서 각각 3, 4위를 한 중국 프로팀 선수들이 한 팀이 된 상황.

다른 사람들의 말 대로, 괴수 매치라고 불리기에 딱 좋은 라인업이었다.

그리고 불칸은 이 상황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정명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었다.

불칸 : 우리 하와이에서 님들 보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소문의 메카 콤보 한 번만 보여주세요. 그러면 진짜 열심히 할 게요.

열심히 하겠다는데 못 보여줄 것도 없다. 정명은 웜보콤보, 이제는 메카콤보라고 불리고 있는 스킬을 눈앞에서 보여주며 당당하게 1킬을 따 냈고, 불칸과 프로팡은 세계 1위 팀의 선수라는 위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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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힘들어. 당분간은 솔로랭크 꼴도 보기 싫을 것 같아.”

“나도. 오빠 진짜...아니다. 오빠한테 욕 할 뻔 했어. 그냥 말 안 할래.”

하니의 말에 정명은 피식 웃고는, 의자에 축 늘어져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때, 정명이 쉬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조시에게서 다시 한 번 전화가 걸려왔다.

“어, 조시. 나야. 근데 왜 자꾸 불러 휴간데. 급한 일 아니면 부르지 말라니까.”

-죄송해요. 근데 혹시 미국은 언제쯤 오세요? 코치님들이 선수 영입할 때 형의 의견도 듣고 싶다는데.

“응? 그게 무슨 소리냐? 뭘 영입해?”

-네? 아까 알고 있다고 말한 것 아니었어요? 선수 영입이요. 나간 사람이 있으면, 새로 채워 넣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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