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54화 (54/226)

< 16. 솔로랭크 돌파 (3) >

그 관전 방을 찾아 허겁지겁 달려간 것은 이정환뿐만이 아니었다.

한국 최대의 인터넷 방송국인 아프니까TV 회장의 딸, 이연주 또한 관전을 보고 있는 1207명의 관람객 중 한명이었다.

이연주는 목표로 하던 사람의 관전이 뜨자마자 커뮤니티 게시판에 이 소식을 알리고는, 팝콘을 집은 뒤 시청 준비를 마쳤다.

“떴다. 드디어 떴어! 3시간 동안 페이지를 새로 고침 한 보람이 있었네. 후후.”

어느 날 갑자기 그랜드마스터 리그에 등장한 ‘JP사냥꾼’ 과 ‘강한친구MeKa'. 그 둘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완전히 분탕 플레이어 취급을 받았다. 게임을 하면서도 채팅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을 할 때는 처음의 픽밴 화면에서 뿐, 그것도 ‘정글이랑 미드 주면 캐리 해줌.’ 따위의 말을 하는 게 전부였다.

LOH이라는 게임 특성상 끊임없는 소통을 필요로 하기에 그들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욕을 하기 바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 듀오는 협동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채팅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경기 시작 직후, 이연주가 팝콘을 봉지에서 뜯기도 전에 첫 킬이 나왔다.

[퍼스트 블러드!]

[강한친구MeKa, 선취점 달성!]

“와, 역시, 역시! 이거지!”

연주는 이 경기를 보기 위해 남자친구와의 데이트를 내팽겨 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이 장면을 보니, 아무래도 내일도 이러고 있어야 할 듯 싶었다.

그리고 다른 팬들과 그 감동을 공유하기 위해 커뮤니티 게시판을 들어간 연주는 빠르게 올라오는 게시물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김인간 : 방금 봤음? 뭔가 휘리릭 움직였는데, 자세히 보려고 하니까 이미 상황 끝나있음.

캡틴베어 : 나도 못 봤는데. 내 눈 대체 뭐함. 일 안함?

호로록 : 난 봤다. 스킬을 연계하는 모습이 예술이네. 마치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한 움직임을 보여줌. 이거 누구냐? 아무리 봐도 이름 대면 누구나 알만한 프로 같은데 왜 주변에 물어봐도 다 아니라고 하지?

?캡틴베어 : 헉. 현직 프로 등장. 님 여기서 뭐 해요?

저 듀오가 게임을 시작하자, 게시판에 현직 프로들 또한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캡틴베어의 말에 이연주도 무척이나 동감하고 있었다.

‘갱킹 의도 자체는 뻔했지. 첫 귀환 후 미드 찌르기.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공격이랄까. 근데 알고도 못 막는다는 걸 제대로 보여줬네. 이런 협공을 솔로랭크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막으라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쟤네들을 상대 하려면 상대편에서도 무조건 팀을 짜야 해.’

연주는 이제 한국 프로게이머 명단을 살펴보며 그들이 누구일지에 대해 추리하기 시작했다.

‘피지컬로 보면 중상위. 호흡으로 보면 최소 2년 이상 같이 호흡을 맞춘 선수. 이렇게 소거법으로 지우다 보면 몇 사람 남지 않는데 음...혹시 그 사람들인가?’

그런 생각까지 도달하자, 무엇인가를 떠올린 연주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 예. 안녕하세요 감독님. 저 아프니까TV의 연주인데요. 예, 오랜만...”

연주가 전화를 건 상대는 LOH 프로팀 감독들이었다.

그녀는 총 세 명의 프로 팀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들은 한국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되는 팀의 감독들이었다.

하지만 연주의 추측이 틀렸는지 감독들 또한 전혀 아는 게 없다는 얘기를 했고, 팀 선수들 또한 다 같이 휴가를 왔기에, 그들이 솔로 랭크를 돌렸을 확률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해외로 휴가요...그렇군요. 아, 근데 오신다고요? 아니, 이것 때문에 온다고요?”

-어. 몇 몇 애들이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하네. 영상을 보더니, 아무래도 소문의 당사자가 어떤 애들인지 상당히 궁금한 모양이야. 그래서 일정을 조금 빠르게 마무리하고 가려고.

대전기록 비공개, 아이디 변경정보 비공개, 검색 금지.

가릴 수 있는 것은 모두 가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정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했다.

그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상대방과 말다툼을 하던 ‘강한친구MeKa’가 자신을 실력으로 이기면 누구인지 가르쳐주겠다고 하는 채팅을 내보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다음부터는 일절 어떤 채팅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을 보고는 벌떼처럼 달려드는 중이었다.

“경력이 많은 선수라고 하기엔 너무 유치한 말인데. 막 프로게이머가 된 고등학생들이나 할 법한 말이야. 하지만 막 프로가 된 고등학생들이 이런 팀워크를 보여줄 수 있을 리가...”

@@@@@

그 시각, PC방의 한 구석진 자리.

정명은 벨소리가 울리자,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화면을 보니, 저번에 알게 된 TBM의 코치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네. 정명입니다.”

-오, 정명. 나 잭 입니다. 머리는 많이 자랐어요?

“자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자라요. 그보다 무슨 일이에요? 저 한국인데.”

-마침 잘 됐네요. 알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했는데, 한국에 MeKa라는 아이디를 쓰는 미드정글 듀오가 있죠? 그 플레이어들 정체가 뭔가요? 한국어를 전혀 못 해서 알 수가 없네요.

“아, 그건...”

정명은 벌써 이런 전화를 다섯 번째 받고 있었다. 혹시 그 듀오가 누군지 아냐는 것이다.

‘이런...이 사람도 이걸 물어보네. 거짓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정명이 모른다며 적당히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자, 송하니는 놀랍다는 듯 정명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오오. 발음 진짜 쩐다. 울학교 영어 쌤보다 더 잘 하는 것 같아. 오빠 정말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구나?”

“그걸 말이라고 하냐. 됐고, 피곤하지 않다면 바로 게임 시작하자. 아무래도 안 되겠어. 더 유명해지기 전에 빨리 끝내버려야지.”

“왜? 유명해지면 좋은 것 아냐?”

하니의 물음에 정명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빙그레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사실, 중요한 이유가 있긴 하지.’

만약 송하니가 어린 나이에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된다면 버릇이 잘 못 들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실력이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숨어있던 재야의 고수라며 확 떴는데, 효과가 끝나고 급격한 하락세를 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만약 그렇게 되면 100% 슬럼프 확정이다.’

그런 정명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하니는 이것 좀 보라는 듯 상대 라이너의 모습을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오빠, 저 사람 되게 유명한 BJ인데 알아?”

“흠, 모르겠는데.”

“오, 프로 선수도 있다! 아니, 내 말은 꽤 유명한 프로들. 지금껏 만난 프로들이 프로가 아니라는 게 아니고.”

랭킹이 높아짐에 따라, 유명 인물들과의 매칭 또한 자주 잡히기 시작했다.

정명이야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제 살길 바쁘기에 그들이 누구인지 가물가물 했지만, 송하니는 그들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와, BJ가 그러는데 지금 방송하고 있대! 우리 아프니까TV에 나오고 있는 걸까?”

“그 사람들이 유명한 건 알겠으니까, 이제 집중하자. 이번에도 다른 곳 안가고 미드만 판다.”

게임 시작 10분 뒤, 정명은 스스로의 말대로 갱킹을 미드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다른 라인에서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복돌이 : 님. 미드만 가지 말고 탑 좀 와 주세요. JP킬러님 실력이면 금방 라인 풀어주실 수 있으실 것 같은데 KTM미니 : ㄴㄴ. 바텀 오십쇼. 호응 열심히 해 드립니다. 저 지난 윈터리그에서 MVP 3번 딴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런 다른 라인의 애달픈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명은 다른 곳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가 봐야 미드만큼의 재미를 보지 못 하기 때문이다.

‘다른 라인은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이템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미드만 파야 해. 복돌아, 사실 당신이 나보다 더 잘 한다고!’

그런 생각을 속으로 묵히며, 정명은 하니에게 신호를 보냈다.

“좋아, 지금 들어가자.”

미드만 간다는 것을 상대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알아도 못 막는 것이라는 게 있다.

0.1초도 어긋나지 않은 완벽한 진입과 연계. 그것은 수많은 연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팀워크였고, 상대방이 아무리 타워를 끼고 있어도 손쉽게 킬을 가져오는 묘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압도적인 실력으로 찍어 눌린 상대편 미드라이너는 어이가 없는지 ㅋㅋ 웃기 시작했다.

MMK_ramdom : ㅋㅋ 님들 그거 앎? 나 님들한테 죽는 동안, 님들 움직이는 거 구경하느라 바빴음. 진짜 팀워크가 아트 수준이네. 그래도 이제야 누군지 알겠다. 불칸이랑 프로팡 맞죠? 한국에서...아니, 세계에서 이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들 밖에는 없음 ㅋㅋ 당연히 아니었지만, 언제나처럼 대답은 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게임을 포기해버린 미드 라이너 덕분에 정명은 빠르게 게임을 끝내며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솔로 랭크 10연승! 고양감으로 인하여, 3시간 동안 집중력이 20% 상승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누군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정체를 밝힌다면, 큰 명성을 얻으며 ?????를 개방할 수 있습니다.]

정명과 하니는 아이템을 사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랭킹을 올릴 수 있었다.

단숨에 랭킹을 190위에서 10위까지 올렸지만, 정명이 몇 백 판을 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연승을 하면 팀 매칭 시스템이 점수를 제곱해서 주기 때문이다.

만약 200위에서 199위인 상대를 이겼다고 치면, 그 다음 상대는 198위 정도의 상대가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3연승, 5연승, 10연승을 한다면?

197위, 196위처럼 한 명 한명 꺾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180위, 150위, 100위처럼 순위가 훌쩍 뛰어오르므로 단시간 내에도 랭킹을 급상승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었지만, 정명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갑자기 유명세를 탄 송하니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 이거봐봐. 우리 동영상이 많이 본 동영상 1위로 올라가 있어!”

“음. 그러네.”

“영어로 써 있는 댓글도 있다. 외국 사람이 쓴 건가? 이거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우리가 플레이 하는 거 잘 보고 있대. 해외지역 특성상 실시간으로 보진 못하지만, 리플레이를 꼬박꼬박 다운받아서 보고 있다네.”

“와. 외국에서도 보고 있다니! 어쩌면 우리 꽤 유명해진 것 아냐? 우헤헤헤...여기 자기네 방송국에 오지 않겠냐는 쪽지도 있어! 요즘 BJ들은 프로보다 돈 많이 버니까 관심 있으면 연락 달라는데?”

아직 정신이 미성숙한 송하니는 유명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드는지 계속 허둥지둥 하고 있었고, 정명은 그 모습을 보며 뭔가 불안함을 느꼈다.

“그냥 무시해. 프로 하고 싶다며. 여기서 딴 길로 새면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게 무척 힘들어질 거야.”

송하니는 알았다고는 했지만, 그녀가 미덥지 않았던 정명은 마법의 단어를 덧붙였다.

“만약 그런 거에 넘어가면 배신이야. 알았지?”

“뭐! 이게 왜 배신이야. 난 절대 배신 안 해!”

송하니는 배신이라는 단어에 펄쩍 뛰었다.

혈맹 아이템을 쓴 뒤로, 송하니는 배신이라는 말만 꺼내면 무척 민감하게 반응하며 무척 말을 잘 들었다.

정명은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싶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며 송하니가 떼를 쓸 때면 저 말을 꺼내고는 했다. 그런데...

[*주의하십시오. 팀원에 대한 강한 억압은 반발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결속력이 S랭크이기에 당장은 변화가 없지만, 억압이 계속된다면 결속력이 하락할 수 있습니다.]

‘이런...너무 남용했나? 아무튼 더 상황이 이상해지기 전에 빨리 5위를 찍고 손 털어야겠군. 아이템의 사용 시간이 이틀 밖에는 안 남았긴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될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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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베이징에 있는 JP미디어의 본사 건물.

건물 안에서는 JP미디어의 사장이 중국의 유명 프로게임단, 팀 월드클래스의 감독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사장은 감독에게 선물을 건네며 억울함을 표현했다.

“우리가 기껏 몇 십만 위안이나 들여가며 이벤트를 열었는데 모든 관심이 그 녀석들에게 쏠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휴가 중인 선수들을 부를 수 있을까요? 두 명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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