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솔로랭크 돌파 (1) -------유료연재 시작 >
오랜만에 만난 송하니는 정명을 알아보지 못 하고 있었다. 때문에 정명은 깊숙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아는 체를 했다.
“나 기억 안 나? 너 왜, 예전에 우리 PC방 대회 할 때...”
“앗! 그때 그 오빠다!”
하니는 이제야 기억이 났는지,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대머리라서 못 알아볼 뻔했어! 요즘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탈모가 많다더니, 무섭다 정말.”
“아니, 대머리가 아니라 머리가 조금 짧은 것뿐이야. 근데 넌 여기서 뭐하니?”
하니는 정명이 건넨 회심의 개그를 못 들은 체 하고는,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설명했다.
“사장님이 나 너무 어리다면서 아르바이트는 안 된다고 했는데, 오빠랑 아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허락해주셨어. 괜찮지?”
“어 그래. 그건 상관없는데, 너무 어린 건...아니다. 네가 충분히 고민해서 한 결정이겠지.”
“응! 솔직히 일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어. 언젠가는 일 안하고 맨날 게임이나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는데!”
하니는 무척이나 사교성이 좋은 아이였다. 거의 처음 보는 사이이면서도 무척 친근하게 대해주는 하니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정명은, 퇴근 준비를 하는 하니에게 집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다.
“벌써 가는 거 보면 오전 아르바이트였나 보구나? 태워줄게. 오늘 아빠 차 끌고나왔는데.”
“흠. 근데 오빠. 혹시 지금 나 꼬시는 것 아니지?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나 되게 철벽이다?”
“네가 몇 살 이랬더라?”
“17살. 고1.”
“그래, 그리고 난 26살이거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다음 천재로써 두각을 드러내고 있을 때, 넌 똥오줌도 못 가리는 아가였다는 거지. 잔 말 말고 가자 아가야.”
잠시 뒤.
정명은 하니를 곧장 집으로 데려다 주면 될 것 같았지만, 하니는 차가 생겨 이때다 싶었는지 조금 멀리 떨어져있는 게임 샵에 데려다달라며 조르기 시작했다.
“잠깐만 들렀다 가자. 최근에 발매된 게임기가 있어서...이 날을 위해 알바를 하며 돈을 모았단 말이야.”
“그러냐.”
송하니가 말하는 게임 샵은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린 뒤, 정명과 나란히 걷던 송하니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정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저씨, 혼자 미국에서 사는 거 힘들지 않아?”
“별로? 돈도 많이 벌고, 팬도 많이 생겨서 좋기만 하다. 만약 한국에서 낑낑대고 있었다면, 이런 행운은 없었을 테지. 너도 기회 되면 미국으로 와. 물론 영어는 해야겠지만.”
“올. 아저씨 팬도 있어요? 얼마나? 가족이랑 친구 팬 말하는 거 아니지?”
그 말을 들은 정명은 잠시 생각하더니, 곧바로 상태창을 켰다.
[팬 수 : 2237 명]
[명성 : 596]
“몇 명 정도 되냐고? 한...2237명 정도.”
“뭐야.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 한다고 해서 딱히 신뢰도가 올라가지는 않거든요? 하여튼 남자들의 허세란.”
“허세가 아니라...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미국에서 게임 좀 하는 사람들이라면 많이들 알아보긴 하더라. 엄청 유명하다는 건 아니지만.”
“진짜로? 근데 아무리 봐도 아닌데...아저씨 미국간지 얼마나 됐다고...”
혼자 골똘히 고민하던 하니는 이내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는 듯 씩 웃더니 전자상가에서 나오는 외국인에게 무턱대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헤이, 아저씨! Do you know him? Do you know him?”
정말 대단한 행동력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무척 쓸모없는 일에 그 행동력을 쓰는 게 아깝다고 할 정도로.
하니는 당연히 저 외국인이 정명을 못 알아볼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의 상황이 나왔다. 30대로 보이는 배불뚝이 아저씨가 정명을 알아본 것이다.
그는 정명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며 한국어로 서툴게 말했다.
“알쥬 알쥬. 안뇽하세효.”
그 남자는 한국말이 서툰지 더듬더듬 얘기했지만, 그 의미만은 명백하게 전달되었다. 그리고 남자가 정명과 셀카까지 찍고 떠나자, 하니는 분한 듯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한 번으로는 알 수 없어! 표본이 부족하다고! 오빠는 그런 것도 몰라?”
“아니, 나는...”
“헤이! 두유노 힘? 두유 노....”
결과적으로 총 다섯 명의 외국인에게 물어 본 결과, 세 명의 사람들이 정명을 알아봤다. 그리고 정명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 중 한 명은 미국인이 아니었고, 다른 한 사람은 70대의 노인이었기에 상당히 성공률이 높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건 정말 의미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정명은 지친 듯 말했다.
“야,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이제 그만 집에 가자.”
“마지막으로...딱 한 명한테만 더 물어볼게. 진짜로.”
하니는 미친 듯이 사냥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정명을 모를 것 같은 외국인을 찾아서.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벤치에 앉아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저 언니 진짜 예쁘다. 저 사람한테로 가자!”
벤치에는 도도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북유럽계 미녀가 있었는데, 가만히 있음에도 주위의 모든 시선을 흡수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지 하니와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았고, 결국 정명이 나서 통역을 해 줘야만 했다.
“언니가 뭐래? 모른대지? 응? 응? 나 영어 모른다고 거짓말 하지 말고 솔직히 말해.”
“왜 그렇게 집착 하는 거야. 그래, 나 모른다고 하더라. 그런데 네가 마음에 든대. 혹시 너도 마음에 들면 네 번호 좀 달라는데?”
“뭐!”
송하니는 그 말을 듣고는 고장 난 기계처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리고 얼굴이 빨개지더니, 뒤를 돌아 도망쳐 버렸다.
“어.....죄...죄송합니다!”
@@@
다음 날, 친구도 없는지 하니는 아침부터 PC방에서 죽치고 있는 중이었다.
마찬가지로 할 게 없어서 아침부터 PC방에 출근한 정명은 하니의 옆 자리에 앉으며 말을 걸었다.
“송하니. 너, 요즘도 게임 좀 하지? LOH말이야.”
“당연히 하지. 나 엄청 잘해. 그랜드 마스터야. 알지? 한국에 딱 200명 있는 거!”
“그럴 줄 알았어. 자, 들어봐. 내 아이디가 마스터 리그에 있거든? 근데 그 아이디를 그랜드 마스터로 올리고 싶어. 그래서 말인데, 네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당연히 보답은 할거고.”
LOH에서 개인 순위를 나타내는 솔로랭크 점수는 다른 게임에 비해 올리기가 만만치 않다. 아무래도 1:1이 아니라 다섯 명이 하는 게임이다 보니, 아무리 잘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변수가 많아 캐리를 하지 못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을 캐리하는 사람이 둘이라면?
솔로 랭크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사실 두 명 까지는 파티를 짜는 것이 허용된다.
때문에 빠르게 랭킹 점수를 올리고 싶다면 잘 하는 사람 두 명이서 듀오로 게임을 돌려야 좋다는 것은 거의 상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명의 말에 하니는 좋은 거래라는 듯 웃음을 지었다.
“좋아! 지금 바로 할까? 오빠가 정글 잡아. 내가 미드 갈게.”
“정글? 아니, 탑 갈래. 정글은 욕 많이 먹어서 힘들어.”
“안 돼. 솔로랭크에서 자꾸 헛짓거리 하는 애들 멱살 잡고 캐리하려면 미드/정글 듀오가 제격인 거 몰라?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하긴...좀 그런 것도 있긴 하지.’
빠르게 수긍한 정명은, 곧바로 송하니와 함께 랭크게임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명은 하니의 나이가 어려 팀플레이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과연 겉멋으로 그랜드 마스터를 단 것은 아닌지 정명이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척척 게임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오빠, 갱킹 좀 와 봐. 지금 딱 각이거든? 오면 무조건 잡는다.”
“그래, 알았어. 귀환 한 번만 하고 갈게.”
“오빠, 여기 부시에 와드 좀 박아줘.”
“응, 지금 간다.”
“여기 갱킹 좀.”
“오냐.”
“와봐.”
“어.”
실력파 두 명이서 게임을 휩쓸어 버리니, 점수를 올리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쉬웠다. ‘예전에는 이걸 왜 못하고 끙끙거렸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둘이서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에 정명은 파격적이라고 할 정도로 단숨에 그랜드 마스터 리그로 올라갈 수 있었다.
[퀘스트 달성]
그랜드 마스터 리그로 올라, 퀘스트 달성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보상으로 3000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몇 개월 전에 받은 퀘스트지만, 지금에서야 겨우 달성했다.
정명은 왠지 모를 후련함을 느끼며 기지개를 쭉 폈다.
“와, 북미에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못 한 거를 한국에 와서 하네. 고맙다. 꼭 보답할게.”
하니는 계속되는 게임에 무척 피곤했는지,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은 채로 힘없이 말했다.
“감사인사는 됐고, 나는 요즘 새로 나온 게임기 PS6으로 충분해.”
“그래. 그 정도야 뭐, 사줄게.”
게임을 종료하기 전, 정명은 대기실에서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더니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나저나 사람들 아이디 앞에 JP라는 글자가 많이 붙어있는 것 같네. 저것들 뭔지 혹시 아냐?”
JP트라우마, JP폴로처럼 길드를 연상시키는 아이디가 상당히 많이 보였다. 상대로 매칭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같은 팀 사람들까지도 JP라는 이름을 많이 달고 있었다.
그리고 송하니는 알고 있는 일인지, 모니터를 슬쩍 쳐다보고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거? JP미디어라는 중국 회사에서 건 현상금 때문에 그래.”
“현상금?”
“응. 아이디 앞에 JP를 붙여야 참여 자격을 얻거든. 아이디 앞에 JP를 달고 나서 이번 달 31일까지 랭킹 1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1억 원을 준다나 뭐라나.”
JP미디어는 커져가는 게임시장을 겨냥하여 새로 출범된 인터넷방송 업체였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 서버에서 1등을 하면 1억 원을 주겠다는 이벤트를 열었고, 그 일 때문에 지금 LOH 커뮤니티는 상당히 시끌시끌한 상태였던 것이다.
“솔로 랭크라. 아무리 그래도 1위는 힘들지. 온갖 괴수들이 바글바글 거리는데.”
정명이 금방 관심을 끄고 대기실을 나오는데, 갑자기 퀘스트 창이 보이기 시작했다.
[솔로랭크 퀘스트]
상위 200명에게만 허락되는 그랜드마스터 리그.
그 천상계의 싸움에서 싸워 승리하십시오.
달성 조건 : 그랜드 마스터 리그에서 랭킹 5위 이상 달성 보상 : 8000포인트, C급 선물상자 1개 *한국 서버에서 달성할 시 : 보상 50% 증가 *듀오로 플레이 할 시 : 보상 50% 감소 그리고 정명은 그 퀘스트를 보자마자 무릎을 탁 쳤다.
‘아 맞다, 선물상자!’
선물상자는 윈터리그에서 2등을 하고 받은 보상 중 하나였다.
정명은 ‘이게 왜 지금 기억이 났지’ 싶을 정도로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고, 퀘스트 보상을 보자 겨우 떠올리게 되었다.
정명은 더 잊어버리기 전에 바로 선물장자를 열어버리기로 결정했다.
[C급 선물상자]
무엇이 나올지 두근두근한 선물상자. 요일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 달라지며, 랜덤으로 받기를 선택할 경우 무척 낮은 확률로 특별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일에 따라? 그럼 오늘 받을 수 있는 건 뭐지?’
[오오라 강화]
일주일 동안 결속 효과를 강화시켜, 팀워크를 향상시키는 오오라를 내보냅니다.
설명을 읽어보니, 팀의 결속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효과를 주는 아이템이었다.
현재 OMA의 결속이 B랭크이니 한 단계 올리면 B+. 정명이 직접 체험해본 결과, 한 단계만 올려도 체감 상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는 했기에 상당히 쓸만한 아이템이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명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꽤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처음이니까. 딱 한번만 해보자.’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명은 히죽 웃고는 [랜덤으로 받기] 버튼을 눌러버렸다.
[축하합니다! 막 데뷔한 신인이 월드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하는 정도의 낮은 확률을 뚫고, C급 보물상자에서 A랭크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혈맹]
팀원과 강력한 피의 동맹을 맺어, 결속 랭크를 S랭크로 고정시킵니다.
-동맹은 단 한 명으로 제한됩니다.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그 정도면 완벽한 팀플이라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한 몸이라고 보면 되요. 그리고 그 때부터였나? 아무리 날고 긴다는 정글러와 팀을 짜도 뭔가 답답하더라고요.
-섬머리그 우승 후, 프로게이머 S*****의 인터뷰 중에서.
*사용 후 168시간 동안 유지됩니다.
‘혹시...내가 대박을 뽑은 건가?’
아무리 봐도 초심자의 행운이었다.
게이머 생활을 통틀어도,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그런 행운.
기쁜 나머지 목에서 환호성을 지르기 직전, 정명의 눈에 빨간색 글씨로 써진 글자가 뒤늦게 들어왔다.
*주의. 24시간 이내 사용해야 합니다. 앞으로 24시간이 지나면 이 아이템은 자동으로 폐기됩니다.
“으악! 시발!”
“뭐야. 갑자기 왜 그러는데.”
정명은 송하니와 메시지창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그리고 무척 말하기 힘들다는 듯, 한마디 한마디를 쥐어 짜냈다.
“아무래도, 솔로 랭크를 조금 더 돌려봐야겠다. 어차피 폐기될 거라면, 써 보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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