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49화 (49/226)

14. 윈터리그의 결말 (5)

OMA와 토베노의 경기가 치러지는 방송국 입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도착했다. 시즌 초반,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팀이자 이번 시즌 성적과 인기를 가장 많이 올린 팀이라고 할 수 있는 OMA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대단한 업적을 이룬 팀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도 무척이나 추레한 몰골로 경기장에 도착했다.

“와, 사람들 진짜 많네. 봐라, 사람들이 경기장에 들어가려고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경기를 보려고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니, 기쁘지 않냐?”

“아 예. 많네요...사람들...”

정명이 일부러 밝게 외쳤으나, 돌아온 반응은 밋밋했다. 다른 팀원들이 별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팬들이고 뭐고 빨리 대기실에 앉아서 쉬고 싶은 생각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터덜터덜 걸으며 대기실로 들어온 선수들은 각자 편한 자리를 찾아서 편하게 널브러진 뒤, 각자 한 마디씩 꺼내기 시작했다.

“처음 올라오는 플레이오프라고 긴장했나? 오늘따라 몸이 좀 무겁네. 피곤해.”

“너도 그래? 나도 그런데. 가만, 언젠가 지금하고 똑같았던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정명은 피곤함을 호소하는 팀원들을 보며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인 피터 놈을 보면 전혀 미안하지 않기도 하고...’

서서와 엮이면 과민반응을 보이는 피터를 제어하기 위해 스킬을 구매해야만 했지만, 스킬 구매조건이 문제였다. 스킬을 구매하기 위해선 팀원들의 공포수치가 30을 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포 수치를 올리는 방법은 ‘가혹한 지휘’를 사용하는 방법 밖에는 모르는 정명으로써는 그 스킬을 연달아 사용할 수밖에는 없었고, 때문에 팀원들은 잠을 자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은 상태로 경기장에 나오게 된 것이다.

정명은 어제 스킬을 구매할 때 뜬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보며 고민을 거듭했다.

[공포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공포는 일부 스킬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포가 계속 올라가게 된다면 팀원들이 당신의 말을 더욱 잘 듣게 되겠지만, 수치가 올라갈수록 당신은 고립될 것입니다.

*주의하십시오. 공포가 특정 수치를 넘어간다면, 공포에 질린 팀원이 어떤 일을 벌일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현재 수치 : [31]

-팀원들은 스스로 깨닫지는 못 하고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은근히 당신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공포라...내 말을 잘 듣는 건 좋은데, 문제는 수치를 내리는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는 거야. 분명 방법이 있을 텐데.’

스킬 구매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공포수치를 올려놓긴 했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정명은 이번 경기를 끝으로, 더 이상 스킬을 쓰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사령관 스킬은 오늘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쓸 일이 없을 거고, 가혹한 지휘 스킬은...약간 아쉽지만 쓰지 말아야겠군. 어쩐지 스킬 효과에 비해 가격이 싸더라니, 이런 부작용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잠시 뒤. 정명은 널브러져있는 팀원들을 일으키며, 무대로 향했다.

......

“다들 준비 되셨나요? 문제없으면 3분 후, 경기 들어가겠습니다.”

“문제없어요.”

“저도.”

“시작해도 됩니다.”

팀원들이 각자 대답하며 긴장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명 또한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정확히는 모니터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지금 하면 되는 건가?’

[공포의 사령관 스킬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스킬을 한 번 사용하면, 경기가 종료될 때 까지 스킬을 해지할 수 없습니다.]

‘사용한다.’

[스킬을 사용합니다.]

-팀원들의 컨디션이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집중력이 100%로 고정됩니다.

그리고 정명이 스킬을 사용함과 동시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

-토베노, 다시 한 번 바텀라인에 갱킹을 준비하는군요. 의왼데요? 당연히 정명선수를 신경 써서 미드라인을 위주로 동선을 짤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토베노의 공격은 어째서인지 바텀라인에 집중되었고, 피터는 서서를 보며 발광하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며 공격을 피해냈다. 정명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토베노를 비웃었다.

‘누굴 바보로 아나. 그렇게 티 나게 피터를 들쑤시는데, 대비를 안 할 리가 있겠어? 바텀라인을 주로 공격할 때의 플랜 A부터, 바텀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때의 플랜 B까지 준비는 완벽하다 이거야.’

모든 게 완벽했다. 피터의 상태가 약간 이상해 보인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좋아! 잘 했어! 바텀에서 시간을 많이 뺐었으니까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유리해. 잘 했어!”

“네...”

“그럼 바로 타워 압박 들어가 봐. 아마 타워의 피를 반 정도 빼둘 수 있을 거야.”

“네...”

스킬의 영향 때문일까? 피터는 넋이 나가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혹은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뭐지 저 녀석. 괜찮은...거겠지?’

피터의 표정을 보면 넋이 나간것 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경기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입을 반쯤 벌리고 있는 것이 보기에 썩 좋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 뭐가 됐든 경기만 잘 하면 되지 뭐. 힘내라.’

정명은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며, 다음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다.

@@@@

스코어는 순식간에 2:0이 되었다.

애초에 3위대 6위의 싸움,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면 원래부터 OMA가 이길 확률이 높았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는 흐름이었다.

그리고 최근, 팀 내 불화가 잦았던 토베노 측의 분위기는 바닥을 치다 못해 지하를 뚫고 들어가고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2세트가 끝나자마자 너 나 할 것 없이 서로를 탓하며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바텀만파면 된다는 건 누구 아이디어였지? 지금 와서 보니 정말 쓰레기 같은 생각이었군. 안 그런가?”

“그러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OMA는 미드라이너 혼자 다 해먹는 팀인데 그 놈을 마크해야지 무슨 뜬금없이 원딜러를 공략하자는 말을 하냔 말이야!”

팀원들이 비아냥댔지만, 서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밀어붙인 전략이 완파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때문에 서서로써는 자존심 상하지만, 실패를 인정하며 항복을 선언했다.

“......좋아. 너희들 마음대로 전략을 짜 봐라. 아무리 봐도 미드를 공략해서는 답이 안 나올 것 같지만 말이야.”

“끝까지 그 소리? 야, 저새끼 말 못 믿겠다. 이제부터 내가 오더 하고 싶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서포터 다스의 말에, 이것만은 못 참겠다는 듯 서서가 소리쳤다.

“뭐! 다스, 드디어 미친 거냐? 지금 시점에서 오더를 바꾸겠다고?”

“그래. 오더가 뭐 너만 할 수 있는 줄 아냐? 네가 이 팀으로 오기 전에는 내가 오더였어!”

다스의 말 대로, 오더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진짜 문제는 오더를 바꿨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오더를 무리해서 바꿀 정도로 토베노의 멘탈이 산산이 부서졌다는 것이었다.

결국 한바탕 말다툼을 치른 토베노는 이전보다 더욱 안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

-솔로킬! 솔로 킬입니다!

-서서 선수에 이어 팰컨 선수까지, 탑, 미드, 바텀 전부 솔로 킬을 당하며 압살당합니다!

토베노가 오더를 갈아치우고 치르게 된 3세트.

1세트는 40분, 2세트는 45분이 걸린 장기전이었으나, 3세트는 20분 만에 승패가 결정 났다.

OMA는 3:0으로 토베노를 완파하며 가뿐히 4강에 안착한 것이다.

-GG! 토베노, 가망이 없다 생각했는지 항복을 선언합니다!

-OMA의 기량이 확 올라간 게 보이네요. OMA의 다음 상대인 GLG도 이 경기를 보면 무척 긴장되겠는데요!

[플레이오프 6강에서 승리했습니다.]

-명성이 20 증가합니다.

-3000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푸하...3:0이라. 이길 거라고 생각 하고는 있었지만, 예상보다는 쉬웠군. 특히나 마지막 경기는 하품이 나올 정도였어.’

정명은 다른 팀원들과 같이, 긴장을 풀며 의자에 쓰러지듯 누웠다.

“새꺄! 내가 진작 미드 파자고 했지!”

“그래서 미드 팠는데 진 거잖아, 쓰레기야!”

그런데 갑자기 건너편 부스에서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들은 것은 정명뿐만이 아니었는지, 모든 사람의 시선이 반대편 부스로 쏠렸다.

경기에 져서 분했기 때문일까? 토베노 사람들은 내가 잘했니, 네가 잘했니 하며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런 퇴물 새끼를 믿은 게 잘못이지. 내가 병신이야.”

“네가 병신이었다는 걸 이제라도 깨닫게 해줬으니 고맙게 생각해라 멍청아.”

싸움의 구도는 서서와 다른 팀원들이 대립하는 모양새였다. 그들은 서로 어깨를 밀치며 시비를 걸더니, 이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헉, 저런 미친!‘

부스로 뛰어 들어간 스태프에 의해 싸움은 금방 중지되었다. 하지만 그 새 주먹이 몇 번 오고갔는지, 서서는 코피를 흘리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정명은 그 모습을 보여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이런 광경은 두 번 보기 힘드니까 찍어 둬야지. 그럼 제목은...‘코피 나면 싸움 진 거야.’ 정도로 할까.”

......

그날 밤. 정명은 자신의 방에서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펴보고 있었다. 대부분 토베노를 비웃는 것과 함께, 프로의식이 없다는 말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캬, 서서 1대 맞고 2대 쳤네. 메더에이처럼 잽 날리는 것 좀 봐. 감탄!

-그냥 프로게이머 관두고 복서로 전직해라 ㅋㅋ 지금 운동을 안 해서 그렇지 몸놀림은 괜찮네. ㅋㅋ

‘보통은 하다못해 뒤에 가서 싸우는데, 경기 끝나자마자 저 모양이라니. 그동안 한 팀으로 활동했다는 게 기적이로군.’

진귀한 광경을 본 팬들은 킥킥대며 진심으로 즐거워했지만, 저런 추태를 보이고도 그냥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다.

협회와 방송국 측에서는 즉각 진상조사에 착수했고, 코치에게 살짝 들은 얘기로는 벌금형 이상의 처벌을 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모든 소동의 주인공, 서서의 트위터에는 딱 한 마디가 남겨져 있었다.

-리그가 끝나면 입장정리 하겠습니다.

‘입장정리는 무슨. 이참에 은퇴나 했으면 좋겠는데. 흠. 그러면 나도 이제 잘까.’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잘까 했으나 잠이 잘 오지 않았던 정명은 오랜만에 솔로랭크 한두 판 돌리고 자기로 했다.

일반 서버에 접속하니, 퀘스트 목록이 갱신되며 예전에 받아뒀던 퀘스트가 리스트 맨 위로 올라왔다. 기억에서 잊혀져있던 퀘스트였다.

[솔로랭크 퀘스트]

그랜드 마스터 리그에 올라가십시오.

보상 : 3000포인트

‘아...이런 것도 있었지 참.’

막상 퀘스트를 받을 때는 포인트를 위해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3천 포인트는 그렇게 많은 포인트로 보이지 않게 되어서 내버려뒀던 퀘스트였다.

정명은 이번에야말로 퀘스트를 완료하려고 했으나, 또 미뤄둬야 할 것 같았다. 게임에 들어가자마자 한 게이머가 정명을 맞아주며 팀 랭크를 돌리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는 프로게이머를 은퇴하고 방송 BJ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무척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나이트코어 : 와! 정명선수! 잠 안자고 이 시간에 뭐 하세요? 혹시 우리랑 팀 랭크 돌리실래요?

디아블로님 : 오늘 왠지 잠이 안 와서 ㅎㅎ; 팀 랭크 좋죠. 일단 음성채팅 합류 좀 할게요.

정명이 채팅에 합류하자, 나이트코어는 하하 웃으며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디 또 바꾸셨네. 지난번에는 외국인노동자 아니었나요?

"네. 근데 부적절한 아이디라고 신고가 들어와서 쓰지 말래요. 그래서 다시 바꿨어요."

-큭큭. 그러시구나. 그나저나 디아블로님. 걸리적거리는 팀마다 다 깨부수고 다니면 어떡해요. 님 덕분에 다음 시즌부터 프로리그가 대격변을 겪게 생겼음. 얼핏 듣기로는 깨지는 팀이 한 두 곳이 아니라던데.

“모함 자제요. 토베노는 어차피 무너질 팀이었죠. 구단주가 돈만 많이 썼지, 구단을 운영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던데.”

-인정. 선수 영입할 때 팀 케미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죠. 솔직히 제가 토베노 라인업 처음 봤을 때는 ‘어떻게 저런 꼴통들만 모아놓을 수 있나.’ 이 생각 했다니까요.

“큭큭큭. 그래요. 아, 제가 정글 갈게요. 맨날 미드만 연습하다보니, 랭크게임에서 놀 때는 다른 거 하고 싶어져서.”

-그러세요.

정명이 미드 말고 다른 라인을 간 것은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나이트코어가 구성한 팀은 전 프로, 혹은 프로를 노리는 아마추어들이 모여 있는 팀이었기에 ‘연습’을 한다기보다는, 그냥 한 판 재밌게 놀고 간다는 성격이 더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게임이 시작한 뒤, 밝은 목소리로 떠들던 나이트코어는 갑자기 긴장한 듯 목소리를 낮췄다.

-어어...이거 매칭이 왜 이렇게 됐지? 상대편에 스케스밴이 있어요. 북미 최강의 미드라이너 중 한명인 GLG의 스케스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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