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바쁘니까 비켜 (4)
정명이 레딧에서 본 것은 한 기사 번역본이었다. 누가 중국어로 된 중국 커뮤니티 사이트의 기사를 퍼와, 영어로 변역한 것이다.
단독 인터뷰. OMA의 정글러 조시와 함께.
Q : 요즘 북미에 진출한 중국팀 ITU가 무척 화제다. 그에 대한 생각은?
A : ITU는 무척 강한 상대다. 아마 우리 팀 뿐 만이 아니라, 북미팀 전부가 ITU를 의식하고 있을 것.
Q : ITU에 있는 선수들 중 가장 신경 쓰이는 선수는?
Q : 한명을 꼽을 수 없다. 모두 대단한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중국 팀은 세계 최강이니 곧 북미를 초토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뭐다 하는 내용이었다.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서 있는 조시의 사진과 이상하게 비틀린 인터뷰는 덤이었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날조 기사를 봤음에도, 정명의 반응은 담담했다.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없군. ITU한테 돈이라도 받은 거야 뭐야? 하긴, 저쪽 바닥이야 원래 그런 곳이었지만.”
중국 쪽 커뮤니티 사이트는 원래 저렇다. 날조는 기본이고, 허언증이 판을 친다.
웃긴 것은, 딱히 기자들을 욕할 것은 못 된다는 것이다.
거긴 커뮤니티의 구성원 대부분이 ‘중국은 최강,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중국 선수들이 받는 대우를 부러워 함’ 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마치 컴퓨터에 설치되는 윈도우즈마냥, 중국 팬사이트의 일원이라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자부심인 것이다.
때문에 저런 기사들을 쓴다고 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 이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중국인들 뿐, 레딧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정명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조시가 저딴 말을 할 리 없지 않느냐, 허언증 꺼져라 하는 말이 대부분이었고, 대놓고 인종차별적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명은 인터넷창을 끄고 한숨을 푹 쉬었다.
“에이, 내일이면 조용해져 있겠지. 신경 끄자.”
정명은 그때까지만 해도 별 것 아닌 해프닝으로 치부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정명의 예상과는 달리, 그 사건은 오히려 좀 더 커져 있었다. 레딧의 사람들이 그 기사를 헛소리로 치부하자, 중국의 팬들이 레딧으로 몰려와 댓글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인민사령부 : 겁먹었으면 겁먹었다고 솔직하게 말해라. 바보 같은 미국인들 같으니.
-쓰촨성시민 : 솔직히 북미리그는 ITU 선에서 정리 가능. 인정?
?hyperlink : 인정하긴 뭘 인정해? 짱깨놈들, 여기서 지랄 말고 너희 나라로 꺼져라.
두 지역 팬들의 키보드 배틀로 인하여, 현재 레딧은 완전히 개판이었다.
그리고 화제의 인터뷰를 한 당사자인 조시는 그런 난장판을 보며, 얼마 안남은 머리를 잡아 뜯었다.
“미안. 내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야, 궁상 그만 떨어. 이건 정말 별것 아닌 일이니까. 최소한 우리들은 네가 그런 말을 안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정말 별것 아닌 일이다. 얼굴도 모르는 인터넷 상의 사람들의 비난을 무시한다면 더욱 하찮은 일이 될 것이고.
하지만 조시는 평소에 SNS라던가, 인터넷 활동을 활발하게 했었기에 그런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명은 그런 조시를 위로하며, 수석코치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아, 코치님. 그 일, 어떻게 됐어요?”
-협회와 이야기가 끝났어. 아마 빠른 시일 내로 결과가 나올 거야. 조시는? 아직도 그러고 있나?
“징징대고 있긴 한데, 잘 달래서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다른 것은 우리 쪽에서 다 케어해줄 테니까, 너희들은 연습에만 신경 써. 멘탈 관리 잘 하고.
“예.”
......
‘휴, 생각보다는 흔들리지 않았군. 다행이야.’
전화를 끊은 수석코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의자에 누웠다.
OMA 선수들이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있긴 하지만, 아직 나이 어린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이런 외부적인 자극에 흔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어찌어찌 잘 견뎌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옆에서 조마조마하게 둘의 얘기를 듣고 있던 매니저는, 눈에 띄게 안도하며 말했다.
“유정명 그 친구, 팀을 잘 이끌고 있나 보네요. 리더에 소질이 있는 걸까요?”
“다른 팀원들이 잘 따르는걸 보면 확실히 그렇지. 요즘 OMA가 잘 나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지도 모르고. 자,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일이나 하자고. 이런 곳에 낭비할 시간이 더는 없잖아?”
수석 코치는 그렇게 말하며 벽에 걸려 있는 메모판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최근 OMA가 치른 연습게임의 히스토리가 간단하게 적혀 있었는데, 수석코치는 그것을 볼 때마다 뿌듯한 마음을 느끼고는 했다.
미라클 : 4승 3패 (전 시즌 5위)스콜피온즈 : 2승 0패 (전 시즌 -위)디지니 : 2승 0패 (전 시즌 6위)카스 : 3승 0패 (전 시즌 9위)총 전적 : 14전 11승 3패 (승률 78%)OMA가 이뤄낸 연습게임 성적은, 그들이 지난 시즌에 8위를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연습상대가 중 하위권에 집중되어 있었기도 하고, 최상위권 팀 같은 경우에는 콧대가 높아서 OMA 연습 게임 신청을 전혀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승률이 높아진 것도 있긴 했지만, 의미 있는 수치임엔 틀림없었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서 OMA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딱 하나. 미드라이너가 바뀌었다는 것 외에는.
코치는 그 새로운 미드라이너가 2부 리그 시절, SAO라는 허접한 팀을 데리고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냈던 것을 떠올렸다.
‘정명이라...겉보기에는 그렇게 대단한 실력을 가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수석코치는 정명의 피지컬을 꽤 좋게 평가하고 있었다. 2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린 선수와 비등비등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니까.
다만, 딱 거기까지였다.
LOH는 피지컬로만 승부하는 게임도 아니고, 혼자 하는 게임은 더더욱 아니니까.
하지만 정명이 들어온 이후, OMA의 실력이 급상승 하게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코치는 한 가지 가정에 도달했다.
‘만약 이 승률의 원인이 정명의 존재 때문인 것이라면? 글쎄...아마도 정명을 금방 뺏기게 되겠지. 팀 실력을 끌어올리는 선수라니, 그런 선수가 있다면 돈 많은 구단에서 선수를 모셔가려 할 테니까.’
정명이 OMA와 계약한 조건은 리그에 새로 들어온 신인치고는 제법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신입일 뿐이다. 계약 기간도 1년이고, 바이아웃 금액도 상당히 낮다. 다른 구단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그를 빼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까지 도달한 수석코치는 피식 웃었다.
‘내가 너무 앞서나갔군. 잡생각은 지우고, 연습이나 잘 도와줘야겠어. 그게 내 일이니까.’
@@@
몇 시간 뒤.
코치는 정명에게 몇 가지 공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사막 전사를 중심으로 연습하는 게 낫다는 거죠?”
“그래. 우리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ITU의 미드라이너 마오둥이 가장 껄끄러워 하는 캐릭터가 바로 사막전사야. 마오둥이 사막전사를 상대한 10경기 중, 상대 라이너에게 솔로 킬을 당한 횟수가 3번이나 된다고. 때문에 ITU에서는 사막전사를 자주 밴 하긴 하는데...아마 이번 경기에서는 하지 않겠지. 우리를 얕보고 있으니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OMA 내부에서도 이번 ITU전은 승률이 썩 높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이길 정도는 아니다. 그들이 중국 팀 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곳에서 못 버티고 나온 도망자들이니까.
코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피터는 손을 들고 질문했다.
“저...근데 지금부터 새로운 캐릭터를 연습하는 게 효과가 나오긴 할까요? 시간이 촉박하지 않나 싶은데.”
피터의 말에, 코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알아. 그런데 정명이 지금까지 한 것을 보면, 새로운 캐릭터를 감방금방 익히더라고. 한 3일만 집중적으로 연습하면 마치 장인처럼 플레이하더라니까? 너희들도 이게 무슨 소린지 알지?”
“하긴. 그런 것 같긴 하네요. 거기다 그 실력이 녹스는 것 같지도 않고...”
코치와 피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정명은 괜히 찔려서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다들 눈치가 빠르네. 역시 프로는 프로인가.’
정명이 새로운 캐릭터에 빨리 적응하고, 오랜만에 다루는 캐릭터라 할지라도 어색함 없이 캐릭터를 다룰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숙련도 시스템.
그 능력 덕분에 정명은 짧은 시간 내에 한 캐릭터만 팠다고 일컫는 명칭인 ‘장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뒤. 정명은 경기 시작 전에 사막전사 캐릭터의 숙련도를 장인 급으로 올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
[연습게임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소량의 포인트를 얻습니다.]
[반복된 연습으로 인하여, 캐릭터의 숙련도가 소폭 상승했습니다.]
사막전사의 숙련도 : LV 3 숙련된 전사]
[피지컬이 60 + (3)으로 보정됩니다.]
‘숙련도 3단계 이후로는 진짜 안 오르네. 숙련도를 4단계로 올리려면 뭔가 계기라도 필요한 것인가? 잘 모르겠군.’
3단계까지는 금방금방 오른다. 정명은 사막 전사, 환영술사 이외에도 숙련도 3단계를 찍은 캐릭터가 10개 가까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숙련도 4단계가 된 캐릭터는 없었다. 아무래도 숙련도 쪽은 장기적으로 봐야 할 것 같았다.
정명은 오르지 않는 숙련도가 불만족스러웠지만, 그를 상대했던 팀 미라클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채팅창에서 불평을 토로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정명. 대체 캐릭터 풀이 왜 이렇게 넓어요? 그 많은 캐릭터들을 다 밴 할수도 없고, 하는 것 마다 장인이시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ITU전, 힘내세요.
미라클 사람들이 방에서 나가기 전, 정명은 그 중 한 사람을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아이작. 아이작이 보기엔 어때요? 우리들이 ITU를 부숴버릴 수 있을까요?”
-글쎄요. 물론 정명이 무척 잘 하기는 하는데, 아시다시피 팀 게임은 변수가 많아서...
“주관적인 의견이어도 상관없어요. 그냥 흥미 위주로 듣는 거니까.”
-그래요? 그러면...사실, 저는 우리가 ITU에게 이길 확률을 50%라고 봤거든요. 그러니까, ITU한테 지기 전에.
“ITU한테 진 다음에는요?”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ITU에게 이길 확률은 절반정도. 요컨대, 한 끗 차이었다는 거죠. 따라서, 우리 팀을 상대로 5할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OMA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50% 정도.
“50%...반반이라...”
-그것도 대단한 거예요. 지난 시즌의 OMA 성적을 생각해봐요. 하위권에서 빌빌거리고 있었는데, 어느 새 중상위권 팀인 우리랑 맞먹고 있잖아요. 지금도 충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니까 너무 욕심내지 마세요.
‘맞는 말이긴 하네. 지금 당장 ITU를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은 조금 욕심이긴 하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의 말이 맞았다.
경기를 많이 치르다보면 매번 이길 수는 없는 거고, 정명의 팀은 앞으로 더 강해질 테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정명은 가능하면 이기고 싶었다.
이겨서, 중국 팬들이 그토록 물고 빨던 ITU를 박살내버리고 싶었다.
따라서 정명은 승률을 1%라도 끌어올리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포인트가 얼마가 있었지? 오랜만에 탈탈 털어볼까...’
그와 동시에 정명의 눈이 허공을 향한다.
[현재 능력치]
피지컬 (60/100)
정신력 (50/100)
오더 (40/100)
판단력 (50/100)
[잔여 포인트 : 3030]
‘포인트가 참...안 들어오는군. 일단, 하나에 2000포인트가 드는 피지컬은 제외다.’
혹시나 해서 들여다 본 스킬 상점도 여전히 그대로. 아무래도 새로 오픈된 스킬은 없는 모양이다.
정명은 자연스레 오더 스탯으로 눈을 돌렸다.
[오더 스탯을 1 구입하시겠습니까?]
가격 : 300 포인트
“좋아, 이거다!”
오더 스탯의 가격은 하나에 300 포인트. 정명이 지금 갖고 있는 포인트가 3030포인트이니, 포인트를 몰빵 한다면 오더스탯을 50으로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속으로 결정을 내린 정명은 바로 구매버튼을 눌렀다.
[오더 스탯을 10 구입하시겠습니까?]
...
[구입에 실패하였습니다.]
“어? 왜이래 이거. 여기 돈 있잖아. 구입!”
[구입에 실패하였습니다.]
[구입에 실패하였습니다.]
[구입에 실패하였습니다.]
....
정명은 뭔가 잘못된 것인가 싶어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계속해서 스탯 구입에 실패하자, 정명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더 스탯을 10개가 아닌 1개만 구입해 보기로 하였다.
[오더 스탯을 1 구입하시겠습니까?]
[가격 : 300포인트]
[구입에 성공하였습니다.]
‘후...되잖아? 엄청 쫄았네.’
하지만 여전히 스탯을 여러 개씩 구입하는 것은 되지 않았다.
결국 오더 스탯을 1씩 9번 구입하게 된 정명은, 오더 스탯이 49가 되어서야 왜 구입에 실패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더 스탯을 1 구입하시겠습니까?]
[가격 : 1500포인트]
구매에 실패했던 이유는 의외로 명확했다.
49->50으로 가는 시점에서, 스탯의 가격이 1500으로 뛰어버린 것이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정명은 결국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아 시발...이거 엿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