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새 둥지 (2)
갑자기 뜬 메시지에 잠시 허둥거렸지만, 정명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지금 연습실에 갈 거니까 새로운 능력이 뭔지는 금방 알게 되겠지.’
정명은 코치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차에 타서 연습실로 이동하기 전. 코치가 군것질을 제안했다.
“제가 아는 곳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죠. 이 근처입니다.”
“그러죠 뭐.”
정명도 마침 출출하던 참이었기에, 코치의 군것질에 동참했다.
코치가 들어간 곳은 핫도그 가게였다.
그리고 정명은 핫도그 값을 계산하는 코치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사주는 것 아니었구나. 하긴, 사준다는 말은 없었지.’
정명은 피식 웃고는 계산대로 갔다.
그런데, 그런 정명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어? 정명 선수 아니세요? LOH 하시는...”
“네. 맞습니다. 신기하네요. 저를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제가 2부리그까지 다 챙겨보거든요. 2부리그를 보는 사람이면, 정명 선수를 모를 수가 없죠.”
가게 주인은 LOH의 열렬한 팬이었는지, 아직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정명의 히스토리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제가 정명 선수가 나온 경기는 다 챙겨봤어요. 솔직히 말해서, SAO 다른 친구들은 버스 탄 것 아닙니까. 정 선수 혼자 다 한 거지. 뭐, 이제는 없는 팀이지만요.”
가게 주인은 정명과 함께 사진을 찍고는, 보답이라며 핫도그의 요금을 받지 않았다.
정명은 연습실로 가는 차 안에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공짜로 받은 거라 그런지 참 맛이 좋네요. 팬한테 뭔가를 받은 것은 처음이에요.”
“그래요? SAO에서 워낙 독보적이었으니까 선물 많이 받았을 줄 알았는데. 우리 선수들만 해도 이것저것 많이 받거든요.”
코치가 말하길, 맨날 같은 옷을 입고 다니던 선수는 옷을 잔뜩 선물 받았고, 취미로 레고를 모은다고 알려져 있던 선수는 한정판 레고를 선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정명에게는 아직 해당사항이 없는 얘기였지만.
“아뇨...처음 듣는 소린데요. 그런 일이 있나요?”
“네. OMA의 전 미드라이너였던 서서는 옷이나 게임기 같은 것은 기본이고, 오토바이까지 선물 받은 적이 있어요. 그 선수는 팬덤이 상당히 강력하니까요. 돈 많은 팬이 보낼 때도 있고, 팬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선물을 보낼 때도 있고.”
코치는 그것이 무척 부럽다는 듯 얘기했지만, 정명의 반응은 덤덤했다.
“아...그래요. 팬들에게 그런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겠네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정명과 수석코치는 연습실에 도착했다.
‘확실히...SAO보다는 훨씬 좋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네 개의 시선이 정명에게로 모인다.
남자 넷.
그 중 셋은 모르지만, 한 사람은 어쩐지 얼굴이 익다.
그리고 그 왠지 모르게 낯익은 남자는 정명에게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당신이 정 선수군요. 반갑습니다. 조시입니다.”
‘아, 이 사람이?’
정명은 그제야 그가 누구인지 생각해낼 수 있었다.
조시 개드. 정상급의 실력을 갖고 있다...라고 까지는 못 하겠지만,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진 정글러였다.
‘머리카락이 남아있어서 못 알아봤어...’
정명이 조시를 기억하고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실력이 특별해서 라기 보다는 젊은 나이에 탈모가 온 그의 외모를 인상 깊게 봤기 때문이다.
정명은 조시의 이마를 빤히 쳐다봤다.
‘벌써 이마가 많이 후퇴했군. M자 탈모가 벌써 시작됐어.’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차례로 인사를 마쳤다.
그렇게 서로서로 얼굴을 익힌 뒤, 코치가 나섰다. 정명이 OMA의 새 오더가 되었음을 알리려는 것이다.
“서서의 뒤를 이어서 정명이 새 오더를 맡기로 했는데... 혹시 오더 하고 싶었던 사람?”
연습실이 확 조용해졌다. 아무도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코치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그럼 예정대로 정명이 하는 것으로 하긴 할 건데... 정명도 오더를 맡는 게 처음이니까 아직 익숙하지 않을 거야. 그건 좀 이해해 달라고.”
모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정명은 그 웃음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어지간히 오더를 맡기 싫었나보군. 솔직히 말하면, 나도 맡기 싫지만.’
리더의 역할이자, 책임감이 막중한 오더는 아무래도 인기가 없었다.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경기에서 지게 된다면, 팬들은 오더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말이다.
......
잠시 뒤. 짐을 풀고 내려온 정명은 스탯창을 열었다.
[현재 능력치]
피지컬 (55/100)
정신력 (50/100)
오더 (25/100)
판단력 (50/100)
[현재 포인트 : 2500]
‘포인트가 좀 남아있어서 바로 올릴 수는 있지만...일단 올리지 않고 한번 해볼까.’
정명은 연습실에 들어와 짐을 풀자마자, 연습 게임을 해보고 싶다고 우겼다.
다른 사람들은 좀 쉬는 게 어떠냐고 얘기를 꺼냈지만, 능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정명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갑자기 연습상대를 구하는 것은 조금 힘들었다.
때문에 코치는 2부리그에 있는 팀에게 연락을 넣었다.
갑작스러운 연락이었음에도, 2부리그팀은 금세 집합하여 대기실에 들어왔다. 1부리그팀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할 까봐 서둘러 온 모양새였다.
‘짠하네. 나도 SAO에 있을 때는 저랬을 때가 있었지...’
잠시 뒤. 게임이 시작되었다. 정명은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며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처음에는 별로 오더를 내릴 게 없다.
정명은 라인전을 치르는 팀원들을 보며 짧게 평했다.
‘실력은...썩 괜찮네. 상대가 2부리그 팀이라 더 봐야 하겠지만, 확실히 1부리그에서 활동하는 프로들이야. 급이 달라.’
당분간은 2부리그 에서처럼 혼자 멱살 잡고 캐리하는 슈퍼플레이는 보여줄 수 없겠지만, 이건 이것대로 마음에 들었다.
사실, 오더를 맡고 있다고 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정명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것은 알아서 하라고 하고, 굵직굵직한 것만 결정하면 된다.
팀원들은 정명에게 판단을 위한 정보를 건네면, 정명은 그에 맞춰 게임의 운영을 어떻게 해 나갈지에 대해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게임 중반 시점.
드래곤 싸움이 임박한 시점에서 정명에게 하나 둘 정보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텔레포트 ON이야. 상대방도 텔레포트 있고.”
“상대 미드랑 원딜은 점멸 없다.”
“웨이브는 우리가 유리하네. 시간 끌어도 상관없겠어.”
판단을 위한 정보는 모였다. 이제 싸울지 말지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이다.
정명은 주뼛주뼛 어색하게 오더를 내렸다.
“어...그럼 우리는 싸우는 시늉만 할 테니까, 탑을 쭉쭉 밀어. 만약 그 사이에 한타가 열리면...”
말을 하는 사이, 바로 한타가 벌어진다.
적의 의도대로 열린 한타였지만, 싸움의 결과는 오히려 OMA의 대승이었다.
OMA는 불리하게 열린 싸움을 피지컬로 찍어 누른 뒤, 한타에서 대승을 하며, 그대로 넥서스를 밀어버렸다.
[연습게임 승리! 상대가 2부리그 팀 이므로, 패널티가 적용됩니다.]
[획득 포인트 : 50]
게임이 끝나자, 정명은 한숨을 쉬며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휴, 오더를 맡아서 그런가. 괜히 더 지치는 것 같네.’
OMA로 이적하고 나서 치른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상대가 2부리그 팀이라 실력 차가 많이 났기 때문에, 오더는커녕 팀원들이 서로 한 마디도 안 하고 한다 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 오더를 맡아보게 된 정명은 자신의 오더를 되짚어보았다.
‘역시 적성에 안 맞아. 오더 재능이 없어. 괜히 초기 스탯이 25밖에 안 되는 것이 아니야.’
팀원들은 처음 치고는 잘 했다고 말해줬으나, 정명의 기준에는 영 미치지 못했다. 이래서야 SAO의 새비보다 오더 능력이 떨어진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민폐를 끼치기 싫어서라도 당장에라도 때려 치겠다고 말 했을 상황.
그러나 정명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정명은 바로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오더 스탯을 1 구입하시겠습니까?]
가격 : 50 포인트
‘얼마 안 되네. 30까지 올리는 데 250이 들고 40까지 올리는 데 1500이 드니까...’
오더스탯을 25에서 40까지 올리는데 드는 포인트는 1750. NPG 연습생 시절이면 모를까, 이제는 크게 부담되는 포인트는 아니다.
정명은 바로 구매버튼을 눌렀다.
[스탯 구입을 완료했습니다.]
[잔여 포인트 : 350]
[오더 스탯 : 40]
[팀의 결속 : D랭크]
[사령관의 오오라 : 팀의 결속이 D랭크에서 C+랭크로 증가합니다.]
스탯을 올렸지만 다른 스탯을 올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당장은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명은 다른 상대를 찾으려 메신저를 뒤적거리고 있는 코치에게 시선을 돌렸다.
“역시 2부리그 팀으로는 몸 풀기도 안 돼. 래디언스가 시간 된다고 하니까, 얘네랑 하자.”
다음 상대는 같은 1부리그팀인 래디언스였다.
승강전에서 스콜피온즈를 꺾고, 1부리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팀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정명은 전 경기와 달리, 자신 있게 오더에 임했다.
“미드에서 열려고 한다. 다 빼봐. 서폿만 주고 다 빼!”
“뭐해. 이기니까 바짝 붙어. 추격해!”
첫 판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자신감에 찬 말투였다.
오더는 특성상 명령조로 말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확신을 갖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따위의 말투로 말하면, 팀원들이 믿고 따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소해보이지만, 큰 변화.
그리고 달라진 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연습 처음 하는 것 맞지? 뭐가 이리 잘 되냐?”
“합이 잘 맞는 느낌이야. 우리들, 궁합이 좋은가?”
처음 연습을 하는 것이니만큼, 호흡이 안 맞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특별한 능력으로 인하여 결속이 강화되자, 단번에 팀의 클래스가 올라간 것이다.
OMA팀원들은 신이 나서 연습게임을 계속했다.
물론, 연습상대가 마땅치 않으므로 상대는 계속해서 래디언스였다.
그리고 조시는 적재적소에 오더를 내리는 정명의 모습에 감탄을 내었다.
“정명. 진지하게 말 하는 건데, 오더에 소질 있는 것 아냐? 내가 보기엔, 서서의 오더보다 훨씬 좋은 것 같은데.”
“음. 그래?”
“어. 말로는 잘 설명 못 하겠는데, 뭔가 더 잘되는 것 같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덧 연습 게임을 시작한지 4시간이 지났다.
래디언스와의 연습 결과는 5:0. 래디언스가 최하위권 팀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꽤 의미 있는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오늘은 이쯤 하자. 그나저나, 얘들 멘탈 완전히 나갔겠네.”
“신경 쓰지 마. 이 정도로 무너지면, 프로 관 둬야지. 그리고 정명. 이쪽으로 와 봐. 우리 스케쥴에 대해 얘기해줄게.”
OMA의 스케쥴은 SAO에서처럼 무척 빡빡했다.
연습, 그리고 또 연습...결국 정명은 스케쥴표에서 눈을 돌려버렸다.
‘그래도 일요일에는 쉴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면, 사람 취급은 해 주는 모양이네. 젠장.’
덤덤하게 OMA의 일정을 말해 주던 조시는, 달력의 한 날짜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 참. 이 날은 방송국 가는 날이야. 기억해 둬.”
“방송국? 왜?”
“이것저것 하거든. 프로게이머 교육도 받고, 경기 순서도 정하고, 팬들도 만나고.”
촬영은 잠깐 하지만, 경기를 하는 것은 아니니, 크게 부담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조시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곳에 가면 온갖 재수 없는 낯짝들을 한 눈에 볼 수 있지. 기대해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