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새 둥지 (1)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정명은 잠을 자는 대신, OMA와 관련된 자료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팀 OMA의 구단주는 갤럭시라는 IT 벤처기업의 사장이었다.
대기업만큼의 규모는 아니지만, 게임구단 하나정도 운영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기업이었다.
[팀 OMA]
북미 7위
연봉 45000$
계약기간 1년
특이사항 : 팀의 주축이 되던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적
‘연봉이 조금 적긴 한데, 어쩔 수 없지.’
지금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 승률이 보장되는 팀에서 1군 주전으로도 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연봉은 어느 정도 감수하기로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45000달러 정도면 정명의 동갑내기 사이에서는 가장 많이 버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OMA가 원맨팀이라는 팬들의 평가였다.
구글에서 검색을 몇 번 해보니, ‘미드 빼고는 존재감이 없다’, ‘빨리 리빌딩해라’, ‘미드 없었으면 진작 2군 갔을 팀’ 이라는 신랄한 평가가 이어졌다.
‘OMA가 원맨팀이었다고...?’
무척이나 익숙한 이름이다.
원맨팀. 정명이 SAO에 있을 당시, 뻔질나게 들었던 소리이기도 했다.
그게 정말이라면 무척 곤란하다. SAO때는 다른 라이너들과 실력 차가 확실했기에 정명 혼자서도 캐리가 가능했던 것이지만, 1부리그라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니까.
나중에 라면 몰라도, 지금 당장은 만만해 보이는 선수가 없는 만큼, 실력이 너무 떨어지는 팀으로 가는 것은 사양이었다.
정명은 팀을 다시 고민해봐야 하나 싶으면서도, 사실 확인을 위해 OMA 경기 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뭐야. 거기서 거긴데? 뭐가 원맨팀이라는 거야?’
미드에 자원을 몰아주는 전략을 쓰는 것과, 같은 팀이면서도 큰 실력 차이를 보이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OMA는 그저 미드 위주로 전략을 팀일 뿐이었지 원맨팀인 것은 아니었다.
정명이 보기엔 팀원 간의 실력이 비슷비슷했다.
‘괜히 식겁했네. 뭐...아마추어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지.’
팬들은 1부리그 1티어의 미드라이너라는데, 정명이 보기에는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정명은 그 대단하다는 미드라이너에 대해 조금 검색해 보았다.
“아이디는 서서. 본명은 울라프. 나이는 21...”
서서는 미드라이너라는 것 외에, 정명과 비슷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정명과 달리 팬이 많고, 높은 연봉을 받으며, 무엇보다 팀에서 오더를 맡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다른 팀으로 이적해버리는 바람에, 미드라인이 공석이 된 것이다.
‘좋아. 전 미드라이너가 이적할 때도 별 잡음이 나오지 않았고, 문제없는 팀이군. 바로 계약한다.’
@@
정명이 계약을 마음먹은 그 시각.
OMA 사무실 사람들은 정명에게 컨택을 보냈으나 아무런 답장이 없어 애만 태우고 있었다.
계약이 하나 둘 마무리되어가는 시점. 미드가 공석인 상태로 선수를 구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것이다.
“이거 이러다가 다른 팀한테 뺏기는 것 아니겠지?”
“듣기로는 GLG랑 TBM이 붙었다더라. 장담은 못 할 것 같다.”
“시발, 돈에서 상대가 안 되겠네.”
“그러니까 그놈의 메타트론한테는 왜 매달려서는. 영어도 못 하는 놈인데!”
OMA는 요즘 제대로 된 인력난을 겪고 있었다.
잘 나가던 미드라이너가 팀에서 나간 후, 다른 미드라이너를 찾지 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하겠다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 중에서 쓸 만한 사람은 없다. 그게 문제인 것이다.
‘젠장. 연습생 중에서 뽑아 쓸 수는 없어. 걔네들을 지금 내보낸다면...서로에게 안 좋을거야. 걔네들은 아직 준비가 안 되어있어.’
직원 중 하나가 수석 코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그냥...돈을 좀 더 쓰시죠. 이러다가는 돈 조금 아끼려다가 크게 잃겠습니다.”
"TBM이랑 GLG가 붙었다며. 돈 싸움으로 가면 못 이기잖아.“
“걔네들이야 주전으로 뛰는 스타 플레이어가 있는데, 굳이 정명에게 목 맬 이유는 없죠. 오히려 조건이 안 좋을 수도 있어요. 아무래도 식스맨이나 2군 제안을 하지 않았을까요?”
수석 코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무척 갈등하고 있을 때 나오는 그의 버릇이었다.
잠시 뒤. 수석코치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얼마를 더 주면 될까?”
@@@
며칠 뒤.
정명은 계약을 하기 위해 OMA에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OMA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연봉을 45000달러에서 65000달러로 올릴 테니, 계약을 해 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45000달러에 계약을 하려 했던 정명은 이게 웬 떡이냐 하며 희희낙락 OMA 사무실에 도착했다.
정명과의 계약을 진행하는 사람은 수염을 멋지게 기른 중년의 남자였다.
정명은 계약을 진행하면서도, 얼떨떨하게 물었다.
“음...보통 구단주가 직접 오기보다는, 직원을 보내지 않나요?”
“내가 구단 운영에 관심이 좀 많아서요. 부담 갖지 마세요.”
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는 OMA의 구단주 마이클이었다.
마이클은 미드라이너를 구하지 못 했다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성의를 보이고자 직접 나온 것이었다. 그가 구단 운영에 관심이 많은 것은 진짜였으니까.
마이클은 조급한 마음에, 추가 조건들을 더 내걸었다.
“정명 선수가 경기에서 MVP를 차지한다면, 경기당 2000달러의 보너스를 더 드리겠습니다. 만약 그 경기가 플레이오프라면, 4000달러를 보너스로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와. 진짜? 이거, 잘만 하면 GLG나 TBM이 제시한 연봉보다 더 받을 수 있겠는데?’
정명은 알고 있었다.
마이클이 이렇게 좋은 조건을 내거는 것은 정명의 가치를 높게 봤다기보다는, OMA의 특수한 상황이 겹쳤기 때문이라는 것을.
때문에 마이클과 밀고 당기며 협상을 더 끌 생각은 없었다.
정명은 계약서에 서명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그거, 무르시면 안 됩니다. 제가 SAO시절, 팀원들 멱살 잡고 1부리그로 끌어올린 것. 아시죠? 그때 받은 MVP, 10개가 넘었어요.”
......
OMA의 구단주는 정명의 영입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허허 웃으며 기분 좋게 말했다.
“이제야 한결 마음이 놓이는군요. 앞으로도 구단 운영에 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 해주세요.”
“배려 고맙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이건 좀 딴 소린데, 내가 한인타운의 식당 많이 알고 있거든. 불닭볶음면 좋아하죠? 숙소에 많이 사다 놨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꺼내 드셔도 됩니다.”
“아뇨. 제가 매운 것은 잘 못 먹어서요.”
“뭐? 불닭볶음면 정도는 한국인이라면 다 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구단주 마이클은 한국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한국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막상 한국에 가 본적이 없어서 이상한 선입견을 갖고 있기도 했다.
한국인은 모두 스타크래프트를 잘 한다,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밥에다가 고추가루를 뿌려먹는 다는 둥 이상한 말을 하긴 했지만, 그와 말을 섞어볼수록 마이클이 정말 한국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한국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LOH에서 최정상을 지키고 있는 한국 선수들 때문이다.
마이클은 이번에도 세계 대회에서 대패를 하고 돌아온 북미 선수들을 욕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한국의 시스템을 더 들여와야 해요. 이 무능한 북미녀석들을 갱생시키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어...제가 어디서 듣기로는 북미식 프로게이머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 구단이 있다고 하던데요.”
정명은 몇 개월 전 다른 구단 사람에게 들었던 얘기를 꺼내봤지만, 마이클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아, 걔네들요? 그런 말 하려면, 일단 결과를 갖고 오라고 해요. 확실히 검증된 시스템이 이미 한국에 있는데, 뭐 하러 모험을 합니까? 바보같기는.”
그 말을 들은 정명은 잠깐 생각에 빠졌다.
‘북미에서도 곧 대단한 팀이 하나 생길 텐데..그 녀석들이 어떻게 해서 나왔더라? 북미식 프로게이머 시스템이라는 게 성공하지 않았었나? 기억이 잘 안 나는군.’
마이클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내가 한국 선수를 영입하려고 무척 애를 썼었는데, 하하. 이제야 성사 되는군요. 아, 그리고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우리가 한국의 코치랑 감독을 고용하는 것은 어떨까 고민 중이거든요. 정명은 어떻게 생각해요? 아예 한국을 완벽하게 카피하고 싶은데.“
“아...그건 좀...별로 잘 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 시도는 중국에서 이미 시도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중국에서도 잘 정착되지 못했기에,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끝난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그걸 미국에 갖다 댄다? 어림도 없는 소리다.
정명은 결사반대를 했고, 마이클도 강력하게 추진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그냥 웃고 말았다.
그리고 마이클은 웃으며 정명과 악수를 나눴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조금은 초라한 정명의 구단 계약.
윈터리그를 앞둔 어느 날. 정명은 1부리그 구단 OMA와 계약하여 OMA의 새로운 미드라이너가 되었다.
......
잠시 뒤. 마이클의 방에서 나온 정명은 OMA의 수석 코치와 만났다.
그는 정명을 따로 불러내서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팀의 오더를 맡아달라는 것이다.
“서서의 공백으로 인해, 지금 우리 팀에는 오더가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들은 오더의 공백을 정명이 메꿔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어요.”
“네? 제가요? 근데 저는 오더 경험이 없는데요?”
“오더 경험이 없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팀원들에게도 말 해 두기는 했는데, 무척 꺼리는 분위기더군요. 아무래도 책임감이 막중하니까요.”
“하지만...”
정명은 자신의 스탯에 오더스탯이라는 항목이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의 현재 오더스탯은 25. 완전 바닥인 수치다.
물론 바닥이니만큼 더 쉽게 올릴 수 있겠지만, 정명은 포인트가 엄한 곳에 들어가는 것 같아 무척 꺼려졌다.
정명이 망설이자, 수석코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계약서에도 나와 있지만, 오더를 맡게 된다면, 추가 보너스가 지급될 것입니다. 그만큼 힘들고 부담이 되는 역할이니까요.”
정명은 그 말을 듣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계약서를 다시 들여다보니, 확실히 그런 내용이 있었다.
추가로 돈을 지급한다는 말은, 항상 돈이 없어 쪼들려 사는 정명에게 무엇보다 큰 유혹이었다. 아직 정명은 한국에서 학자금 대출도 모두 상환하지 못 했다.
잠시 망설이던 정명은 결국 팀의 오더를 맡는 것을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오더, 한번 해보죠 뭐. 근데 하다가 잘 안 되면 바꿀 수도 있습니다?”
“물론이죠.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팀의 전략은 언제나 유동적이니까요.”
그리고 코치와의 대화가 끝나는 그 순간. 정명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팀 OMA의 리더를 맡습니다.]
[오더 스탯 : 25]
[팀의 결속 : D랭크]
[단장의 오오라 : 팀의 결속이 D랭크에서 D+랭크로 증가합니다.]
‘어? 이건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