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26화 (26/226)

9. 월드 챔피언십. 그리고...

정명을 포함한 방송국 직원들은 월드챔피언십 일정보다 살짝 늦게 영국에 도착했다.

경기 일정보다 조금 늦게 간 이유는 너무나 명확했다.

경비를 아껴야 하니까.

어차피 시청률이 제대로 오르는 것은 예선 3일 차, 그러니까 한국 팀이 경기를 하는 시점부터 시청률이 오르기 시작하므로, 그 일정에 맞춰서 영국으로 떠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명이 보기에 그 계획은 무척 적절했다. 영국의 물가는 무척 살인적이었으니까.

이동호 해설은 무언가를 살 때마다 가격표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욕을 했고, 정명도 그에 맞장구쳤다.

“정말 욕 나오게 비싸네...내가 싱가포르에서 물가 비싸다고 욕을 그렇게 했는데, 여기는 그보다 더한 것 같아요.”

“맞아요. 그냥 비싸. 다 비싸! 맥주 빼고!”

경기장 근처에 마련된 공간.

정명과 해설들은 한국팀으로써 첫 경기를 치르는 팀인 QC소프트와 함께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웠다.

한국이 배정받은 월드챔피언십 진출 티켓은 3장.

가장 수준이 높다는 한국리그에서 경쟁하는 12개의 팀 중, 피 튀기는 혈투 끝에 3위를 차지하여 진출티켓 한 장을 거머쥔 팀이 바로 이 QC소프트였다.

그런 대단한 실력을 가진 QC소프트 선수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경기에 대한 걱정이 끊이질 않는지 안절부절 못 했다.

그들의 첫 상대는 중국 3위 팀인 열혈강호. 객관적으로 봐도 QC소프트의 전력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떠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이동호 해설은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QC소프트면 열혈강호 팀에게 이길 확률이 더 높지 않아요? 근데 왜 이리 표정이 안 좋아요?”

“혹시나 지면 어떡하나...싶어서요. 중국 팀한테 지면 언벤이 폭발할 텐데...”

“아. 그거요...그렇긴 하겠죠.”

한국 LOH 팬들은 중국 팀에게 지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다.

자국 리그가 최고라고 부르짖는 팬들과, 프로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선수들 그 모든 것을 싫어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중국 팀에게 지기라도 한다면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융단 폭격을 맞게 된다.

물론 커뮤니티 사이트를 안 들어가면 된다지만, 애초에 그 정도의 자제력이 있을 정도였다면 인터넷에서 욕먹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런 건 감독이나 코치가 멘탈 잡아줘야 하는데.’

정명은 혀를 쯧 한번 차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녀석들이 중압감에 짓눌려 지던, 극복하고 이기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니까.

밥을 다 먹고 나자 할 게 없어진 정명은 은근슬쩍 북미 쪽 부스로 구경을 갔다.

북미쪽 방송국에서 온 사람들은 뭔가 바빠 보였다.

오늘의 첫 경기는 북미팀과 중국팀의 대결이기에 다들 방송준비에 한창인 것 같았다.

‘근데 뭐가 이렇게 사람이 많아?’

북미쪽 부스는 한국과 비교하여 상당히 북적거렸다.

방송 인력은 그렇다 치고, 해설자, 캐스터들부터 시작해서 특별 손님으로 나온 프로게이머들 까지. 뭐 하러 이렇게 몰려왔나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예산 아끼려고 최대한 줄이고 또 줄인 건데.’

근처를 기웃거리던 도중, 아는 사람과 마주쳤다. 전 프로게이머이자 북미 2위 구단 GLG의 구단주였다.

“오, 정명선수. GLG가 낸 제안, 혹시 생각 해 봤어요?”

“네. 근데 아직 고민 중 이라...”

“꼭 같이 활동했으면 좋겠네요. 신인에게 그 정도 대우는 무척 드물다고요.”

정명은 GLG를 포함한 여러 구단에서 컨택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계약은 정명의 커리어에서 무척 중요한 시기의 계약이기 때문에, 고민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잠시 뒤. 잠깐 잡담하던 둘의 이야기 주제는, 돌고 돌아 오늘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얘기까지 이어졌다.

GLG 구단주는 뭐가 그리 자신 있는지 목을 뻣뻣이 세우며 물었다.

“정명이 보기엔 우리 GLG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솔직하게.”

“음...한국 1, 2위팀 JCC나 더모베이트만 잘 피한다면, 4강까지는 무난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명은 이번 대회에서 GLG가 4강은커녕 경기 내내 죽을 쑤다가 16강에서 처참하게 탈락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북미 2위 팀이 16강에서 광속 탈락한 것은 대단한 놀림거리였고, 실제로 전 세계에서 비웃음을 당했기에 정명은 아직까지 그 일을 기억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라고는 했지만 정명은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적당히 높게 평가 해준건데, GLG 구단주는 그 이상을 바라보는 듯 했다.

“하하하.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죠. 북미는 잘 해 봐야 4강이 한계라고.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지난 1년간, 지역 간 실력 격차는 꾸준히 줄어들었습니다. 이번에 저희는 결승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 저 소리인가...’

LOH는 대륙별로 실력 격차가 확연히 갈렸다.

최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국과 만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 그리고 그 뒤를 쫒는 유럽, 북미까지.

지역 간 실력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말은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의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였고, 대륙 제일의 약체인 북미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기도 했다.

‘쯧쯧. 그렇게 당해놓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정명은 GLG 구단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북미 측 부스에서 나왔다.

......

10일 뒤.

길었던 월드 챔피언십의 일정은 이제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각 조에 흩어진 한국 팀들은 각자 조 1위를 차지하며 악명을 떨쳤고, 북미 쪽은 일찌감치 대거 탈락하며 체면을 구겼다.

해설 도우미로 불려간 정명이 하는 일은 별 것 없었다.

그가 하는 일은 선수들의 인터뷰 도와주기, 해설에 가끔 끼어들기, 그리고 레딧 반응 번역해주기 정도.

그 중에서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의 반응을 번역해주는 일이라는 것이 참 이상했는데, 북미 사람들은 한국의 경기에 대해 어떤 말들을 남겼나 하는 것들을 번역해주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관음증이냐, 다른 나라의 눈치를 왜 그리 보냐 하면서 비난했지만, 그것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웃긴 것은, 저스틴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북미 쪽도 이 이야기에 대해 무척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정명은 북미측 PD의 부탁을 받아, 저스틴에게 언벤의 반응들을 적당히 번역해서 건네주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무척 좋아서, 고정 코너로 만들까 고민 중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월드 챔피언십 결승은 한국 대 한국전이었다.

JCC 대 더모베이트.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본다 하더라도, 한국리그 1, 2위가 세계리그 1, 2위를 차지하는 건 이미 확정이었다.

정명은 그 최정상급의 경기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감탄을 감추지 못 했다.

‘와. 역시 진짜...엄청나긴 엄청나구나. 나는 상대가 안 되겠어.’

피지컬, 운영, 팀워크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여간해서는 보기 힘든 수준 높은 경기에, 경기를 보는 관중들과 정명은 숨을 죽이고 경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2시간 뒤. 경기의 승자가 결정되었다.

우승은 LOH 역대 최강의 팀이라 평가되는 JCC가 차지했다.

정명은 정상급의 경기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게 내가 올라가야 할 산인가...너무 높군.’

세계리그 결승. 재능을 타고났다는 천재들도 바라보기 힘든 곳이다.

천재들이 죽도록 노력해도 도달하기 힘든데,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야 말 할 것도 없다.

정명이 한숨을 쉬는 이유는 또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지. 아직 진짜 괴물들은 등장하지도 않았어.’

LOH계에서 전설로 통했던 최강의 팀들. 그들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정명의 기억대로라면, 1년 뒤. 세계 최강 팀 중 하나가 생겨난다.

@@@

월드챔피언십 경기장 근처의 한 호텔.

모든 리그가 끝났음에도, 정명은 쉬지도 못하고 방안에서 끙끙대고 있었다. 이적 문제 때문이었다.

간은 볼 만큼 봤다. 이제 결정을 해야 할 시간이다.

정명은 섣불리 결정하는 대신, 북미의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저스틴을 불러다가 도움을 청했다. 혹시라도 계약서를 잘 못 읽었다가 호구되기는 싫었으니까.

물론 저스틴도 바보가 아니므로, 순수한 선의로만 정명을 이렇게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정명이 앞으로 더 높이 날아오를 것 같았으니까 그 전에 미리 친분을 쌓아두고 싶다는 계산 하에 내린 행동이었다.

저스틴은 정명이 건네준 서류를 풀어보며 감탄을 했다.

“와, TBM이랑 GLG를 포함해서, 북미 1~6위 팀에게 모두 제안이 왔네요. 축하합니다.”

“음. 그게...좋긴 좋은데, 하나씩 애매한 구석이 있어요. 자세히 한번 보세요.”

[팀 GLG]

북미 2위

연봉 60000$

계약기간 1년

특이사항 : 식스맨으로 들어감

[팀 TBM]

북미 1위

연봉 80000$

계약기간 1년

특이사항 : 2군으로 팀 편성

[팀 래디언스]

북미 11위

연봉 50000$

계약기간 2년

특이사항 : 섬머리그 성적 2승 13패

[팀 Ninetail]

북미 5위

연봉 30000$

계약기간 2년

특이사항 : 주전으로 뛸 수 있으나, 연봉이 적음.......

계약기간은 대체로 1~2년. 거의 모든 구단에서 컨택이 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구단이 정명에게 관심을 보였다고는 하나, 정명이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 구단 올래? 싫으면 말고.’ 정도의 제안이었다.

정명이 2부리그에서 대단한 활약을 한 것은 맞지만, 북미의 여러 구단들은 아직 검증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이 정도의 조건만 해도 신인 치고는 꽤 파격적인 대우인 것은 맞다.

저스틴은 자신이 아는 것을 최대한 동원하여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건넸다.

“GLG는 겉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글쎄요. 선수교체가 너무 잦습니다. 불화의 원인은 다들 쉬쉬하고는 있는데 누가 봐도 싱글리프트 선수 때문이죠. 워낙 강력한 팬덤을 갖고 있어서, 구단 측에서도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저스틴은 봤던 서류를 다시 한 번 보더니, 최종적으로 팀 몇 개를 추려냈다.

“흠. 되도록 빨리 정하는 게 좋은데. 새 팀원들과 호흡 맞출 것까지 생각한다면, 시간이 조금 빠듯하겠는걸요?”

“그렇죠. 그래도 오늘 결정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아요.”

“그러면...역시 프로라면 돈으로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냥 눈 딱 감고 TBM으로 들어가는 건 어때요? 정명 선수의 실력 상승폭을 생각한다면, 금방 1군 자리를 꿰찰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됩니다. 무조건 주전으로 뛰어야 해요. 식스맨포지션과 2군. 절대 안 들어가요. 돈을 2배로 준다고 해도요.”

돈이야 아쉽지만, 식스맨, 혹은 2군으로 계약하게 된다면 정명의 포인트 벌이는 그 날로 끝이다. 그러다가 실력 상승이 무척 더뎌지게 된다면, 계약 만료 후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방출각 이겠고.

시점을 바꿔서, 주전으로 들어간다 하더라도 래디언스처럼 매번 지기만 하는 팀에 간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다.

그런 곳은 돈, 포인트 둘 다 얻을 수 없으니까. 최악의 조건이다.

서류를 한참을 응시하던 저스틴은 서류 하나를 빼 내어 정명에게 건넸다.

“그러면 여기는 어때요? 정명씨가 말한 조건에 모두 맞는 것 같은데요. 제가 알기로는 그다지 나쁜 소문도 없습니다.”

“어디요? 음...OMA? 아, 괜찮네요. 내일 미국으로 가면, 한번 연락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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