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20화 (20/226)

7. 1부리그를 향하여 (1)

스콜피온즈의 전략은 지난 번 카카오와 맞붙었을 때와는 정반대였다.

그들의 전략은 딱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다.

‘미드는 버린다.’

현재까지의 경기 중에, 정명과 맞붙어서 박살나지 않은 미드라이너가 없었다.

때문에 전략을 고친 것이다. 직접적인 대결은 피하기로.

물론 실력이 한 수 아래라고 인정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그 전략을 쓴다면 스콜피온즈 미드라이너의 자존심이 조금 상하긴 하겠지만, 이미 승강전 3번 탈락으로 인해 자존심 같은 것은 사라진지 오래인 스콜피온즈였다.

상대방이 나보다 잘 한다면?

수비적인 캐릭터를 고르고, 버티면 된다.

물론 타워에 딱 붙을 수밖에 없는 수비진영 특성상 CS손실은 좀 생기겠지만,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킬만 주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팀 카카오가 썼던 미드 봉쇄 전략에서 한 단계 발전한 전략이라고 해야 할까요? 덕분에 정명선수가 CS격차는 벌리고 있지만, 크게 하나 해주지는 못 하고 있어요.

-저 와드들좀 보십시오. 돈이 아깝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스콜피온즈 팀의 시야로 보면, 다른 곳은 어두운데 미드만 엄청나게 환합니다. 미드라인 한정으로 맵핵이에요.

해설자들은 신이 나서 외쳤지만, 그것을 당하는 정명은 죽을 맛이었다.

‘어휴, 죽겠네. 미드만 후벼 파는 것은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매한가지구나.’

속으로는 한숨이 푹푹 나왔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 정명은 팀에서 암묵적인 리더가 되었다. 때문에 정명이 무너진다면, 팀 전체가 무너질 것이다.

책임감이 막중해진 정명은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애를 썼다. 하지만...

-아, SAO. 1세트를 내주고 맙니다. 이거, SAO가 상당히 오랜만에 지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SAO가 리그 초반에 게임을 몇 번 내줬던 이후로는 한 번도 지지 않았는데, 역시 2부리그 우승팀은 호락호락하지 않네요!

전략도 전략이지만 스콜피온즈의 기본기는 생각보다 탄탄했다.

아깝게 패한 SAO는 바로 대책 회의에 들어갔고, 정명은 정면 돌파를 해보겠다고 선언했다.

“다음 판에는 제가 환영술사 잡을게요. 승부를 봐야겠어요.”

“괜찮겠어? 가드 못 뚫어내면 완전 망하는 건데.”

“네. 자신 있어요. 완전 찢어놓을게요.”

승부욕에 불탄 정명이 다음 판에 고른 것은 환영술사였다.

후반에 힘이 빠지는 대신 초반에 무척 강력한 캐릭터였는데, 정명이 대회에 나간 이후 가장 많이 썼던 캐릭터였기도 했다.

[환영술사의 숙련도 : LV 3 원소술사]

[피지컬이 50 + (3)으로 보정됩니다.]

그런 공격적인 캐릭터를 잡은 정명은 1레벨부터 툭툭 치고 시비를 걸며 싸움을 유도했다.

‘CS? 다 필요 없어. 무조건 들이대서 싸운다.’

-정명선수, 완전 작정한 모양입니다. CS는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려스러운데요? 저러다가 킬을 따지 못 한다면, CS도 부족하고 완전 망하는......아, 그 순간 솔로 킬!

-결국 정명선수가 또 한 건 해 냅니다. 제 생각에는 저 선수 빨리 1부리그로 올려 보내야 합니다. 혼자 다른 게임 하고 있잖아요?

정명은 미드를 탈탈 털어내고는, 탑과 바텀을 바쁘게 돌아다녔다. 환영술사의 유통기한이 끝나기 전에, 격차를 벌려놓을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장기전으로 흘러갔다. 게임이 중반으로 가자마자 환영술사의 유통기한이 끝나서 영 힘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50분이 넘어가는 초장기전 끝에, SAO는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SAO는 기운이 빠져 헉헉거리며 책상 앞의 음료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힘든 건 쟤네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조금만 더 집중해요. 리그 전승이 여기서 깨지는 것은 좀 아까우니까요.”

지금까지 한 판 지고, 한 판 이겼다. 이제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마지막 3세트가 된다.

전 리그 우승팀 스콜피온즈와 2부리그 최강의 선수가 있는 SAO의 경기.

아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던 마지막 경기의 승자는...SAO가 되었다.

경기시작 25분 만에 끝난, 대승이었다.

......

“2부리그여서 기대 안 했는데 상당히 재미있다, 래디언스는 이걸 보는 즉시 당장 연봉 반납하고 연습생부터 다시 시작해라...”

정명이 보고 있는 것은 북미 LOH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이었다.

그곳에 한 팬이 SAO와 스콜피온즈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올렸는데, 그 반응이 나쁘지 않아 정명도 그 게시물을 보게 된 것이다.

[이번 시즌 끝나고 래디언스가 저 사람 좀 사왔으면 좋겠네. 래디언스 미드인 나이아신은 정말 쓰레기야.]

[? 신인 유망주를 래디언스로 유배 보내자고 하다니. 너무 잔인하군.]

[1군 주전으로는 조금 부족하긴 한데, 식스맨으로는 괜찮은 것 같다.]

댓글도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물론 SAO를 칭찬하다가 나중에는 래디언스를 성토하는 댓글로 도배가 되었지만, 어쨌든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았다.

칭찬 댓글에 기분이 좋아진 정명은 피식 웃고는, 인터넷 창을 껐다.

이제 연습을 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연습을 시작하기 전.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약속시간을 딱 맞춰 연습실의 문을 두드렸다.

“안녕! 오늘 하루 잘 부탁 합니다.”

“예.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 올라씨.”

찾아온 사람은 방송국 사람들이었다.

방송국 PD인 올라는 스콜피온즈와의 경기가 끝나던 날. 정명을 붙잡고 방송 섭외 요청을 했었다. 프로게이머의 하루라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어보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PD의 부탁을 들어줘서 나쁠 것 없다는 새비의 조언에, 결국 부탁을 승낙했다. 연습에 지장을 주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것도 컸다.

촬영을 허락 하긴 했지만, 정명은 연습하는 모습을 촬영한다는 것이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 없을 것 같았으니까.

“저희 정말 연습만 할 건데, 그게 재미가 있을까요?”

“게임채널이라고 해서 항상 경기영상만 틀어놓을 수는 없잖아. 거기다가 팬들은 TV로만 봤던 사람들의 사생활을 알고 싶어 한다고. 오히려 무척 좋아한다니까?”

카메라맨이 연습실에 들어와 가장 먼저 카메라를 들이댔던 곳은 SAO의 연습 스케쥴 표였다.

이번 주의 스케쥴 표는 지난주와 달리, 일정이 빽빽이 차 있었다.

월 / 18시 경기 (한 시간 전 방송국 도착)

화 / 18시 경기

수 / 스콜피온즈와 연습게임 예정.....

토 / 14시 경기

일 / 팀 카카오, YNT와 연습게임 예정 카메라가 돌아가자, 올라는 사석에서와는 달리 말투를 싹 바꿨다.

“다음 주는 경기가 무척 많네요? 경기도 빽빽하게 잡혀 있고요. 이게 대체 뭐죠?”

정명은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방송국의 PD가 경기 룰을 모를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정명은 능청스럽게 설명했다.

“다음 주 부터는 경기가 엄청나게 치러지는 슈퍼위크거든요. 일주일에 경기 네 번을 치를 겁니다.”

“세상에...그럼 무척 힘들지 않을까요? 주말에도 나와서 경기를 해야 한다는 소리잖아요?

“뭐 그렇긴 한데 이런 걸로 우는 소리 내면 안 되죠. 1부리그에서는 슈퍼위크가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 있는걸요. 그에 비하면 2부리그는 널널하니까요.”

슈퍼위크에는 하도 많은 경기를 치르기에, 실력도 중요하지만 체력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일부에서는 이것을 쓰레기같은 제도라 혹평했지만, 당분간은 고쳐질 생각이 없어 보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

뭐, 정명 입장에서는 많은 경기를 치를수록 많은 포인트를 얻게 되니 오히려 환영이지만.

이윽고 카메라는 주간 예정표를 지나쳐, 오늘의 스케쥴로 향했다.

“스케쥴 표를 보니, 근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것도 있네요. 구단에서 제공하는 복지의 일환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전력 향상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든지 다 체력이 필요해요. 연습하는 것도, 오래 집중하는 것도.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다 보면 골골대기 일쑤니까요.”

그리고 그 골골대는 사람은 SAO에도 있었다.

SAO의 서포터 초. 그녀는 딱히 운동을 하지 않는 게 아님에도, 항상 손목이 욱씬거린다며 손목을 만지작거리고는 했다. 일종의 직업병인 것이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정명 또한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나도 슬슬 병원에서 검사라도 받아봐야 할 것 같은데.’

SAO는 간단한 인터뷰를 마치고 연습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구경하던 올라는 조금의 틈이라도 나면, 팀원들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요즘 많은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냐고 문의를 보내오고는 해요. 혹시 프로를 지망하기 전에,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나요?”

“많은 프로게이머 지망생들이 화면 너머의 화려한 모습만 보고, 프로를 지망하고는 해요. 하지만 프로가 되려면 버틸 수 있어야 해요. 이런 지루한 반복 연습과, 남들은 다 쉬고 있는 주말에 숙소에서 컴퓨터를 붙잡고 연습할 수 있다는 각오가 있다면...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 뒤로도 올라는 귀찮게 말을 걸었다.

결국 새비가 눈치를 주자 올라는 입을 꾹 닫았고, SAO는 그제야 평온한 상태에서 연습에 집중할 수 있었다.

...

올라가 만족할만한 촬영을 한 것은 밤 11시가 넘어서부터였다.

팀이 예정된 스케줄을 모두 소화했을 시각. 올라는 SAO팀원들과 마지막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어려웠던 상대는 누구인가요?”

“아무래도 스콜피온즈죠. 운영이 상당히 좋더라고요. 지난번에는 이겼지만, 다음 경기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자...그럼 마지막으로 에바 벨라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예? 누구요?”

“에바 벨라요. 정명 선수의 팬이요.”

올라는 에바 벨라의 팬이라도 되는 건지 자꾸 그녀의 소식을 알고 싶어 했다. 막상 정명은 그녀가 누구인지도 잘 몰랐는데 말이다.

정명은 어쩔 수 없이 적당히 대답했다.

“어...제 무엇을 보고 마음에 드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응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할 게요.”

올라는 그 상투적인 답변에 약간 불만족스러웠지만, 정명의 피곤한 기색을 보고는 인터뷰를 여기서 마치기로 했다.

“자, 이제 촬영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팀원들이 기진맥진해서 소파에 쓰러진다. 아무래도 카메라가 계속 돌아가니, 조금 긴장이 되었던 모양이다.

올라는 웃으며 정명에게 악수를 청했다.

“오늘 촬영협조 감사합니다. 많이 귀찮으셨을 텐데.”

“하하, 조금 피곤하긴 하네요.”

“오...그래요.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데, 출연료는 정해져 있으니 어쩔 수 없고...내가 1부리그에 있는 팀 중 하나에게 연락한번 해 볼게요. 1부리그 팀하고 연습게임이라도 한 번 해 본다면,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은데.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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