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contact (完)
에바 벨라는 LOH를 아주 좋아하고 사랑하는 플레이어이다.
게임을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하고, 프로들의 경기를 보는 것도 즐긴다.
그녀의 랭크티어는 마스터리그. 아마추어 치고는 상당한 실력이지만, 프로가 될 생각은 전혀 없다. LOH를 플레이하는 것은 그냥 취미일 뿐이니까.
그런 벨라의 모니터에는 정명의 스트리밍 방송이 켜져 있었다.
정명은 지금 다이아 리그에서 플레이하고 있었는데, 다이아 리그라면 게임 내 상위 1%로써, 상당히 잘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실력자들을 상대함에도 불구하고, 정명은 계속해서 킬을 냈다.
마치 프로라는 이름을 달고 다니는 것이 폼이 아니라는 듯 다이아 리그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도 양민학살을 한 정명은, 여유롭게 게임에서 캐리를 했다.
“역시 실력이 급상승 했어. 1년 전과는 비교가 안 돼.”
처음엔 2부리그 같은 것, 별 관심 없었다.
하지만 최근 엄청난 실력을 지닌 신인이 등장했다는 소문을 듣고 호기심이 동하여 그의 영상을 몇 개 찾아본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랬다. 2부리그 선수 치고는 꽤 잘하네? 정도.
그러나 시즌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실력이 급상승하여, 이제는 당장 1부리그에 들어간다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당연히 2부리그 안에서는 명실상부한 최강이었고 말이다.
‘혹시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일까? 으음...잘 모르겠네. 좀 더 봐야 알 것 같아.’
그러니 저러니 해도, 그의 방송을 보는 것은 꽤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냥 보기만 해서는 재미없다.
벨라는 그의 관심을 조금 끌어보기로 했다.
[안나 님이 달풍선 200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안나 : 정명선수. 정말 팬입니다. 다음 경기도 힘내세요 ^^]
달풍선 20000개. 한국 돈으로 따지면 약 160만원에 해당하는 돈이다.
화면 너머에서는 상당한 액수의 달풍선을 받은 정명이 놀라서 허둥지둥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정명의 반응을 즐겼다.
‘후후. 귀엽네.’
놀란 것은 정명뿐만이 아니었다. 달풍선 2만개가 터지는 것을 목격한 시청자들 또한 난리법석을 피웠다.
[와.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
[혹시 정명선수 월급이 달풍선으로 입금되나요? 그러면 말이 되긴 하는데.]
[월급 다 털어 넣으시네. 저 아저씨, 오늘부터 식사 햄버거 하나로 때우실듯.]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달리, 그녀에게 이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런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돈을 더 투자할 용의도 있었다.
그런데...오늘따라 그것만으로는 좀 심심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벨라는 핸드폰을 들어 트위터에 접속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
새벽 5시.
숙소에 있는 사람들 전체가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지만, 정명은 졸린 눈을 비비며 눈을 떴다. 뜬금없이 핸드폰이 울렸기 때문이었다.
웅...웅...웅...
“아 씨...누구야 이 시간에...”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보낸 메일이었다.
덕분에 잠을 설친 정명은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꺼버렸다.
“시차 잘 계산해서 메일 보내라니까 진짜...”
핸드폰을 끄고 잠을 청했지만, 이미 잠은 달아난 뒤였다.
시계를 보니 다시 잠들기도 애매한 시간. 결국 정명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켰다.
그러자 핸드폰에서는 또다시 웅웅거리며 실시간으로 메일이 날아왔다.
정명은 눈을 비비며 메일을 읽어봤지만, 메일에 적혀있는 내용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 말들뿐이었다.
[야, 너 벨라랑 알고 지내는 사이야?]
“뭐라는 거야 이것들은...”
다른 메일들도 마찬가지였다.
벨라랑 어떻게 알게 되었냐, 싸인 받아다줄 수 있냐, 하라는 연습은 안 하고 뭘 하고 돌아다니는거냐 등등...
정명은 어리둥절하게 메일을 바라보았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정명도 물론 벨라가 누구인지는 안다.
천재 테니스 선수.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사람이었다.
벨라는 테니스 선수로 데뷔하자마자 지역 대회를 휩쓸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갖 대회를 우승하며 랭킹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를 제패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는, 그야말로 초인이라고 불러야 할 것만 같은 사람이 바로 벨라였다.
벨라가 유명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밝은 금발에 매력적인 구릿빛 피부. 그리고 비율 좋은 몸매를 가진 벨라는 광고업계에서 딱 좋아할만한 스포츠 스타였다.
최근 스포츠계에 퍼져 있는 외모지상주의로 인하여 혼자 CF를 쓸어 담은 벨라는,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제 테니스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뭐 어쨌다고?’
그에 대한 대답은 친구가 보내온 웹페이지 링크를 열어보자, 바로 알 수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그녀가 트위터에 남긴 별것 아닌 말 때문이었다.
[LOH프로게이머 정명 선수 완전 팬입니다. 언젠가 한번 경기장으로 응원 갈게요 ^^]
“하. 이 사람이었어? 특별한 팬인가 뭔가가?”
정명이 스트리밍 방송을 시작한지 이제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그 두 달 동안 정명이 모은 달풍선 개수는 1000개 남짓이었다.
그런데 팬클럽 미션을 달성한 그날. 달풍선 2만개가 터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쯤 되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달풍선을 쏜 사람이 특별한 팬이라는 것을 눈치 챌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정명은 퀘스트창을 띄워보았다.
[팬클럽 퀘스트]
팬클럽 LV 2
당신의 팬을 [5000]명 만드십시오.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특별한 사람이 당신의 팬이 됩니다.
‘5000명이라...LV 1이 천재 테니스 선수였으니까, 레벨 10쯤 되면 천사라도 나오는 건 아니겠지...‘
시계를 보니,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정명은 쓸데없는 망상을 멈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이니까.
@@@
리그가 펼쳐지는 경기장.
경기장의 분위기에 완벽히 적응한 정명은 이제 익숙하게 대회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물론, 꼭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인 방송국 PD도 빼놓지 않고 말이다.
“안녕하세요 올라씨.”
“안녕! 오늘 컨디션은 어때? 오늘 중요한 경기잖아.”
“썩 괜찮아요. 좀 졸리긴 하지만.”
시즌 중반.
오늘은 무섭게 치고 올라온 SAO와, 전 2부리그 우승자 스콜피온즈가 맞붙는 날이다.
물론 전 우승자라고 해서, 승점을 더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1, 2위로 평가되는 두 팀이 맞붙었을 때, 첫 번째 매치에서 이기는 팀은 1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무려 80%라고 하는 통계가 있었다.
통계가 그렇게 말 해주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올라는 정명의 긴장을 풀어주듯 등을 팡팡 쳤다.
“너무 긴장하지 마. 2위까지는 승강전 진출할 수 있으니까, 조금 설렁설렁 해도 되는 것 아냐?”
“안 돼요. 2위로 진출하면 지금 1부리그 10위인 우로보로스랑 붙을 것 같단 말이에요. 아무리 걔네가 지금 죽 쑤고 있어도 1부리그 사람들이에요. SAO랑 붙으면 장담 못 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SAO랑 연봉 차이가 세 배는 나는 팀인데.”
물론 연봉만으로 승패가 결정 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지표임에는 틀림없다.
정명의 생각으로는 SAO가 우로보르스에게 이길 확률은 40%정도였다. 그것도 자신이 베스트 컨디션을 갖고 열심히 뛰어다녔을 때를 감안한 확률이다.
올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명의 생각에 동의했다.
“하긴...그럼 래디언스랑 붙으면 이길 자신은 있고?”
“흠, 조금요. 근데 래디언스, 팀 내 불화설이 있던데 그거 진짜에요?”
“슬슬 말해줘도 될 것 같긴 한데... 맞아. 거기 미드라이너 누군지 알지? 나이아신 선수.”
“예. 당연히 알죠. 그 느끼하게 생긴 사람이잖아요.”
정명도 1부리그는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으니, 물론 알고 있다.
훤칠한 외모 덕분에 인기가 많았던 나이아신 선수는, 최근 급격하게 떨어진 기량으로 인하여 팀 래디언스가 몰락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선수라고 할 수 있었다.
올라는 아직은 비밀이니까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고는, 소근 대듯 말했다.
“성적이 떨어진 이유가 여자친구 때문이라고 하더라고. 아무래도 그의 열성 팬이 적극적으로 대시해서 사귀게 된 모양이야.”
“아하.”
더 들을 것 없이 너무나 뻔한 스토리였다.
다른 선수들은 하루 종일 방구석에서 연습에 매달리고 있는데, 미드 라이너 혼자 나이 어린 팬이랑 놀고 있다?
용납이 될 리 없다. 성적이라도 유지하면 모르겠지만, 기량이 현저하게 떨어진 나이아신 선수는 참작의 여지가 없었다.
“구단에서 뒤늦게 식스맨을 쓴다, 대타를 쓴다 말하고 있긴 한데, 잘 안 되나 봐. 덕분에 아직도 경기에서 1승도 못 따내고 있지.”
“와, 꼭 래디언스랑 붙고 싶네요. 그 정도로 팀이 무너졌으면, 잡아먹기 딱 좋겠는데요?”
“아, 맞다. 여자친구 하니까 혹시나 해서 묻는데...”
올라는 머뭇머뭇 하며 뜸을 들였다. 그리고 정명은 그 다음에 나올 말을 왠지 알 것 같았다.
“혹시, 벨라랑은 대체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 물어봐도 되니?”
‘휴, 또 이 질문인가.’
정명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명은 다른 사람들에게 대답해줬던 것처럼, 똑같은 매크로 답변을 내놓았다.
“그 사람이 LOH를 좋아하나보죠. 트위터 보니깐 별 것 아닌 말이던데, 과민반응 이에요.”
“벨라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니까 하는 소리지. 그동안 스캔들은커녕 감정 표현도 잘 안 하던 선수란 말야.”
“아무튼, 전 그녀와 얘기해본 적 없어요. 실제로 본 적도 없고요. 저 이제 경기 준비해야 하니까 이만 갈게요.”
대기실로 들어온 정명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상당히 피곤하네.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여자야.’
하지만 곧 달풍선을 받은 것을 떠올린 정명은, 불평을 그만두었다.
받은 돈으로 새 핸드폰을 사겠다며 방방 뛰었던 것이 바로 어제 일이였으니까.
30분 뒤. 정명은 경기 준비를 위해 부스 안으로 들어가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스콜피온즈 선수들 또한 하나 둘 부스로 들어오며 경기 준비를 시작했다.
‘2부리그를 세 번 우승한 팀이라...달리 말하면 승강전에서 3번 떨어진 불쌍한 팀이라고 할 수도 있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쌍하게 볼 생각도, 만만하게 볼 생각도 없다. 이제는 1부리그로의 진입이 정말 코앞까지 다가왔으니까.
'좋아. 이 녀석들을 잡으면...우승을 눈앞에 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