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contact (1)
에반스라는 남자는 깐깐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거기에 더해 양복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게임 팀의 전력 분석가보다는 은행원이라고 불러야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둘이 만난 장소는 시내의 한 커피전문점이었다.
만나자고 한 것은 에반스였으니 음료수는 에반스가 사주었고, 정명은 공짜 음료를 마시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아시다시피 팀 스캐럽의 후원사는 대기업 멤비디아입니다. 외부에 공개된 것만 해도 상당한 지원을 해 주고 있는데, 내부적으로는 더욱 많은 혜택을 제공하고 있죠.”
에반스가 만나자고 한 이유는 팀 스캐럽으로의 이적제안이었다.
정명은 계약기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선을 그었지만, 에반스는 그것은 구단에서 조율하겠다고 말하며 정명을 설득했다.
“흠...글쎄요.”
하지만 여전히 정명의 반응이 시원찮자, 에반스는 SAO와 직접적으로 비교를 해줬다.
“현재 공개된 것에 따르면 정명선수의 연봉은 24000달러. 맞으시죠?”
“예. 그렇죠.”
“최저임금보다는 높군요. 저희는 그 2배를 드리겠습니다. 또한,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면 보너스까지 제공될 수 있고요.”
‘뭐......’
정명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난생 처음 듣는 파격적인 대우였으니까.
이정도만 해도 엄청난데, 1부리그 구단의 혜택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2부리그에는 스트리밍 의무조항이 있죠. 물론 저희도 있긴 합니다만, 시즌 중에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금지하고 있어요. 전력이 외부로 누출되면 안 되니까요.”
“그건...좋네요. 사실, 시즌 중에 스트리밍 방송을 하는 것은 조금 부담이었는데.”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저희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스템이요?”
“예. 프로게이머를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시스템 말이죠. 한국의 것을 조금 참고했습니다.”
세계대회에 출전한 북미팀이 계속 죽을 쑤자, 북미는 어떻게 하면 최고의 팀을 만들 수 있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온 것이 북미식 프로게이머 시스템이다.
구단은 코치, 전력 분석팀, 매니저 등을 따로 운영하여 선수들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한다. 따라서 선수는 다른 것은 전혀 신경 쓸 필요 없고, 정해진 스케쥴에 따라 연습만 하면 된다.
구단이 제공하는 시스템은 연습게임 스케쥴, 상대 팀의 분석, 최근 떠오르고 있는 챔피언의 데이터 등 게임 내적인 일을 포함하여 선수들의 건강관리, 심리상태 체크 등의 게임 외적인 일까지 포함된다.
그야말로 최고의 팀을 만들어내기 위한 북미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 한국을 참고했다고는 해도 한국처럼 감독과 선수의 수직적인 관계는 없다.
만약 한국처럼 감독이 선수를 윽박지르기라도 했다가는 그날로 집단 파업이 일어날 테니까.
정명은 높은 연봉에 혹하여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 뭐라고 얘기하기는 힘드네요. 일단 시즌이 끝나면 다시 얘기해 보도록 하죠.”
“그렇다면야 더는 강요하지 않겠습니다만, 수많은 인재들이 1부리그 팀에 들어가기 위해 매일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정명은 판단력 스탯을 올린 이후로 눈치가 비상하게 늘었다. 능력치 스탯이 게임뿐만 아니라 현실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에반스는 마치 홈쇼핑처럼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어필하고 있었지만, 눈치가 무척 빨라진 정명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렇게 대단하신 팀이 뭐가 그리 급해서 시즌 중에 나를 영입하겠다고 찾아오는데?’
생각해보니 정말 이상했다. 비록 정명이 지금 2부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는 있다지만, 정명 정도의 실력을 가진 미드라이너는 1부리그에 꽤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스탯을 더 올린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랬다.
‘자체적으로 키우고 있는 연습생도 있을 텐데, 기준에 못 미쳤나? 아니면 유망주를 다른 팀이 낚아채기 전에 일찍 접근을 해 온 것인가?’
여러 가지 가정을 했지만, 당장은 알 수 없다.
단, 지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이 바로 정명의 몸값이 가장 낮을 때라는 것이다.
가장 높을 때는 2부리그에서 우승을 했을 때이겠고.
정명이 끝끝내 거절하자, 에반스도 더는 붙잡지 않았다. 그저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연락 달라며 명함을 줬을 뿐이다.
계약을 뒤로 미룬 정명은 핸드폰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누구 북미팀의 사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일단 몇 사람한테 문자라도 보내 볼까?’
.......
연습게임 일정도 없는 일요일. 정명에게는 약속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어느 날 도착해있던 한 통의 메일 때문에 잡힌 일정이었다.
[팀 SAO에서 활동 중인 정명 선수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한 가정의 가장인 켈턴이라고 합니다.
저에게는 한 가지 걱정이 있습니다.
제 사랑하는 아들이자 자랑인 해리가 요즘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게임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요, 처음에는 얼마 안 가서 포기하겠지...했건만, 최근에는 아는 사람들이랑 팀까지 짜서 연습중입니다.
물론 저도 자식이 가는 길을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고생길이 훤하니 쉽게 허락을 해 줄 수가 없네요.
그런데, 마침 저희 집이 SAO 연습실 근처입니다. 혹시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해리가 연습실을 견학하게 해주실 수 있나요? 프로게이머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직접 체험한다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
요약하자면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설치는 철없는 아이에게 프로게이머가 얼마나 힘든지, 현실은 어떠한지에 대해 알려주라는 것이었다.
과연 자신이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모든 프로게이머 지망생, 그리고 지금은 잘나가는 프로게이머 또한 한 번씩은 해봤을 고민이었다.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쳤던 것은 정명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캘턴의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결국 정명은 걱정 많은 아버지의 부탁을 수락하기로 했다. 지망생의 실력을 평가해 주거나, 프로들이 어떤 모습으로 연습하고 있는지 잠깐 보여주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그리고 오후 2시. 한 남자가 연습실 문을 두드렸다.
“안녕하세요.”
연습실로 들어온 사람은 메일을 보낸 사람의 아들. 해리였다.
해리의 나이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지만, 한 성깔 할 것 같은 얼굴로 보였다.
‘그런데...뭔가 낯이 익은데?’
어쩐지 본 적이 있는 사람 인 것 같았지만, 생각이 잘 나질 않았다.
묘하게 긴장된 것처럼 보이는 해리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바쁘신 분인 것 아니까, 시간 많이 뺏지 않을게요. 제가 하는 플레이. 한번 봐 주세요.”
정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언을 해 주려면 일단 해리의 실력을 봐야만 했으니까.
해리는 긴장한 티가 역력한 채로 랭크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그가 쓰는 아이디가 아는 아이디였다. 정명은 그제야 이 남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클리프라면...설마 그 클리프가 이놈이라고?’
북미 최강 서포터로 이름을 날렸던 클리프. 그리고 그 실력이 북미를 넘어서 세계에서도 통했기에, 북미에서 몇 안 되는 탈 북미급 프로게이머라고 불렸던 사람이었다.
다만, 그런 실력과 더불어서 성격이 정말 뭐 같은 사람으로도 유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이 워낙 독보적이어서 구단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망나니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망나니 같은 성격은커녕, 해리는 면접장에 온 것 마냥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정명은 해리가 너무 긴장한 것 같아 보여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주 포지션은 미드인가요?”
“예. 미드지망입니다만, 프로가 될 수 있다면 다른 라인으로 변경해도 상관없습니다.”
“랭크 티어는...”
“......부끄럽지만 다이아입니다.”
프로가 되기 위한 최소 조건은 보통 솔로랭크에서 마스터티어를 다는 것이다.
아무리 팀 게임과 솔로랭크는 다르다고는 하지만, 마스터티어조차 찍지 못하면 개인기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일단 한 게임 해 보죠.”
.......
[적에게 당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게임이 잘 안 풀리네요.”
“죄송할 거 없어요. 그냥 최선을 다 해주시기만 하면 되요.”
해리는 무척 분한 듯 했지만,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해리는 전설의 서포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마추어적인 경기를 펼치고는, 게임에서 패배했다.
하지만 정명은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정명이 해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서포터로써의 실력이니까.
“음...다음 게임에는 서포터를 해 보세요.”
“예. 알겠습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의 성격이라고 하더니,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하다. 해리는 정명의 말에 전혀 토를 달지 않고,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리고 서포터를 잡은 해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건...역시나군. 아니, 라인을 바꿨다고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나?’
사실 서포터는 잘 한다 하더라도 눈에 띄는 포지션은 아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서포터를 무시하고는 했었지만, 정명의 생각은 달랐다.
해리의 플레이는 시야장악, 지원, 견제 모든 것이 훌륭했다. 물론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지만, 가능성은 확실히 보였다.
하지만 그런 플레이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패배했다. 서포터라는 포지션 특성상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도 게임을 캐리하기는 어려운 포지션이니까.
해리는 면접관을 바라보는 취업 준비생의 눈을 하고는, 정명에게 시선을 맞췄다.
“저......어떻습니까? 역시 좀 그런가요?”
“프로에 도전해볼만한 잠재력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해리는 두 눈을 부릅떴다. 제 딴에는 혹평을 들으리라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뭐, 서포터로 전향한다면 그렇다는 얘기지만요.”
정명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저 팀은 가지마라, 이 캐릭터를 중점적으로 연습해 봐라 하는 것들을 조언해 주었다.
물론 어차피 해리가 겪어보고 스스로 깨달을 일이었지만, 정명은 굉장히 중요한 조언이라는 듯 생색을 내며 말했다. 장차 월드 클래스의 서포터가 될 사람에게 빚을 지워놓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으니까.
이야기를 마친 해리는 정명에게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제가 만약 나중에 성공...한다면 꼭. 보답하겠습니다.”
해리가 연습실에서 나가고 잠시 뒤.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신의 팬이 1명 증가했습니다.]
“하하. 이거 고맙네.”
아무래도 해리가 정명의 팬이 되어준 듯 했다.
정명이 피식 웃고는 메시지창을 닫으려는 순간. 메시지가 하나 더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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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