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원맨팀 공략 (完)
경기 당일.
SAO는 굳은 표정으로 경기장에 들어섰다. 어제 패배의 여파가 오늘 컨디션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팀원들과는 대조적으로, 정명은 여유롭게 팬들과 인사하고 있었다.
‘오늘은 사람이 꽤 많네.’
오늘은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아무래도 순위를 다투는 두 팀 간의 대결 이다보니 비교적 많은 관심을 끌었던 것 같았다.
“정명선수 맞으시죠? 안녕하세요!”
멍하니 있는 정명에게 팬이 말을 걸었다.
정명이 고개를 돌려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눈을 빛내며 바라보고 있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오늘 경기 응원할게요.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고맙습니다. 잘 마실게요.”
팬이 내민 것은 과일 음료수였다.
손을 뻗어 음료수를 받는데, 컵에는 이상한 종이쪼가리가 달라붙어 있었다.
‘응? 뭐지?’
컵에 달라붙어 있던 것은 포스트잇이었다.
포스트잇에는 동글동글한 귀여운 글씨체로 무언가 적혀 있었다.
910-XXX-XXXX
연락 주세요♡
“어어?”
당황하여 여자를 찾아봤지만, 그 여대생 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정명이 당황하여 얼빠진 표정으로 주위를 허둥지둥 둘러보고 있었고, 팀원들은 뭔 일인가 싶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자초지정을 설명하자, 감탄이 터져 나왔다.
“......와. 정명, 제법인데?”
“뭐야, 데이트신청? 예뻤어?”
“네...조금요.”
“우와! 우와!”
특히 사춘기 소년인 맥스는 쪽지를 받은 당사자보다 더 신 난 듯 했다.
정명은 그저 머쓱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와. 진짜 부럽다. 난 여태껏 저런 거 받아본 적 없는데.”
“맥스 넌 임마...에휴, 아니다. 그냥 모르는 채로 있어.”
“네? 내가 뭐요? 아, 진짜. 뭔데요?”
다들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었지만, 새비는 굳은 표정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답게, 정명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다.
“정명. 이건 정말 아무런 사심 없이 말 하는 건데, 여자관계는 조심하는 것이 좋아. 여자 친구와 놀다가 실력이 퇴보해버린 선수가 한 둘이 아니야. 알지?”
“알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프로들이 성적 떨어지면 여자친구가 생긴 것 아니냐는 의심부터 하고 보거든요. 저도 무척 조심하고 있어요.”
물론 평생 고자로 살 생각은 없지만, 선수 생활 도중 애인을 만드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다간 여자친구와 선수 생활. 두 마리 토끼를 전부 놓칠 수 있으니까.
그래도 그 여대생 팬 덕분에 풀죽어있던 팀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다들 웃으며 떠드는 가운데,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왔다.
-곧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수 여러분들은 경기준비를 서둘러 주십시오.
“그럼 가보죠.”
팬에게서 받은 과일 음료수를 쪽쪽 빨아먹고 있던 정명은 개인장비를 챙기고 부스로 향했다.
@@
“뱀파이어나 타락천사 같은, 버티기 좋은 캐릭터들 위주로 다 잘라버려.”
“환영술사는요? 이것도 도주기 꽤 괜찮은데.”
“그거는...냅둬. 라인 클리어도 별로고, 하여튼 타워에서 버티기 안 좋은 캐릭터니까. 괜찮지, 크리스?”
“예. 상관없어요.”
-카카오, 이건 조금 노골적인데요?
-이거 완전 저격밴입니다. 미드라인을 꽁꽁 묶어놨어요.
밴/픽 단계에서 팀 카카오는 사전에 계획한 대로 노골적인 미드 3밴을 해버렸다.
크리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연습 경기에서 아주 탈탈 털렸다지? 일주일 후라면 뭔가 대책을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만...그 때는 이미 늦지. 우린 오늘 이 경기만 이겨도 만족하니까.
사실, 이런 깜짝 전략은 오래 먹히지 않는다. 어쩌면 일주일만 지나도 파훼법이 나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당분간만이라도 써먹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
SAO가 그 전략을 극복해냈을 쯤 이면 이미 크리스의 팀은 SAO를 밟고 올라가, 승점을 챙긴 뒤였을 테니까.
크리스가 자신감을 갖는 이유는 그것 하나 뿐만이 아니다.
팀 카카오는 SAO와 연습게임을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들의 실력을 파악해 두고 있었기에, 충분히 해볼 만 한 싸움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SAO로 이적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정명은 당시 피지컬이 50이 되지 않았기에, 크리스와 막상 막하의 대결을 펼쳤었다.
때문에 크리스는 자신이 질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10분 뒤.
크리스는 자신의 생각을 철회했다.
‘이거 진짜 만만치 않네. 피지컬은 엇비슷한 것 같은데, 뭔가 힘들어. 뭔가가...’
크리스는 정명과 라인전을 치르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타이밍을 잘 맞춘다고 해야 할까? 감이 좋다고 해야 할까.
정명은 크리스가 까다로워하는 타이밍에 스킬을 푹푹 잘도 꽃아 넣었고, 크리스는 어, 어? 하는 순간 타워에 몰려버렸다.
크리스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정글러를 호출했다.
“형. 이거 좀 힘든데요. 잠깐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뭐? 크리스, 라인전에서 밀린거야?”
크리스는 순간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는 똥오줌은 가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속으로는 짜증내 하면서도, 상대 미드라이너의 강함을 순순히 인정했다.
“예. 한 달 전에 연습게임에서 붙었을 때와는 비교가 안 돼요. 그 때 실력을 숨긴 것도 아닐 텐데, 이 정도면 완전 다른 사람 이예요.”
“이상하네. 정명이라는 사람은 나이가 24살이라고 했다고. 피지컬이 오르기는커녕 슬슬 퇴보할 나이인데?”
“피지컬이 문제가 아니라...아니, 피지컬도 좋아진 것 같고...그냥 잘해요. 말로는 잘 표현 못 하겠는데, 경험이 많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엄청 까다로워요.”
“그래. 지금 간다. 귀환하지 말고 기다려.”
솔직히 조금 당황했지만, 이 정도는 예측 범위 안이다.
어차피 카카오는 미드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기로 정해 놨으므로, 정글러 앤디는 바로 미드로 향했다.
‘조금만 더 넘어 와라. 조금만 더.’
앤디는 풀숲에 숨어 정명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와드라도 있는 것일까? 정명의 캐릭터는 마치 보고 있기라도 한 듯 타워에 꼭 붙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만 축내던 앤디는 결국 캐릭터를 뒤로 물렸다.
“안 되겠다. 너무 사리네. 다음에 다시 올 게.”
앤디가 그렇게 뒤로 돌아 가려는 순간, 정명의 캐릭터가 움직였다. 라인 중간으로 나온 것이다.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가려던 앤디는 다시 캐릭터를 부시로 돌렸다.
그런데 또다시 정명이 다시 캐릭터를 뒤로 빼서 타워에 붙는다.
그 짓을 몇 번 반복하자, 상당한 시간낭비를 한 앤디는 욕설을 내뱉으며 귀환을 해버렸다.
“아, 씨. 이거 뭐야. 이 새끼 맵핵 쓰는 거 아냐? 진짜 짜증나네.”
@@
‘흠. 이쯤 됐으면 돌아갔겠군.’
정명은 타워 뒤로 숨었던 캐릭터를 다시 앞으로 전진시켜 크리스를 공격적으로 밀어붙였다.
완벽하게 상대방의 이동경로를 꿰고 있는 것 같은 플레이였다.
당연히 맵핵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적당히 때려 맞춘 것도 아니다.
정글러의 예측 경로, 정글러가 오자 약간 부자연스러워진 상대방의 움직임 같은 것을 복합적으로 계산한 결과였고, 능력치를 올리기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플레이였기도 하다.
‘과연. 게임은 피지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건가.’
정명은 판단력을 올린 뒤로는 게임을 좀 더 지능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라인전에서 딜 교환을 하는 것부터, 한타페이즈에서 가장 적절한 운영을 하는 것까지.
판단력을 올리기 전 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판단력 스탯을 50까지 올린 지금. 정명에게 상대방 정글러의 움직임은 뻔해도 너무 뻔했다.
‘흠. 슬슬 부시에서 대기하고 있을 타이밍이군. 이제는 좀 사려볼까.’
차라리 평범한 전략을 사용했더라면, 이 정도까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노골적으로 미드만을 노려대니 오히려 움직임을 읽기가 무척 쉬워졌다.
기발한 전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악수가 되어버린 상황. 결과적으로 팀 카카오는 말도 안 나오는 졸전을 치르며 경기를 패하고 말았다.
-아, 팀 카카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30분 만에 GG를 선언합니다.
-아무리 정명선수의 기세가 대단하다고는 하나, 경기 내내 미드만 가는 것은 좀 아니거든요. 반성 많이 해야 할 겁니다 카카오 선수들.
해설자의 혹평이 이어진다.
하지만 만약 결과가 반대로 나왔으면 어땠을까? 아마 참 기발한 전략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겠지.
모든 것은 결과로만 말한다. 이곳은 그런 곳이다.
......
[2부 정규리그에서의 승리! 300포인트가 주어집니다.]
[2:0 완승 보너스! 300포인트가 추가로 주어집니다.]
[현재 포인트 : 950]
‘후. 포인트가 들어오니 심신이 안정되는 것 같아.’
거기에 더해, 건방진 꼬마에게 한 방 먹여주니 기분이 꽤 상쾌했다.
정명이 부스 밖으로 나가자, 화를 내며 건물 밖으로 나가고 있는 팬들이 보였다. 팀 카카오의 팬인 듯 했다.
“아오, 크리스새끼. 대책 있다고 헛소리 찍찍 내뱉더니 이게 그 대책이야? 어이가 없네.”
“말도 마라. 난 집에 가자마자 그놈 트이치TV 구독 해지할거야.”
팬들의 태세전환은 5초면 충분하다고 했던가.
정명은 앞으로도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무대 위에 올라갔다.
“정명선수, 오늘 앤디 선수가 집요하게 미드라인을 노리는 모습을 보여줬는데요, 혹시 둘이 싸우기라도 했습니까?”
“하하, 아뇨. 저도 좀 당황스러웠어요. 이 사람들이 나한테 왜 이러나...하고.”
“하지만 덕분에 쉽게 이기셨죠?”
“예. 다음 상대팀도 이렇게 해 주시면 좋겠네요.”
‘사실은 이런 거 더 이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정명은 속마음은 완전 반대였다.
전략을 카운터쳐서 팀은 어찌어찌 승리할 수 있었으나, 계속 갇혀 지내야만 했던 정명은 무척 재미없는 게임을 했으니까.
때문에 짐짓 허세를 부리며 이런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고 비웃었던 것이다. 다음부터는 이딴 전략 쓰지 말라고.
“하하. 그렇지만 스콜피온즈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 같군요. 누가 뭐래도 스콜피온즈는 작년 2부리그 우승팀이니까요.”
지금까지 승강전을 3번 치렀으나, 3번 모두 고배를 마셨던 비운의 팀 스콜피온즈. 그만큼 1부리그에 올라가겠다는 열망이 엄청난 팀이다.
그리고 그들을 꺾는다면, SAO는 리그 우승에 한층 더 가까워지게 된다.
......
3시간 뒤. 숙소에 돌아와 쉬고 있는 정명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십니까. 팀 스캐럽에서 전력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에반스라고 합니다.
“예? 어디라고요?”
-팀 스캐럽이요. 1부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하.”
정명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 팀 스캐럽.
대기업 스폰을 받고 있으며, 1부리그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팀이다.
남자는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혹시 시간 되신다면, 잠깐 만나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