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원맨팀 공략 (2)
“야, 크리스. 너 그거 너무 나불나불대면 안 된다? 너무 떠들고 다니면 안 좋다고.”
“에이, 제가 바보도 아니고. 걱정 마세요. 그냥 애들 흥미 좀 끌어 보려고 적당히 떡밥 뿌린거에요.”
팀 카카오의 연습실.
SAO와의 대전을 앞두고 있는 크리스는 여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리스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팀원들도 최근 무패행진을 기록하고 있는 SAO를 상대하는 것 치곤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이었다.
카카오에서 정글러를 맡고 있는 한 선수는 크리스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알고 있지? 이번 SAO전에서는 네 역할이 중요해. 컨디션 관리 잘 해둬.”
“걱정 마세요. 미드의 성장만 억제하면 반반 싸움 갈 수 있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해요.”
팀 카카오의 생각은 이랬다.
SAO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1부리그 급의 실력을 가진 미드라이너가 존재한다는 것,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라고 따라서 확신했다. ‘미드만 집중적으로 파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다’ 라고.
“뭐, 이 전략을 쓴다고 해서 무조건 이길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확률은 상당하죠. 그 미드라이너가 오기 전에는 중하위권에서 놀던 팀이었잖아요?”
물론 필승법은 아니었다. 프로의 세계에서 필승법 따위가 존재할리 없다는 것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 명의 선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팀을 상대하는 방법으로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SAO의 기세가 워낙 심상치 않은 터라,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만약 생각처럼 이 작전이 잘 통하지 않으면 어쩌지? 미리 테스트 해볼 수도 없고.”
“테스트 해 볼 수는 있죠. 겸사겸사 멘탈도 흔들어 놓고요. 혹시 SAO랑 연습경기 잡혀있는 팀이 어딘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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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별 다른 문제가 없는데...뭘까?’
팀 카카오와의 경기 하루 전날.
결국 결론을 내지 못한 정명은 지난번에 했던 리플레이를 돌려보며, 무언가 약점이 될 만한 것이 있나 유심히 관찰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별 다른 것이 없었다.
SAO는 다른 팀들과의 연습 경기에서 여전히 상당한 승률을 내고 있었고, 연습경기에서 졌을 때는 간발의 차이로 패했기 때문에 딱히 이렇다할 것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런 정명을 보던 초는 책상에 음료수를 탁 내려놓으며 옆에 앉았다.
“정명. 또 그거 보고 있는 거예요?”
“네. 아무래도 좀 찝찝해서요. 혹시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가 싶어서.”
“그냥 그 나잇대 소년의 치기 아니었을까요? 그 왜, 사춘기 소년은 대게 그렇잖아요? 지기 싫어하고, 허세부리는 것 좋아하고...”
“흠...그럴 수도 있지만...”
정명이 납득한 것 같지 않자, 초 또한 옆에서 리플레이를 열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화면에 나오는 리플레이에서는 마침 정명이 상대방을 피지컬로 압도하며 솔로킬을 내고 있었다.
초는 그 슈퍼플레이를 보며 진심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다시 봐도 정말 대단하네요. 아마추어대 프로가 경기를 치르는 듯한 느낌이에요.”
“하하. 뭐 그 정도 까진 아니에요.”
“그러면 1군대 2군의 매치업 정도? 네. 딱 그 정도네요. 정명, 한국에서 연습생으로 오래 지냈다고 했죠?”
“네. 결국 2군에 올라가지도 못 했지만요.”
정명은 지난 NPG 연습생 생활을 떠올렸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자신이 그런 대우를 받았음에도 잘도 참고 버텼지 싶었다. 아니면 그만큼 성공에 대한 갈망이 컸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고.
그 말을 들은 초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몇 번 들은 얘기지만, 정말 믿을 수가 없어요. 이 실력이면 당장 1군에서 뛰어도 문제없을 것처럼 보이는데. 혹시 거기 감독이랑 사이 안 좋았어요?”
“네. 아주 개새끼였거든요. 대판 싸웠죠.”
정명은 초와 큭큭거리며 웃고는, 다른 팀과의 연습 게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이 숨기고 있다는 전략에 대해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다면, 차라리 연습게임이라도 한 판 하는 것이 나을 테니까.
.......
“뭐야 이것들. 미드에 뭐 맡겨놨나? 뭐 이리 자주 와?”
경기 전날. 다른 팀과의 연습경기에서 정명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게임 시작 10분 째. 고작 10분밖에 안 지났는데도 상대방 정글러가 미드를 쉴 새 없이 들락날락 거렸기 때문이었다.
‘아 미니언좀 먹자 좀...‘
라인이 밀리면 미니언 막타를 치기가 힘들어진다. 따라서 라인이 계속 밀려있다보면, 지속적으로 CS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그것을 유도하듯 상대방은 강한 라인 푸시를 넣고 있었다.
결국 미니언을 몇 마리 놓친 정명은 이쯤 했으면 정글러가 다른 곳으로 갔겠지... 싶어 라인 앞으로 살짝 나가보았다.
하지만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가 보이자, 정명은 바로 캐릭터를 뒤로 물렸다.
“뭐야. 또?”
아니나 다를까, 정명이 라인 중간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상대방 정글러가 나와서 견제를 했다.
결국 또다시 라인이 밀린 정명은 CS 손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정명은 짜증섞인 한숨을 뱉으며 시야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미드라인은 좀 말렸는데. 다른 라인은 어떻지?’
상대방 정글러가 미드라인에 목을 매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탑이나 바텀라인은 편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
정명이 고통 받고 있는 동안 무럭무럭 큰 다른 라인의 성장을 바탕으로 SAO는 한타페이즈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결국 연습게임에서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연습게임이라 그런가? 별 해괴한 전략을 다 꺼내네.’
경기가 끝나자 정명은 상대방이 참 이상한 전략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올인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생은 하긴 했지만, 큰 의미는 두지 않았다. 그런데...
‘아니, 이놈들도?’
연습하는 상대가 같은 것이 아니다.
전 판과는 다른 팀과 연습경기를 하는데도 사용하는 전략이 같았다.
그들은 전에 경기를 치렀던 사람들과 같이, 미드만 집중적으로 파는 그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데자뷰?’
전 판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정명은 타워 근처까지 밀려 CS손실을 내고 있었고, 상대방 정글러는 정명이 라인 중간으로 머리를 들이밀 때마다 귀신같이 와서 견제를 넣었다.
정명은 전 판과 마찬가지로 시야를 돌려 다른 라인의 상황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비등비등 하네.’
전 게임과 달리, 이번에는 탑과 바텀라인에서 크게 이득을 보고 있지는 못했다.
다른 라인은 비슷하게 컸는데, 항상 캐리를 도맡아했던 정명은 견제가 심하여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상황.
정명은 조바심이 나서 뭐라도 해 보고자 상대에게 딜 교환을 걸었다.
하지만 욕심이었다. 싸움이 조금 길어지자, 정명은 근처를 맴돌고 있던 정글러에게 잡혀 킬을 내주고 말았다.
게임이 잘 풀리지 않자, 정명은 한숨을 쉬었다.
‘이런...이 게임은 글렀다.’
그리고 정명의 예상대로 결국 그 연습게임은 지고 말았다.
.......
“오늘은...좀 많이 졌네요.”
초가 오늘의 경기 데이터를 정리하며 씁쓸하게 말했다.
오늘의 승률은 60%.
2부리그에서 나름 잘 한다는 팀하고만 경기를 했기 때문에 승률이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건 너무 떨어졌다.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축 처지자, 정명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너무 신경 쓸 것 없어요. 다음에 잘 하면 됩니다.”
“오늘 미드라인에 견제가 심하니까 이렇게 된 것 같아. 내가 더 잘 했어야 했는데...”
“사실 제 플레이도 좀 아쉬웠어요. 어떻게든 버티고 있어야 했는데, 자꾸 킬을 내 줘서.”
“차라리 새비도 미드에 죽치고 있는 것은 어때요? 맞불작전으로.”
“하지만 지금껏 연습한 적 없는 전략을 들고 나갔다간 동선이 꼬인다고. 경기는 내일...아니지, 지금이 새벽 1시니까, 오늘이라고. 그건 불가능해.”
정명은 불안하더라도 연습한 전략을 계속 쓰자는 것에 동의했다. 어차피 매번 진 것도 아니고, 지금 전략을 수정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으니까.
만약 동선을 바꾸거나 전략을 수정한다면,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졸전을 펼치게 될 지도 몰랐다.
그렇게 SAO는 멘탈이 조금 흔들린 채로 하루를 마쳤다.
그리고 잠시 뒤. 정명은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경기를 되짚어봤다.
‘팀 카카오에서 준비했다던 전략이 바로 이거였나? 젠장,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군. 경기 하루 전날 이런 전략을 쓰는 팀들이 많은 것도 우연은 아니겠어.’
패턴은 항상 같았다.
정명은 지속되는 견제로 타워를 끼고 살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자연스레 CS 손실을 많이 보게 되기 때문에 성장이 저해된다.
이 상황에서 다른 라인이 이긴다면 다행이지만, 비등하게 가거나 정명이 버티지 못했을 경우 높은 확률로 패배했다.
‘내일 경기에서 진다면, 앞으로 우리가 상대하게 될 모든 팀들이 미드를 봉쇄한다는 전략을 꺼내 올지도 모르지. 그런 상황은 좀 피하고 싶은데.’
한참을 고민하던 정명은 상점을 켜서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단기간에 무언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는 없었으니까.
상점을 뒤적거리던 정명은 마침내 쓸 만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수능력 상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수확하는 농부]
미니언 막타를 놓칠 확률이 급감합니다.
(피지컬 50, 정신력 45 이상)
-구매가능
‘어, 이게 좋겠다. 타워를 끼고 사느라 CS 손실이 엄청났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 딱히 타워를 끼고 살지 않아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임에는 틀림 없고.’
정명이 찾은 것은 특수능력이었다.
수확하는 농부라는 이름을 가진 특수능력은 처음 구매하는 능력이자, 능력치 제한 때문에 유일하게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했다.
정명은 한 번 더 생각해 보다가 이윽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가격 : 1000 포인트]
[이 능력을 구입하시겠습니까?]
‘좀 비싸네. 그래도 시험 삼아 사보는 게 좋겠지.’
1000 포인트라면 물론 아깝지만, 이제는 그리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다.
특수능력을 구입한 정명은 이제 스탯 능력치에 관심을 돌렸다.
[현재 능력치]
피지컬 (50/100)
정신력 (50/100)
오더 (25/100)
판단력 (37/100)
‘피지컬...은 당장 도움이 안 되겠지. 단번에 60으로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피지컬이 40을 맴돌던 시절. 피지컬을 올릴 때 드는 포인트는 300이었다.
그리고 피지컬이 50이 되자, 이제 피지컬을 1 올리려면 900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나왔다. 때문에 정명이 쉽게 피지컬을 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은?
정명은 판단력이라는, 애매한 이름을 가진 스탯에 손을 올렸다.
[판단력 스탯을 1 구입하시겠습니까?]
가격 : 150 포인트
잔여 포인트 : 3500
“으음, 150이라...”
혹시나 해서 오더 스탯에도 손을 올리자, 또다시 메시지가 출력된다.
[오더 스탯을 1 구입하시겠습니까?]
가격 : 100 포인트
“오더는...지금 당장 쓸모가 없을 것 같고, 판단력 스탯을 올려볼까?”
정명은 그동안 힘겹게 쌓아온 포인트가 아까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국 판단력 스탯을 올려보기로 했다.
‘그래. 내가 게임을 이기자고 포인트를 버는 거지, 포인트를 벌기 위해 게임을 이기는 것은 아니잖아? 그냥......지르자.’
정명은 일단 판단력 스탯을 3 올려보기로 했다.
피지컬의 경우 49에서 50으로 올린 순간, 벽을 넘은 것처럼 변화가 확 체감되었으니 이번에도 그러리라 기대한 것이다.
[스탯 구입을 완료했습니다.]
[잔여 포인트 : 3050]
‘변한 게 없는 것 같은...어어?’
정명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은 포인트를 사용하여 판단력을 50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더 옮은 판단’ 인 것 같다고.
정명은 그 즉시 충동구매를 하듯, 판단력 스탯을 올려버렸다.
[판단력 스탯을 10 구입하시겠습니까?]
가격 : 3000 포인트
......
[스탯 구입을 완료했습니다.]
[잔여 포인트 : 50]
포인트를 전부 소모해버린 정명은 허탈한 마음이 들어 침대에 몸을 축 늘어트렸다.
‘이제는 완전히 거지군. 모으는 것은 한 달이 걸렸는데, 쓰는 것은 딱 5분 걸렸어...’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판단력 스탯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슬슬 감이 잡혔으니까.
그 때문일까? 정명은 다음 경기에서 SAO가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팀원의 실력이 조금 떨어져도 상관없어. 내가 2인분, 3인분을 해서 캐리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