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원맨팀 공략 (1)
정명이 새비의 취중 진담을 들은 지 몇 주가 지났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 날 했던 얘기를 더 이상 꺼내지 않았고, 묵묵히 연습만 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덧 리그는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잘 했어! 분위기 좋다. 조금만 더 집중하자!”
‘팀 크레센도’의 오더를 맡고 있는 정글러 맥은 신이 나서 외쳤다.
요즘 한창 물이 오른 것으로 평가되는 SAO와의 매치에서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던진 것은 도박수였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다섯 명이서 정글로 쳐들어간 팀 크레센도는 새비를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덕분에 1렙 싸움에서 킬을 내준 새비는 완전히 말려버렸고, SAO는 초반 단계에서 정글러의 도움 없이 라인전을 치러야만 했다.
덕분에 맥은 잘 풀리는 라인전을 보며 승리를 반쯤 확신했다. 그런데...
“어? 한스! cs차이가 왜 이렇게 많이 나? 버티고 있으라고만 했잖아!”
“아니 그 버티는 게 안 된다니까. 나도 지금 엄청 열심히 하고 있거든?”
역시나 미드라인이 문제였다.
요즘 2부리그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미드라이너. 정명 때문이었다.
‘어쩌다가 저런 놈이 2부리그에 와가지고...’
지금까지의 경기를 돌이켜 보면, 정명은 1:1 라인전 구도에서 진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왜 1부리그 팀에 들어가지 못했는지 무척 궁금해 했지만, 지금 와서는 의미가 없는 질문이다.
저런 놈이 ‘왜’ 여기 있냐 보다는,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고민하는 것이 더 프로다운 자세일 테니까.
어깨가 무거워진 한스는 이를 악 물었다.
‘젠장. 타겟형 스킬을 가진 캐릭터를 골랐어야 했는데. 좀 맞아라 좀...좀!’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과는 별개로, 한스의 스킬은 허공만을 가르고 있었다.
너무나 정직한 스킬 공격, 반 박자 늦은 타이밍, 마나 코스트를 생각지 않은 스킬 난사...한스의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고, 결국 한스는 타워 근처로 밀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정명의 눈이 빛나며 손이 더 빨라졌다. 킬 각이 보이자, 무리해보이기까지 하는 타워 다이브를 시도하려 했던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한스는 다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이봐! 잠깐만 와 줘. 이거 위험해!”
“뭐? 이런, 내가......”
그 순간이었다.
정명은 타워 옆에 찰싹 붙어있는 한스에게 빠르게 접근하여 스킬을 난사했다.
한스 또한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듯 최대한 무빙을 하며 시간을 끌었고, 덕분에 정명은 타워에게 얻어맞으며 피가 푹푹 빠지고 있었다.
‘같이 죽자 이놈아!’
한스의 HP가 10%밖에 남지 않은 순간. 타워에 계속 얻어맞던 정명은 갑자기 점멸을 사용해 타워 밖으로 빠져나갔다.
살았나? 싶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려던 한스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HP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스는 그제야 눈치 챘다. 마지막 순간. 정명이 도트 데미지를 주는 스킬인 점화를 걸어놓고 빠진 것을.
점화의 효과는 데미지 40에 6초 지속. 남은 피를 확인하니, 200밖에 되질 않았다.
한스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한숨을 쉬었다.
‘이미 죽어있네.’
[적을 처치했습니다.]
-솔로 킬! 정명 선수, 6경기 연속으로 미드라이너에게 솔로 킬을 냈습니다!
-이번에는 한스 선수가 최근 정명 선수의 기세를 의식해서 도주기가 많은 캐릭터를 골랐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어요. 아직 경기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맞붙을 미드라이너들의 고민이 깊어질 것 같습니다.
정명은 언제나 그랬듯 유유히 상대방 라이너를 박살냈다.
그리고 힘들어 하고 있는 다른 라인으로 로밍을 다니며 경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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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정규리그에서의 승리! 300포인트가 주어집니다.]
[2:0 완승 보너스! 300포인트가 추가로 주어집니다.]
[현재 포인트 : 4200]
[폭탄마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경기의 MVP를 받은 것은 오늘도 정명이었다.
정명은 이제 익숙하게 무대 앞으로 나가서 팬들에게 인사했다.
“유정명 선수, 오늘의 MVP로 선정되셨는데요, 오늘 경기는 어떠셨습니까?”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플레이가 나왔다고 생각해서 기쁩니다. 팀이 승승장구하니 기분이 좋네요.”
오늘 경기를 승리함으로써 SAO의 성적은 4승 0패가 되었다.
똑같이 4승 0패를 기록하고 있는 스콜피온즈와 공동 1위가 된 것이다.
덕분에 섬머리그 시작 전, 유력한 2위 후보로 생각됐던 팀 카카오는 3위로 밀려나 똥줄을 제대로 태우고 있었다.
1부리그로 올라갈 수 있는 승강전을 치룰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2위까지니까.
따라서 지난 시즌에서 아쉽게 승강전에서 패배한 스콜피온즈를 잡던가, 요즘 가장 핫한 팀인 SAO를 꺾어야만 했다.
정명을 인터뷰하고 있는 남자는 그 사실을 부각시켰다.
“팀 카카오의 미드라이너 크리스 선수가 'SAO는 거품이다. 무조건 내가 이긴다‘ 라고 어제 인터뷰에서 선언했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크리스 선수요. 제가 알고 있기로, 그 선수도 이번 시즌 들어서 라인전에서 진 적이 없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맞습니다. 정명 선수와 같이 라인전에서 패배한 적이 없죠.”
“지금껏 전승했다면, 그런 자만심을 가질만 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무조건 제가 이깁니다.”
-맞아! 박살 내버려!
-전승 우승 가자!
정명의 자신감 있는 대답에 팬들이 환호했다.
정명은 어느 순간 자신에게 팬이 꽤 늘어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딱히 시스템 메시지에서 보이는 팬들의 수가 늘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를 응원해주는 팬들에게서 ‘SAO의 미드라이너’ 라는 말 대신 정명이라고 직접 말해주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다음 경기는 볼 만 하겠군요. 기대하겠습니다. 지금까지 SAO의 미드라이너 유정명 선수의 인터뷰였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대기실로 돌아온 정명은 멍하니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포인트...많이 쌓였네.’
[유정명]
[보유 스킬]
없음
[현재 능력치]
피지컬 (50/100)
정신력 (50/100)
오더 (25/100)
판단력 (37/100)
[팬 수]
85 명
[잔여 포인트]
4200 포인트
포인트는 혹시나 해서 일단 모아두었다.
피지컬을 올리려고 해 봐도, 이제는 피지컬 1을 올리는데 포인트를 900이나 잡아먹었기에 쉽게 올릴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40대일 때는 소모 포인트가 300이었는데 세 배나 오르다니...이건 정말 예상 못 했다.’
다만 이제는 소모되는 포인트만큼이나 많은 포인트가 들어왔기 때문에 걱정은 덜했다.
정명은 리그가 중반 무렵에 들어왔을 때 받았던 퀘스트를 떠올렸다.
[북미 2부 리그 퀘스트]
리그에서 승점을 쌓아 승강전에 진출하십시오.
보상
1위 달성 시 5000 포인트
2위 달성 시 2000 포인트
3위 달성 시 500 포인트
‘만약 1위를 한다면...복권에 당첨된 기분이겠어. 나쁘지 않아.’
목표는 2위 이내에 드는 것.
3위를 해도 포인트는 주지만, 3위는 승강전에 진출할 자격이 없다.
어차피 지금 페이스대로라면 최소 2위는 확정이니 3위를 할까봐 걱정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인터뷰까지 다 했으니, 이제 이곳에 볼일은 없다.
정명이 차에 타려 복도를 지나가던 그 때, 정명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저, 저기...SAO의 미드라이너 정명 선수 맞...맞으시죠?”
정명을 부른 것은 붉은머리의 소녀였다. 교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등학생인 듯 했다.
“예. 맞습니다만 무슨 일인가요?”
“사진...좀 같이 찍어 주실 수 있나요? 저기...팬이라서...”
“아, 네. 괜찮습니다. 이리로 오세요.”
모르는 사람이 불러서 잠시 경계했지만, 팬이었다.
팬과 이렇게 가까이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던 정명은 속에서 뭔가 간질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녀팬이라니...내게 소녀팬이라니...이건 한 달간 자랑감이다.’
정명은 소녀와 사진도 찍고, 잠시 대화도 나누었다. 그녀는 홀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천재적인 모습에 반하여 팬이 되었다고 한다.
“천재적...그 정도는 아닌데요.”
“아뇨! 딱 감이 왔어요. 그러니까 꼭 다른 팀으로 이적하세요. 솔직히 정명의 실력으로 SAO에 있긴 너무 아까워요.”
“아...네.”
잘못 대답하면 팀원들의 험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정명은 그냥 멋쩍게 웃었다.
팬과 헤어지기 전.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당부했다.
“이거는 그냥 소문인데요, 다음 경기 상대인 카카오 있잖아요...거기서 뭔가 특별한 대책을 내놓았다는 소문이 돌아요.”
“특별한 대책이요?”
“공략법이라고 해야 하나? 크리스의 개인방송에서 그런 말이 돌았다는 소문이 있어요. 절대 방심하시면 안 돼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팀 카카오와의 경기는 8일 후.
딱히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팬에게 그런 말까지 들었는데 마냥 무시하기엔 좀 그랬다.
정명은 트이치TV에 접속해 팀 카카오 미드라이너의 방송을 검색했다.
“어디...... ‘북미 최강 포텐을 가진 미드라이너의 방송’ 이라고...?”
클릭하여 방으로 들어가니, 마침 랭크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타이밍을 잘 맞춘 듯 했다.
정명은 과자를 먹으며 크리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역시 피지컬은 나쁘지 않네. 고등학생이니 당연한가?’
반응속도, 스킬 적중률, 스킬연계.
정명이 보기에 크리스라는 이름의 미드라이너는 꽤 괜찮은 피지컬을 갖고 있었다. 2부리그 선수 중에서 순위에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방송을 계속 보다보니 단점도 눈에 띄었다.
‘판단력이 좀 나쁘군. 분명 뺄 타이밍인데도 CS 줏어 먹겠다고 계속 라인에 있으니 죽는 거다.’
그런 개인적인 감상은 접어 두고, 채팅과 크리스의 말을 경청했지만 SAO를 어떤 방법으로 이기겠다는 건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남의 방송을 보다가 지루해진 정명은 결국 크리스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BJ와 말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채팅이 자꾸 묻혔다.
정명은 생각을 조금 바꿔보기로 했다.
‘음... 이렇게 하면 봐 주려나?’
[for kakao님이 달풍선 1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for kakao : 크리스님. 다음 SAO와의 경기 어때요? 이길 자신 있어요?]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채팅이 묻히지 않았다.
달풍선을 선물 받은 크리스는 웃으며 질문에 답했다.
“물론 자신 있죠. 토토에 돈 거셔도 돼요. 우리가 이기니까.”
[for kakao : 그게 쉽게 되나 ㄷㄷ 요즘 거기 미드라이너 물 제대로 올랐던데.]
정명의 채팅에 크리스는 의미심장하게 답했다.
“거기에 답이 있어요. 거기 미드라이너. 물론 잘 하죠. 인정합니다. 그런데...하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