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프로게이머-13화 (13/226)

3. SAO (完)

[20분 뒤. SAO와 유니콘즈의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수 여러분들은 모두 부스 안으로 들어가 주십시오.]

“정명. 무슨 일 있어?”

“아뇨. 별 일 없어요.”

“정말 별 일 없어? 어디서 욕이라도 한 바가지 먹고 온 표정인데.”

정명이 엿들은 것은 한 커뮤니티 사이트의 기자와 유니콘즈 미드라이너와의 대화였다.

재키라는 이름의 그 미드라이너는,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팀에 영입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오늘 경기는 자신이 이길 것이라 확신했다.

‘만약 오늘 경기에서 진다면, 저 짜증나는 소리가 기사로 나갈지도 모르겠네.’

경기를 앞두고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부스로 들어 온 정명은 AI를 상대로 손을 풀며 마음을 추스렸다.

그리고 잠시 뒤. 대기실에 열 명의 게이머가 들어왔다.

경기 준비가 된 것을 확인한 직원은 캐스터에게 신호를 보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럼 SAO와 유니콘즈의 경기를 시작 하겠습니다!]

첫 번째 순서는 밴/픽.

100개가 넘는 캐릭터 중에서 세 개를 고르지 못 하게 제한하는 순서다.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숨을 죽인 가운데, 유니콘즈는 평범하게 밴을 했다.

나무정령, 무법자, 카드맨.

1부 리그에서 유행하는 밴 스타일이었다.

그것을 보던 새비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거, 이 친구들이 우리를 너무 만만히 보고 있는 것 같은데?”

SAO는 개막전 상대인 유니콘즈를 제외한 여러 팀들과 연습경기를 했다.

물론 양 팀은 연습경기에서 상대팀이 무슨 전략을 썼는지, 무슨 캐릭터를 사용했는지에 대한 것은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그게 암묵적인 룰이다.

하지만 연습한 팀의 숫자가 다섯을 넘어가다 보면 입단속이 힘들다.

LOH에서 ‘깜짝 전략’이나 ‘뜬금없이 튀어나온 캐릭터’ 같은 것이 등장하기 힘든 이유다.

‘우리들이 주로 어떤 캐릭터를 연습했는가에 대한 정보는 진작 새 나갔을 텐데...’

그럼에도 그것을 밴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감, 혹은 자만심일 것이다.

덕분에 SAO는 각자 자신들이 가장 자신있어하는 베스트 픽을 고를 수 있었다.

-토린. 이번 SAO와 유니콘즈의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

-일단 스프링 리그 성적으로는 유니콘즈는 6위. SAO는 8위였거든요. 이렇게만 보면 비슷한 전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최근 SAO에는 큰 일이 있었죠. 미드라이너 조셉이 선라이즈로 이적해 버렸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정글러 새비의 부담이 크겠군요. SAO를 지탱하던 두 기둥 중 하나가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에요.

사람들은 정명에게 별 기대를 품지 않았다.

그가 한국인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게임을 잘 한다는 이유는 되지 못하니까.

지금 정명은 2부리그에 도전하는 신인 게이머일 뿐이었다.

따라서 해설자와 팬들은 항상 좋은 활약을 보여주던 정글러 새비에게 온 시선을 집중했다. 그런데...

[퍼스트 블러드]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3분 째. 미드라인에서 첫 킬이 나왔다. 라이너들의 레벨이 2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섬머리그 첫 킬이 나왔습니다! 신인선수의 첫 득점!

-재키 선수, 이거 완전히 어처구니없는 실수입니다. 개막전 경기라 적응이 덜 됐나요?

카메라맨은 즉시 카메라를 돌려 유니콘즈 미드라이너의 모습을 클로즈업 했다.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죽어서 체면을 구긴 재키는 표정을 굳힌 채로 물만 벌컥벌컥 마셨다.

킬을 하나 내주었지만, 경기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재키의 단순한 실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2부리그에서 상당한 시간동안 경험을 쌓은 재키가 햇병아리같은 신입 라이너에게 솔로 킬을 당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일이니까.

그러한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재키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 나 운 좋은 새끼. 별 것도 아닌 놈이 짜증나게. 이번에는 제대로 간다.’

살짝 약이 오른 재키는 정명이 살짝 틈을 보이자 그대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명의 노림수였다.

-재키선수, 파고듭니다!

-아 망했어요! 이미 스킬이 날아올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역습. 그리고 또다시 솔로 킬!

예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신인 미드라이너가 경험 많은 선수 재키에게 솔로킬을 두 번이나 낸 것이다.

재키는 당황하여 입만 헤 벌리고 있었다.

물론, 그 모든 모습은 카메라에 찍혀 방송으로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재키는 또다시 애꿏은 물만 벌컥벌컥 마셨다.

‘이거 좆됐다...’

이쯤 격차가 벌어졌으면, 실력과는 상관없이 또 솔로킬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유니콘즈의 정글러는 미드라이너에게 타워를 끼고 방어적으로 플레이 하라고 지시했다.

“야, 그냥 타워 끼고 사려. 다른 라인 상황도 만만치 않은데, 미드라인에서 터지면 어떡해?”

“....알았다.”

조바심이 난 정글러는 미드라인에서의 실책을 만회해 보고자 미드를 제외한 다른 라인으로 향했지만, 갱킹을 갈 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거, 영 신통치 않네. 틈이 없어.’

당연한 일이었다. 각자 베스트 픽을 가져간 SAO는 힘들었던 연습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라인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니까.

바텀라인은 오히려 정글러의 개입 없는 2:2 싸움에서 승리하며 초반 기세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사뮤엘선수 더블 킬! 이로써 격차는 5:0으로 벌어집니다!

-싸움에서 승리했으니 전리품을 챙겨가야죠. SAO, 드래곤 1스택을 추가하며 스노우볼을 굴립니다!

유니콘즈의 정글러가 바쁘게 뛰어다녔지만, 어찌된 것이 바쁘게 다니면 다닐수록 격차가 커져만 갔다.

결국 킬 스코어는 15:3까지 벌어졌고, 시작한지 25분 만에 항복 사인이 나왔다.

-유니콘즈, 25분 만에 항복을 선언합니다! 완패입니다 완패!

-다전제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것이 나은 판단일 수도 있어요. 여기서 멘탈이 무너지면 다음 경기에도 지장이 가니까요.

1경기가 끝나고 주어진 쉬는 시간은 딱 7분.

잠깐의 쉬는 시간 뒤 곧바로 2경기가 시작됐다.

다음 경기에서는 유니콘즈가 조금 정신을 차렸다.

1경기에서 호되게 당한 뒤, 드디어 SAO의 주력 픽들을 밴 하기 시작 했던 것이다.

그러나 프로게이머들은 한 가지 캐릭터만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정명이 맡고 있는 미드라인은 여전히 건재했기에, 미드라인의 우위를 바탕으로 SAO는 40분의 경기 끝에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인터넷 방송에서는 승리의 기쁨으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SAO와 똥 씹은 표정으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챙기는 유니콘즈의 모습이 대비대듯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떠오르는 메시지에 정명은 눈을 끔뻑끔뻑 떴다.

[2부 정규리그에서의 승리! 300포인트가 주어집니다.]

[2:0 완승 보너스! 300포인트가 추가로 주어집니다.]

[현재 포인트 : 1020]

[정규리그 승리 경기로 인하여 ‘환영술사’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숙련도 레벨 업!]

[환영술사]의 숙련도 등급 : 초급 마법사숙련도 LV 2 : 해당 캐릭터를 플레이할 시 피지컬이 2 보정됩니다.

'와. 정말 엄청나게 오르는구나. 내가 2판 이겼으니까 600포인트, 거기다가 보너스 300포인트라니!‘

900포인트라면 정명이 닭장 같은 NPG연습실에 계속 처박혀 있었다고 가정했을 때, 일주일은 고생해야 벌 수 있는 포인트였다.

정명은 경기를 나가기 위하여 대륙을 넘어온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며 뿌듯해했다.

승리의 여운을 만끽하기 위해 메시지를 천천히 살펴보고 싶지만, 당장은 그럴 시간이 없다.

서둘러 개인 키보드와 마우스를 챙기고 있던 정명은 초에게 한 남자가 다가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방송국 직원이었다.

“초. 혹시 SAO의 미드라이너 영어 할 수 있나요? 가능하면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만.”

“네. 할 수 있어요. 직접 얘기하셔도 되요.”

그제야 정명에게 다가온 직원은 뭐가 그리 급한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좋아요. 정명. 5분 뒤에 승자 MVP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니까 잠깐만 와 주세요. 오래 안 걸려요.”

인터뷰는 승자만 진행한다.

그야 승부에서 패배해 기분이 더러운 상태인 선수에게 말을 걸어봤자, 좋은 말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무대 앞으로 간 정명에게 턱수염을 잔뜩 기른 남자가 마이크를 갖고 다가왔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이었다.

‘1부리그에서는 미녀 리포터가 인터뷰를 진행 하던데...‘

정명은 아쉬운 속마음을 감추며 팬들 앞에 서서 밝게 웃었다. 그리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팬들은 새로운 선수의 등장을 박수로 맞이해 주었다.

“정명 선수는 오늘 첫 경기를 치렀는데요, 소감이 어떻습니까?”

“아주 좋네요. 쉽게 이겨서 마음도 편하고요.”

“오, 그렇습니까? 유니콘즈가 그렇게 만만한 팀은 아닐 텐데요. 그 왜, 정명선수도 라인전에서 좀 아슬아슬 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거요? 사실 아슬아슬 한 것처럼 보였던 상황은 제가 의도한 거였어요. 낚은 거죠. 그렇게 쉽게 낚일지는 몰랐지만, 덕분에 쉽게 갈 수 있었습니다.”

정명의 말에 팬들에게서 ‘오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인의 패기라 생각하는 듯 했다.

사실, 더 악담을 퍼붓고 싶은 마음이야 가득했지만 오늘 처음 나온 신인이 그래버리면 자신감을 넘어서 거만하게 비춰질 가능성이 더 크다.

정명은 유니콘즈의 미드라이너를 실력으로 찍어 누른 것으로 일단 만족하기로 했다.

“그럼 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

인터뷰가 끝나고 정명은 숙소에 돌아왔다.

첫 경기를 치렀기 때문인지 무척 피곤했기에, 오늘은 연습을 하지 않았다.

경기에서 이겼기 때문에 딱히 안 좋았던 점을 분석하는 반성회도 없다.

SAO 팀원들은 조금 들뜬 분위기에서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정명은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오늘 떴던 메시지 창을 다시 천천히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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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15명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팬이라니. 정명은 괜히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 숨을 죽이고 침대를 뒹굴거렸다.

팀원들이나 구단 관계자는 되도록 커뮤니티 사이트 접속을 자제하라고 했지만, 그게 맘처럼 쉽지가 않았다.

정명은 LOH의 팬 사이트로 들어가 오늘 경기에 대한 반응을 찾아다녔고, 그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글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유니콘즈 미드라이너가 트위터에 적은 글을 캡쳐 해놓은 사진이 덩그러니 올라와 있었다.

[나는 졌지만 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은 상성이 안 좋은 캐릭터였기에 그런 결과가 나왔을 뿐. 다음에는 다를 것이다.]

-아저씨, 술 마셨소?

-이게 대체 뭔 소리야 ㅋㅋ

-네 다음 루저

정명은 밑에 달린 댓글을 보며 큭큭대고 웃었다.

“아무래도 덜 맞았나 보군. 뭐, 풀리그는 기니까 언젠간 다시 만나서 또 두들겨 줄 수 있겠지.”

@@

대형 모니터가 걸려 있는 회의실.

1부리그에서 활동하는 팀 쥬크에서 전력분석팀으로 일하고 있는 데릭은 유니콘즈와 SAO의 경기를 보며 수첩에 메모를 끄적이고 있었다.

“유니콘즈, 열심히 연습했다고 하더니 상태가 말이 아니군. 선수들 상태도 전혀 나아진 게 없어 보이고.”

“흠, 글쎄. 그렇다기보다는 SAO의 미드라이너가 잘 했다고 봐야지. 움직임이 나쁘지 않아. 마음 같아서는 바로 우리 2군 라인업에 넣어서 키워보고 싶은데.”

“뭐? 그 미드라이너가 그 정도였나?”

“우리 팀 미드가 급하잖아. Hi선수, 분명 이번 시즌 끝나고 이적 할 거라고. 뻔해.”

그 말에, 구단 관계자는 턱수염을 슥슥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지켜보도록 하지. 앞으로의 경기에서도 쭉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SAO에서 저 선수를 사오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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